최근의 사극을 보면 사극이 사극같지 않고 전설극이나 무협극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연성없는 줄거리는 고대소설을 연상시키고, 혼자서 수십 수백병을 상대하고도 조금도 상처를 입지 않는 모습은 무협극을 연상시키지요.
 특히 선덕여왕과 동이는 역사적인 문헌도 보지 않았는지 이미 죽었어야 할 사람이 버젓이 등장하고, 죽지 않은 사람이 유령처럼 계속 출현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관중의 삼국지에서도 죽은 인물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주요 인물이 아닙니다. 근데, 선덕여왕과 동이는 주요 인물이 죽었다고 기록된 시점에서 계속 출현하거나 죽지 않았는데 죽이는 경우가 나와 시청자들을 헷갈리게 만들고 있지요.
 사극이라면 죽은 인물이 등장하거나 산 사람이 죽는 터무니없는 허구는 지양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최근의 사극의 가장 큰 문제점 중에 하나는 사극에 무협극적인 요소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입니다.
 주몽이나 바람의 나라가 대표적인 경우인데,
'주몽'이나 '바람의 나라'를 보면 사극이 아니라 무협극을 보는 기분입니다.
 역사적인 근거도 미약하고 황당한 내용이 많지요.
 혼자서 수십 명을 여유있게 상대하는 장면은 무협극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바람의 나라'에 무휼이 독약에 대한 인체실험을 당하는 장면은 정통 무협극에서 자주 등장하는 해독제를 연상시키지요.
 죽기 직전에 있던 사람이 해독제를 먹으면 멀쩡하게 되살아나는 것은 무협극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장면인데, 이제 사극에 자주 등장하다 보니 어린이들이 보면서 옛날에는 정말 의술이 발달해서 약효가 엄청한 해독제가 있었다고 믿지 않을지요.
 
 스토리 전개 과정도 사극이라기 보다는 무협극에 가깝습니다.
 '바람의 아들'에서 대소왕이 태무신검을 가진자가 천하를 호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의천도룡기에서 도룡도를 손에 넣으면 천하를 호령할 것이라는 스토리를 연상시킵니다.
 주몽을 보면 해모수가 장님이 되어 감옥에서 주몽을 만나게 되는 장면은 의천도룡기의 장무기가 소림사에 감금된 사손을 만나는 장면을 연상시키지요.
 '주몽' 이나 '바람의 아들'의 스토리를 쓴 작가는 무협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사극에 무협 드라마적인 요소가 나오는 것은 작품성보다는 시청률에 집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극에 무협극적인 요소가 나온다면 처음에는 반응이 좋을지 모르지만 자주 보면 식상하게 될 것이고 나중에는 더 황당한 무협극적인 요소가 나올 것이고 결국에는 무협 사극이 되겠지요.
 '주몽'이나 '바람의 나라'같은 역사적 실제성이 적은 사극은 이제 무협 사극으로 분류해야 할 것입니다.


 사극이 사극처럼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숙종이 전설상으로 잠행을 했다는 식의 전설을 드라마로 만든 이야기처럼 현실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고, 무협 사극처럼 혼자서 수십명을 가볍게 상대하는 장면도 자주 나옵니다.
 이처럼 사극이 사극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는 준비성없이 사극을 만들었거나 지나치게 시청률에 연연하여 볼 거리만 만드는데 주력했기 때문이 아닐지요. 
 아무리 사극에 허구가 첨가될 수 있다고 해도 말도 안되는 장면을 첨가하는 것은 개연성을 떨어뜨리는 것이기 때문에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Posted by labyrint

 뉴욕에 사는 어느 두 자매의 이야기입니다.

 언니는 15살이고 동생은 12살이지요.

 두 자매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아버지는 본 기억조차 없지요.

 외할머니가 집에 오셨을 때 우연히 들은 이야기인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고 수 년간 동거하다가 헤어졌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가끔 잔소리를 심하게 했고 자주 딸들에게 집안 청소를 시켰지요.

 어머니의 잔소리가 듣기 싫거나 청소하기가 싫어질 때는 아버지가 사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었지요.


 

 어느 날 어머니의 심한 잔소리에 두 자매는 태어나서 본 적도 없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가출했습니다.

 '아버지도 틀림없이 어머니의 잔소리를 견디지 못해서 떠나셨을거야.'

 두 자매는 그렇게 생각하고 어머니를 떠나 아버지를 찾아 갔습니다.

 어머니가 어딘가 적어 두었던 아버지의 주소를 찾아 무작정 떠났지요.


 아버지가 사는 곳은 고급주택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그들이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아버지는 두 딸을 반갑게 맞이 하지 않았고 심지어 집에 들어오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지요.

 아버지와 함께 사는 여자는 두 딸에게 말조차 걸지 않고 멀리서 지켜 보기만 했는데, 아버지는 딸들이 자기와 함께 살겠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아버지의 태도에 크게 실망한 두 자매는 발길을 집으로 돌리지 않을 수 없었지요.

 언니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면서 동생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잘 지내고 있는지 관심조차 없었어. 어머니가 너무 불쌍해. 혼자서 우리를 키우시느라고 얼마나 힘드셨고 외로우셨을까?"



 두 자매가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는 그들을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잘못했다. 이제 앞으로는 너희들에게 청소도 시키지 않고 잔소리도 하지 않으마."

 언니가 울면서 말했습니다.

 "아니예요. 우리가 나빴어요. 앞으로는 청소도 잘하고 어머니 말도 잘 들을께요."

 두 자매는 짧은 가출을 통해서 어머니가 외로운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어머니 이제 착한 딸이 될께요.'

 그들은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를 보면서 몇 번이나 다짐했습니다.



Posted by labyrint

 인간에게는 자신에게 관심없는 이성에게 끌리는 심리가 있어
자신에게 관심있는 이성에게는 왠지 모르게 끌리지 않고, 자신에게 관심없는 이성에게는 왠지 모르게 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심리는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론이 다프네를 짝사랑한 이야기를 생각나게 만들지요.



 그리스 신화를 보면 큐피트는 아폴론에게 다프네를 사랑하게 만드는 화살을 쏜 후에 다프네에게는 아폴론을 미워하게 만드는 화살을 쏘니 아폴론은 다프네에게 달려가고 다프네는 도망치게 됩니다.

 한 사람은 대쉬하고 대쉬를 받는 사람은 도망치는 것 같은 짝사랑은 우리 주면에서 흔하게 볼 뿐만 아니라 자신도 그러한 경험을 해본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다프네는 아폴론에게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폴론을 싫어하여 그에게 계속 쫓기자, 월계수가 되어버리지요.



 그리스 신화의 아폴론과 다프네의 이야기처럼 인간은 자신을 짝사랑하는 이성이 다가올 때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짝사랑하는 이성에게 무관심하다가 무관심에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 마음이 변하면, 거꾸로
자신을 짝사랑하던 이성을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자신을 좋아하던 사람이 자신을 더이상 좋아하지 않게된 후에서야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큐피트의 장난 같은 사랑은 우리의 삶이나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괜챦은 사람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그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 동안에는 관심이 생기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저도 학창시절 때 저에게 관심이 없는 여학생에게 끌린 적이 여러 차례 있었는데, 사람이란 누구나 이러한 큐피트의 장난같은 짝사랑을 해본 경험이 있지 않을지요.

 그런데 보통 짝사랑을 받는 사람은 매력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신을 짝사랑한 사람이 자신이 짝사랑한 사람보다 더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경우가 많이 있지요.
 인간은 이성의 매력에 끌리는 경향이 있지만, 매력이란 주관적이기 때문에 매력적인 사람이 자신을 좋아해도 끌리지 않아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매력적인 이성이 상처받아 마음이 변하면, 그제서야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사람이 자신에게 관심있는 이성에게는 관심이 없고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이성을 좋아하게 되는 현상이 자주 나타나는 이유는 인간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자신에게 관심없는 이성에게 끌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자가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이유도 자신에게 관심없는 이성에게 끌리는 인간의 심리가 크게 작용하는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지요.

 사람이 자신에게 관심없는 사람에게 끌리는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면, 사람은 이성에 대한 인기로 자신의 존재감과 자존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어 자기 주변의 이성이 자신을 좋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주변에서 자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이성을 만나면, 저 사람이 어째서 나에게 관심이 없는지 호기심이 생기고 자신도 모르게 관심이 생기게 되는 경우가 있지요.
 


 한가지 흥미있는 점은 나쁜 남자들이 작업 대상의 여자에게 관심없는 척하면서도 주변에서 얼쩡거리면서 관심을 끄는 경우가 많은데, 여자는 자신에게 관심없는 나쁜 남자에게 호기심이 생긴 후에 관심이 가게 되는 경우가 있지요.

 여자는 다수의 이성의 사랑을 받고 싶은 심리가 있어 자신에게 관심없는 나쁜 남자를 보면 오기가 생겨 '저 남자가 어떻게 하면 나를 좋아하게 만들까.' 생각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끌리는 경우가 있지요.

 그런데 이러한 방법은 나쁜 남자들이나 바람둥이들도 자주 사용하지만, 과거부터 전통적으로 자주 사용된 연애방법이라고 합니다.

 중세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보면 여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공의 주변에서 일부러 얼쩡거리면서도 관심없는 척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현대인도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의 주변에서 서성이면서도 관심없는 척하면서 관심을 끄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관심없는 척하여 관심을 끄는 것이지요.

 인간에게는 자신에게 관심없는 이성에게 왠지 모르게 끌리는 마음이 있다고 합니다.

 큐피트와 다프네의 쫓고 쫓기는 슬픈 짝사랑의 이야기처럼 남자가 여자에게 대쉬를 하면를 여자는 왠지 남자의 마음을 받아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다가 자신을 짝사랑하던 남자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어지면 그 남자가 왠지 괜챦아 보이는 경우가 많지요.

 이와같은 짝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은 정말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러한 경험을 했다고 하더군요.



 소설을 봐도 이러한 큐피트의 장난같은 짝사랑 이야기가 자주 나오지요.

 남자가 여자를 짝사랑할 때는 여자가 귀챦아 하다가 남자가 보이지 않게 되면 그 남자가 보고 싶어지는 경우는 주변에서도 자주 볼 수 있지요.

 사람에게는 자신을 좋아하는 이성보다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이성에게 더 끌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남자가 내숭녀에게 끌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나 여자가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나 모두 인간이 자신에게 관심없는 이성에게 끌리는 심리 때문이 아닐지요.

 인간은 젊은 시절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나이가 들면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관심없는 사람에게 끌리는 현상은 젊은 시절에 더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지요.

 이유야 어떻든 이러한 심리 때문에 자신을 좋아하는 이성에게 관심이 없다가 나중에 후회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 자신을 좋아하는 이성에게 보다 마음을 여는 것이 미래의 선택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Posted by labyr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