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식시장이 다시 랠리를 가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투자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현재 한국
주식시장은 테마주를 중심으로 거대한 버블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는 한국 주식시장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저평가가 되어있지만, 문제는 증시의 상승을 이끌고 있는 테마주의 경우, 지나치게 과열되어 거대한 버블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테마주의 경우 대부분 PER이 10이 넘어 유럽과 같은 선진국의 PER보다 더 높은데, 테마주에 편승하여 실적이 좋지 않은데도 주가가 급등한 경우가 많아 주식시장 하락 시에는 오른 것보다 더 떨어지면서 반토막이하로 떨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기억을 돌이켜 보면 2007년 주식시장이 2000선을 돌파하며 IPTV 테마주, 교육테마주, 영어 교육 테마주, 등 다양한 테마주가 있었지만, 2008년, 리먼 브라더즈가 파산하기 이전에 고점에 비해 반토막이 난 테마주가 많았지요. 리만 브라더즈가 파산하자 반에 반토막이 나는 황당한 일이 허다했습니다.
 현재의 상황도 2008년과 비슷한 점이 많아 2008년처럼 폭락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폭락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기 때문에 현재 테마주에 투자한다는 것은 리스크가 높아 대단히 조심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주식시장은 여전히 테마주가 난무하여 투자자들이 수익률을 따라 테마주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즈가 파산하기 이전에 테마주들이 추풍낙엽처럼 폭락했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테마주에 투자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할 수 있지요.
 주가가 오를 때는 계속 오를 것 같지만,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일순간에 매도가 몰려 매도가 매도를 불러 폭락하기 시작하면 테마주로 생긴 버블이 순식간에 붕괴하여 매도의 시점조차 찾지 못하여 큰 손실을 볼 가능성이 높겠지요.

 어제 미 5월 주택착공 건수가 전월보다 10%이상 감소하여 주택시장의 암울한 전망을 보여주었습니다. 5월 단독주택 착공 건수는 전월에 비해 무려 17%나 감소하여 1991년 1월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라고 합니다.
 미주택시장이 여전히 깊은 늪에서 빠져 나오고 있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요.
 금융위기를 부른 미주택시장의 침체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5000만에 이르는 모기지 대출자로 인하여 주택시장의 회복이 없이는 미경제의 근본적인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현재의 주택시장의 침체는 대단히 우려스러운 수준입니다.
 이처럼 위험한 상황에서 버블이 심한 테마주에 투자를 한다면, 단타매매에 성공하면 큰 돈을 벌 수 있겠지만, 단타매매에 실패한다면, 큰 손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주식시장이 강할수록 버블도 투자자들이 고수익을 지향하고 한쪽으로 투자가 몰려 테마주에 버블이 생기는 경우가 많지만, 주식시장이 하락전환한다면 테마주에 형성된 버블은 한순간에 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주식시장도 테마주는 아니지만, 점차적으로 양극화되어 애플처럼 투자자들에에 인기있는 회사는 PER이 20에 육박하며 고평가되었지만, 마이크로소프트처럼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회사의 주가는 PER이 13~15사이로 시장 평균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 주가가 고평가된 애플의 실적이 하락한다면, 주가가 크게 하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경제는 좋지 않은데 PER이 20이라니 아무리 애플이 좋은 회사라고 해도 버블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쁜 경제상황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경기의 부진과 저금리로 돈이 주식시장으로 몰리고 있지만, 리만 브라더즈의 파산 이전에 미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로 테마주가 폭락한 2008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테마주의 버블이 붕괴되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올들어 이미 여러 차례 주식시장이 대폭락한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테마주의 버블 붕괴는 한순간에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단기매매의 고수가 아니라면, 현재 테마주에 투자하는 것은 대단히 리스크가 높은 투자이지요.
 2008년은 특별한 케이스였다고 해도 2006년에도 테마주 붕괴로 주식시장이 크게 폭락했었기 때문에 테마주 투자가 얼마나 리스크가 높은 투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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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신은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장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당대 최고의 명장 항우를 해하에서 대파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한신이 없었다면 유방의 천하통일은 불가능한 일이였을 것이고 항우는 어쩌면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장으로 평가받았을지 모르지요.

 한신은 한나라가 팽성에서 대패하여 위기에 몰렸을 때, 위, 대, 조, 제를 차례로 정복하여 불리했던 초한전을 한나라가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고 마지막으로 해하에서 항우가 이끄는 초군을 대파하여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했지요.


 한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한신이 이긴 적장들이 모두 뛰어난 장군이였다는 점입니다.

 항우는 당대 무적이였고 장한, 위표, 진여, 용저 등도 모두 쉬운 상대가 아니였지요.

 특히 장한은 진나라 시절 항우의 삼촌 항량의 초군을 대파하여 초나라를 위기에 빠뜨렸었고 20만 대군으로 항우가 이끄는 초나라의 40만 대군의 진격을 막아 항우를 난처하게 만들었던 명장이였지만, 한신이 명장 장한을 상대로 숫적인 열세에도 큰 어려움 없이 장한을 대파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뛰어난 명장인지 알 수 있지요.

 진여는 수만 병력으로 장한이 이끄는 진나라의 20만 대군의 공격을 잘 막아 조나라를 구원온 항우가 장한을 격파하는데에 큰 공을 세운 지장이였지요.

 진여의 조군이 쉽게 무너졌다면 아마도 항우는 거록에서 진나라를 이기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적들을 큰 난관없이 대파했다는 사실은 한신이 얼마나 뛰어난 명장인지 잘 알 수 있게 하지요.
 그리고 한신이 이전에 대군을 지휘한 경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장군이 된 얼마 후에 명장 장한을 격파한 사실은 그가 얼마나 천재적인 군사 전략가였는지 알 수 있게 하지요.


 

 한신은 초나라 회음 출신으로 무명 시절에 가난하게 살았는데, 회음에서 낚시하고 있을 때에 어떤 부인이 그가 배고픈 것을 알아차리고 그에게 며칠 동안 밥을 주니 한신은 그 부인에게 언젠가는 보답하겠다고 말했고 훗날 초나라 왕이 된 한신은 정말 그녀를 찾아 큰 상을 주었다고 합니다.

 언젠가 한신은 어느 정장의 집에 기거한 적이 있는데 그의 부인이 밥을 주지 않아 화가 나서 나갔지만, 한신은 초나라 왕이 된 후에 그녀를 꾸짖으면서도 그녀에게 벌을 주지 않고 상을 주었다고 합니다.

 회음의 젊은이들 중 한 건달이 한신을 모욕하면서 가랭이 밑으로 기어가라고 하자 한신은 정말 가랭이 밑을 기어나갔고 많은 사람들이 한신을 겁쟁이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한신은 나중에 초나라 왕이 된 후에 이 건달을 찾아내어 벌을 준 것이 아니라 상을 준 후에 중위에 임명했다고 합니다.

 한신은 그 때의 굴욕을 참은 것이 결국 현재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했지요.

 이처럼 한신은 상대가 자신을 악으로 대했다고 해도 결국 덕을 봤다면 상을 줄 정도로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들에게 크게 보답하는 성격이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한신의 성격은 결국 자신에게 은혜를 배푼 유방의 의심을 샀으면서도 배신을 하지 못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 원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항양이 반란을 일으키자 한신은 그의 휘하에 있었지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항양이 패사한 후에 항우의 휘하에 있게 되었지만, 항우는 한신의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를 중용하지 않아 한신은 한으로 도망쳤지요.

 여기서 항우가 어째서 한신을 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명장은 명장을 알아 본다는 말이 있듯이 명장인 항우가 한신의 계책을 들어 보면 한신이 보통 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우가 한신을 중용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힘든 점이지요.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한신은 적을 유인하는 계책을 올렸지만 용맹한 항우는 적을 유인하는 작전을 좋아하지 않아 한신의 계책을 받아 들이지 않은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아무튼 한에 와서도 인정받지 못한 한신은 우연히 법을 어겨 죽게 되었는데, 등공이 다행히 지나가다 한신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한신을 살려 주었다고 합니다.

 등공은 한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유방에게 추천하였지만 유방은 그를 중용하지 않았지요.
 한나라 승상 소하 역시 한신의 재능을 알고 유방에게 추천하였지만 등용되지 않자 한신은 결국 도망쳤는데, 소하는 한신이 도망쳤다는 소식을 듣고 뒤쫓아 가서 한신을 데리고 왔습니다.
 유방은 소하까지 도망친 줄 알고 크게 낙담했는데, 소하가 한신을 붙잡으려고 떠났었다고 말하자 유방은 소하를 생각해서 한신을 대장군으로 임명하였지요. 


 소하의 의견에 따라 성대한 대장 임명식을 했고 임명식이 끝난 후에 유방은 한신의 계략에 따라 동진하여 삼진을 평정한 후에 제와 조와 연합하여 무려 56만 대군으로 초를 공격하여 팽성에 진입하였으나 수 만에 불과한 항우의 초군에 대패하였지요.

 하지만 한신은 패잔병을 수습하여 초군의 공격을 막았지요.
 56만이나 되는 연합군이 수 만에 불과한 항우의 초군에 참패하자 제, 조, 위가 한을 배신하여 전세는 한나라에 불리하게 되었지요.



 이에 한신은 위를 공격하여 위를 평정한 후에 장이와 함께 조와 대를 공격하게 하였지요.

 한신이 대를 평정한 후에 조를 공격하자 조의 장군 진여는 20여만의 군사를 집결시켰는데, 참모인 이좌거는 연전연승으로 기세가 오른 한나라와 정면으로 싸우지 말고 자신에게 3만의 병력을 주면 보급로를 차단시키겠다고 했지만 진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한신은 진여가 이좌거의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첩자를 통해서 듣고 크게 기뻐하며 2000여명을 선발하여 산에 숨어 있다가 조군이 성벽을 비우면 조의 성벽으로 들어가 한의 깃발을 세울 것을 명령했지요.
 한신은 이 때 그 유명한 배수진을 쳤습니다.

 한군이 배수진을 치자 조군이 병법도 모른다고 비웃었지만 막상 전투가 벌어지자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한군의 위세에 눌려 조군은 진지로 돌아가려 했지만 이미 성벽은 한나라 깃발이 가득했지요.

 한신의 명령에 따라 2000여명의 한군은 조군이 성벽을 비운 틈을 타서 성벽을 차지 한 후에 수많은 깃발을 꽂아 대군이 성벽을 차지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던 것이지요. 갑자기 대군이 나타난 것으로 착각한 조군이 놀라 도망치자 한군은 조군을 대파하여 진여를 죽이고 조왕을 사로 잡았지요.
 한신은 생포한 이좌거를 풀어주고 그를 스승의 예로써 대한 후에 계책을 물었습니다. 한신은 기세를 몰아 연나라나 제나라를 공격하려고 했지만, 이좌거는 지친 병사들을 이끌고 연나라를 공격하지 말고, 지친 병사들을 쉬게 한 후에 연나라에 사신을 보내 항복을 설득할 것을 충고했습니다. 한신은 이좌거의 계책에 따라 지친 군사를 쉬게 하고 잔치를 배푼 후에 연나라에게 항복을 권유하자 연나라는 항복하였습니다.


 한신이 조를 정복하는 동안에 항우는 유방을 공격하였습니다.
 유방은 패하여 도망쳐 조에 도착하였지만 한신이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자신을 한의 사자라고 속인 후에 대장의 인부를 빼았은 후에 한신에게 제를 공격할 것을 명령하였지요.

 한신이 병사를 이끌고 제를 공격하기 전에 한왕이 역이기를 보내 제를 설득하여 항복시켰지요.
 
한신은 공격을 중지하려고 했지만, 괴통이라는 자가 조칙을 받았으니 계속 공격할 것을 주장하였고 한신이 괴통의 말대로 제를 공격하자 제왕은 역이기가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하여 역이기를 죽인 후에 초에 구원을 청하자 항우는 용저에게 20만 병력을 내주어 제를 구원하였습니다.
 제와 초가 연합하여 강을 사이에 두고 한군과 대치하였는데, 한신은 밤새 일만 개 이상의 모래 주머니를 만들어 강의 상류를 막은 후에 강을 건너 용저를 공격하다가 패한 척하고 후퇴했습니다.

 용저는 한신이 겁을 먹고 도망치는 줄 알고 추격하여 강을 건넜는데, 이 때에 한군이 모래주머니를 터 놓아 강물이 거세지니 혼란에 빠진 초군을 공격하여 대파하고 용저를 죽였습니다.



 항우는 용저가 20만 대군을 잃고 죽자 한신을 크게 두려워하여 사자를 보내 한신을 포섭하려고 했지만 한신은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초의 사자가 가자 괴통이 한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히지 말고 독립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한신은 고심하면서도 괴통의 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한신은 제를 정복한 후에 유방에게 사신을 보내 자신이 제의 가왕이 될 것을 청하였는데, 당시 유방은 항우가 이끄는초군에 패하여 한신의 구원을 기다리는 상황이였기 때문에 몹시 화가 났지만 한신의 변심을 우려하여 제왕이 될 것을 허락했지요.



 제왕이 된 한신은 군대를 이끌고 유방을 구원하여 초군의 공격을 막았습니다.

 한신이 유방을 구원하자 초군과 한군은 결국 휴전을 맺었는데, 전세가 유리하다고 판단한 장량의 진언에 따라 유방은 초군을 공격했지만 초군의 반격에 패하여 한신과 팽월에게 출병을 명령하였지요.

 하지만 이들이 출병에 응하지 않자 유방은 이들에게 천하통일 후 다스릴 지역을 약속하였고 드디어 한신과 팽월은 군대를 이끌고 출병하였는데, 한신과 팽월의 이러한 이해타산적인 출병이 훗날 이들의 숙청에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르지요.

 
한신이 이끄는 한군은 압도적으로 우세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해하에서 초군을 대파하여 초한전을 종식시켰는데, 이때 한신은 '사면초가'의 심리전을 이용했지요.

 사방에서 초가를 부르게 하여 초군의 사기를 떨어뜨렸지만 용맹한 초군은 대부분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고 합니다.

 만약 '사면초가'의 전술로 초군의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았다면 용맹한 초군을 어떻게 이겼을지 의문이 드는군요.

 해하의 전투에서 한신에게 참패한 항우는 자결하였고 결국 유방은 진나라 이후 나누어졌던 중국을 재통일하였지요.



 천하를 평정한 한왕은 한신을 초나라 왕에 봉하였습니다.

 하지만 한신이 다스렸던 초나라는 과거의 초나라를 여러 지역으로 나눈 것이였지요.
 한신이 초나라 왕이 된 후에 친구였던 종리매가 망명왔는데, 그는 항우의 맹장으로 만약 한신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다면 한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와도 같은 것이였지요.

 이때, 누군가 한신이 모반했다고 밀고하였는데, 한신이 모반했다고 오해한 유방은 진평의 계략에 따라 제후들을 소집하자 한신은 소집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한신은 종리매의 목을 바치면 자신의 결백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여 종리매의 목을 들고 갔지만 유방은 그를 체포했지요.
 
유방은 한신의 무죄가 밝혀졌음에도 초나라 왕의 지위를 빼았고 회음후로 봉했습니다.
 
실망한 한신은 유방을 원망하여 입궐하지 않았고 유방은 한신을 철저히 감시하였다고 합니다.
 진희가 반란을 일으키자, 여태후는 유방이 진희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떠난 틈을 타서 한신에게 반란을 일으켰다는 죄목으로 죽였습니다.
 하늘이 한신의 죽음을 애석하게 생각했는데, 한신이 죽은 후에 강한 천둥이 쳤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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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이성이 발달하고 여자는 감성이 발달하여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느끼는 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연인들이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서로가 상대를 자신의 방식에 맞춰어 주기를 바라다가 이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자의  이성과 여자의 감성은 사랑이 이루어질 때는 남자가 여자의 감성을 자극하고 여자는 남자의 이성적인 사고를 이해하여 조화롭게 작동하지만, 서로 싸울 때는 남자는 여자를 이성적으로 설득하고 여자는 남자의 이성적인 설득을 이해하지 못해 갈등하는 경우가 많지요.

 남녀의 사랑이 이루어질 때는 남자가 여자의 감성을 자극하여 사랑을 이루는 경우가 많지만, 남녀의 사랑이 깨어질 때는 남자가 상처받기 쉬운 여자의 감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상처를 주어 헤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자는 감성이 발달하여 눈으로 본 것이나 귀로 들은 것이 마음에 와닿아 사랑의 고백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사소한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큰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자가 회사에서 야근하여 피곤한 상태에서 여자를 만나면 졸리고 짜능이 날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 남자의 짜증나는 듯한 눈빛과 짜증스러운 말투가 여자의 눈과 귀를 통해서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지요.
 여자는 감성이 발달하여 머리로는 남자가 야근으로 피곤하여 그런 것이라고 이해해도 눈이나 귀에 들어오는 남자의 짜증스러운 태도에 상처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남자의 이성과 여자의 감성은 서로 달라 사랑할 때는 남자는 이성적으로 생각하여 여자의 감성을 만족시키는 말과 행동을 하여 사랑을 이루게 만들지만, 서로 싸울 때는 남자는 여자의 이성에 호소하고 여자는 남자의 감성에 호소하여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며 서로 평행선을 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감성에 호소하고 여자는 남자의 이성에 호소해야 말이 통하는 경우가 많지만, 서로가 서로의 약한 쪽에다 호소하기 때문에 서로의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이는 한국 여자와 미국 남자가 결혼해서 사는데, 한국 여자는 한국말로 미국 남편에게 말하고 미국 남자는 한국 아내에게 영어로 말하여 서로 대화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마찬가지지요.
 남녀가 싸울 때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 보면 대화가 전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자가 여자친구에게 사소한 말이나 말의 뉘앙스로 상처를 주면, 남자는 "이성적으로 생각해봐. 내가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몰라?"라고 말하지만 여자는 "누가 그런 말을 하래? 아무튼 나는 상처받았단 말이야." 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여자가 상처받았다고 말하면 남자는 사과를 하겠지만, 남자는 마음에 답답함이 가득하여 사과를 해도 진심에서 나오는 사과를 하지 못하여 여자를 더 화나게 만들 수 있지요.

 여자의 감성은 예민할 정도로 발달하여 남자의 사과가 진심이 아니면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서 여자는 남자가 사과해도 화를 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자는 진심이 담기지 않은 사과를 들으면 더 화가 나겠지요.
 "그걸 사과라고 하는거야?"
 남자의 이성은 사과를 했는데도 반응하지 않는 여자를 이해할 수 없어, 
 "사과했쟎아. 나더러 어쩌라고?"
 
 남녀가 말로 싸울 때는 여자는 감성적으로 싸우고 남자는 이성적으로 싸우기 때문에 한쪽이 일방적으로 양보를 하거나 서로가 조금씩 양보를 하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계속 싸우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남자에게도 감성이 있고 여자에게도 이성이 있기 때문에 흥분된 마음이 진정되면 남자는 감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고 여자는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 문제가 저절로 해결 될 수도 있지요.

 

 남자는 여자가 사소한 일로 상처받았다고 말할 때 처음에는 이성적으로 납득하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감성적으로 여자의 상처를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요.

 예를 들어 남자가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 여자친구에게 짜증내거나 화내서 큰 상처받았다면, 처음에는 '너는 짜증내거나 화낸 적 없어? 겨우 그걸로 큰 상처를 받았다는게 말이 되?'라는 식으로 생각하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감성적으로 여자를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 너는 원래부터 사소한 말에 상처받았지. 너도 속상한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내 기분만 생각한 것 같아. 미안하다.'

 

 여자는 상처받으면 더 감성이 예민해지는 경향이 있어 화가 나면 남자가 사과를 해도 '그걸 사과라고 하는거야? 진심이 없는 사과는 해서 뭐해?'라는 식으로 반응해도 시간이 지나면 이성적으로 생각하여 '내가 별 것도 아닌데 화낸 것 같아. 별 일 아닌거 가지고 화만 내고 사과해도 받아주지 않은 것 같아.'라는 식으로 생각하여 화를 푸는 경우가 많지요.

 연인들이 싸운 후에 만나면 서로가 잘못했다고 사과할 때가 있는데, 시간이 지나 흥분된 마음이 진정되면 남자는 감성적으로 생각하여 여자가 사소한 일에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여자는 이성적으로 생각하여 별 것도 아닌데 예민하게 반응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남자의 이성과 여자의 감성이 조화를 이루려면, 남자는 여자의 감성적인 사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여자는 남자의 이성적인 사고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사로가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서 헤어지는 경우는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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