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편 죽은 시인의 일기의 비밀

 

 영희는 10년 가까이 미국과 영국에서 살아 영어에 자신이 있었지만, 고어와 시적인 표현이 많은 외삼촌의 일기장의 글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였습니다.

 영희는 철수가 외삼촌의 일기장을 읽고 싶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노트에 원문을 적으면서 해석하였지요.

 외삼촌의 일기에는 조식과 견후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시인은 조식이나 견후의 영어식 표기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조식을 황제의 동생이라고 표기했고 견후를 황후라고 표기했습니다.

 

 조식은 중국 삼국 시대 위나라 초대 황제 조비의 동생이었습니다.

 조비의 아버지 조조는 원소를 정벌한 후에 원소의 며느리였던 견후를 조비와 맺어주기로 결심하여 그녀를 데려왔지요.

 조식은 견후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그녀에게 시를 바쳤는데, 그녀는 그의 시에 매료되어 그와 사랑에 빠졌지요.

 하지만 조조가 이미 조비와 자신을 맺어주기로 조비에게 약속하였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조비에게 시집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녀가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황후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고집을 부려 조식과 결혼하면 조비가 분노하여 동생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지요.


 조비의 아내가 된 견후는 조비를 사랑하려고 노력했지만, 조비는 견후가 아직도 조식을 잊지 못하는 것을 눈치채고 동생을 미워하였습니다.

 견후는 형제를 화해시키려고 노력했지만 그녀가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조비의 의심을 샀습니다.

 조조가 죽자 조비는 황제가 되었고 견후는 황후가 되었습니다.


 조비는 황제가 된 후에 조식을 죽이려고 일곱 걸음 안에 명시를 짓지 못하면 죽이겠다고 말한 후에 견후에게 일곱 걸음을 새라고 명령했습니다.

 조식의 시적재능을 믿은 견후는 정확히 일곱 걸음을 새었고 조식은 7걸음 안에 그 유명한 칠보시를 지었지요.


 조비는 견후가 조식을 자신보다 더 좋아한다고 생각하여 견후를 패하고 곽씨를 황후로 삼았습니다.

 견후는 처음부터 황후의 자리에 욕심이 없었지만 황후가 된 곽씨는 견후가 황제를 비방했다고 모함하여 죽게 만들었습니다.


 견후를 죽인 조비는 견후가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후회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견후의 억울함이 드러났기 때문에 조식은 살 수 있었지요.

 
 조식은 견후가 진심으로 자신을 변함없는 마음으로 사랑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견후를 그리워하면서 명시를 남겼다.
 황제가 된 견후의 아들 조예는 조식의 시의 이름을 낙신부라고 명명하여 세상에 알리게 하였지요.
 
 
 영희는 외삼촌의 일기에 나온 견후와 조식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외삼촌이 일기에 견후의 아들이 조식의 시를 세상에 알리게 하였다고 거론 한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과 결혼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녀의 아들에게 미발표된 시들을 출간하는 것을 맡기려고 한 것이다.'

 그녀는 한 숨을 쉬었면서 혼자 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면 외삼촌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지 몰라. 이걸 어쩌지?"

 영희는 조식과 견후의 이야기를 외삼촌의 일기장에서 읽은 것은 오래 전의 일이었습니다.


 시인은 조식, 조비, 조조, 견후, 조예, 곽황후 등의 영어식 이름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중국의 황제의 동생, 황제, 황제의 아버지, 황후, 황후의 아들, 새황후 등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일기에 나오는 이야기가 조식과 견후의 이야기인 줄 몰랐었는데, 한국에 와서 외삼촌의 일기장에 나오는 이야기가 조식과 견후의 이야기와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그리고 예전에 읽었을 때는 단순한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었지만 이제서야 이 이야기에 외삼촌의 미발표작에 대한 결심과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뒤에 있는 외삼촌의 일기는 그러한 결심을 더욱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는 듯 했습니다.

 

 조식의 시는 그의 사랑을 받아주고 그를 변함없는 마음으로 사랑했던 견후가 있었기 때문에 생명력이 있었다.
 만약 견후가 그를 사랑하지 않았거나 변심했다면 그는 그토록 아름다운 시를 쓰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조식이 견후를 만나기 전에 쓴 시는 생명력이 없었다.

 조식의 시는 견후를 만난 후에 호흡을 시작했고 견후의 사랑을 받은 후에야 그의 시는 영혼이 담겨 있는 명시가 되었다.

 조식의 아름다운 시는 견후의 사랑이 없었다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시인은 진정한 사랑을 만난 후에서야 비로서 영혼이 담긴 명시를 쓸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시는 내가 썼지만 나의 머리로 쓴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과 그녀의 마음이 함께 쓴 것이다.

 그녀가 없었다면 이 시들은 탄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영희는 외삼촌의 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외삼촌이 미발표작 발표를 철수 어머니의 자식에게 맡기려고 했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외삼촌은 일기장에서 자신의 시를 철수 어머니 없이는 지을 수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철수 어머니의 아들을 통해서 발표할 작정으로 아무에게도 미발표시에 대해서 말하지 않은 것일까? 하지만 어째서 철수 어머니께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까? 좀 더 외삼촌의 일기를 연구해 봐야겠다. 어머니가 납득할 정도의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면 어머니는 철수 오빠에게 미발표작을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영희에게 있어 외삼촌은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외삼촌을 아버지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려서부터 외삼촌의 시를 읽으면서 자라온 그녀의 외삼촌에 대한 사랑은 대단히 각별한 것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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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0 편 죽은 시인의 일기장

 

 철수는 어머니께서 도와 주셔도 여전히 어떤 힌트도 찾지 못하자 시인과 어머니의 편지에 미발표작에 대한 아무 힌트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희야, 아무래도 우리가 가진 편지들에는 미발표작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 같아. 내가 처음부터 생각을 잘못한 것 같아. 너의 외삼촌의 편지에는 미발표작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 같아. 처음부터 어머니께 미발표작에 대해서 비밀로 할 생각이셨나봐. 그렇기 때문에 다른 시들은 모두 발표전에 어머니께 보여주었지만 이 시는 보여주지 않으셨고 언급조차 하지 않으셨던 것 같아. 이제 이건 그만 하자. 어머니도 찾을 수 없다는 우리도 찾을 수 없는거야."

 
 영희는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했습니다.

 "오빠, 실망하지마. 대신에 한 달 동안 오빠는 우리 외삼촌 연애편지를 수없이 읽었으니, 연애편지의 달인이 되었을거야. 오빠 좋아하는 사람있으면 한 번 사용해봐..."

 "그건 그렇고...  혹시 네 외삼촌은 일기장 남기지 않았니?"


 "일기장은...  내가 예전에 다 봤는데... 미발표작에 대한 언급은 없었어."

 "언제 봤는데?"

 "몇 년 전에도 봤고...  요즘도 여러 번 봤어. 혹시라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나도 해봤어."


 철수는 시인이 일기장을 남겼다는 영희의 말을 듣자, 일기장을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일기장을 봤는데 없었다고? 하지만 혹시 네가 지나쳐 봤을지도 모르쟎아."

 "그럴 리가 없어. 정말 여러 번 봤어. 오빠, 우린 미발표작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겠어? 보고 또 보고... 얼마나 여러 번 봤는데..."


 "하지만 영희야, 가끔 그럴 때가 있쟎아. 호주머니에 열쇠를 넣고 어디있는지 찾으면서 다른 데는 다 살펴보면서 호주머니에는 손을 넣어 보지 않는 경우... 네가 잘 살펴봤겠지만...  내가 한 번 보면 다를지 누가 알겠어?"

 "하지만 일기장은 영어로 되어있어. 오빠가 봐도 모를거야."

 "나를 무시하는거니?"


 "그게 아니라... 외삼촌은 글씨를 날려 써서 다른 사람이 알아보기 힘들어. 내가 집에 가서 볼께..."

 "나도 같이 보면 안될까?"

 "알았어, 오빠... 그럼 지금 우리집에 가서 같이 보자."

 "좋아."


 철수는 영희와 함께 영희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영희는 어머니의 서재에서 조심스럽게 외삼촌의 일기장을 꺼내서 펼쳤습니다.

 영희가 말한대로 시인의 글씨는 철수가 알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너의 외삼촌은 일기를 영어로 쓰셨니?"

 "그건... 일종의 훈련이야... 외삼촌은 자신의 시를 직접 영어로 번역하고 싶어하셨어. 외삼촌 일기를 보니 외삼촌 영어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았어. 내가 모르는 단어들이 많이 있거든."


 "그럼 아직도 그 뜻을 모른단 말이야?"

 "영어 사전을 찾아 봤는데도 없었어."

 철수는 시인이 사전에도 없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영희의 말을 듣자 일기장에 어떤 비밀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지요.
 '일기장은 보통 어려운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사전에도 없는 단어를 썼다는 것은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 틀링없어.'

 일기장에 어떤 비밀이 감추어졌다는 생각을 한 철수는 자신도 모르게 흥분하였지요.
 "바로 그거야. 모르는 단어가 있다면 일기장을 다 읽어봤다고 해도 다 읽어본 것이 아니쟎아.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말이야, 어려운 문제는 시험에 절대 나오지 않겠지 하고 넘기면 나와서 틀리는 경우가 많았어. 삼촌 일기장에 있는 단어는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해해야되. 모르는 단어가 미발표작에 대한 힌트일 수도 있어."

 
 영희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지요.
 "영어 사전에 없는 걸 어떻게 하라고..."

 "웹스터 사전에도 없었니?"

 "웹스터 사전까지는... 좋아... 내가 모르는 단어를 웹스터 사전에서 찾아볼께."


 "먼저 네가 모르는 단어를 나한테도 적어줘. 나도 학교 도서관에 있는 대형 영어사전에서 찾아볼께. 거기도 없으면 영문학과 교수님께 여쭈어 보면 아실지 몰라."

 "알았어, 오빠... 내가 일기장에 나온 모르는 단어들을 정리해서 오빠한테 줄께."
  

 다음 날 저녁이 되어서야 영희가 철수의 집에 찾아 왔습니다.

 영희는 시인의 일기장에 있는 모르는 영어 단어들을 노트에 정리해서 적어 왔습니다.

 "좋았어. 이제부터 각자 행동하자. 여기에 있는 단어들을 모두 알아낸 다음에 다시 만나자. 단어가 많으니까 앞쪽은 내가 할테니까 뒷쪽은 네가 해라. 그럼 각자 알아본 후에 다시 보자."


 철수와 영희는 죽은 시인의 일기장에 적혀 있었던 수많은 영어 단어들을 각각 대형 영어사전에서 찾아 보았는데, 모르는 단어들의 대부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 모르는 것은 영문학과 교수님께서 알고 계셨습니다.

 시인의 일기에 있는 미지의 단어들은 대부분 고전에 나오는 고어였습니다.

 고전을 사랑했던 죽은 시인은 고어들을 자신의 일기장에 사용한 것이었지요.

 

 다음 날 철수는 아침 식사를 한 후에 찾은 단어가 정리된 노트를 들고 영희의 집에 갔습니다.

 철수가 미쳐 초인종을 누르기도 전에 영희가 대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영희는 흥분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오빠! 내가 뭔가 찾은 것 같아. 이리 와봐."

 철수는 흥분된 마음으로 영희와 함께 영희의 방에 들어갔습니다.

 

 영희는 외삼촌의 일기를 철수에게 펼쳐 보이면서 말했습니다.

 "외삼촌이 미발표시들을 완성한 날짜에서 1주일 정도 지난 날짜의 일기에서 몰랐던 단어를 해석하여 번역하니 '나의 열매는 나의 반쪽에서 나와 손이 열매에 닿으면 줄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인 줄 알아?
 열매는 시고 반쪽은 외삼촌과 결혼할 예정이었던 오빠 어머니고 손이 열매에 닿으면 줄 것이란 말은 자식이 시를 이해할 능력이 되면 주겠다는 뜻이야.

 뒤로 가면 어느 시인이 죽기 전에 가장 사랑하는 딸에게 유산으로 책상을 물려 준 이야기가 나와.

 딸은 아버지의 초라한 유산에 실망했지만, 그녀는 책상에서 아버지가 남긴 시들을 읽으면서 아버지의 뜻을 알게 된거지. 자식을 시인으로 키우라는 뜻이었어. 시인은 딸의 시적 재능을 알아 보고 자식을 시인으로 키울 것을 딸에게 부탁한 거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외삼촌이 그 시들을 발표하지 않은 것은 자식이 시인이 된 후에 물려주려고 했던거야."

 

 영희는 철수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외삼촌은 이 시를 오빠 어머니의 아들에게 주려고 했던거야. 바로 오빠에게..."

 영희는 그동안 철수에게 깊은 정이 들어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면서 말했지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단정하기 힘들텐데..."
 "아니야, 확실해. 뒤에 가면 조식와 견후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조식과 견후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견후의 아들인 조예가 조식의 시를 세상에 알렸다는 말이 나와.  견후는 오빠 어머니를 비유적으로 말한 거고, 조예는 오빠 어머니의 아들, 오빠란 말이야."

 "하지만 네 외삼촌이 어머니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한 것은 두분이 결혼할 사이라서 그랬겠지.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아? 아무튼 이제 네 외삼촌이 미발표시를 발표할 계획이 있었다는 것이 분명해 졌으니 네 어머니께 말씀드리자."


 "좀 더 외삼촌 뜻을 알아본 후에...  외삼촌의 일기도 비유적, 은유적, 암시적으로 표현되어서 이해하기 쉽지 않아. 미발표작이 완성된 날 이후의 일기를 차례대로 보다가 빨리 발견할 수 있었어.

하지만 좀 더 자세히 외삼촌의 일기장을 연구해 본 다음에 어머니께 말씀 드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어째서지? 발표할 생각이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면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해... 오빠... 내가 외삼촌 일기 모두 해석한 다음에 결정하자."

 어차피 죽은 시인의 미발표작은 영희의 집안 것이라는 생각에 철수는 영희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철수는 영희에게 일기장에서 뭔가 추가적으로 발견하면 연락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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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9 편 혜숙의 마음

 

 한편 혜숙은 한 달 동안이나 철수로부터 편지가 오지않자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얘가 왜 요즘은 편지를 보내지 않는걸까?'

 혜숙이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철수의 멋진 편지를 읽고나서 철수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 것이지요.


 철수의 편지는 갈수록 더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시인이 된다는 말처럼 처음에는 짜집기에 불과했던 철수의 편지는 이제 창의적인 글이 봇물터지듯이 터져 혜숙의 마음을 사로잡았지요.

 그런데 한 달이나 철수가 편지를 보내지 않자 혜숙은 갖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방학이라서 아르바이트한다고 바쁜 걸까? 아니면 여자를 만난 걸까? 아니면 나보다 더 예쁜 여자를 보고 나한테 관심이 없어진걸까? 뭐야, 도데체... 그림자도 안보이쟎아...'


 혜숙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책상 서럽에 차곡차곡 넣어둔 철수의 편지를 꺼내어 읽었습니다.

 철수의 편지는 한 폭의 멋진 그림처럼 아무리 봐도 싫증나지 않았지요.
 글 자체도 멋있었지만, 자신을 위해서 쓰였다는 것이 로맨틱하게 느껴졌던 것이지요.

 혜숙은 침대에서 철수의 편지를 읽다가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습니다.

 혜숙의 어머니는 우연히 그녀의 방에 들어왔다가 딸이 편지를 들고 있는 채로 잠이 든 것을 보자 그녀의 손에서 편지를 살짝 빼내었지요.


 호기심이 생긴 혜숙의 어머니는 딸이 들고 있던 편지를 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유명 시인이나 유명 작가가 보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뛰어난 감동이 담긴 연애편지였지요.

 '누가 보낸 것일까?'

 편지에는 이름이 없었습니다.


 딸의 책상 서랍이 살짝 열려있는 것을 본 혜숙의 어머니는 사랍을 열어 보았습니다.

 딸의 책상 서랍에는 많은 편지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지요.

 '사귀는 남자가 있나? 근데 나한테 말도 않고?'


 혜숙의 어머니는 딸의 책상 서랍에 있는 편지 하나에 자기도 모르게 손이 갔습니다.

 역시 이름이 없었고 정말 아름다운 글이 편지에 적혀 있었지요.

 혜숙의 어머니는 서랍에 있는 편지들을 모두 꺼내 딸의 방에서 나와 안방으로 들어가 모두 읽어 보았습니다.


 작가가 쓴 것이라고 말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정말 멋진 편지들이었습니다.

 혜숙의 어머니는 편지들을 모두 읽고 나서 다시 딸의 방에 들어가서 예전처럼 차곡차곡 편지들을 정리해 놓고 나왔습니다.


 '정말 누가 저런 멋진 편지를 보냈을까? 물어볼까? 아니야, 내가 책상을 열어 자기 편지를 봤다는 사실을 알면 난리를 칠텐데...  그냥 내가 자기 손에 들고 있는 걸 봤다고 해야 되겠다. 그러게 누가 자면서 편지를 들고 자래? 호호...'

 

 잠에서 깨어난 혜숙은 손에 있었던 편지가 보이지 않자 깜짝 놀랐습니다.

 '어디갔지?'

 책상을 보니 책상위에 편지가 있었지요.


 '어머니께서 다녀가셨나? 내 편지 보셨을까? 내가 편지를 들고 자는 모습을 보시고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침대에서 일어난 혜숙은 마루로 나와 어머니를 살짝 쳐다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딸을 보자, "일어났니? 왠 낮잠이니?"

 "어머니, 혹시..."

 "혹시, 뭐?"

 "아니예요."

 '편지를 읽어 보시지 않으셨나 보내. 다행이다.'


 혜숙이 안도의 한숨을 쉴때, 어머니가 혜숙에게 물었습니다.

 "편지 누가 보낸 거니?"


 혜숙은 어머니께서 편지에 대해서 물어 보자 깜짝 놀랐습니다.

 "편지요?"

 "얘는... 자면서까지 열심히 읽던 그 편지..."

 "아, 그거요? 신경쓰지 마세요. 어머니가 잘 모르는 애예요. 그냥 그 애 혼자 좋아하는거예요."

 "관심도 없는 애가 준 편지를 자면서 봤어?"

 
 "자면서 보기는요...  보다가 깜박 잠이 든거지요. 근데, 어머니... 남의 편지 보면 어떻게요."

 "손에 편지가 있어 뭔가 보니 글자가 보이는 걸 어쩌라고? 얘야, 그 애 누구야? 글솜씨가 보통이 아니던데... 이 어머니도 시를 좋아하는데... 꼭 시인처럼 멋지게 썼더라. 도데체 누구니?"


 "그냥... 동네 앤데... 몇 년 전부터 절 좋아했나 봐요."

 "집에 한번 데려와 봐라. 한번 보자. 몇 년 동안 변하지 않는 마음이 멋있는데..."

 "어머니도 아는 애일거예요. 철수... 아세요?"

 "철수? 알지... 그런데 그 애가 그렇게 글을 잘 쓰는 줄 몰랐구나. 철수의 어머니는 잘 계시니?"


 혜숙은 어머니께서 철수와 철수의 어머니를 아신다고 말씀하시자 놀라면서 말했지요.
 "어머니, 철수 부모님을 어떻게 아세요?"

 "철수 어머니는 우리 동네에서... 인기 많은 여학생이었지..."


 혜숙의 어머니는 철수의 어머니와 아는 사이였지요.

 둘은 일종의 라이벌 관계였습니다.

 혜숙의 어머니와 철수의 어머니는 학창시절 동네에서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여학생이었지요.


 혜숙의 어머니는 철수의 어머니와 죽은 시인과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죽은 시인의 이야기를 딸에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더이상 말을 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습니다.


 "철수, 그 애... 성실하고 괜챦은 것 같은데... 너를 그렇게 오랫동안 좋아한 줄은 몰랐네... 집에 한 번 데려오면 좋을텐데..."

 "그 애가 제 집에 왜요? 전 관심없어요."

 "나도 너의 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좋아한 것은 아니란다. 사람의 일이란 모르는 것이지. 관심없어도 너무 쌀쌀하게 대하지 말고..."

 "알겠어요..."


 혜숙은 그렇게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얘 진짜 변심한 거 아니야? 한 달 동안 그림자도 안 보이고... 그래, 한번 철수 집에 가보자... 볼 일이 있는 척하고 지나가면 되... 가보면 요즘 어디서 뭐하는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겠지...'


혜숙은 머리를 빗고 화장을 한 후에 얼마전에 어머니가 사주신 코트를 입고 어머니께,

 "어머니, 저 좀 나갔다 올께요."

 "저녁도 안 먹고?"

 "볼일이 있어요... 저녁은 사먹을 께요."


 혜숙은 철수의 집쪽으로 갔습니다.

 '내가 왜 이러지? 설마 내가 그 애를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야, 난... 궁금할 뿐이야... 아직도 나를 좋아하는지... 궁금해서... 하지만 관심없다면 궁금할 필요도 없쟎아... 그냥... 조금은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그래, 관심있다고 다 좋아하는 건 아니쟎아?'


 '난 그냥 길을 가고 있을 뿐이야. 그러다가 우연하게 철수의 집에...'

 저녁 때라서 배가 고파진 그녀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밖을 자꾸 쳐다 보았습니다.

 혹시라도 철수가 지나가는지 보기 위해서지요.


 식사를 다한 후에 혜숙은 철수의 집을 지나쳐 지나갔습니다.

 철수 집 근처에 있는 문방구에 가서 예쁜 편지봉투와 편지지를 샀지요.

 '나도 철수에게 편지를 보낼까?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할 수도 있쟎아... 철수와 마주치면 어떻하지? 어때, 난 길을 우연히 지나다가 만났을 뿐이데...'


 혜숙이 철수의 집 근처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철수의 집에서 철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혜숙은 철수의 목소리가 들리자 재빨리 골목으로 숨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숨을 죽이면서 철수가 하는 말을 들었지요.

 "잘가라, 내일 또 보자."

 "오빠, 저녁 늦으면 바래다 준다고 했쟎아."

 "아직 안 늦었쟎아. 버스 하나 타면 바로 집까지 가는데, 바래다 주긴... 나중에 보자..."


 철수는 그렇게 말하고 대문을 닫고 들어가버렸습니다.

 "오빠, 얄미워. 약속도 안 지키고..."

 영희는 철수가 들어가버렸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철수가 들어간 것을 확인하지 혜숙은 우연히 지나가는 척하면서 영희를 살짝 쳐다 보았습니다.

 옷차림새를 보니 부자집 딸 같았습니다.

 영희의 얼굴은 화장기가 있었고 입고 있는 코트가 고급스러워 보였고 치마도 시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옷은 아니라는 사실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저 애는 누구지? 못보던 애인데... 뭐, 오빠? 언제 벌써 만나 사귄거야? 언제는 나만 좋아한다고 난리치더니... 남자가 변덕은... 설마, 그동안 양다리 걸친건 아니겠지? 나하고 저 애하고 양쪽에다 작업한 건 아니겠지?' 


 영희는 철수가 전날 저녁까지 작업하면 바래다 주겠다고 약속했었고 철수의 어머니께서 영희를 집까지 바래다 주라고 철수에게 말했는데도 철수가 대문까지만 배웅한 후에 집에 들어가버리자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하는 수 없이 혼자 집으로 돌아갔지요.

 

 혜숙은 철수의 집에서 같은 또래의 여자가 나오자 누군지 무척 궁금 해졌습니다.

 '누굴까? 새로 사귄 여자친구일까? 그래서 한 달 동안 그림자도 안보였구나...'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사랑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철수가 이제는 다른 여자와 교제 중이라고 생각한 혜숙은 화가 났습니다.


 '무슨 남자가 그렇게 변덕이 심해? 한 달 전만 해도 나에게... 바보, 어디 두고 보자... 앞으로 네가 주는 편지 따위는 받지도 않을거야...'

 혜숙은 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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