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편 발렌타인데이 하루 전에


 철수와 영희는 한 달 반 가까이 죽은 시인의 미발표작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었습니다.
 시인의 일기에서 미발표작에 대한 암시를 찾은 것은 영희였지만, 일기장에 미발표작에 대한 암시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 것은 철수였지요.

 철수가 시인의 일기장에 미발표작에 대한 암시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보통 일기는 쉬운 말로 쓰지 어려운 말로 쓰지 않는데, 일기에 영어 사전에도 없는 단어들이 많다는 영희의 말을 듣자 일기장에 무엇인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 것이지요.

 철수는 시인이 미발표작을 자신을 통해서 발표하려고 했다는 영희의 추측을 듣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철수는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깊은 사랑에 큰 감동을 받아 어떤 일이 있어도 시인의 미발표작을 발표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미발표작이 발표되면 어머니께서 가지고 있는 원고를 비싸게 팔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아무 대가없이라도 시인을 위해서 자신의 시간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지요.

 처음에는 시인이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아버지가 떠난 지금에 와서 시인과 아버지 중 누가 더 어머니를 사랑했었고 어머니가 두 분 중 어느 분을 더 사랑했었는지 생각해 봤자 아무 소용없는 과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시인의 시의 세계에 빠져든 이후 철수는 어머니가 시인의 사랑이 담긴 시를 읽고 행복해 지실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재혼하신다고 해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니 세상을 떠난 시인이 어머니를 사랑했다고 해서 거부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제 철수는 모든 것을 잊고 어머니가 예전처럼 행복해지만을 바라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발렌타인 데이를 하루 앞두고 철수가 발렌타인데이에 헤숙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있을 때 영희가 예고도 없이 철수 집에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시인의 미발표작에 관한 일로 혜숙에게 편지쓰는 것을 중단했던 철수는 혜숙에게 보낼 편지를 쓰다가 영희가 오자 편지쓰기를 중단하였지요.

 영희의 손에는 노트 하나가 있었습니다.

 "뭐 찾아낸 것이라도 있니? 연락도 없이 불쑥오면 어떻게?"

 "오빠가 뭔가 발견하면 가르쳐달라고 하지 않았어?"

 "뭘 발견했는데?"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뭔가 암시되어 있는 듯한 부분을 배껴왔어. 그냥 복사할까 하다가 오빠가 외삼촌 글씨를 못알아 본다고 해서 내가 직접 배꼈어."

 영희는 철수의 책상위에 노트를 두면서 철수가 쓰던 연애편지를 보았습니다.


 "연애편지네...  누구있어? 아니면 짝사랑?"

 철수는 책상에 펼쳐져 있던 미완성의 연애편지를 책상 서랍에 넣은 후에 말했습니다.

 "알거없어. 숙녀가 남의 사생활에 관심가지면 안된다는 것 몰라?"

 "아무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숙녀 어쩌고 저쩌고 하는거 남녀차별인거 몰라?"

 
 철수는 지금 연애편지를 쓰면서 머리속에 떠오르던 생각을 쓰고 싶은 마음에 영희에게 말했지요.

 "미안하지만 나 지금 바쁜데... 용건 좀 빨리 말해주면 안되?"

 "알았어... 뭐, 편지도 다 쓴 것 같은데... 초콜릿 사러 나가려고?"

 "미국에서는 발렌타인데이에 남자가 여자한테 초콜릿 주니?"

 "남자 여자가 상관있나? 미국에서는 그냥 좋아하는 사람한테 선물하고 그러는데..."

 "그건 미국이고... 우리나라는 여자가 남자한테 선물하는 날이야..."

 "오빠, 그런거 모르는 한국 사람도 많은 것 같던데... 그게 중요한가?"

 "남들 안하는데, 나혼자 그럴 수 있냐?"

 "뭐 어때... 오빠 맘이지뭐... 자 여기..."


 영희는 철수에게 노트를 펼쳐서 내밀었습니다.

 "오빠가 외삼촌 글씨를 못알아 본다고 해서 내가 외삼촌 일기 중 미발표작에 대한 암시가 있는 것 같은 부분을 배껴왔어. 시간있으면 읽어봐. 그럼 난 가볼께. 오빠가 바쁘다니까 미발표작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할께."


 영희가 미발표작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철수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바쁜 건 아닌데... 빨리 말해주면 안되?"

 "오빠가 먼저 노트를 봐야 하니까 나중에 이야기해, 오빠, 나 그만 가볼께."

 철수는 영희를 대문까지 배웅해 준 다음에 다시 혜숙에게 줄 편지를 마무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고치고, 고치고, 고친 철수의 편지는 하나의 시 같았습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시인의 연애편지를 한달 내내 읽고 나니 내가 봐도 정말 잘 쓴 것 같네...'


 철수는 편지를 편지봉투에 넣은 후에 풀로 붙이고 나서 생각했습니다.

 '선물이라... 그래... 화이트 데이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금 선물하는 것도 괜챦겠다... 발렌타인데이에 선물했다고 화내지는 않을거 아냐?'


 철수는 동네슈퍼에서 선물용 초클릿을 사서 예쁘게 포장했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철수는 혜숙에게 편지와 초콜릿을 언제 어떻게 줄지 고민하였습니다.

 '지금 소포로 부치면 내일 받을 수 있을텐데...  아니야, 직접 주는 것이 낫겠어. 그동안 내가 편지를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변심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쟎아...'
 철수는 내일 혜숙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하는 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Posted by labyr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