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편 발렌타인데이 하루 전에


 철수와 영희는 한 달 반 가까이 죽은 시인의 미발표작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었습니다.
 시인의 일기에서 미발표작에 대한 암시를 찾은 것은 영희였지만, 일기장에 미발표작에 대한 암시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 것은 철수였지요.

 철수가 시인의 일기장에 미발표작에 대한 암시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보통 일기는 쉬운 말로 쓰지 어려운 말로 쓰지 않는데, 일기에 영어 사전에도 없는 단어들이 많다는 영희의 말을 듣자 일기장에 무엇인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 것이지요.

 철수는 시인이 미발표작을 자신을 통해서 발표하려고 했다는 영희의 추측을 듣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철수는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깊은 사랑에 큰 감동을 받아 어떤 일이 있어도 시인의 미발표작을 발표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미발표작이 발표되면 어머니께서 가지고 있는 원고를 비싸게 팔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아무 대가없이라도 시인을 위해서 자신의 시간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지요.

 처음에는 시인이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아버지가 떠난 지금에 와서 시인과 아버지 중 누가 더 어머니를 사랑했었고 어머니가 두 분 중 어느 분을 더 사랑했었는지 생각해 봤자 아무 소용없는 과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시인의 시의 세계에 빠져든 이후 철수는 어머니가 시인의 사랑이 담긴 시를 읽고 행복해 지실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재혼하신다고 해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니 세상을 떠난 시인이 어머니를 사랑했다고 해서 거부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제 철수는 모든 것을 잊고 어머니가 예전처럼 행복해지만을 바라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발렌타인 데이를 하루 앞두고 철수가 발렌타인데이에 헤숙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있을 때 영희가 예고도 없이 철수 집에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시인의 미발표작에 관한 일로 혜숙에게 편지쓰는 것을 중단했던 철수는 혜숙에게 보낼 편지를 쓰다가 영희가 오자 편지쓰기를 중단하였지요.

 영희의 손에는 노트 하나가 있었습니다.

 "뭐 찾아낸 것이라도 있니? 연락도 없이 불쑥오면 어떻게?"

 "오빠가 뭔가 발견하면 가르쳐달라고 하지 않았어?"

 "뭘 발견했는데?"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뭔가 암시되어 있는 듯한 부분을 배껴왔어. 그냥 복사할까 하다가 오빠가 외삼촌 글씨를 못알아 본다고 해서 내가 직접 배꼈어."

 영희는 철수의 책상위에 노트를 두면서 철수가 쓰던 연애편지를 보았습니다.


 "연애편지네...  누구있어? 아니면 짝사랑?"

 철수는 책상에 펼쳐져 있던 미완성의 연애편지를 책상 서랍에 넣은 후에 말했습니다.

 "알거없어. 숙녀가 남의 사생활에 관심가지면 안된다는 것 몰라?"

 "아무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숙녀 어쩌고 저쩌고 하는거 남녀차별인거 몰라?"

 
 철수는 지금 연애편지를 쓰면서 머리속에 떠오르던 생각을 쓰고 싶은 마음에 영희에게 말했지요.

 "미안하지만 나 지금 바쁜데... 용건 좀 빨리 말해주면 안되?"

 "알았어... 뭐, 편지도 다 쓴 것 같은데... 초콜릿 사러 나가려고?"

 "미국에서는 발렌타인데이에 남자가 여자한테 초콜릿 주니?"

 "남자 여자가 상관있나? 미국에서는 그냥 좋아하는 사람한테 선물하고 그러는데..."

 "그건 미국이고... 우리나라는 여자가 남자한테 선물하는 날이야..."

 "오빠, 그런거 모르는 한국 사람도 많은 것 같던데... 그게 중요한가?"

 "남들 안하는데, 나혼자 그럴 수 있냐?"

 "뭐 어때... 오빠 맘이지뭐... 자 여기..."


 영희는 철수에게 노트를 펼쳐서 내밀었습니다.

 "오빠가 외삼촌 글씨를 못알아 본다고 해서 내가 외삼촌 일기 중 미발표작에 대한 암시가 있는 것 같은 부분을 배껴왔어. 시간있으면 읽어봐. 그럼 난 가볼께. 오빠가 바쁘다니까 미발표작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할께."


 영희가 미발표작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철수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바쁜 건 아닌데... 빨리 말해주면 안되?"

 "오빠가 먼저 노트를 봐야 하니까 나중에 이야기해, 오빠, 나 그만 가볼께."

 철수는 영희를 대문까지 배웅해 준 다음에 다시 혜숙에게 줄 편지를 마무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고치고, 고치고, 고친 철수의 편지는 하나의 시 같았습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시인의 연애편지를 한달 내내 읽고 나니 내가 봐도 정말 잘 쓴 것 같네...'


 철수는 편지를 편지봉투에 넣은 후에 풀로 붙이고 나서 생각했습니다.

 '선물이라... 그래... 화이트 데이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금 선물하는 것도 괜챦겠다... 발렌타인데이에 선물했다고 화내지는 않을거 아냐?'


 철수는 동네슈퍼에서 선물용 초클릿을 사서 예쁘게 포장했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철수는 혜숙에게 편지와 초콜릿을 언제 어떻게 줄지 고민하였습니다.

 '지금 소포로 부치면 내일 받을 수 있을텐데...  아니야, 직접 주는 것이 낫겠어. 그동안 내가 편지를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변심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쟎아...'
 철수는 내일 혜숙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하는 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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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1 편 죽은 시인의 일기의 비밀

 

 영희는 10년 가까이 미국과 영국에서 살아 영어에 자신이 있었지만, 고어와 시적인 표현이 많은 외삼촌의 일기장의 글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였습니다.

 영희는 철수가 외삼촌의 일기장을 읽고 싶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노트에 원문을 적으면서 해석하였지요.

 외삼촌의 일기에는 조식과 견후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시인은 조식이나 견후의 영어식 표기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조식을 황제의 동생이라고 표기했고 견후를 황후라고 표기했습니다.

 

 조식은 중국 삼국 시대 위나라 초대 황제 조비의 동생이었습니다.

 조비의 아버지 조조는 원소를 정벌한 후에 원소의 며느리였던 견후를 조비와 맺어주기로 결심하여 그녀를 데려왔지요.

 조식은 견후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그녀에게 시를 바쳤는데, 그녀는 그의 시에 매료되어 그와 사랑에 빠졌지요.

 하지만 조조가 이미 조비와 자신을 맺어주기로 조비에게 약속하였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조비에게 시집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녀가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황후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고집을 부려 조식과 결혼하면 조비가 분노하여 동생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지요.


 조비의 아내가 된 견후는 조비를 사랑하려고 노력했지만, 조비는 견후가 아직도 조식을 잊지 못하는 것을 눈치채고 동생을 미워하였습니다.

 견후는 형제를 화해시키려고 노력했지만 그녀가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조비의 의심을 샀습니다.

 조조가 죽자 조비는 황제가 되었고 견후는 황후가 되었습니다.


 조비는 황제가 된 후에 조식을 죽이려고 일곱 걸음 안에 명시를 짓지 못하면 죽이겠다고 말한 후에 견후에게 일곱 걸음을 새라고 명령했습니다.

 조식의 시적재능을 믿은 견후는 정확히 일곱 걸음을 새었고 조식은 7걸음 안에 그 유명한 칠보시를 지었지요.


 조비는 견후가 조식을 자신보다 더 좋아한다고 생각하여 견후를 패하고 곽씨를 황후로 삼았습니다.

 견후는 처음부터 황후의 자리에 욕심이 없었지만 황후가 된 곽씨는 견후가 황제를 비방했다고 모함하여 죽게 만들었습니다.


 견후를 죽인 조비는 견후가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후회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견후의 억울함이 드러났기 때문에 조식은 살 수 있었지요.

 
 조식은 견후가 진심으로 자신을 변함없는 마음으로 사랑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견후를 그리워하면서 명시를 남겼다.
 황제가 된 견후의 아들 조예는 조식의 시의 이름을 낙신부라고 명명하여 세상에 알리게 하였지요.
 
 
 영희는 외삼촌의 일기에 나온 견후와 조식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외삼촌이 일기에 견후의 아들이 조식의 시를 세상에 알리게 하였다고 거론 한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과 결혼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녀의 아들에게 미발표된 시들을 출간하는 것을 맡기려고 한 것이다.'

 그녀는 한 숨을 쉬었면서 혼자 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면 외삼촌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지 몰라. 이걸 어쩌지?"

 영희는 조식과 견후의 이야기를 외삼촌의 일기장에서 읽은 것은 오래 전의 일이었습니다.


 시인은 조식, 조비, 조조, 견후, 조예, 곽황후 등의 영어식 이름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중국의 황제의 동생, 황제, 황제의 아버지, 황후, 황후의 아들, 새황후 등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일기에 나오는 이야기가 조식과 견후의 이야기인 줄 몰랐었는데, 한국에 와서 외삼촌의 일기장에 나오는 이야기가 조식과 견후의 이야기와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그리고 예전에 읽었을 때는 단순한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었지만 이제서야 이 이야기에 외삼촌의 미발표작에 대한 결심과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뒤에 있는 외삼촌의 일기는 그러한 결심을 더욱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는 듯 했습니다.

 

 조식의 시는 그의 사랑을 받아주고 그를 변함없는 마음으로 사랑했던 견후가 있었기 때문에 생명력이 있었다.
 만약 견후가 그를 사랑하지 않았거나 변심했다면 그는 그토록 아름다운 시를 쓰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조식이 견후를 만나기 전에 쓴 시는 생명력이 없었다.

 조식의 시는 견후를 만난 후에 호흡을 시작했고 견후의 사랑을 받은 후에야 그의 시는 영혼이 담겨 있는 명시가 되었다.

 조식의 아름다운 시는 견후의 사랑이 없었다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시인은 진정한 사랑을 만난 후에서야 비로서 영혼이 담긴 명시를 쓸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시는 내가 썼지만 나의 머리로 쓴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과 그녀의 마음이 함께 쓴 것이다.

 그녀가 없었다면 이 시들은 탄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영희는 외삼촌의 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외삼촌이 미발표작 발표를 철수 어머니의 자식에게 맡기려고 했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외삼촌은 일기장에서 자신의 시를 철수 어머니 없이는 지을 수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철수 어머니의 아들을 통해서 발표할 작정으로 아무에게도 미발표시에 대해서 말하지 않은 것일까? 하지만 어째서 철수 어머니께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까? 좀 더 외삼촌의 일기를 연구해 봐야겠다. 어머니가 납득할 정도의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면 어머니는 철수 오빠에게 미발표작을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영희에게 있어 외삼촌은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외삼촌을 아버지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려서부터 외삼촌의 시를 읽으면서 자라온 그녀의 외삼촌에 대한 사랑은 대단히 각별한 것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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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0 편 죽은 시인의 일기장

 

 철수는 어머니께서 도와 주셔도 여전히 어떤 힌트도 찾지 못하자 시인과 어머니의 편지에 미발표작에 대한 아무 힌트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희야, 아무래도 우리가 가진 편지들에는 미발표작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 같아. 내가 처음부터 생각을 잘못한 것 같아. 너의 외삼촌의 편지에는 미발표작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 같아. 처음부터 어머니께 미발표작에 대해서 비밀로 할 생각이셨나봐. 그렇기 때문에 다른 시들은 모두 발표전에 어머니께 보여주었지만 이 시는 보여주지 않으셨고 언급조차 하지 않으셨던 것 같아. 이제 이건 그만 하자. 어머니도 찾을 수 없다는 우리도 찾을 수 없는거야."

 
 영희는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했습니다.

 "오빠, 실망하지마. 대신에 한 달 동안 오빠는 우리 외삼촌 연애편지를 수없이 읽었으니, 연애편지의 달인이 되었을거야. 오빠 좋아하는 사람있으면 한 번 사용해봐..."

 "그건 그렇고...  혹시 네 외삼촌은 일기장 남기지 않았니?"


 "일기장은...  내가 예전에 다 봤는데... 미발표작에 대한 언급은 없었어."

 "언제 봤는데?"

 "몇 년 전에도 봤고...  요즘도 여러 번 봤어. 혹시라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나도 해봤어."


 철수는 시인이 일기장을 남겼다는 영희의 말을 듣자, 일기장을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일기장을 봤는데 없었다고? 하지만 혹시 네가 지나쳐 봤을지도 모르쟎아."

 "그럴 리가 없어. 정말 여러 번 봤어. 오빠, 우린 미발표작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겠어? 보고 또 보고... 얼마나 여러 번 봤는데..."


 "하지만 영희야, 가끔 그럴 때가 있쟎아. 호주머니에 열쇠를 넣고 어디있는지 찾으면서 다른 데는 다 살펴보면서 호주머니에는 손을 넣어 보지 않는 경우... 네가 잘 살펴봤겠지만...  내가 한 번 보면 다를지 누가 알겠어?"

 "하지만 일기장은 영어로 되어있어. 오빠가 봐도 모를거야."

 "나를 무시하는거니?"


 "그게 아니라... 외삼촌은 글씨를 날려 써서 다른 사람이 알아보기 힘들어. 내가 집에 가서 볼께..."

 "나도 같이 보면 안될까?"

 "알았어, 오빠... 그럼 지금 우리집에 가서 같이 보자."

 "좋아."


 철수는 영희와 함께 영희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영희는 어머니의 서재에서 조심스럽게 외삼촌의 일기장을 꺼내서 펼쳤습니다.

 영희가 말한대로 시인의 글씨는 철수가 알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너의 외삼촌은 일기를 영어로 쓰셨니?"

 "그건... 일종의 훈련이야... 외삼촌은 자신의 시를 직접 영어로 번역하고 싶어하셨어. 외삼촌 일기를 보니 외삼촌 영어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았어. 내가 모르는 단어들이 많이 있거든."


 "그럼 아직도 그 뜻을 모른단 말이야?"

 "영어 사전을 찾아 봤는데도 없었어."

 철수는 시인이 사전에도 없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영희의 말을 듣자 일기장에 어떤 비밀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지요.
 '일기장은 보통 어려운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사전에도 없는 단어를 썼다는 것은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 틀링없어.'

 일기장에 어떤 비밀이 감추어졌다는 생각을 한 철수는 자신도 모르게 흥분하였지요.
 "바로 그거야. 모르는 단어가 있다면 일기장을 다 읽어봤다고 해도 다 읽어본 것이 아니쟎아.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말이야, 어려운 문제는 시험에 절대 나오지 않겠지 하고 넘기면 나와서 틀리는 경우가 많았어. 삼촌 일기장에 있는 단어는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해해야되. 모르는 단어가 미발표작에 대한 힌트일 수도 있어."

 
 영희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지요.
 "영어 사전에 없는 걸 어떻게 하라고..."

 "웹스터 사전에도 없었니?"

 "웹스터 사전까지는... 좋아... 내가 모르는 단어를 웹스터 사전에서 찾아볼께."


 "먼저 네가 모르는 단어를 나한테도 적어줘. 나도 학교 도서관에 있는 대형 영어사전에서 찾아볼께. 거기도 없으면 영문학과 교수님께 여쭈어 보면 아실지 몰라."

 "알았어, 오빠... 내가 일기장에 나온 모르는 단어들을 정리해서 오빠한테 줄께."
  

 다음 날 저녁이 되어서야 영희가 철수의 집에 찾아 왔습니다.

 영희는 시인의 일기장에 있는 모르는 영어 단어들을 노트에 정리해서 적어 왔습니다.

 "좋았어. 이제부터 각자 행동하자. 여기에 있는 단어들을 모두 알아낸 다음에 다시 만나자. 단어가 많으니까 앞쪽은 내가 할테니까 뒷쪽은 네가 해라. 그럼 각자 알아본 후에 다시 보자."


 철수와 영희는 죽은 시인의 일기장에 적혀 있었던 수많은 영어 단어들을 각각 대형 영어사전에서 찾아 보았는데, 모르는 단어들의 대부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 모르는 것은 영문학과 교수님께서 알고 계셨습니다.

 시인의 일기에 있는 미지의 단어들은 대부분 고전에 나오는 고어였습니다.

 고전을 사랑했던 죽은 시인은 고어들을 자신의 일기장에 사용한 것이었지요.

 

 다음 날 철수는 아침 식사를 한 후에 찾은 단어가 정리된 노트를 들고 영희의 집에 갔습니다.

 철수가 미쳐 초인종을 누르기도 전에 영희가 대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영희는 흥분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오빠! 내가 뭔가 찾은 것 같아. 이리 와봐."

 철수는 흥분된 마음으로 영희와 함께 영희의 방에 들어갔습니다.

 

 영희는 외삼촌의 일기를 철수에게 펼쳐 보이면서 말했습니다.

 "외삼촌이 미발표시들을 완성한 날짜에서 1주일 정도 지난 날짜의 일기에서 몰랐던 단어를 해석하여 번역하니 '나의 열매는 나의 반쪽에서 나와 손이 열매에 닿으면 줄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인 줄 알아?
 열매는 시고 반쪽은 외삼촌과 결혼할 예정이었던 오빠 어머니고 손이 열매에 닿으면 줄 것이란 말은 자식이 시를 이해할 능력이 되면 주겠다는 뜻이야.

 뒤로 가면 어느 시인이 죽기 전에 가장 사랑하는 딸에게 유산으로 책상을 물려 준 이야기가 나와.

 딸은 아버지의 초라한 유산에 실망했지만, 그녀는 책상에서 아버지가 남긴 시들을 읽으면서 아버지의 뜻을 알게 된거지. 자식을 시인으로 키우라는 뜻이었어. 시인은 딸의 시적 재능을 알아 보고 자식을 시인으로 키울 것을 딸에게 부탁한 거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외삼촌이 그 시들을 발표하지 않은 것은 자식이 시인이 된 후에 물려주려고 했던거야."

 

 영희는 철수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외삼촌은 이 시를 오빠 어머니의 아들에게 주려고 했던거야. 바로 오빠에게..."

 영희는 그동안 철수에게 깊은 정이 들어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면서 말했지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단정하기 힘들텐데..."
 "아니야, 확실해. 뒤에 가면 조식와 견후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조식과 견후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견후의 아들인 조예가 조식의 시를 세상에 알렸다는 말이 나와.  견후는 오빠 어머니를 비유적으로 말한 거고, 조예는 오빠 어머니의 아들, 오빠란 말이야."

 "하지만 네 외삼촌이 어머니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한 것은 두분이 결혼할 사이라서 그랬겠지.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아? 아무튼 이제 네 외삼촌이 미발표시를 발표할 계획이 있었다는 것이 분명해 졌으니 네 어머니께 말씀드리자."


 "좀 더 외삼촌 뜻을 알아본 후에...  외삼촌의 일기도 비유적, 은유적, 암시적으로 표현되어서 이해하기 쉽지 않아. 미발표작이 완성된 날 이후의 일기를 차례대로 보다가 빨리 발견할 수 있었어.

하지만 좀 더 자세히 외삼촌의 일기장을 연구해 본 다음에 어머니께 말씀 드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어째서지? 발표할 생각이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면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해... 오빠... 내가 외삼촌 일기 모두 해석한 다음에 결정하자."

 어차피 죽은 시인의 미발표작은 영희의 집안 것이라는 생각에 철수는 영희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철수는 영희에게 일기장에서 뭔가 추가적으로 발견하면 연락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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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9 편 혜숙의 마음

 

 한편 혜숙은 한 달 동안이나 철수로부터 편지가 오지않자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얘가 왜 요즘은 편지를 보내지 않는걸까?'

 혜숙이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철수의 멋진 편지를 읽고나서 철수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 것이지요.


 철수의 편지는 갈수록 더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시인이 된다는 말처럼 처음에는 짜집기에 불과했던 철수의 편지는 이제 창의적인 글이 봇물터지듯이 터져 혜숙의 마음을 사로잡았지요.

 그런데 한 달이나 철수가 편지를 보내지 않자 혜숙은 갖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방학이라서 아르바이트한다고 바쁜 걸까? 아니면 여자를 만난 걸까? 아니면 나보다 더 예쁜 여자를 보고 나한테 관심이 없어진걸까? 뭐야, 도데체... 그림자도 안보이쟎아...'


 혜숙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책상 서럽에 차곡차곡 넣어둔 철수의 편지를 꺼내어 읽었습니다.

 철수의 편지는 한 폭의 멋진 그림처럼 아무리 봐도 싫증나지 않았지요.
 글 자체도 멋있었지만, 자신을 위해서 쓰였다는 것이 로맨틱하게 느껴졌던 것이지요.

 혜숙은 침대에서 철수의 편지를 읽다가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습니다.

 혜숙의 어머니는 우연히 그녀의 방에 들어왔다가 딸이 편지를 들고 있는 채로 잠이 든 것을 보자 그녀의 손에서 편지를 살짝 빼내었지요.


 호기심이 생긴 혜숙의 어머니는 딸이 들고 있던 편지를 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유명 시인이나 유명 작가가 보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뛰어난 감동이 담긴 연애편지였지요.

 '누가 보낸 것일까?'

 편지에는 이름이 없었습니다.


 딸의 책상 서랍이 살짝 열려있는 것을 본 혜숙의 어머니는 사랍을 열어 보았습니다.

 딸의 책상 서랍에는 많은 편지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지요.

 '사귀는 남자가 있나? 근데 나한테 말도 않고?'


 혜숙의 어머니는 딸의 책상 서랍에 있는 편지 하나에 자기도 모르게 손이 갔습니다.

 역시 이름이 없었고 정말 아름다운 글이 편지에 적혀 있었지요.

 혜숙의 어머니는 서랍에 있는 편지들을 모두 꺼내 딸의 방에서 나와 안방으로 들어가 모두 읽어 보았습니다.


 작가가 쓴 것이라고 말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정말 멋진 편지들이었습니다.

 혜숙의 어머니는 편지들을 모두 읽고 나서 다시 딸의 방에 들어가서 예전처럼 차곡차곡 편지들을 정리해 놓고 나왔습니다.


 '정말 누가 저런 멋진 편지를 보냈을까? 물어볼까? 아니야, 내가 책상을 열어 자기 편지를 봤다는 사실을 알면 난리를 칠텐데...  그냥 내가 자기 손에 들고 있는 걸 봤다고 해야 되겠다. 그러게 누가 자면서 편지를 들고 자래? 호호...'

 

 잠에서 깨어난 혜숙은 손에 있었던 편지가 보이지 않자 깜짝 놀랐습니다.

 '어디갔지?'

 책상을 보니 책상위에 편지가 있었지요.


 '어머니께서 다녀가셨나? 내 편지 보셨을까? 내가 편지를 들고 자는 모습을 보시고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침대에서 일어난 혜숙은 마루로 나와 어머니를 살짝 쳐다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딸을 보자, "일어났니? 왠 낮잠이니?"

 "어머니, 혹시..."

 "혹시, 뭐?"

 "아니예요."

 '편지를 읽어 보시지 않으셨나 보내. 다행이다.'


 혜숙이 안도의 한숨을 쉴때, 어머니가 혜숙에게 물었습니다.

 "편지 누가 보낸 거니?"


 혜숙은 어머니께서 편지에 대해서 물어 보자 깜짝 놀랐습니다.

 "편지요?"

 "얘는... 자면서까지 열심히 읽던 그 편지..."

 "아, 그거요? 신경쓰지 마세요. 어머니가 잘 모르는 애예요. 그냥 그 애 혼자 좋아하는거예요."

 "관심도 없는 애가 준 편지를 자면서 봤어?"

 
 "자면서 보기는요...  보다가 깜박 잠이 든거지요. 근데, 어머니... 남의 편지 보면 어떻게요."

 "손에 편지가 있어 뭔가 보니 글자가 보이는 걸 어쩌라고? 얘야, 그 애 누구야? 글솜씨가 보통이 아니던데... 이 어머니도 시를 좋아하는데... 꼭 시인처럼 멋지게 썼더라. 도데체 누구니?"


 "그냥... 동네 앤데... 몇 년 전부터 절 좋아했나 봐요."

 "집에 한번 데려와 봐라. 한번 보자. 몇 년 동안 변하지 않는 마음이 멋있는데..."

 "어머니도 아는 애일거예요. 철수... 아세요?"

 "철수? 알지... 그런데 그 애가 그렇게 글을 잘 쓰는 줄 몰랐구나. 철수의 어머니는 잘 계시니?"


 혜숙은 어머니께서 철수와 철수의 어머니를 아신다고 말씀하시자 놀라면서 말했지요.
 "어머니, 철수 부모님을 어떻게 아세요?"

 "철수 어머니는 우리 동네에서... 인기 많은 여학생이었지..."


 혜숙의 어머니는 철수의 어머니와 아는 사이였지요.

 둘은 일종의 라이벌 관계였습니다.

 혜숙의 어머니와 철수의 어머니는 학창시절 동네에서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여학생이었지요.


 혜숙의 어머니는 철수의 어머니와 죽은 시인과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죽은 시인의 이야기를 딸에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더이상 말을 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습니다.


 "철수, 그 애... 성실하고 괜챦은 것 같은데... 너를 그렇게 오랫동안 좋아한 줄은 몰랐네... 집에 한 번 데려오면 좋을텐데..."

 "그 애가 제 집에 왜요? 전 관심없어요."

 "나도 너의 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좋아한 것은 아니란다. 사람의 일이란 모르는 것이지. 관심없어도 너무 쌀쌀하게 대하지 말고..."

 "알겠어요..."


 혜숙은 그렇게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얘 진짜 변심한 거 아니야? 한 달 동안 그림자도 안 보이고... 그래, 한번 철수 집에 가보자... 볼 일이 있는 척하고 지나가면 되... 가보면 요즘 어디서 뭐하는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겠지...'


혜숙은 머리를 빗고 화장을 한 후에 얼마전에 어머니가 사주신 코트를 입고 어머니께,

 "어머니, 저 좀 나갔다 올께요."

 "저녁도 안 먹고?"

 "볼일이 있어요... 저녁은 사먹을 께요."


 혜숙은 철수의 집쪽으로 갔습니다.

 '내가 왜 이러지? 설마 내가 그 애를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야, 난... 궁금할 뿐이야... 아직도 나를 좋아하는지... 궁금해서... 하지만 관심없다면 궁금할 필요도 없쟎아... 그냥... 조금은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그래, 관심있다고 다 좋아하는 건 아니쟎아?'


 '난 그냥 길을 가고 있을 뿐이야. 그러다가 우연하게 철수의 집에...'

 저녁 때라서 배가 고파진 그녀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밖을 자꾸 쳐다 보았습니다.

 혹시라도 철수가 지나가는지 보기 위해서지요.


 식사를 다한 후에 혜숙은 철수의 집을 지나쳐 지나갔습니다.

 철수 집 근처에 있는 문방구에 가서 예쁜 편지봉투와 편지지를 샀지요.

 '나도 철수에게 편지를 보낼까?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할 수도 있쟎아... 철수와 마주치면 어떻하지? 어때, 난 길을 우연히 지나다가 만났을 뿐이데...'


 혜숙이 철수의 집 근처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철수의 집에서 철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혜숙은 철수의 목소리가 들리자 재빨리 골목으로 숨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숨을 죽이면서 철수가 하는 말을 들었지요.

 "잘가라, 내일 또 보자."

 "오빠, 저녁 늦으면 바래다 준다고 했쟎아."

 "아직 안 늦었쟎아. 버스 하나 타면 바로 집까지 가는데, 바래다 주긴... 나중에 보자..."


 철수는 그렇게 말하고 대문을 닫고 들어가버렸습니다.

 "오빠, 얄미워. 약속도 안 지키고..."

 영희는 철수가 들어가버렸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철수가 들어간 것을 확인하지 혜숙은 우연히 지나가는 척하면서 영희를 살짝 쳐다 보았습니다.

 옷차림새를 보니 부자집 딸 같았습니다.

 영희의 얼굴은 화장기가 있었고 입고 있는 코트가 고급스러워 보였고 치마도 시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옷은 아니라는 사실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저 애는 누구지? 못보던 애인데... 뭐, 오빠? 언제 벌써 만나 사귄거야? 언제는 나만 좋아한다고 난리치더니... 남자가 변덕은... 설마, 그동안 양다리 걸친건 아니겠지? 나하고 저 애하고 양쪽에다 작업한 건 아니겠지?' 


 영희는 철수가 전날 저녁까지 작업하면 바래다 주겠다고 약속했었고 철수의 어머니께서 영희를 집까지 바래다 주라고 철수에게 말했는데도 철수가 대문까지만 배웅한 후에 집에 들어가버리자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하는 수 없이 혼자 집으로 돌아갔지요.

 

 혜숙은 철수의 집에서 같은 또래의 여자가 나오자 누군지 무척 궁금 해졌습니다.

 '누굴까? 새로 사귄 여자친구일까? 그래서 한 달 동안 그림자도 안보였구나...'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사랑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철수가 이제는 다른 여자와 교제 중이라고 생각한 혜숙은 화가 났습니다.


 '무슨 남자가 그렇게 변덕이 심해? 한 달 전만 해도 나에게... 바보, 어디 두고 보자... 앞으로 네가 주는 편지 따위는 받지도 않을거야...'

 혜숙은 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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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강공주는 월화가 자신의 낭군이 될 사람을 '바보 온달'이라고 말하자, 화난 표정으로 월화에게 말했지요.
 "그게 무슨 망측한 말이냐? 온달님이라고 부르거라."
 월화는 평강공주가 화난 표정으로 자신을 나무라자, 그제서야 자신의 실언을 깨달아 고개를 숙이면서 평강공주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공주님, 소녀의 실언을 용서하여 주옵서소."
 "다음부터는 조심하거라. 그런 망측한 말은 듣기 정말 거북하구나." 
 "명심하겠습니다."
 "월화야, 성현께서 말씀하시길, 일자무식이라고 해도 마음이 바르면 군자라고 했다. 사람이 더 배우고 덜 배우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겠냐? 그러니 너는 앞으로 그분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 말아라. 알겠냐?"
 "소녀, 공주님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월화는 평강공주의 말이 바보 온달이 설령 바보라고 할지라도 마음만 바르다면, 온달에게 시집가겠다는 뜻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요.
 평강공주를 10년 가까이 모신 월화는 평강공주의 표정과 말투를 통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바보 온달에게 시집가기로 작정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습니다.

 평강공주는 월화의 한숨 소리가 귀에 거슬렸지만, 월화가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에 한숨을 쉰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녀를 나무라지 않고 고개를 돌렸지요.
 하지만 평강공주는 자신의 비밀이 누설될까 걱정이 되어 월화에게 말했습니다.
 "월화야, 내가 지금 너에게 한 말을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해서도 안되고, 다른 곳에서 나에게 말해서도 안된다. 우리가 하는 말이 다른 사람의 귀에 들릴 수도 있지 않겠느냐? 오늘 일에 대해서는 벙어리가 되어야 한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냐?"
 "소녀, 공주님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평강공주는 월화가 대답하자 잠시 무언가를 생각한 후에 월화를 쳐다보면서 말했지요. 
 "가끔은 바보가 되는 것이 현명해지는 것보다 나을 때가 있다. 나도 앞으로 바보가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보처럼 보이는 것이 현명해 보이는 것보다 나을 것 같구나. 역사학자가 나를 바보 공주라고 기록하는 한이 있어도 어쩔 수 없을 것 같구나. 사람들이 나를 바보라고 놀려도 그분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좋겠구나."

 월화는 평강공주의 바보 온달에 대한 깊은 사랑에 감명을 받아 말했습니다.
 "공주님,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도 공주님의 마음에 감동을 받아 공주님을 결코 저버리지 않을 것이니 심려 마옵소서. 저는 공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공주님이 어딜 가든지 따르겠습니다."

 평강공주는 월화가 바보 온달을 연모하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같아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어 말했지요.
 "너만은 내 마음을 이해하여 줄 것이라고 믿었는데, 너는 나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구나. 하지만 네가 나를 떠나는 것은 나중에 생각해 보자. 나는 가능하면 네가 궁전에 남았으면 좋겠구나. 내가 떠나면 나의 어머님을 보살펴 드렸으면 좋겠다. 상심이 크실테니 네가 위로해 드려라. 왕후의 시녀들은 좋은 배필을 구하기 쉬우니 그게 너에게도 좋을 것이다."

 월화는 평강공주가 힘든 상황에서도 어머니인 왕후와 자신을 걱정하는 말을 하자 평강공주의 사려 깊은 마음에 감동이 되어 흐느끼면서 말했습니다.
 "공주님! 소녀, 공주님의 은혜 죽어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공주님의 어머님을 제 어머님처럼 생각하여 위로해 드린 다음에 공주님을 찾아 뵙겠습니다. 제발 저를 버리지 마세요. 저에게 공주님과 떨어져 살라는 것은 귀향 살이나 다름이 없습으니 저의 마음을 헤아려 주세요."

 평강공주는 월화가 자신과 떨어지고 싶지 않다고 말하자, 월화의 충성심에 감동이 되었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월화에게 좋은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지요.
 하지만 지금 평강공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바보 온달에게 시집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고 싶어 월화에게 말했습니다.
 "월화야, 지금은 생각할 것이 많으니 그건 나중에 생각했으면 좋겠구나. 내 너의 마음 잘 알겠으니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겠다. 그러니 지금은 그 문제에 대해서 아무 생각도 아무 말도 하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소녀, 공주님 뜻에 따르겠습니다."

 평강공주는 월화가 자신의 뜻에 따르겠다고 말하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월화야, 밤이 늦었으니 이제 나는 가봐야 되겠구나."
 "제가 공주님을 모시고 가겠습니다."
 "고맙구나."
 
 월화는 등불을 든 후에 평강공주를 공주의 처소로 인도하였지요.
 공주의 처소로 돌아온 평강공주는 몹시 피곤하여 침소에 누운 후에 월화에게 말했습니다.
 "너도 피곤할 테니 이제 그만 돌아가봐라."
 "공주님, 그럼 저는 이만 물러 가겠습니다. 편히 주무십시요."
 
 월화가 돌아가자, 침수에 누운 평강공주는 잠을 청했지만, 잠이 오지 않아 등불을 켠 후에 검을 들어 오늘 보았던 고상의 검법을 따라하며 연습했습니다.
 하지만 평강공주가 오늘 본 고상의 검법을 따라해보자 고상이 비슷한 동작을 반복하여 사용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고상의 검술은 오라버니보다 몇 수가 위구나. 그러니 비슷한 동작만으로도 오라버니를 압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상과 사부님이 겨루면 고상의 진짜 실력이 나올 것이다. 그렇다. 고상과 사부님이 겨루도록 만들어야겠다.'

 평강공주는 고상이 오늘 보여준 동작은 본 실력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연습할 마음이 사라져 등불을 끈 후에 다시 침소에 누워 잠을 청했지요.
 '고상과 나의 사부님 중 누가 이길까? 고상은 장군이라 실전 경험이 풍부하고 사부님은 이론에 밝으니, 두 사람이 겨루면 용호상박이 되겠구나.'
 평강공주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1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2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3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4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5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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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6 - 평강공주의 비밀


 평강공주는 식사를 마친 후 월화에게 말했습니다.
 "월화야, 나도 이제 시집갈 나이가 되었구나. 나는 너를 항상 데리고 있고 싶지만, 내가 시집가면 너와 헤어질 것 같구나."
 월화는 평강공주가 갑자기 시집가면 헤어질 것 같다고 말하자,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지요.
 "소녀는 절대 공주님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평강공주는 월화가 자신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자, 기특한 생각이 들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지요.
 "월화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천명에 따르는 것이다. 여자가 시집갈 나이가 되면, 시집가는 것은 천명이거늘 어찌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있겠느냐?"
 "하지만, 제가 없으면 공주님은 누가 돌봐드리나요?"
 "네가 떠나면, 너보다 어린 사람이 대신 들어오지 않겠느냐? 여자가 시집갈 나이가 되면, 아버지조차 떠나야하는 법이다. 시집갈 나이가 된 딸이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하는 것이 효도겠느냐? 불효겠느냐?  네가 나를 떠나는 것이 불충이 아니라 네가 시집갈 나이가 되도 떠나지 않는 것이 불충인 것을 모르느냐?"

 월화는 평강공주가 자신이 떠나는 것이 불충이 아니라 떠나지 않는 것이 불충이라고 말하자, 평강공주의 사랑이 느껴져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공주님, 소녀도 여자인데 어찌 시집가고 싶은 마음이 없겠습니까? 하지만, 제 마음속에는 공주님 뿐이니 어찌 제가 공주님을 떠날 수 있겠습니까? 부디 제 마음을 헤아려 주세요."
 "월화야, 네가 나를 떠나고 싶지 않다고 해도 때가 되면 떠나지 않을 수 없다. 시녀는 나이가 되면 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월화는 언젠가는 떠나야 된다는 평강공주의 말을 듣자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했습니다.
 "공주님, 만약 그렇다면 제 나이가 차면 떠나면 되지 않겠습니까?"
 "혼기를 놓히면 좋은 곳에 시집가기 힘드니 어찌 그럴 수 있겠느냐? 나는 너의 부모님을 잘 알고 있다. 네 부모님도 네가 혼기를 놓히는 것을 원하지 않을게다. 그러니 너는 내 말대로 하거라."
 "공주님, 저를 이토록 아껴 주시니 그 은혜 이 몸이 죽어도 결코 잊지 않겠사옵니다."
 월화는 평강공주가 자신을 아끼는 마음에 혼기가 되면 떠날 것을 권고하자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었지요.

 평강공주는 눈물을 흘리는 월화의 눈물을 닦아 주면서 말했습니다.
 "월화야, 네가 떠난다고 해도 나를 찾아오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으니, 네가 나를 떠나야 한다고 해도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공주님이 시집가는 곳에 저도 따라가게 해주세요."
 "그건 내가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구나."
 "하지만, 공주님의 뜻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비록 공주라고 하여도 시집가면, 시집 식구의 뜻에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
 "하오나..."

 월화는 공주가 마음만 먹으면 누가 공주의 뜻을 막을 수 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평강공주가 같은 말을 되풀이 하게 할 수 없어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월화는 눈치가 빨라 항상 평강공주의 마음을 꾀뚫어 보듯 했지만, 지금은 평강공주의 마음을 알 수 없었는데, 평강공주가 월화에게 말하는 시집 식구는 바로 온달과 온달의 어머니를 말하는 것이었지요.

 얼마전에 온달에게 시집갈 것을 결심한 평강공주는 이제 월화와는 헤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평강공주는 평원왕이 자신이 온달에게 시집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설령 평원왕이 허락한다고 해도 왕족이나 귀족들의 반발로 공주의 신분을 버리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평강공주는 생각했습니다.
 '아바마마께서는 내가 온달님께 시집가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으실거야. 나를 궁전에서 내치시겠지. 하지만, 아바마마께서도 내가 어렸을 때 온달님께 시집보내겠다고 수없이 말씀하셨으니, 결국은 허락하지 않으실 수 없을거야. 아바마마, 이 불효녀를 용서하소서.'

 평강공주는 바보 온달을 연모하여 공주의 신분을 버리고 온달에게 시집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는 것이 아버지의 농담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그동안 바보 온달을 잊으려고 노력했지만 소용없었고 앞으로도 잊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지요.
 궁전을 떠날 것을 결심한 평강공주는 자신도 모르게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습니다.

 
 평강공주가 근심어린 표정을 짓자, 월화가 평강공주에게 그 이유를 물었지요.
 "공주님,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신지요?"
 평강공주는 걱정이 있냐는 월화의 질문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월화야, 너는 누군가를 연모해 본 적이 있느냐?"
 "공주님, 소녀는 공주님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연모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냐? 기특하구나. 하지만, 너도 언젠가는 연모할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조금 전까지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던 평강공주는 월화에게 '너는 누군가를 연모해 본 적이 있느냐?'라고 물으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월화는 '연모'에 대해 말하면서 행복한 미소를 짓는 평강공주가 누군가를 연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껴 물었습니다.
 "공주님께서는 누군가를 연모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월화는 평강공주가 지금 누군가를 연모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시녀가 공주의 사적인 감정을 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서 우회적으로 질문했지요.

 "월화야, 너는 어릴 때부터 시녀들과 지내서 누군가를 연모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를 것이다."
 평강공주는 월화의 우회적인 질문을 우회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월화는 평강공주가 누군가를 연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자, 호기심이 생겨 견딜 수 없었지요.
 "공주님... 혹시... 제가 아는 분이신지요?"
 "모를께다. 이름은 들어봤을지 모르지만..."
 "공주님, 소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사옵니다. 저에게만 살짝 말씀해 주십시요."

 평강공주는 여태까지 그 누구에게도 온달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말한 적이 없었지만, 지금은 왠지 모르게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감정을 월화에게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분을 사모한 지도 어느새 10년이 다되가는구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잘 지내고 계신지..."
 월화는 10년이 다되간다는 평강공주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요.
 
 "10년이면... 설마... 바보 온달?"
 월화가 궁에 들어온 것은 평강공주가 자주 울었던 9년 전이었습니다.
 평원왕은 평강공주가 자주 울자, 같이 놀아줄 또래의 소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평강공주와 나이가 비슷한 어린 소녀들을 시녀로 데리고 왔는데, 그 중에 하나가 월화였지요.
 월화 역시 평원왕이 평강공주를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 연모한지 10년이 가까이 되었다는 평강공주의 말에 바보 온달이 떠올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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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5 - 평강공주의 결심


 태자는 밤늦도록 고상과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주로 검술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고상의 인격이 어떤지 결혼관이 어떤지 떠보기 위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지요.
 그러던 중에 태자는 평원왕이 언급했던 오자와 공주의 이야기가 생각나자, 고상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오자가 위나라를 떠난 이유를 아는가?"
 "소인은 오자가 공주와의 결혼을 거절한 후에 무후의 태도가 변했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오자가 공주와의 결혼을 거절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공숙좌의 간계 때문이 아닐지요."
 "그런가?"
 
 태자는 고상의 대답이 예상과 다르자 혼자 생각했습니다.
 '고상, 내가 말하고자하는 것은 오기가 어째서 공주와 결혼하기를 거부했느냐인데, 자네의 대답은 나의 의도와는 다르군.'
 고상은 태자가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자, 태자가 의도하는 것이 무언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지요.
 '태자께서 무슨 의도로 오자의 이야기를 하기는걸까? 설마... 나에게 평강공주를?'
 고상은 자신이 오늘 평강공주를 만난 것과 태자가 지금 평강공주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쩌면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손이 떨릴 정도로 긴장이 되었습니다.
 '설마... 태자께서 나를 평강공주의 배필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실까?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느닷없이 오자가 공주와의 결혼을 거절한 이유를 물으시는 것일까?'

 이러한 생각이 들자 고상은 태자에게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소인의 생각으로는 오자가 공주와 결혼을 거절한 이유는 오자가 무후와 공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하하하, 맞는 말일세. 내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내 누이 평강공주가 생각났기 때문이네. 내 누이도 이제 시집갈 나이가 되지 않았는가? 아바마마께서는 나에게 평강공주의 혼인문제를 맡기셨는데, 나는 자신이 없네."

 고상은 태자에게 평강공주를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말했습니다.
 "공주님은 심성이 곱고 효성이 지극하다고 들었습니다. 심려하시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공주를 호랑이처럼 무서워하는 남자도 많지 않은가? 내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없으니 그것이 문제일세."
 
 고상은 태자가 자신에게 평강공주의 혼인문제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를 하자, 좋은 징조라고 생각하여 용기를 내서 태자에게 말했습니다.
 "태자님! 신, 고상 비록 부족한 점이 많으나 만약 공주님의 배필이 되는 것을 허락해 주신다면, 저의 목숨을 바쳐 공주님께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태자는 고상이 평강공주에게 충성을 바치겠다는 맹세를 하자, 조심스럽게 말했지요.
 
 "대장부의 말은 중천금이라고 하지만, 평강공주는 아바마마께 천만금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다. 만약 평강공주가 행복하지 못하다면, 이는 폐하의 근심이 될 것이니 어찌 폐하의 충신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대는 정말 평강공주를 행복하게 만들 자신이 있는가?"
 
 고상은 태자가 자신에게 평강공주를 맡길 의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제가 어찌 폐하의 근심을 모르겠습니까? 저 또한 시집간 누이가 있어,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어떤 근심을 하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태자님께서 저를 믿어주신다면, 저의 미천한 목숨을 바쳐 공주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태자는 고상이 적극적으로 나오자 기뻐하면서 말했지요.
 "내가 그대를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지만, 남자가 결혼 전에 하는 맹세는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지 않소? 그대의 폐하에 대한 충성심이나 나에 대한 충성심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내 누이 평강공주에 대한 그 마음 변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요."
 "어찌 제가 폐하의 은혜와 태자님의 기대와 공주님의 사랑을 져버리겠습니까? 만약 제가 태자님의 기대를 저버린다면, 신의 불충을 절대 용서하지 마십시오."
 태자는 고상의 충성 맹세에 흡족하여 말했습니다.
 "내 그대를 믿어보겠소." 


 한편 평강공주는 월화의 방에서 식사를 하면서 생각했습니다.
 '이 맛있는 음식들을 낭군님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평강공주는 평원왕이 자신을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낼 마음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3년 전, 평강공주가 평원왕에게 바보 온달에 대해서 물어 보았을 때 평강공주는 평원왕이 자신을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낼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아바마마, 온달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온달이 누구냐? 나는 들어 본 기억도 없구나."
 바보 온달을 자신의 낭군이 될 사람이라고 믿었던 평강공주는 평원왕의 말을 듣자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바마마께서 저를 온달님께 시집보내실거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공주야, 그게 도데체 무슨 소리냐? 나는 온달이라는 자의 이름을 들어 본 적도 없고, 너를 누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말한 적도 없다."
 "하지만..." 

 평강공주를 가까이서 모시는 시녀 한 명이 평원왕이 평강공주에게 농담으로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낼 것이라고 말한 것이 기억나서 평원왕에게 말했습니다.
 "폐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공주님께서는 어리실 적에 폐하께서 농담으로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믿고 계신 것이 아닐지요."
 평원왕은 시녀가 지난 이야기를 하자 기억이 나서 크게 웃으면서 말했지요.

 "평강아, 네 어찌 이 아비가 농으로 한 말을 지금까지 믿고 있는게냐? 하하하..." 
 바보 온달이 자신의 낭군이 될 사람이라고 믿어왔던 평강공주는 그것이 농담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아니야, 그럴리가 없어. 아니야, 그럴리가...'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낸다는 말이 농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평강공주는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았지요.
 '낭군님, 이게 무슨 청천벽력같은 말인지요? 저는 이제 어떻하지요?' 


 평강공주가 바보 온달이 자신의 낭군이 될 사람이 아니라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3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3년 동안 평강공주는 한순간도 바보 온달을 잊어본 적이 없었지요.

 아버지에게 착한 딸이 되기 위해서 잊으려고 노력한 적도 있었지만, 잊으려고 노력해도 잊혀지지 않자 평강공주는 평원왕에게 자신을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 줄 것을 설득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1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2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3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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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4  -  태자 대원의 계획

  한 편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태자 대원은 미소를 띠운 채 생각했습니다.
 '고상이 여태까지 오지 않는 것을 보니 평강을 만나고 있는 것이 틀림없겠지.'

 오늘 평강강주와 고상이 만난 것은 모든 것이 태자의 계획이었습니다.
 태자가 칼을 놓힌 후에 숨어있던 평강공주의 그림자를 본 것이지요.
 태자는 숨어있는 사람이 평강공주라고 확신했습니다.
 이 곳은 왕자들이 검술을 연마하는 곳이라 왕자들이 아니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지요.

 왕자들이 숨어서 검술 대련을 구경할리는 없을 것이고, 평강공주가 아니라면 도착하기도 전에 궁전을 지키는 호위군사들에게 잡혔을 것입니다.
 숨어있는 사람이 평강공주일 것이라고 확신한 태자는 일부러 칼을 줍지 않고 떠난 후에 고상에게 칼을 두고 왔으니 주서 달라고 말한 것이지요.
 검술에 빠진 평강공주는 틀림없이 태자의 칼로 검술을 연마할 것이고, 고상은 태자의 칼을 태자에게 돌려주는 임무를 맡았으니 평강공주와 고상은 서로 만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이처럼 태자가 고상이 평강공주와 만나게 만든 이유는 평원왕이 상부의 고씨의 아들을 평강공주의 배필로 염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달 전...

 평원왕이 태자를 불러 말했습니다.
 "평강도 이제 16살이 되었으니 시집갈 나이가 되었구나. 아비로서 딸의 배필을 찾아주는 것처럼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짐은 상부의 고씨의 아들 고상을 마음에 두고 있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고상은 병법과 무예에 모두 뛰어난 장군일 뿐만 아니라 저에게 충성을 맹세했으니 저도 찬성합니다."
 "남녀간의 일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고상이 원하지 않을 수도 있고, 평강이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짐은 너에게 평강의 혼사 문제를 맡기려고 한다. 할 수 있겠느냐?"
 "제가 고상과 평강의 만남을 주선하겠습니다."
 
 평원왕은 태자가 아직 남녀의 사랑이 어떤지 모르는 것 같아서 한숨을 쉬면서 말했습니다.
 "오자가 어째서 위나라를 떠났는지 아느냐?"
 "오자가 공주와의 결혼을 거절했기 때문이 아닌지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오자에게 결혼을 거절당했던 공주가 오자를 미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공주는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 오기를 미워했을 것이고, 무후에게 오자에 대해서 좋지 않게 말했을 것이다. 무후는 딸의 말을 듣고 오자를 예전처럼 믿을 수 없었을 것이고, 오자는 무후가 자신을 대하는 낯이 예전같지 않음을 알고 떠났을 것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겠느냐?"
 
 태자는 평원왕의 말을 곰곰히 생각했지요.
 '아바마마의 뜻은 고상에게 먼저 의사를 물어보되, 평강에게는 미리 말하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평원왕이 뜻하는 말을 알아들은 태자가 말했습니다.
 
 "고상의 생각이 어떤지 알기 전까지는 평강에게 이 혼사에 대해서 말하지 않겠습니다. 만약 고상이 평강이 마음에 없다면, 더이상 추진하지 않겠습니다."
 "만약 평강이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제가 평강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평강은 어렸을 때부터 제 말이나 아바마마의 뜻에 잘 따랐으니 제가 말하면 아바마마의 뜻에 따를 것입니다."

 "효녀나 효자도 혼인 문제는 부모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경우도 있지 않느냐?"
 "소자, 평강이 고상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무리하게 추친하지 않겠습니다."
 "혼사가 성사되지 않더라도 고상의 마음이 상해서도 안되고, 평강의 마음이 상해서도 안된다. 무슨 말인지 알겠냐?"
 "소자, 아바마마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태자는 그동안 어떻게 하면 평강과 고상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해줄 수 있을지 고심하였는데, 평강이 자신의 발로 찾아오자 태자는 일부러 칼을 두고 떠나 평강과 고상이 만나도록 만든 것이지요.

 태자는 고상이 돌아오지 않자 자신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된다는 생각에 미소를 짓고 있었지요.
 이 때 밖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태자님, 고장군님이 오셨습니다."
 "들라 이르라."
 
 고상은 태자의 칼을 들고 태자의 처소에 들어갔습니다.
 태자는 칼을 든 고상의 표정이 이상한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태자는 고상이 평강공주에게 반해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모르는 척하면서 말했지요.
 "왜 이리 늦었나? 내 그대를 기다리느라 지루했다. 자, 벌주를 받게."
 
 고상은 태자가 농담으로 하는 말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술잔을 들어, 태자가 따라주는 술을 받았지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불만이라도 있는가?"
 "그런게 아니오라... 소인이... 우연히 만난 공주님께 무례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태자는 자신의 계획대로 고상이 평강공주를 만났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지요.
 "평강을? 평강을 어떻게 만났단 말이냐?"
 "공주님께서는 아마도 제가 태자님과 대련할 때 숨어서 보신 것 같습니다. 제가 태자님의 검을 주으려고 가보니, 공주님께서는 태자님의 칼을 들고 저의 검법을 흉내를 내면서 검술을 연마하고 계셨습니다."
 "하하하... 평강이 몰래 우리가 대련하는 장면을 보았단 말이지? 그런데, 네가 공주에게 무슨 무례를 범했단 말이냐?"
 "제가 공주님을 시녀로 오인하여 누구냐고..."
 "하하하...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다. 평강공주가 내 칼을 들고 있었으니, 너는 당연히 내 칼을 들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었던 것이 아니겠느냐? 하하하..."

 고상은 평강공주가 자신에게 오늘 일을 말하지 말라고 한 것을 기억했지만, 자신은 태자의 심부름을 했을 뿐이니 잘못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 태자에게 사실대로 다 말한 것이지요.
 태자가 웃자 고상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자신이 오늘 일을 태자에게 말한 것을 평강공주가 알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태자에게 말했습니다.

 "태자님께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해 보거라."
  
 태자는 고상이 자신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고 말하자,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지요.

 "공주님께서는 제가 공주님을 뵌 것을 없는 일로 해달라고 하셨지만, 저는 태자님께 거짓말을 아뢰올 수 없어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공주님이 아시면 역정을 내실까 두렵습니다. 하오니..."
 "말하지 않을테니 걱정말게."
 태자는 고상의 표정을 보니,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평강공주와 고상이 만난 것은 태자의 계획이었지만, 고상이 평강공주에게 무례를 범한 것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군. 이제 어쩐다? 좋은 생각이 있다.'
 태자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상에게 말했습니다.

 "내 그대에게 청이 있네."
 "태자님께서 소인에게 청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소인에게 하명만 내려주시면, 목숨을 걸고 분부를 받들겠습니다."
 "그대는 나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인데, 내 어찌 위험한 부탁을 하겠나? 앞으로 매일 나의 검술 연마를 도와주게."
 "소인, 부족하지만 태자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태자는 평강이 고상과 다시 만나게 만들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글은 연재소설입니다. 1~3 을 보시지 않으신 분은 링크를 클릭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평원왕이 태자에게 예를 든 오자는 오자병법의 저자 오기를 말함)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1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2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3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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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3 - 평강공주의 수라상


 평강공주는 고상의 무례에 화가 난 상태로 처소로 돌아왔습니다.
 공주의 시녀들 중에 월화라는 시녀가 있었는데, 월화는 평강공주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리는 시녀였기 때문에 평강공주가 화난 모습으로 돌아오자 조심스럽게 물었지요.
 "공주님께서는 어떤 일로 역정을 내시는지요?"

 평강공주는 항상 아버지인 평원왕과 오빠들의 사랑을 받았고 궁전을 왕래하는 귀족들이나 대신들조차 평강공주를 깍듯이 대했는데, 고상의 무례한 행동을 생각하니 비록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다고 해도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지요.
 평강공주가 월화에게 말했습니다.
 
 "내 오늘 참으로 황망한 일을 경험하였다. 고상이라는 자가..."
 "그 자가 감히 공주님께 무례를 범했습니까? 제가 왕후님께 아뢰어 혼을 내줄까요?"
 "아니다, 내가 보니 큰 오라버니와 친한 것 같더구나. 큰 오라버니의 체면을 봐서라도 내가 참아야 되지 않겠느냐. 게다가..."
 "게다가 무엇이옵니까?"
 "검술이 뛰어나니 아마도 쓸모는 있을 것 같구나."

 평강공주는 이 말을 한 후에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너는 초나라 장왕의 일화를 아느냐? 중국 춘추시대에 초나라 장왕은 자신의 후궁에게 무례를 범한 자를 살려주었는데, 훗날 그 자가 장왕이 위기에 빠졌을 때 장왕의 목숨을 구했다. 나도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구나."
 
 월화는 평강공주가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눈치채자 박수를 치면서 말했습니다.
 "그 자에게 검술을 배우면 되겠군요."
 평강공주는 월화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를 내면서 말했지요.
 "남녀가 유별하거늘 네 어찌 그리 입이 가벼우냐?"

 월화는 평강공주의 기분을 풀려고 하다가 오히려 평강공주를 화나게 만들자,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공주님, 소녀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사실 평강공주가 화를 낸 것은 월화가 자신의 의중을 꾀뚫어 보자,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 화를 낸 척한 것어있지요.

 평강공주는 월화가 무릎을 끓고 사죄를 하자 측은한 생각이 들어 말했습니다.
 "그만 일어나거라.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 내가 오늘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 있었으니, 네가 나를 이해하거라."
 평강공주는 어렸을 때 잘 울기는 했어도 화를 낸 적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월화는 혹시라도 크게 혼날까봐 두려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월화는 여전히 두려운 생각이 들어 울먹이는 표정으로 평강공주를 쳐다보면서 말했습니다.

 "소녀... 입단속... 앞으로는 잘 하겠습니다."
 평강공주는 화가 난 것이 아니라 화난 척 한 것이기 때문에 입단속을 잘하겠다는 월화의 말에 웃지 않을 수 없었지요.
 월화는 평강공주가 웃자 그제서야 안심이 되어 평강공주에게 말했습니다.
 "공주님, 진지드셨는지요?"

 
 평강공주는 저녁에 왕자들의 검술을 가르치는 검객을 만나러 갔다 오빠들이 몰래 검술을 연마하는 곳에 가서 구경하느라 저녁을 먹지 못했지요.
 검술 연습이 끝나면 오랜만에 큰 오빠인 태자와 식사를 할까 생각했는데, 고상이라는 자가 함께 있어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큰 오빠와의 식사 계획이 고상 때문에 무산이 되었다는 생각에 평강공주는 고상이 이래저래 미운 생각이 들어 화가 났던 것이지요.

 "아직..."
 평강공주는 밤이 되도록 식사를 하지 못해 배가 고프지 않을 수 없었지요.
 월화는 평강공주가 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평강공주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공주님의 수라상을 차려오겠습니다."
 "아니다. 그냥 시녀들이 먹는 상으로 가져와라."

 월화는 평강공주가 어째서 시녀들이 먹는 음식을 가져오라고 하는지 알고 있지요.
 월화가 만약 공주의 수라상을 차려오면, 시녀들은 어째서 평강공주가 여태까지 식사를 하지 않았는지 궁금해 할테고 시녀들의 입단속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이야기가 밖으로 나가면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왕후가 평강공주가 시녀들이 먹는 음식을 먹은 것을 알면 큰 일 날 수 있어 월화가 말했습니다.

 "공주님, 제가 어찌..."
 "네가 먹으면 되지 않느냐?"
 월화는 평강공주가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눈치채자 큰 소리로 말했지요.
 "아... 공주님, 제가 일을 많이 해서 배가 고파서... 이만 물러 가겠습니다."

 월화가 진수성찬을 차려 자신의 방으로 가져가려고 하자, 시녀들이 물었습니다.
 "넌 아까 식사했으면서... 이게 뭐냐? 공주님의 수라상과 다를바 없구나."
 "임신이라도 했느냐? 아니면 배에 식충이라도 들은 게냐?"
 월화는 눈치가 아주 빨라 평강공주의 총애를 받아 시녀들의 질투를 받았는데, 흠잡힐 일을 하자 시녀들이 월화에게 시비를 걸었지요.
 
 "그게 무슨 경망스러운 말이냐?"
 몹시 배고팠던 평강공주는 월화의 방에서 수라상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시녀들이 말을 함부러 하자 참지 못하고 나와 화난 표정으로 시녀들을 꾸짖었습니다.
 "공주님, 소녀들을 용서해 주소서. 저희는..."

 시녀들은 월화가 든 상이 평강공주를 위한 것임을 깨닫고 어쩔 줄 몰라 두려움에 떨었지요.
 평강공주는 시녀들이 두려운 표정으로 떨자, 측은한 생각이 들어 말했습니다.
 "그만 물러가거라. 나는 월화에게 조용히 할 말이 있다."
 시녀들은 평강공주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도망치듯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지요.

 월화는 상을 가지고 방에 들어가 평강공주의 수라상을 차렸습니다.
 상에는 평강공주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있었지요.
 밤늦도록 식사를 하지 못한 평강공주는 몹시 배가 고팠지만, 공주의 체통을 지키기 위해서 식사를 서두르지 않고 말했습니다.
 
 "어서 들거라. 나는 네가 식사할 때 까지 여기서 기다리겠다."
 "송구합니다... 그럼..."
 월화는 자신이 이 음식들을 먹은 것으로 하려고 떡을 조금 먹었습니다.
 평강공주는 눈치가 빠른 월화를 보면서 살짝 미소를 지은 후에 식사를 시작했지요.

 하지만 평강공주는 식사를 하면서도 검술을 생각했습니다.
 '오늘 보니 고상의 검술은 분명히 큰 오라버니보다 훨씬 위였다. 내가 그와 대련할 수 있다면, 검술이 많이 늘텐데.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큰 오라버니를 이길 수 없었던 이유를 알겠구나. 검술이란 대련 상대가 없으면 한계가 있는 것이군. 어떻하지?' 
 
 평강공주는 자신의 검술이 그동안 큰 진전이 없이 제자리 걸음을 한 이유가 실전 상대가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어떻게 하면 실전 상대를 구할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1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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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2 - 검술을 연마하는 평강공주


  어느새 2년이 흘렀습니다.
 10살이 된 평강공주는 고구려의 역사를 배우면서 고구려가 얼마나 위험한 적들에 둘러쌓였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철이 든 평강공주는 역사와 병법을 열심히 배웠고, 13살이 되자 말타기와 활쏘기를 배우기 시작했지요.
 신궁 동명성왕의 핏줄을 이어받은 평강공주의 활쏘기 실력은 나날이 늘어 15살이 되었을 때는 일류 궁수를 능가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평강공주는 검술도 배웠는데, 노력한 끝에 머지않아 평강공주의 검술은 오빠들과 비슷할 정도로 뛰어나게 되었지요.
 궁중에는 왕자들의 검술을 지도하는 뛰어난 검객이 있었는데, 평강공주는 13살 때부터 이 검객에서 검술을 몰래 배웠기 때문에 정식으로 배운지 1년 만에 오빠들과 대등한 실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제 16살이 된 평강공주는 평범한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평강공주에게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 꿈은 바보 온달을 고구려의 최고의 용사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바보 온달을 자신의 낭군이 될 남자로 착각하고 있는 평강공주는 고구려의 신분제도로 봤을 때 바보 온달이 왕족들이나 귀족들에게 환영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요.
 평강공주는 아버지가 깊은 뜻이 있어 자신을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평강공주가 지난 수년간 병법, 말타기, 활쏘기, 검술 등을 열심히 배운 것도 바보 온달을 가르칠 마음으로 배운 것이지요.
 자신이 오빠들을 능가할 정도가 되지 못한다면, 바보 온달을 가르쳐도 별 소용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물론 스승을 초청해서 가르치면 되지만, 공주는 자신이 직접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지요.

 평강공주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평강공주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인 평원왕이 사냥을 가면 따라가고 싶었지만, 말을 타지 못해 그럴 수 없었지만, 이제 말타기에 능해진 공주는 아버지인 평원왕이 사냥을 가면 따라갈 수 있었지요.
 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것을 함께 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평강공주는 검술에 능한 사람이 되어 바보 온달에게 검술을 가르치면서 항상 함께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평강공주는 열심히 검술을 연마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오빠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평강공주는 검술에 진전이 없자 답답한 마음이 들어 자신의 검술을 지도하는 검객을 만나서 물었습니다.
 "사부님, 어째서 제 검술에 진전이 없는 것이지요?"
 검객은 왕자들의 정식 사부는 아니었지만, 왕자들은 그를 존경하여 사부님이라고 불렀고 평강공주도 그를 사부님이라고 불렀지요.

 "진전이 없다니요? 공주님의 검술은 놀랄만큼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공주님께서는 왕자님들이 검술을 얼마나 열심히 하시는지 모르실 겁니다. 왕자님들께서는 조용한 곳에서 검술을 연마하셔 공주님께서 보시기에는 별 노력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실 수도 있지만..."

 평강공주는 검객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물었습니다.
 "거기가 어디지요?"
 "그건..."
 "말씀해 주세요. 제가 우연히 찾은 것처럼 할테니까요."
 "왕자님들의 정원에서 500보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고마워요. 말하지 않을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평강공주는 오빠들이 몰래 검술을 연마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연습 장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평강공주는 칼이 부딛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요.
 마침 어두운 밤이라 공주는 몰래 숨어서 칼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았습니다.
 두 명이서 칼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어두운 밤이라 누군지 알아 볼 수 없었지요.

 평강공주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보았지만, 누군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순간 한 사람이 칼을 놓쳤는데, 검술에서 칼을 놓히는 사람이 패하는 것이기 때문에 평강공주는 승부가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고상, 너의 검술은 정말 내가 따를 수 없겠구나."
 "태자님께서 사정을 봐주시지 않으셨다면 소인이 이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겸양할 필요없네. 나는 자네가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을 잘 아네." 

 평강공주는 앞선 목소리의 주인공이 태자이자 큰 오빠인 대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큰 오빠 대원과 말하는 남자의 목소리는 처음 듣는 소리였습니다.
 '누구지? 큰 오라버니가 고상이라고 불렀는데...' 
 평강공주는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지요.

 태자 대원과 고상이라는 남자는 이야기를 하면서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타자 대원은 자신이 놓힌 칼을 줍지 않고 떠났기 때문에 땅에는 칼이 떨어져 있었지요.
 평강공주는 태자 대원이 땅에 떨어뜨린 칼을 주서 둘이 싸우는 장면을 상기하면서 고상이라는 자가 사용한 검법을 흉내내어 검술을 연습했습니다.

 이 때 고상이라는 자가 평강공주가 검술을 연습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 데, 고상은 태자 대원을 배웅한 후에 돌아와 태자가 떨어뜨린 칼을 주서 태자에게 돌려주려고 온 것이지요.

 
 평강공주는 이미 16살로 절세의 미녀였던 왕후인 어머님을 닮아 대단히 아름다운 여인이였습니다.
 평강공주가 검술을 하는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선녀가 하강하여 춤을 추는 모습이었지요.
 고상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공주의 모습에 넉이 빠져 자신도 모르게 쳐다보았습니다.
 검술 연마에 빠진 평강공주는 처음에는 고상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검법을 연습하는 중에 우연히 눈이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누구냐?"
 "당신은?"
 평강공주는 고상이라는 자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았다는 사실에 어의가 없었는데, 오히려 자신에게 '당신은?'이라고 묻자 기가 막혔습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네가 감히 나에게 누구냐고 묻느냐?"
 
 고상은 평강공주가 공주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분이 나빠 말했지요.
 "나는 상부 고씨의 아들 고상이요. 당신이야 말로 누구시오?"
 "상부 고씨의 아들이라고? 상부의 아들이던 하부의 아들이던 네 어찌 나에게 이리도 무례할 수 있느냐?"
 
 평강공주는 만인지상의 공주였기 때문에 아버지와 친척들과 오빠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자신에게 '누구냐?'고 말 한 적이 없었습니다.
 궁에 있는 사람들 중에 공주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고상은 평강공주의 무예가 뛰어난 것을 보고 왕후의 호위 시녀일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공주의 검법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고, 공주가 밤에 검술을 연마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고상은 호위 시녀가 왕이나 왕후의 총애를 믿고 거만하게 나오는 것이라고 단정하여 평강공주에게 '당신이야 말로 누구시오?'라고 물었는데, 이 여인이 '상부의 아들이던 하부의 아들이던'이라고 말하자 불쾌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운 평강공주의 모습에 주눅이 들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요.

 '대단히 아름다운 것을 보니 왕의 총애를 입는 시녀일 것이다. 비록 시녀라고 해도 함부로 대할 수 없겠구나.'

 평강공주는 고상이 자신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자,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귀머거리인게냐? 아니면 갑자기 벙어리가 되었느냐? 어찌 내 말에 대답하지 않는게냐?"
 고상이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나는 태자님의 칼을 찾으러 왔는데, 그대가 태자님의 칼을 들고 있어..."
 "오라버님은 어디계시냐? 내 오라버님께 말해 너를 단단히 혼내야 겠구나."

 고상은 평강공주가 '오라버니'라고 말하자 이제서야 그녀가 평강공주임을 알게 되어 당황하면서 예를 갖춘 후에 말했습니다.
 "평강공주님이십니까?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공주님이신 줄 알지 못했습니다."
 고상은 대원에게 평강공주가 16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대단한 미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평원왕의 딸 중 시집가지 않는 공주가 없었기 때문에 공주가 '오라버니'라고 말하자 그녀가 평강공주임을 깨달았지요.

 평강공주는 고상이 예를 갖춘 후에 사과하자 화가 풀려 말했습니다.
 "몰라서 한 일이니 더이상 말하지 않겠다. 그만 가봐라."
 "태자님의 칼은..."
 
 평강공주는 고상에게 칼을 던진 후에 말했습니다.
 "오라버님께 나를 여기서 본 일을 말하지 말거라. 알겠냐? 그럼 나도 오늘 너의 무례를 더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
 "공주님, 심려하지 마십시오."
 평강공주는 고상을 쳐다보지도 않고 휙, 가버렸습니다.
 

                                                                                                                       (계속)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1 

Posted by labyr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