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그걸 말해야 알아?"
 내가 화이트데이에 그녀에게 아무 선물도 하지 않자 그녀는 화내면서 바보라고 말했었다. 화이트데이? 그거 챙겨야 하는 날이었나? 내년부터는 챙겨주면 되지, 뭐.
 근데, 문제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가 나의 마음을 받아준 날이 언제인지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100일 기념일에 아무 이벤트를 준비하지 않은 나를 '바보'라고 불렀다.
 "바보, 오늘이 우리 만난지 100일 되는 날인거 몰라?"
 그녀는 나를 바보라고 부른 후에 이별을 선언했다. 그녀는 나의 첫사랑이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이트데이와 이벤트를 챙겨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런 날을 챙겨야 하는지 몰랐었다. 간혹 친구들에게 100일 이벤트나 화이트데이에 여자친구에게 선물을 사주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꼭 챙겨줘야 하는 날인지는 몰랐었다. 나는 정말 바보가 맞는 것 같다. 남들이 다 아는 것을 혼자서 몰라 내가 정말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되었으니. 영희야, 나에게 다시 한번만 기회를 주면 잘 챙겨줄께.
 나는 인터넷을 뒤져 여자친구에게 이벤트를 해줘야 되는 기념일을 찾아 봤다. 크리스마스, 화이트데이, 100일, 200일, 300일, 1년, 500일, 1000일......
 하지만, 그녀가 떠났으니 무슨 소용인가? 

 오늘은 영희와 만난지 200일이 되는 날이다. 그녀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그녀에게 근사한 선물을 줄 수 있겠지만,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지. 햇살처럼 밝고 장미처럼 화사한 영희의 미소가 떠오르자 나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영희와 함께 걸었던 거리를 나홀로 걷다가 문득 영희가 예전에 예쁘다고 말했던 가방을 보게 되었다. 나는 가게에 들어가 가방이 얼마인지 물었는데, 10만원이라고 한다.
 나는 지갑을 꺼내 가방을 샀다. 영희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녀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서.
 회사가 끝나자 영희의 집 앞에서 기다렸다.
 "도데체, 무슨 일이야?"
 "연락도 없이 갑자기 찾아와서 정말 미안해. 너한테 주고 싶은 것이 있어서. 선물이야. 너랑 사귈 때 해준 것도 없어서. 이거라도 사주고 싶었어."
 "이제와서, 왜? 우린 끝난 사이인데. 도로 가져가."
 "제발, 부탁이야. 받아줘. 아무 조건없이 주는거야. 너와 만났을 때 내가 한번도 이벤트를 챙겨주지 못해서. 이거라도 주고 싶어. 딴 마음이 있어 이러는게 아니니, 제발."
 영희는 한숨을 쉰 후에 말했다.
 "영수야, 고마워. 잘 살펴가."
 "영희야, 잠깐만. 잠깐만 할 말이 있으니 들어줄래. 길지 않아. 잠시만."
 영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에게 말할 기회를 주었다.
 "영희야, 니 말이 맞어. 난 정말 바보인거 같아. 널 정말 사랑했으니면서도 화이트데이도, 100일 기념일도 챙겨주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더이상 바보가 아니냐. 이런 말하기 정말 미안하지만, 부탁인데 나에게 한번만 더 기회를 주면 안되겠니? 딱 한번만 나에게 기회를 주면 바보 온달이 평강공주를 실망시키지 않았듯이 기념일 때문에 널 다시는 실망시키지 않을께."
 "바보 온달? 평강공주? 호호호......"
 영희는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라는 말에 크게 웃었다.
 나는 한줄기의 희망의 빛이 보여 무릎꿇고 말했다.
 "공주마마, 소신에게 한번만 기회를 주신다면, 하해와 같은 깊은 은혜, 절대 잊지 않고 공주마마만 생각하면서 공주마마의 행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사옵니다."
 "공주마마? 호호호......"
 내가 요즘 사극을 많이 봐서인지 사극의 한 장면을 흉내내어 영희에게 다시 시작하자자고 말했는데,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 같다.
 영희는 배를 잡으면서 웃고 있었다. 웃음을 그친 영희는 미소를 띈 채 말했다.
 "글쎄, 당장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 지금 난 잘 모르겠어. 우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지금은 그냥 돌아가줘. 내 마음이 바뀌면 너한테 전화해줄께."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영희야, 내 진심, 한 번도 너에게 제대로 말하지 못한 것 같아. 난 넌 정말 사랑해. 너와 헤어진 지난 100일은 암흑처럼 어두웠어. 우리, 헤어지기 전의 100일은 세상에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행복했었는데, 너와 헤어진 후에 모든 광명이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와 나의 모든 꿈과 희망이 사라졌어. 영희야, 내가 처음에도 말했지만, 넌 내 첫사랑이라서 난 여자친구에게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잘 몰랐어. 바보처럼 아무 것도 몰랐었지. 하지만 이젠 알아. 200일, 300일, 500일...... 제발, 부탁이야. 나에게 한번만 기회를 줘."
 "바보, 왜 진작에 말하지 않았어. 난 니가 날 그렇게 사랑하는지 몰랐어."
 영희는 손을 내밀어 무릎뚫고 있는 나를 일으켜 세운 후에 말했다.
 "좋아, 다시 시작하자. 그동안 나 때문에 상처받았다면 다 잊어줘."
 나는 영희가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자 춤이라고 추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영희야, 나의 진심을 알아줘서 정말 고마워. 널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께."

 영희는 햇살처럼 밝고 장미처럼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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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의 봉사활동으로 어느 양로원을 방문했다.
 양로원에 있는 할머니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던 중에 할머니 한분께서 우리의 방문에 관심도 없다는 듯이 사진첩만 쳐다보고 있어 내가 가까이 다가가 인사했다.
 "할머님, 안녕하세요? 저는 사랑교회에서 온 이은주예요. 이거 좀 드세요."
 나는 교회에서 나누어 준 떡을 할머니께 드렸다.
 할머니는 나에게 고맙다고 말한 후에 떡을 드셨다.
 할머니는 아들이 하나있지만, 아들이 자식 교육 때문에 미국으로 가서 양로원에 있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자식 교육이 뭔데, 살아계신 부모님을 두고 미국까지 간 것일까?'
 할머니의 존함은 이순자였다. 이순자 할머니는 할아버지께서 10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셨는데, 할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머니를 모시는 조건으로 아파트를 물려 주셨다고 한다. 하지만 아들은 그 돈으로 자식을 유학시키려고 미국으로 떠났으니, 할아버지께서 아신다면 통곡을 할 일이다.
 "할머니께서도 따라 가시지요? 손자하고 살면 좋쟎아요."
 "며느리하고 손주가 날 싫어해. 지네들끼기 살게 내버려 둬야지."
 나는 한숨을 쉰 후에 말했다.
 "그래도 따라 가시지요. 아드님은 할머니를 보고 싶어할거 아니예요."
 할머니의 두 뺨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말하시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왠지 모르게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의 모습을 잊을 수 없어 다음 주에도 양로원을 찾아갔다.
 할머니는 나를 보자 마치 자식이라도 온 것처럼 반겨 주셨다.
 나는 이후부터 매주 양로원을 찾아가 할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는 어린 시절 교회에서 피아노를 치실 정도로 교회를 열심히 나가셨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교회를 나가지 못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할머니께 교회를 나올 것을 권유해서 매주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교회를 나갔다.
 할머니의 손자는 할머니를 싫어했지만, 할머니는 손자를 몹시 사랑하신 것 같다.
 할머니는 항상 입버릇처럼 나를 손자의 며느리 삼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손자도 나와 같은 20살이었는데, 나는 자신의 할머니를 싫어하는 손자와 결혼할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한겨울이 되어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 독감에 걸렸는데, 고열증상과 두통이 있어 당분간 할머니를 만나지 못했었다.
 어느 날 나는 혼자 교회에 와서 주보를 살펴보고 있었는데, 주보에 어디선가 본 이름이 있었다.
 '고 이순자 집사.'
 '그럴리가 없어. 할머니께서는 얼마전까지 멀쩡하셨는데.'
 나는 교회의 목사님을 통해서 이순자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음을 확인했다.
 장례식은 고인의 뜻에 따라 교회에서 치루어졌는데, 할머니의 장례식에 아들과 며느리와 손자가 미국에서 찾아왔다.
 아들은 땅을 치면서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 이 불효자를 용서하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 놈의 자식 교육이 뭔지, 어머니를 내버려 두고 가다니 제가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손자도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쏟았다.
 
 여름방학이 되자 나는 하계수련회에 갔는데, 우연하게도 할머니의 손자를 만났다.
 할머니의 손자의 이름은 이상현이었는데, 이번 학기에 우리나라의 대학으로 편입한 그는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나를 보았다고 하면서 할머니와 내가 무슨 관계냐고 물었고, 나는 내가 할머니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말해주었다.
 나는 교회에서 상현이와 친해지게 되었는데, 내가 사랑했던 나를 사랑했던 이순자 할머니의 손자라는 사실에 왠지 모르게 호감이 갔던 것 같다.

 나는 나도 모르게 상현이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는 어느 크리스마스에 나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은주야, 나, 사실은 너를 사랑해. 어쩌면 우리 할머니를 사랑했던 너의 따뜻한 마음씨에 이끌려 너를 사랑하게 된 건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나는 너를 사랑해. 내 마음을 받아 주겠니?"
 "상현아, 고백해 줘서 고마워. 사실은 나도 니가 좋았어.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너를 보면 할머니가 생각나고, 할머니가 생각나면 니가 생각났어."
 상현이가 나에게 고백한지 1000일이 되었을 때 상현이는 나에게 청혼하였다.
 나는 얼마후에 상현이와 결혼하여 할머니의 증손자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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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산타 할아버지께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를 잠깐만이라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들어주실지 모르겠어요. 아빠는 저에게 착하게 살면 산타 할아버지께서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신다고 하셨고, 저는 지난 1년동안 아빠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로 살았으니 산타 할아버지께서 저의 소원을 들어주실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수업이 끝나자 저는 유치원에서 주는 점심을 먹고 유치원 차를 타고 집에 왔어요.
 집에 온 저는 엄마에게 줄 선물과 카드를 사로 문방구에 갔는데, 오다가 한 아줌마를 만났어요.

 직장에서 일을 마친 나는 서은이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과 케이크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웃에게 서은이를 봤는지 물어 봤지만 서은이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어 경찰에 신고한 후에 서은이를 찾았다.

 저는 아줌마의 집에서 엄마를 기다렸지만, 엄마는 나타나지 않으시고, 대신에 험상 굳게 생긴 아저씨 두명이 나타났어요. 얼굴에 큰 점이 있는 아저씨 하나가 아줌마에게 귓속말로 뭐라고 속삭였는데, 아줌마는 저를 힐끗쳐다보더니 눈물을 글썽거렸어요. 아줌마의 눈물을 보니 오늘 엄마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어요. 
 "꼬마야, 전화번호가 몇 번인지 말해봐. 아버지를 부를테니까."

 내가 초조한 마음으로 서은이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서은이를 납치한 유괴범이였다. 유괴범은 서은이를 잘 데리고 있으니 3000만원을 마련하면 서은이를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얼굴에 큰 점이 있는 아저씨는 방에 들어가서 전화를 했는데, 아저씨는 아빠에게 3000만원이나 되는 돈을 가져다 달라고 아빠를 협박했어요.
 저는 이제서야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아 눈물을 참을 수 없었어요.
 아줌마를 몹시 좋아하게 되었는데, 아줌마가 저를 속였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거든요.
 아저씨는 제가 울자 인상을 쓰면서 저를 때리려고 했어요. 아줌마가 말리는 바람에 저는 맞지 않았지만, 아저씨는 험악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아 저는 겁이 나서 울음을 그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저녁 때가 되자 아저씨들은 밖으로 나갔는데, 아줌마는 휴대폰으로 아빠에게 전화했어요. 
 "서은이를 데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세한 것은 만나서 말씀드릴테니, 지금 서은이 아파트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만나요."
 아줌마는 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서 택시를 잡았어요. 아저씨가 따라올께 조마조마했는데, 저는 갑자기 영화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 들었지요.

 나는 경찰에 신고한 후에 서은이를 데리고 있다는 아가씨가 시킨데로 집 근처의 스타벅스 근처에서 가스총를 든 경비 아저씨와 함께 아가씨를 기다렸다.
 "아빠!" 
 서은이는 택시에서 내리자 마자 나를 불렀다.
 나는 서은이를 두손으로 꼭 앉은 후에 아가씨에게 말했다. 
 "그 사람들은 어디있소? 아가씨 이름은 뭐요?"
 "지금쯤 달아났을거예요. 정말 죄송해요. 제 이름은 지영이라고 해요."
 "죄송하면 답니까? 각오하세요."
 "아빠, 아줌마가 절 구해주셨어요. 아줌마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서은이는 눈물을 글썽였다.
 이때 경찰이 도착했다.
 서은이의 눈물에 마음이 약해진 나는 그녀를 용서해 줄 것을 결심하여 경찰에게 아가씨는 서은이의 보모인데, 함께 납치되었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아저씨,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는 나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에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염치없는 줄 알지만, 가끔... 서은이를 보러 와도 되나요?"
 "아빠, 나, 아줌마하고 같이 살면 안되?"

 1년 후 크리스마스 이브......
 나의 아내가 된 지영이가 서은이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과 케이크를 사들고 들어왔다.
 나는 지영이를 서은이의 보모로 고용하였는데, 서은이가 지영이를 잘 따를 뿐만 아니라 왠지 모르게 세상을 떠난 아내와 닮았다는 느낌이 들어 몇 달 전에 결혼했다.
 저녁을 먹은 후에 지영이는 서은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면서 말했다.
 "산타 할아버지께서 바쁘셔서 우리 서은이 선물을 나에게 주고 그냥 가셨단다. 자, 여기...... 산타 할아버지께서 우리 서은이에게 주시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산타 할아버지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어린이에게는 꼭 선물을 주신단다."

 지영이는 사랑스럽고 마음이 따뜻한 여자다. 나는 서은이의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에 요즘처럼 행복한 적이 없었다.
 서은이는 작년 크리스마스에 산타에게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를 잠시만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는데, 산타가 정말 서은이의 기도를 들어주셔 서은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엄마를 보내주신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영이가 산타가 보낸 선물이라면, 지영이는 내 생애의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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