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국

창작집 2009. 12. 24. 05:30

 어디선가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났다.
 결혼한지 2년이 지났어도 아내는 된장국이나 된장찌게 하나 제대로 끓이지 못하는데,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는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께서 끓여 주시곤 했던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나의 입에 군침이 돌게 만들었다.
 식사시간이 되자 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된장국에 밥을 말아 한수가락을 떴다."
 "여보, 된장국이 왜 이렇게 짜지?"
 "된장국이 싱거워서 간장을 조금 넣었더니..."
 아내는 된장국을 조금 맛본 후에 손도 대지 않았다.
 내가 된장국에 밥을 말은 것인지 간장국에 밥을 말은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나는 아내를 곁눈질한 후에 된장국에 있는 밥을 모두 먹어 치웠다.
 아내는 식사를 마친 후에 방으로 들어가 드라마를 보았다.
 나는 덜거럭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설겆이를 했는데, 순간 손에서 접시가 미끄러지면서 깨어졌다.
 "여보, 또 접시를 깨면 어떻해요? 당신은 어째 제대로 하는게 없어요?"
 "그러는 당신이야 말로 된장국 하나 제대로 끓이지 못하면서 그런 말 할 자격있어?"
 "요즘 누가 된장국을 먹어요? 당신같은 구닥다리 양반이나 된장국을 찾지요."
 "그래, 당신은 그렇게 잘 났는데 왜 된장국 하나 못 끓여? 못하면 요리학원이라도 다니던가."
 "요리학원 다닐 돈이 있어야 다니지요. 당신의 쥐꼬리 월급으로 요리학원에 다닐 여유나 있는 줄 아세요?"
 "쥐꼬리 월급이라고? 돈 버는 게 쉬운 줄 알아? 당신이 그렇게 잘 났으면 당신이 나가서 벌어보던가."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코트를 입었다.
 "밤 중에 어디가?"
 "나가서 돈 벌러요."
 나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는 정말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곧 들어오겠지.'
 나는 아내가 얼마지나지 않아 집에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아내에게 전화하거나 친정에 전화하지 않고 기다렸다.
 나는 하루종일 휴대폰을 보면서 아내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아내를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1주일이 지나도 2주일이 지나도 3주일이 지나도 아내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3주일이 되서야 아내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내는 검은 색 정장을 입고 카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보, 우리 이혼해요. 우린 하나도 맞는게 없어요. 식성도 취미도 마음도 ...... 이렇게 사느니 지금이라도 이혼하는게 낮겠어요."
 나는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맞은 느낌이 들었다.
 '한때는 서로를 정말 좋아해서 결혼했는데, 이혼이라니......'
 나는 말없이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영희야, 흥분하지 말고 내 말을 들어봐. 이혼하는거...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부모님 생각도 해야 되고. 감정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자."
 "좋아요. 하지만 시간이 지난다고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해요. 당신은 당신의 고집이 있고, 나는 나의 고집이 있고...... 우린 안 맞는게 너무 많아요."
 "안 맞으면 맞춰야지. 이런 식이라면 대한민국에 헤어지지 않는 부부가 얼마나 되겠어?"
 "누가 누구한테 맞춰요? 내가 당신에게? 아니면 당신이 나에게? 다 부질없는 것이예요."
 "지금 당장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니까...... 한달 동안 우리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생각해 보자."
 영희, 나는 지금으로부터 2년전에 영희에게 청혼했다. 
 영희에게 손에 물을 묻힐 일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면서.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약속해서인지 영희는 가정주부로서 낙제점이었다. 
 된장국은 물론 무우국이나 미역국도 제대로 끓이지 못했다.
 영희가 할 수 있는 것은 밥에 밑반찬 몇 가지 정도였고, 나머지 반찬들은 친정 어머니가 가져다 주는 것을 먹었다.
 기본적은 요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내를 둔 나는 답답했고, 그 문제로 자주 싸웠다.
 그때마다 나는 영희에게 요리학원을 다니라고 말했지만, 영희는 월급이 너무 적어 요리학원에 다닐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가슴이 답답하여 부모님집을 찾아갔다.
 "왜, 너 혼자 왔냐? 또 싸웠냐?"
 "아니예요. 영희가 직장을 알아보느라 요즘 바빠서요."
 저녁시간이 되자 어머니께서는 된장국을 끓여 주셨다. 
 '된장국.'
 나는 어렸을 때부터 된장찌게와 된장국을 좋아했다.
 오랜만에 어머니께서 끓여주신 된장국을 먹어서인지 밥맛이 꿀맛같아 입에서 살살 녹아 밥을 두그릇이나 먹었다. 
 '영희도 어머니께서 끓여주신 된장국을 먹으면 좋아하지 않을까?'
 "어머니, 저 좀 된장국 끓이는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나는 된장국과 된장지께를 맛있게 끓이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부모님집에 자주 찾아 갔다.
 한달동안 거의 매일 부모님 집에 찾아가 어머니께 요리를 배웠다.
 '영희가 못하면 나라도 하면 되겠지.'

 한달이 되자 나는 영희가 머물고 있는 처가집을 찾아갔다.
 "영희야, 한달동안 내가 생각해 봤는데, 내가 너에게 맞추어 줄께. 우리 이혼하지 말고 잘해보자."
 영희는 나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영희는 데리고 집에 들어갔다. 
 지난 한달동안 영희가 없는 나의 집은 너무 쓸쓸하고 적막했었다.
 '그깟 된장국 때문에 이혼한다면 언젠가는 후회할거야. 그래, 요리를 배워 영희에게 가르쳐 주면 되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달동안 어머니께 요리를 배운 것이다.
 때마침 저녁시간이라서 나는 영희에게 말했다.
 "여보, 당신은 쉬어. 내가 맞있는 저녁을 준비할테니까."
 한시간 뒤에 나는 식탁에 한달동안 어머니께 배운 요리를 선보였다.
 영희는 내가 한 요리들을 맛본 후에 미소지으면서 말했다.
 "당신, 언제 이런 요리를 배웠어요? 정말 맛있네요."
 "당신이 없는 동안에 우리 어머니께 배웠지. 어때? 이제 우리의 식성도 맞지 않을까? 맞지 않는다면 내가 더 노력할께."
 "아니예요, 여보. 사실은 저도 한달동안 요리학원에서 요리를 배웠어요. 어머님께서 이혼해도 요리를 배워야 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하셔서요. 이제 저도 된장국 정도는 끓일 수 있어요."
 "여보, 나는 당신을 정말 사랑해. 앞으로는 당신에게 더 잘해줄테니 다신 이혼하자는 말은 하지 말어. 알겠지?"
 "알았어요."

 영희는 햇살처럼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내가 끓인 된장국에 밥을 말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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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abyr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