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로맨스 신작 '변장공주'가 네이버 웹소설 챌린지 리그에서 연재 중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제 기억으론 2004년 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단편을 쓴 것을 장편으로 바꾼 것입니다. 

   당시에는 재미삼아 쓴 글인데,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던 2009년 이후인 2010년 경, 장편으로 바꿔 쓸 계획을 가졌던 것이지요. 


   그리고 3년 전인 2013년 5월에 '변장공주'를 네이버 웹소설이나 블로그에 연재할 계획이었는데, 그 당시 제가 저의 첫 출간작인 '김춘추'를 출간한 데 이어 '장옥정'을 출간한 후 피로가 누적된 상태라 미루다가, 2013년엔 기황후를 차기작으로 집필하고, 2014년엔 이순신을 집필하고 나서 2014년 7월 말 경 '왕총아' 연재를 시작했는데, 이때 이미 '왕총아'를 먼저 연재할까 '변장공주'를 먼저 연재할까 고민하다가 결국엔 '왕총아'를 먼저 연재했고, 이제서야 연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최근까지 '왕총아' 연재를 끝낸 후 '변장공주'를 시작할까 고민했었는데, '왕총아'가 200회 이상 연재할 예정이라 앞으로 '왕총아' 연재를 마치기까지는 최소한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 같아 고심 끝에 두달여 전인 5월 5월에 네이버 웹소설 챌린지리그에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작년 네이버 웹소설 공모전 때도 '변장공주'를 연재를 시작하려 했었는데, 작년 당시 '왕총아'에 집중하느라 연재하지 못했었고, 결국 두달여 전에 연재를 시작하게 된 것이지요. 

   개인적으로 '변장공주'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어쩌면 제 작가 인생에서 저를 대표하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데,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지도 어언 7년이 되어 가지만, '변장공주'는 항상 저의 최고의 기대작이었고, 최고의 기대작인만큼 최고의 효과를 얻기 위해 언제 연재를 시작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제가 지금 연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지금이야말로 최적기라는 생각에 연재를 시작하게 된 것인데, 다행히 운이 좋게도 네이버 웹소설 챌린지리그 개편과 함께 '주목받는 신작'에 선정된 덕분에 현재까지는 순조롭게 연재하고 있는 중입니다. 


   '변장공주'의 배경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영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인데, 영국은 로마 시대때 까지만 해도 켈트족이 거주했는데, 아시다시피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나서 앵글로 색슨족이 이주해 오늘날의 잉글랜드를 만들었고, 잉글랜드에 살던 켈트족은 스코틀랜드 쪽으로 쫓겨가 그런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가까운 이웃이면서 철저한 앙숙 국가였지요. 


   이전에 연재를 시작한 작품인 '윌리엄과 캐서린'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한 소설인데, 이 소설도 영국의 두 연방인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만, 로맨스 소설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실제 영국 역사에 실제하지 않는 시대를 배경으로 설정했습니다. 

   원래 로맨스 소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컨데, 아서왕처럼 실존인물이 아닌 왕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소설이 많은데, '변장공주' 역시 '마이클 왕'이라는 실존인물이 아닌 왕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변장공주'의 줄거리를 간략히 말씀드리기 위해 네이버 웹소설에 등록한 줄거리를 보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잉글랜드의 에반젤린 공주가 자신이 늙어도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을 찾아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소녀로 변장하여 모험에 나선다. 자신을 스코틀랜드의 왕자에게 강제로 시집보내려는 아버지 마이클 왕의 명을 거역하고 공주의 신분을 버릴 각오로 모험에 나선 에반젤린 공주는 과연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총 100화 이상 연재할 예정이니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변장공주 네이버 웹소설 연재 사이트↓

 http://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54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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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지스(Bee Gees)의 First of May 는 5월 1일이 되면 항상 생각이 나는 노래지만, 실제로 First of May 는 5월 1일이라는 뜻이 아니라고 한다. 

    영화 'Melody'에 나오는 이 음악은 비지스가 1970년에 부른 노래인데, First of May의 뜻은 5월 1일이 아니라 영국식 영어로 어린 나이의 첫사랑, 즉 풋사랑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인터넷을 보면 5월 1일로 번역된 것을 볼 수 있지만, 오류일 것이다. 
    First of May는 영국식 표현이기 때문에 영국식 영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생긴 오류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필자가 아는 미국 친구에게 물어 보니 잘 모르겠다고 하는 반면에 영국인 친구에게 물어 보니 맞다고 했다. 
    영국식 영어로 미국인들은 잘 모르는 표현이라고 하니, 지나가는 미국인한테 사실인지 물어봐도 모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First of May는 영화 Melody의 삼입곡으로,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는 영화보다 영화음악으로 유명한데, 비지스가 부른 First of May, To love somebody, Melody Fair 등은 아직까지도 올드 팝송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예전에 이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뮤지컬 영화 '올리버'로 유명해진 마크 레스터가 주인공 다니엘, 잭 와일드가 친구로 나오고, 여주인공 멜로디 역에는 트레시 하이드라는 귀엽고 예쁜 소녀가 나온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년은 우연히 멜로디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사랑에 빠진 소년은 사랑에 신음하다가 수업시간에 잘못하여 선생님에게 빠따로 엉덩이를 얻어 맞으면서 울음을 떠뜨린다. 
   소년이 자신을 사랑하여 생긴 일이라고 생각한 소녀 멜로디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소년에게 말한다.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지?"
   빠따로 얻어맞아 고통스러워 하는 소년을 본 소녀는 자기 때문에 사랑에 신음하는 소년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 소녀는 결국 소년의 마음을 받아주게 된다. 
   다니엘과 멜로디는 손을 잡고 다정하게 멜로디 집으로 간다. 
 
   어린이답게 순수한 사랑을 주고 받으면 좋을텐데, 사랑에 빠지게 된 어린 연인들은 결혼을 결심한다. 
   선생님들과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엉터리 결혼에 성공한 두 어린 연인들은 친구들의 축복 속에서 떠난다.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면이 있는 영화지만, 너무나도 순수한 어린 두 연인의 사랑은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든다. 

   사랑하기 때문에 행복하기 위해서 결혼한다는 어린 소년과 소녀의 사랑은 아주 순수하게 들리지만, 세상의 사랑은 이처럼 순수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성장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어린이의 풋사랑 같은 순수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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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의 신작 소설 '왕총아'가 네이버 웹소설  베스트리그에서 연재 중입니다. 이미 종이책 두권 분량을 연재한 상태인데, 아직 절반도 쓰지 않은 상태라 끝까지 연재하면 5,6권 정도의 분량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저의 첫번째 대하소설입니다. 


    먼저 이 소설의 분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소설의 장르는 로맨스 역사 무협소설입니다. 

    로맨스 + 역사 + 무협인데, 무협을 바탕으로 한 로맨스 역사소설이라 할 수 있겠지요. 

    사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무협소설을 즐겨 읽어 제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장르가 무협소설이라 생각했고, 결국 왕총아를 무협소설로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편의상 로맨스 무협소설로 분류할까 합니다. 

    여주인공 왕총아와 남주인공 요지부의 러브라인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스토리인데, 로맨스 소설로 분류해도 될 정도로 왕총아와 요지부의 로맨스에 초점을 맞출 생각입니다.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를 말씀드리자면, 중학시절 때 읽은 이야기 중국사에서 백련교의 난을 이끈 왕총아의 이야기를 읽고, 이런 이야기가 언젠가는 드라마나 소설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2009년 제가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 왕총아의 이야기를 소설로 쓸 결심을 하고 구상하던 중에 자료를 찾아 2014년 7월에 네이버 웹소설 챌린지 리그에서 연재를 시작하였고, 작년 4월 네이버 웹소설 공모전에 출품한 후, 공모전 심사 결과가 끝나고 8월에 베스트리그에 승격되었습니다. 


   표지는 저의 네이버 이웃 블로거님이신 kk님께 의뢰해 제작했는데, 제가 첫눈에 반할 정도로 왕총아를 너무너무 예쁘게 잘 그려주셨네요. 


   이 소설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18년 전인 1798년 21살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난 왕총아에 대한 소설입니다. 


   프랑스 혁명 시기인 1796년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원정에서 알프스산을 넘으며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이 시기에 왕총아는 자신의 고향 양양에서 1만여 백련교도를 이끌고 거병을 일으켰는데,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백련교의 난이었습니다. 


   우연하게도 나폴레옹이 1796년 3월에 이탈리아 원정 사령관에 임명되어 4월에 이탈리아 원정 전쟁을 개시했는데, 왕총아는 1796년 음력 2월에 백련교의 수령인 총교사로 추대되어 음력 3월에 거병을 일으켰습니다. (서양력과 음력은 한 달 정도의 차이가 있으니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원정과 왕총아가 일으킨 백련교의 난은 결국 거의 같은 시기에 일어난 것이지요)


   나폴레옹과 왕총아는 거의 똑같은 시기에 각각 이탈리아 원정 사령관과 백련교 총교사가 되었고, 나폴레옹이 알프스산을 넘어 이탈리아 원정 전쟁을 개시했을 무렵에 왕총아는 1만여 백련교도를 이끌고 거병을 일으킨 것이지요. 


   이 시기에 서양에는 알렉산더 대왕 이후 최고의 명장이라는 나폴레옹이 있었다면 동양에는 나폴레옹을 능가하는 천재적인 여자 전술가 왕총아가 있었습니다. 


   왕총아는 거병 초기 1만에서 말기 3만에 이르는 병력으로 수십 만에 이르는 청나라 관군을 연전연파한 불세출의 여장수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왕총아는 쌍검을 들고 최전방에서 싸워 쌍검술로 적진을 유린했다고 전해지는데, 용맹과 지략을 겸비한 여장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 청나라 황제 건륭제는 스스로를 십전노인(十全老人)이라 칭했는데, 자신이 출전한 열번의 원정을 모두 승리하여 지은 이름이라 합니다. 


   건륭제가 열번의 원정에서 십전 전승을 한 것은 그가 천재적인 전략가였던 것이 아니라 청나라 군대가 그만큼 강했기 때문으로 청나라 군사력이 절정에 달했던 이 시기에 왕총아가 1만에서 3만의 병력을 이끌고 수십 만의 청나라 관군을 격파하였으니, 왕총아가 얼마나 뛰어난 전술가인지 알 수 있겠지요. 


    제가 왕총아의 전술을 연구한 결과,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라는 한신과 비슷한 점이 많더군요. 

    왕총아의 전술이 궁금하시다면, 네이버 웹소설 베스트리그에서 연재 중인 '왕총아'를 애독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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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작년에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1700만 관중을 돌파했던 영화 '명량'에 나오는 그 유명한 말,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이 명언은 바로 오늘의 주인공 오기가 오자병법에 쓴 말이다. 


  손자병법과 함께 중국의 2대 병서인 오자병법의 저자로 알려진 오기는 76번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백전백승의 명장이다. 

  '필생즉사, 필사즉생' 즉,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라는 이순신 장군의 유명한 명언도 오자병법에서 인용한 말이다.

  오기는 오자라고 불리우며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명장으로 평가받고 있는 불세출의 명장이다.



   오기는 위나라 사람으로 젊어서 동네의 젊은이 30여명을 죽인 죄로 고향을 떠나 증자의 문하에 입문하였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오기가 장례식에 가지 않자 증자는 오기를 파문시켰다. 


  오기는 이후 실력을 인정받아 노나라의 장군이 되었는데,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자 오기는 장군이 될 기회를 얻게 되었지만 오기의 아내가 제나라 사람이라는 점이 걸림돌이 되어 오기의 장군 임명이 불투명하게 되자 오기는 아내를 죽여 자신의 결백을 밝혔다.


  제나라와 아무 관련이 없음이 밝혀지자 오기는 장군이 되었고 장군이 된 오기는 제나라를 대파하여 명성을 얻었지만 아내를 죽인 탓에 그에 대한 여론이 좋지 못해 결국 해임되었고 오기는 위나라로 갔다. 


  오기를 장군으로 등용한 위나라는 오기의 모국 '위나라'가 아닌 진나라에서 분리된 삼진 중에 하나인 위나라였다. 


  당시 위나라의 군주인 문후는 오기를 중용하였고 오기는 서하의 태수가 되어 진나라와 싸워 연전연승하여 땅을 크게 넓혔다.


  장군이 된 오기는 병사들의 종기를 직접 빨아준 일화로 유명하고 진군할 때는 말을 타지 않고 병사들이 지는 짐을 지고 함께 걸었다고 한다. 



   오기는 병사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항상 병사들의 신뢰를 얻으려고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전원 395년 경 문후가 죽고 이어 왕위에 오른 무후는 오기를 신임하였지만 무후는 전문을 재상에 임명하여 오기는 원했던 재상이 되지 못했다. 


   전문이 죽은 후에 재상이 된 공숙좌는 오기의 존재를 꺼려하여 오기가 무후의 신뢰를 잃게 만들기 위해서 계략을 세웠다. 


   공숙좌는 무후에게 오기는 대단한 사람이기 때문에 위나라를 떠날지도 모르니 공주를 그에게 시집보낼 것을 제안했다.


   무후는 공숙좌의 제안에 따라 공주를 오기에게 시집보내려고 했지만 이것은 오기와 무후를 이간시키려는 공숙좌의 음모였다. 


  공숙좌는 무후의 부마였는데, 계획적으로 아내인 공주를 오기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화나게 만들어 오기가 보는 앞에서 자신을 꾸짖도록 만들었다. 


  공주가 공숙좌를 꾸짖는 모습을 보자 오기는 공주와 결혼하면 남편이 아내한테 꼼짝 못하고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공주와 혼인하지 않을 것을 결심하고 공주와의 결혼을 사양했다. 


  오기의 청혼 거절은 이 사실을 모르는 공주를 화나게 만들었고 무후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으니, 공숙좌의 음모가 성공한 것이었다. 


  공주는 오기를 미워하였고 무후 역시 오기를 신뢰하지 않아 오기는 결국 위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갔다.


  오기는 위나라를 떠날 때 눈물을 흘리며 위무후를 원망하는 말을 하며 위나라의 국력이 쇠약해질 것을 예견하는 말을 했다. 


  실제로 위나라는 오기가 위나라를 떠난 후 혜왕 때에 진나라에게 땅을 빼앗기고 약소국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당했었다. 



  오기가 초나라로 망명하자 초나라의 도왕은 오기의 명성을 들어 오기를 재상에 임명하였다. 


  재상이 된 오기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며 초나라를 단숨에 최강의 나라로 만들었다.

  하지만 오기는 귀족들에게 세금을 더 내게 만들어 귀족들의 원한을 샀기 때문에 도왕이 죽자 귀족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오기를 죽이려 했다. 


  이때 오기는 도왕의 관에 엎드렸고, 귀족들은 오기를 죽이는데만 혈안이 되어 도왕의 관에 화살을 쏘는 죄를 짓게 되었다.


  오기는 자신을 죽이려는 무리들의 화살이 도왕의 관을 맞추게 만들어 대역죄로 자신을 죽인 무리들이 멸문당하게 만들려고 그런 것으로 추측된다. 


  결국 오기를 죽이는데 참여한 귀족들은 왕의 관에 화살을 쏜 죄로 멸문당했다. 

  오기는 죽으면서도 복수를 염두할 정도의 임기응변이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오기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출세를 위해서 아내를 죽인 일 때문에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

  하지만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명장 중에 한 명인 오기의 저서 오자병볍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애독되고 있다.

  오기는 76전 64승 12무로 단 한번도 패하지 않는 불세출의 명장인데, 위험을 우릎쓰지 않은 장수로 유명하다. 

   오기는 확실한 승산이 없을 때는 공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76번의 전투에서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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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블로거님들과 독자님들께 왕총아 수정 및 네이버 웹소설 공모전 '퓨전 더 비기닝'에 '이순신 연대기, 스페인 정벌기'를 출품한 사실을 공지합니다. 


    먼저 왕총아 수정에 대해 공지하자면, 제가 웹소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2013년 첫번째 연재작인 '기황후'부터 지난 네이버 웹소설 공모전까지 종이책처럼 붙여 연재를 했었지만, 여러 독자님들이 한칸씩 띄울 것을 요청하셔서 64화부터 한칸씩 띄워 쓰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한칸씩 띄워 쓰니 제가 봐도 훨씬 읽기가 편하더군요. 


   1화에서 63화까지 한칸씩 띄워 쓰는 수정 작업을 하면서 오자를 비롯한 일부 글을 수정했는데, 특별히 내용을 바꾼 것은 없고, 왕총아의 어머니 이름이 서천련에서 서씨로 수정한 것이 이전에 읽으신 독자님들의 눈에 가장 잘 뜨일 것 같습니다. 


   이 소설 캐릭터 중 서천 백련교의 두목인 서천덕이 있는데, 아직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백련교의 난을 이끈 주요 인물이라 조만간 나올 예정인데, 서천덕과 왕총아의 어머니 서천련을 남매지간으로 설정했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역사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왕총아의 어머니 이름을 수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왕총아의 말투를 조금 수정했는데, 아무래도 제가 남자이다 보니 왕총아의 말투가 부자연스러울 때가 있는 것 같아 이 부분에 대해 조금 신경을 써서 수정했습니다.


   그리고 묘사와 설명 부분 중 제가 보기에 매끄럽지 못해 보이는 문장을 좀 다듬었는데, 문장을 다듬는 것은 예전에 쓴 부분을 읽을 때마다 수시로 수정할 예정입니다. 


    기본 줄거리는 바뀐 부분이 없는데, 제가 소설을 연재할 때 처음부터 기본 시놉시스를 구성해 쓰는 스타일이라 줄거리를 수정하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다만 네이버 웹소설 정식 연재를 하게 되거나, 종이책이 출간된다면, 흥미를 위해 줄거리가 조금 수정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네이버 웹소설 공모전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이순신 장군께서 노량 해전에서 전사하지 않았다는 설이 있는데, 이 설을 바탕으로 이 당시에 필리핀과 인도의 서해안과 인도네시아 일부 등의 아시아를 식민지화했던 스페인을, 이순신 장군께서 정벌한다는 줄거리인데, 영국의 전성 시대를 연 엘리자베스 여왕, 스페인 국왕 펠리페 3세, 프랑스 국왕 앙리 4세와 훗날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예야스를 주요인물로 등장시킬 예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당시에 유럽의 해군력이 조선이나 일본, 중국 등의 아시아를 압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 조선의 수군의 대포의 정확도는 당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우세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전술을 연구한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은 이순신 장군께서 이끌었던 조선 수군이 세계 최강으로, 스페인 무적 함대를 능가한다고 보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이 당시 유럽 최강의 해군력을 보유했던 스페인과 조선 수군의 대결을 퓨전 역사소설로 써보고자 합니다. 


    주요 캐릭터 중 하나로 정평구가 나오는데, 아직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지만, 이 당시 정평구가 만든 비차가 세계 최초의 비행기라는 설이 있습니다. 


    정평구가 이순신 장군의 후원자였던 이억기 장군이 발굴한 인재였는데, 진주성 2차 전투에서 비차를 날려 일본군을 교란시켰다는 기록이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정평구를 주요 등장인물로 설정하여 비차가 등장할 예정입니다. 


   또한 훗날 삼군통제사에 오른 유형, 거북선을 제작한 나대용, 무관이자 화약제조자 이봉수, 이순신 장군의 아들인 이회, 이울, 이순신 장군의 조카인 이완 등을 주요 등장인물로 설정했습니다. 


    멀리 있는 적을 치기 전에 가까운 적을 치라는 격언처럼 스페인 정벌에 앞서 7년 간의 전란을 일으킨 일본에 대한 조선 수군의 설욕전도 이 소설의 주요 내용입니다. 


  또한 로맨스적인 요소를 추가하기 위해 난중일기에 나오는 명기 내산월을 주요 캐릭터로 등장 시킬 예정인데, 응원 부탁드려요.


링크 : 이순신 연대기, 스페인 정벌기 (배너 클릭 네이버 웹소설 연재 사이트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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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7년 전이나 된 드라마 '꽃보다 남자' 이야기입니다.

   이민호, 김현중, 김범 등의 새로운 스타를 탄생시킨 드라마 '꽃보다 남자'는 10대에서 30대의 여성들에게 정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30%의 시청률보다 더 놀라운 것은 10대에서 30대 걸친 나이를 뛰어넘는 여성들의 폭발적인 호응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평소에 드라마는 거의 보지 않는다는 30대 여성들도 '꽃보다 남자'는 하나도 빠지지 않고 보았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구준표라는 캐릭터는 여성의 이상형처럼 되었지요.

   저는 처음에는 꽃남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들이 그토록 좋아하던 구준표가 연예인 이름인 줄 알았습니다.

   제 주변의 여성들은 구준표와 사랑에 빠져 자주 '구준표와 같은 남자가 내 이상형'이라고 말했고, 구준표 이야기만 나오면 여성들이 열광적으로 호응하였습니다.

   구준표의 인기는 한국 드라마의 모든 캐릭터 중 최고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아무 것도 모르고 옆에서 듣는 사람은 구준표가 연예인의 이름인 줄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한가지 흥미있는 사실은 이번 드라마의 스타는 구준표 역의 이민호만이 아니었습니다.

   소이정 역의 김범과 윤지후 역의 김현중의 인기도 이민호에 버금갔었는데, 이처럼 한꺼번에 3명의 스타가 한 드라마에서 폭발적으로 나타난 적이 있었는지 궁금하군요.

   이들 중 누구를 더 여성들이 좋아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이들의 인기는 폭발적이었습니다.

   당시 아는 여성에게 좋아하는 연예인을 물어보면 이들 세 명 중 하나인 경우가 정말 많았습니다.

   국민 드라마 정도는 아니었지만 최소한 미혼 여성들에게는 국민 드라마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꽃보다 남자'에 여성들이 이처럼 열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꽃보다 남자'가 여성들에게 엄청나게 인기를 얻은 이유를 다음의 3가지로 분석해 보았습니다.

 

   첫째, F4 꽃남 4인방의 매력을 생각할 수 있겠지요.

   F4로 캐스팅 된 남자 배우들의 인기가 이 드라마의 최고의 매력 포인트였던 것 같습니다.

   만약 이들보다 나이가 많은 배우들에게 이 역활을 맞겠다면 드라마의 재미가 조금 떨어졌을지 모르지요.

   아무리 뛰어난 스타라도 역에 어울리는 배우가 있기 마련입니다.

   20대 후반의 스타를 어리게 분장시킨 후에 출연시켰다면 그의 명성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어울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이지요.

 

   둘째, '꽃보다 남자'가 여성들이 현실에서 꿈꾸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였다는 것입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유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여주인공이 모델처럼 화려한 외모를 가진 여성이라기 보다는 평범한 여성의 매력을 지닌 여성이었지요.

   구혜선도 미녀 배우이지만 이 드라마에서 그녀는 그렇게 미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보통 드라마를 보면 여배우들의 화려한 옷은 마치 모델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느낌이 들지만, 금잔디의 교복이나 평범한 화장은 여성들의 여주인공에 대한 경계감이 사라지게 되지요.

   드라마를 보는 여성들은 평범한 여학생 금잔디의 자리를 자신이 대신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여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될 것입니다.

   재벌 2세 구준표와 일반 가정집의 금잔디의 사랑은 드라마를 시청하는 여성들에게 '내가 금잔디의 자리를 대신해도 되겠다'라는 희망을 가지게 만들지요.

 

   셋째, '꽃보다 남자'의 F4  중 구준표, 소이정, 윤지후 등의 세 명의 등장인물이 여성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캐릭터였기 때문입니다.

   '꽃보다 남자'는 나쁜 남자가 여자에게 있기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구준표와 김범의 캐릭터는 그렇게 좋은 남자가 못되었지만 이들의 캐릭터는 여성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경향이 있어 여성들의 인기를 더 얻을 수 있었지요.

   첫사랑의 상처와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삐뚫어진 듯한 성격을 보여준 소이정은 아마도 여성들의 모성애를 가장 자극했던 캐릭터였을 것입니다.

   착한 여자도 나쁜 여자를 좋아할 수 있다는 추가을의 대사는 그가 비록 나쁜 남자라도 자신에게는 착한 남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는 사랑의 상처로 삐뚫어진 남자를 만나면 자신이 그 상처를 치료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거나 사랑을 통해서 그의 인간성이 되살아 날 것이라고 믿는 경우가 있든데,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자신이 치료해주고 싶은 일종의 모성애를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추가을은 소이정에게 모성애를 느끼게 되었고 소이정의 인간성을 회복하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했습니다.

   첫사랑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여자에게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없었던 소이정은 추가을의 모성애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의 첫사랑이었던 차은재가 자신을 떠난 것이 오해였음이 밝혀지자 소이정의 마음의 상처는 치료되어 다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추가을은 나쁜 남자 소이정을 사랑했지만 사실 소이정도 그렇게 나쁜 남자는 아니었고 단지 상처로 인해 마음이 삐뚫어졌던 것이지요.

   이러한 소이정의 모습에 추가을은 사랑을 통해서 소이정의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첫사랑의 상처에 신음하는 남성을 보면 모성애가 생기는 여성의 심리를 볼 수 있는 장면이지요.

 

   그런데 사실은 추가을이 소이정에게 느낀 모성애보다는 금잔디가 윤지후에게 느낀 모성애가 어쩌면 여성들의 마음을 더 크게 자극했을지도 모르지요.

   '공포의 외인구단'을 보면 여주인공의 여동생이 여주인공과의 사랑을 이루지 못해 사랑의 상처를 받은 주인공을 좋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처럼 여자는 사랑에 상처를 받은 남자에게 모성애를 느끼는 경우가 많지요.

   어쩌면 사람이란 누구나 짝사랑을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해 상처를 받은 남자를 보면 여자는 동병상련의 감정을 가지게 되는지도 모르지요.

   금잔디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윤지후의 상처받은 모습을 보는 여성들은 아주 깊은 모성애를 느꼈을 것입니다.

   금잔디 역시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윤지후에게 모성애를 느꼈겠지만, 드마라를 시청하는 여자라면 누구가 윤지후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꼈을 것입니다.

   금잔디를 정말 사랑하지만 실연을 당한 윤지후의 모습을 보는 여성들은 자신과의 사랑을 통해서 윤지후의 실연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싶은 생길 수 있겠지요.

 

    나쁜 어머니의 전횡에서 갈등하는 구준표도 여성들이 모성애를 느낄 수 있는 캐릭터지요.

   드라마의 마지막 부분에서 금잔디가 구준표의 어머니에게 구준표를 떠날 것을 약속하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당신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없어 안타깝다는 뜻의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금잔디의 사랑은 일종의 모성애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지키고 싶은 여자의 모성애라고 할까요.

   만약 금잔디가 구준표와 결혼한다면 시어머니가 될 분이었지만, 구준표 어머니의  어머니답지 못한 행동은 금잔디를 화나게 만들었기 때문에 금잔디는 구준표의 어머니에게 막말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요.

   어쩌면 금잔디가 구준표를 떠나면서 가장 마음아팠던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지켜줄 수 없었던 현실이 아니었을지요.

 

   만약 제가 '꽃보다 남자'의 성공의 가장 큰 원동력 중의 하나가 여성들의 모성애를 자극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공감할 지 궁금하군요.

   하지만 여자의 심리는 여자도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사랑이란 자기 자신도 그 원인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저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랑은 대상을 찾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남성중심의 사회의 현실에서 사랑의 대상을 찾기 힘든 여성들은 쉽게 드라마의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지요.

   그리고 여성들은 윤지후처럼 주인공에게 사랑을 빼았기는 남자에게 연민의 정을 더 느낄 수 있겠지요.

   어떤 여성들은 김현중씨의 연기가 별로라고 말하면서도 김현중을 좋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연기자의 연기가 그다지 호평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김현중이 '꽃보다 남자'를 통해서 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여성들이 사랑의 상처를 받은 윤지후에게 모성애를 느꼈기 때문이 아닐지요.

 

   '꽃보다 남자'는 신데렐라 컴플렉스와 모성애라는 반대되는 것 같은 여자의 심리가 아주 잘 조화가 되어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지요.

   여자라면 누구나 신데렐라 컴플렉스와 모성애가 있는데, 이 둘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바늘과 실처럼 절대 떨어지지 않는 것이지요.

   여성들이 좋아하는 드라마의 대부분은 이 두 요소가 들어있는데, 둘 중 하나라도 없다면 드라마의 감동이 떨어질 수 있겠지요.

   성공한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 여주인공이 헌신적인 힘을 다해서 주인공의 행복을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금잔디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구준표를 떠난 것도 모성애로 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꽃보다 남자'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신데렐라 컴플렉스와 모성애가 조화롭게 전개되어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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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척으로 333척을 이긴 기적같은 명량 대첩의 승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두말 할 것 없이 조선 수군의 주력 무기 대포가 한몫 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점은 대포와 포탄을 어떻게 만들었느냐 하는 것이다. 

추측하자면, 다음의 그림 명량해전도에서 보이는 우수영에 무고리라는 군기창이 있었는데, 이 당시 우수영이 왜군의 손에 넘어가지 않았으니 어느 정도의 포탄과 무기가 있지 않았을까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당시의 전황을 살펴보자. 


   명량해전도鳴梁海戰圖一 보면, 당시의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자면, 이순신 장군의 대장선이 폭이 300여 미터인 명량에서 가장 좁은 해협을 지키고 있고, 나머지 11척의 조선 수군의 배가 명량 해협의 끝 쪽에서 일자진을 펼치고 있다. 

   11척의 배가 이토록 멀리 떨어진 것은 이순신 장군의 작전이 아니라 11척의 배가 이순신 장군의 작전을 어기고 뒤로 물러나 있었던 것이 분명한데, 이는 난중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명량 대첩 당일 난중일기의 기록을 살펴보자. 

   이순신 장군은 초요기를 올려 안위와 김응함을 불렀는데, 안위에게, "안위야, 네가 죽고 싶으냐? 도망치면 어디 가서 살 것이냐?"라고 말했고, 김응함에게는 "너는 중군으로서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원하지 아니하니 죄를 어찌 면할 것이냐? 마땅히 참해야 하나 전세가 급하므모 우선 공을 세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난중일기의 기록이 이순신 장군이 대장선 한 척으로 133척의 일본 함대를 상대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한다. 

   다만, 결과적으로 후방에 있던 11척의 조선 수군의 배가 포탄을 아낀 셈이 되어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졌을 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앞서 언급했듯이, 필자가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칠천량에서 궤멸당하여 본진이 있던 한산도가 일본 수군의 수중에 떨어져 어떻게 포탄과 화약을 조달했느냐인데, 이는 몇 가지 남은 기록을 바탕으로 추정할 수 밖에 없다. 

   먼저 앞서 언급했듯이 우수영의 무고리에 포탄과 화약이 어느 정도 있지 않았을까. 

   우수영에서 포탄과 화약을 제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순신 휘하의 이봉수가 화약을 제조하는데 쓰이는 염초를 제조할 수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염초는 화약의 주성분으로 이 염초에 유황만 있다면 화약을 만들 수 있다. 

  아마도 이봉수가 화약을 만들고, 유황은 유성룡에게 받지 않았을까. 

  징비록을 보면, 유성룡이 화약 제조 기술자 대풍손에게 화약을 만들도록 지시한 사실이 있는데, 유성룡이 유황만 제공해도 이봉수가 화약을 충분히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이순신은 삼도 수군 통제사에 오른 후 순천과 보성의 군기창에서 일본군과 불과 하루 앞서 무기와 군량을 확보한 바가 있는데, 이때 포탄과 화약을 확보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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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들어 저금리로 인해 주식투자가 다시 관심을 받는 추세인데,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되는 상식이 있습니다.
 모른다고 해서 주식투자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알아야 안전한 투자를 할 수 있겠지요. 

 주식투자자라면 꼭 알아야할 10가지 상식을 살펴보겠습니다. 



 1. 주식시장은 침체기와 호황기가 있다.

 주식시장은 침체기와 호황기가 있습니다.
 침체기 때는 투자자의 외면으로 기업들의 주가가 이유없이 저평가되는 경우가 많고, 호황기 때는 투자자들의 돈이 몰려 주가가 이유없이 오르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 시장성에 관계없이 막연한 기대감으로 오르는 경우가 많지요.
 
 지난 수년간 은행에서 막대한 돈이 증권사로 몰려 엄청난 활황장을 연출한 적이 었었지만, 그러한 호황장은 앞으로 5년 이내에는 다시 오지 않을 가능성도 많습니다.
 현재 전세계 경제는 여전히 불투명하여 전세계경기가 예전과 같은 회복세에 이르려면 2015년 이후에나 두고 봐야한다는 분석도 있을 정도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으니까요.

 현재 주식투자가들이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은 주식시장이 장기 침체기로 빠질 가능성입니다.
 1929년 대공황 이후에 주식시장은 1950년대 중반까지 아주 오랫동안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 시기에 주식으로 큰 돈을 번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최근들어 발생한 미국발 금융위기로 주식시장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지면서 종합지수가 올라도 주식시장에 자금 유입이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이 장기화되면 주식시장이 장기침제장으로 빠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2. 저평가는 상대적이다.

  주식시장의 저평가나 고평가 여부는 항상 상대적이지요.

  예전엔 PER이 10이면 저평가다 이런 말이 있었는데, 최근에 여러 기업들의 PER이 10까지 떨어져 그동안 기업들의 평균 PER이 10 이하라서 저평가되었다는 말이 무의미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금리가 높아지면 주식시장이 침체되는 경우가 많아 기업의 평균 PER은 더욱 낮아질 가능성이 많지요.

  은행의 예금금리가 10%가 넘으면 주식시장은 큰 타격을 받게 되고 결국 기업들의 평균 PER은 더욱 낮아지겠지요. 

  주식시장의 저평가나 고평가 여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외국 주식 시장이나 금리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하지요.


 
3. 기업의 생명은 유한하여 무조건 장기투자가 좋은 것은 아니다. 

 증권사들은 장기투자를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장기투자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고, 기업이 성장에 한계가 오면 투자에서 손을 때는 것이 좋을 때가 많습니다.
 한 때 미국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 1위였던 GM이 추락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기업의 생명은 유한한 경우가 많아 무조건 장기투자가 좋은 것만은 아니지요.

 현대산업의 특징은 국가간의 기술력의 차이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중국에 삼성전자가 만드는 제품을 짝퉁으로 만들어 파는 기업이 있을 정도로 기술력의 차이는 예전보다 많이 좁혀졌지요.
 기술력의 차이가 줄어들면 현재 주식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는 기술주들의 실적이 좋지 않게 되어 주식시장이 투자할 곳을 쉽게 찾지 못할 가능성도 있을 것입니다.
 

 4. 인플레이션은 주식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때가 많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서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게 마련이지요. 금리가 오르면 기업들의 이자 부담이 높아져 순익이 줄어들게 마련입니다.

 이자 부담이 많은 기업의 경우 대출 금리가 1%만 올라도 순익의 10%이상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어 인플레이션이 심화될 경우 기업들의 이자 부담이 급격히 늘어 나겠지요.

 그리고 물가가 오르면 소비가 위축되어 기업들의 실적에 악영향을 미치고 실적이 나빠진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하면 실업자가 늘어 소비가 침체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몇 년에 거쳐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 기업들의 실적이 좋다고 앞으로도 좋을 것이라고 낙관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요.

 또한 인플레이션은 임금을 상승시켜 기업들의 순익을 줄게 만들 수 있지요.

 

5. 선진국의 주식시장과 이머징 마켓은 단순하게 비교할 수 없다.

 
한국증시가 일본 다음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저평가되었다는 기사를 자주 볼 수 있는데 일본, 한국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은 성장성이 높은 이머징 마켓으로 분류되어 단순히 비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대만의 경우도 중국과의 합작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 한국증시와 단순히 비교하기 힘들지요.

 한국은 이머징 마켓보다는 선진 주식시장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에 대한 복지가 잘 된 선진국에 비해서 임금 상승률이 높고 비정규직 문제같은 이슈가 있어 선진국의 주식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지요.

 결국 한국증시가 선진국이나 이머징 마켓에 비해서 저평가되었다고 해도 해외 투자자들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을 수 밖에 없겠지요.


 6. 이머징 마켓이 항상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들어 이머징 마켓이 선진국의 주식시장보다 더 PER이 높은 경향이 있는데, 이머징 마켓의 성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두바이 사태처럼 하루만에 무너질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머징 마켓이 선진국보다 PER이 높아진 것이 성장성만 반영되고 위험성은 반영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지요.
 이머징 마켓의 가장 큰 문제점은 두바이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계속 성장할 것 같은 나라가 경제위기에 빠지게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게 되어 갑자기 시장에 대한 긍정적이었던 시각이 부정적으로 바뀐다면 PER이 크게 낮아지면서 투자자들이 큰 손실이 날 가능성이 높겠지요.


 
7. 투자하는 회사의 재무재표를 확인하는 것은 투자의 기본이다.

 재무재표의 중요성은 기업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채가 많은 기업은 부도날 가능성도 많을 뿐만 아니라 유상증자나 전환사채 발행을 통해서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가 많아, 이 경우 주식의 가치가 발행한 주식만큼이나 줄어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시가 총액이 1조이고 순익이 1000억인 기업의 PER은 10 이지만 20% 정도의 유상증자를 한다면 PER은 12로 떨어지겠지요.

 유상증자나 전환사채를 발행하지 않는다고 해도 금리가 오르면 순익이 줄어 든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한국 기업들의 이자 부담은 선진국 기업들에 비해 높아서 인플레이션으로 금리가 급격하게 오른다면 부채가 많은 기업들의 순익이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지요.

 경제 사정이 나쁠 때에는 부채가 많은 기업이 근거없는 부도설 루머로 주가가 폭락하는 경우도 있고 루머로 회사가 부도가 나는 경우도 있지요.

 부채가 없거나 적은 회사는 이러한 걱정으로 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선호하지요.

 

8. 성장성이 높은 회사인지가 중요하다.

 단순히 기업의 순익만을 보고 투자한다면 투자에 적극적인 기업과 소극적인 기업을 구분하지 못하겠지요.

 신규 투자에 소극적인 회사는 현재의 순익은 많겠지만 미래에 뒤쳐질 가능성이 있지요.

 삼성 전자가 오늘 날의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신기술 개발에 적극적인 투자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제약 회사나 바이오 회사들의 경우 현재 실적이 좋지 않아도 신약 개발 능력을 인정받아 주가가 크게 오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지요.

 

9. 유통 주식수가 적은 회사의 주식은 저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순익 규모나 시가 총액이 크게 차이가 나는 한국증시와 미국증시를 단순하게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기업의 PER이 미국기업보다 낮다고 해서 한국증시가 저평가되었다고 말하기 힘든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회사의 순익 규모가 크게 차이가 난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코스피 상장기업들의 평균 순익과 S & P 500에 상장된 기업들의 평균 순익은 무려 20배 이상 차이가 있지요.

 순익의 규모가 적은 회사는 시가 총액도 적어서 기관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는 경우가 많지요.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으면 회사도 주가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지요.

 코스피 상장 기업의 상당수가 하루의 주식 거래액이 10억 이하라고 하는데 이는 한국증시가 저평가된 이유 중에 하나지요.

 

10. 기업의 순익은 회계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다.

 수많은 기업들이 실적을 발표하지만 이는 정확한 수치가 아니고 잠정적인 수치지요.

 그 이유는 감가상각이나 향후 AS 비용이나 펀드투자금, 퇴직금 등 정확하게 계산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지요.

 손실이 나도 회계 처리를 하지 않으면 손실로 나타나지 않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손실로 처리하면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볼 수 있겠지요.

 최근에 터진 미금융위기도 은행들이 모기지 손실을 늦게 처리해 장부상으로는 우량한 회사들이 위기에 몰렸었지요.

 결국 이러한 회계 처리는 투자자들의 불신을 가져왔고 금융주의 폭락을 시발점으로 미증시는 역사상 보기 드문 대폭락장을 연출했지요.

 최근 전세계적인 불황으로 공장 폐쇠나 재고 상각 등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만든 물건이 팔리지 않아 공장을 폐쇠하거나 재고를 상각하면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지만 이러한 손실은 후에 반영되는 경향이 있어 투자자들이 유의해야 되겠지요.

 결국 기업들이 발표하는 순익은 추정치에 불과하고 처리 방식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역사소설 [기황후] 출간! YES24  판매처 

신재하 문예창작교실 (문창과, 작가지망 수강생 모집, 분당 미금역선릉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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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벌써 20년 전, 94년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미국 스포츠계를 발칵 뒤엎은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 피겨 스케이트 챔피언이자 동계 올림픽 피겨 스케이트 여자 싱글 부문 우승 후보인 낸시 캐리건이 괴한으로부터 칼에 상처를 입은 것이지요.
 오드리 헵번을 연상시키는 빼어난 미모로 인기가 높았던 낸시 캐리건의 충격적인 피격은 미국인들에 큰 쇼크를 주었던 사건이지요.

 범인은 낸시 캐리건의 라이벌인 토냐 하딩의 전 보디가드로 밝혀지면서 미국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는데, 하딩의 전 보디가드는 하딩의 전 남편이 이 끔찍한 일을 사주했다고 밝히면서 사람들의 관심사는 토냐 하딩이 사전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로 옮겨지게 되었지요.
 
 토냐 하딩은 이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에게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습니다.
 낸시 캐리건은 부상으로 동계 올림픽 출전권이 걸려있었던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올림픽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고 낸시 캐리건의 부상도 심각하지 않아 미 올림픽 조직위는 낸시 캐리건과 대회의 우승자인 토내 하딩 두명에게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주었지요.
 이 대회에서 2위를 차지하면서 새로운 스타가 된 미셀 콴은 억울하게도 대회에 출전하지도 않은 낸시 캐리건에 밀려 올림픽 출전에 실패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올림픽에 참가한 낸시 캐리건은 토냐 하딩을 만나자 반가운 표정을 지으면서 토냐 하딩을 믿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지만 아마도 팬들을 의식한 행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낸시 캐리건은 이후 토냐 하딩과 같이 연습하기 싫다고 말했다하더군요.
 
 동계올림픽에서 낸시 캐리건은 빼어난 기량으로 우크라이나의 옥사나 바이올에 이어 2위를 차지하여 은메달을 따냈지만 토냐 하딩은 빼어난 연기에도 불구하고 심판진들의 차가운 시선으로 점수를 낮게 받았다고 합니다. 
 올림픽이 끝났지만 토냐 하딩은 낸시 캐리건 피격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했지요.
 이 사건을 주도한 전남편이 토냐 하딩이 낸시 캐리건 피격 사건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폭로했기 때문이지요.
 결국 토냐 하딩은 실형을 면책받는 조건으로 낸시 캐리건 피격 사건을 사주하지는 않았지만 미리 알고 있었다고 고백했고 이후부터 그녀는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지요.
 반면에 낸시 캐리건은 올림픽 금메달에 못지 않은 국민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었지요.
 낸시 캐리건의 피격 사건에 연루된 토냐 하딩의 삶은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였는데, 토냐 하딩의 역은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크리스 역을 맡은 금발의 미녀배우 알렉산드라 파워즈가 캐스팅되었습니다.

 낸시 캐리건 피격 사건을 사전에 알고 있었음을 시인한 토냐 하딩은 대회 출전 금지를 당해 피겨 스케이트계를 떠날 수 밖에 없었지요.
 피격 사건 이전에는 금발의 미녀라는 인상을 주었던 토냐 하딩은 최근에 격투기 선수로 변신하여 새로운 삶을 살고 있고, 낸시 캐리건은 피겨 스케이트 경기 해설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요.
 피겨 스케이트 선수가 격투기 선수라니, 한 때 낸시 캐리건의 라이벌이었던 토냐 하딩은 순간의 잘못된 생각으로 아직도 제자리를 못찾고 있는 것 같군요,


[기황후] 단몇줄의 역사적 기록이 드라마적 판타지를 만들어 (주리니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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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우 역사소설 [기황후] 출간! YES24  판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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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신은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장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당대 최고의 명장 항우를 해하에서 대파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한신이 없었다면 유방의 천하통일은 불가능한 일이였을 것이고 항우는 어쩌면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장으로 평가받았을지 모르지요.

 한신은 한나라가 팽성에서 대패하여 위기에 몰렸을 때, 위, 대, 조, 제를 차례로 정복하여 불리했던 초한전을 한나라가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고 마지막으로 해하에서 항우가 이끄는 초군을 대파하여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했지요.

 한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한신이 이긴 적장들이 모두 뛰어난 장군이였다는 점입니다.

 항우는 당대 무적이였고 장한, 위표, 진여, 용저 등도 모두 쉬운 상대가 아니였지요.

 특히 장한은 진나라 시절 항우의 삼촌 항량의 초군을 대파하여 초나라를 위기에 빠뜨렸었고 20만 대군으로 항우가 이끄는 초나라의 40만 대군의 진격을 막아 항우를 난처하게 만들었던 명장이였지요.

 한신이 명장 장한을 상대로 숫적인 열세에도 장한을 대파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뛰어난 명장인지 알 수 있지요.

 진여는 수만 병력으로 장한이 이끄는 진나라의 20만 대군의 공격을 잘 막아 조나라를 구원온 항우가 장한을 격파하는데에 큰 공을 세운 지장이였지요.

 진여의 조군이 쉽게 무너졌다면 아마도 항우는 거록에서 진나라를 이기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적들을 큰 난관없이 대파했다는 사실은 한신이 얼마나 뛰어난 명장인지 잘 알 수 있게 하지요.

 그리고 한신이 이전에 대군을 지휘한 경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장군이 된 얼마 후에 명장 장한을 격파한 사실은 그가 얼마나 천재적인 군사 전략가였는지 알 수 있게 하지요.

 

 한신은 초나라 회음 출신으로 무명 시절에 가난하게 살았는데, 회음에서 낚시하고 있을 때에 어떤 부인이 그가 배고픈 것을 알아차리고 그에게 며칠 동안 밥을 주니 한신은 그 부인에게 언젠가는 보답하겠다고 말했고 훗날 초나라 왕이 된 한신은 정말 그녀를 찾아 큰 상을 주었다고 합니다.

 언젠가 한신은 어느 정장의 집에 기거한 적이 있는데 그의 부인이 밥을 주지 않아 화가 나서 나갔지만, 한신은 초나라 왕이 된 후에 그녀를 꾸짖으면서도 그녀에게 벌을 주지 않고 상을 주었다고 합니다.

 회음의 젊은이들 중 한 건달이 한신을 모욕하면서 가랭이 밑으로 기어가라고 하자 한신은 정말 가랭이 밑을 기어나갔고 많은 사람들이 한신을 겁쟁이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한신은 나중에 초나라 왕이 된 후에 이 건달을 찾아내어 벌을 준 것이 아니라 상을 준 후에 중위에 임명했다고 합니다.

 한신은 그 때의 굴욕을 참은 것이 결국 현재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했지요.

 이처럼 한신은 상대가 자신을 악으로 대했다고 해도 결국 덕을 봤다면 상을 줄 정도로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들에게 크게 보답하는 성격이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한신의 성격은 결국 자신에게 은혜를 배푼 유방의 의심을 샀으면서도 배신을 하지 못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 원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항양이 반란을 일으키자 한신은 그의 휘하에 있었지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요.

 항양이 패사한 후에 항우의 휘하에 있게 되었지만, 항우는 한신의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를 중용하지 않아 한신은 한으로 도망쳤지요.

 여기서 항우가 어째서 한신을 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명장은 명장을 알아 본다는 말이 있듯이 명장인 항우가 한신의 계책을 들어 보면 한신이 보통 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우가 한신을 중용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힘든 점이지요.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한신은 적을 유인하는 계책을 올렸지만 용맹한 항우는 적을 유인하는 작전을 좋아하지 않아 한신의 계책을 받아 들이지 않은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아무튼 한에 와서도 인정받지 못한 한신은 우연히 법을 어겨 죽게 되었는데, 등공이 다행히 지나가다 한신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한신을 살려 주었다고 합니다.

 등공은 한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유방에게 추천하였지만 유방은 그를 중용하지 않았지요.
 한나라 승상 소하 역시 한신의 재능을 알고 유방에게 추천하였지만 등용되지 않자 한신은 결국 도망쳤는데, 소하는 한신이 도망쳤다는 소식을 듣고 뒤쫓아 가서 한신을 데리고 왔지요.
 유방은 소하까지 도망친 줄 알고 크게 낙담했는데, 소하가 한신을 붙잡으려고 떠났었다고 말하자 유방은 소하를 생각해서 한신을 대장군으로 임명하였지요. 

소하의 의견에 따라 성대한 대장 임명식을 했고 임명식이 끝난 후에 유방은 한신의 계략에 따라 동진하여 삼진을 평정한 후에 제와 조와 연합하여 무려 56만 대군으로 초를 공격하여 팽성에 진입하였으나 수 만에 불과한 항우의 초군에 대패하였지요.

 하지만 한신은 패잔병을 수습하여 초군의 공격을 막았지요.
 56만이나 되는 연합군이 수 만에 불과한 항우의 초군에 참패하자 제, 조, 위가 한을 배신하여 전세는 한나라에 불리하게 되었지요.

 이에 한신은 위를 공격하여 위를 평정한 후에 장이와 함께 조와 대를 공격하게 하였지요.
 한신이 대를 평정한 후에 조를 공격하자 조의 장군 진여는 20여만의 군사를 집결시켰는데, 참모인 이좌거는 연전연승으로 기세가 오른 한나라와 정면으로 싸우지 말고 자신에게 3만의 병력을 주면 보급로를 차단시키겠다고 했지만 진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한신은 진여가 이좌거의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첩자를 통해서 듣고 크게 기뻐하며 2000여명을 선발하여 산에 숨어 있다가 조군이 성벽을 비우면 조의 성벽으로 들어가 한의 깃발을 세울 것을 명령했지요.
 한신은 이 때 그 유명한 배수진을 쳤습니다.

 한군이 배수진을 치자 조군이 병법도 모른다고 비웃었지만 막상 전투가 벌어지자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한군의 위세에 눌려 조군은 진지로 돌아가려 했지만 이미 성벽은 한나라 깃발이 가득했지요.

 한신의 명령에 따라 2000여명의 한군은 조군이 성벽을 비운 틈을 타서 성벽을 차지 한 후에 수많은 깃발을 꽂아 대군이 성벽을 차지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던 것이지요.

 갑자기 대군이 나타난 것으로 착각한 조군이 놀라 도망치자 한군은 조군을 대파하여 진여를 죽이고 조왕을 사로 잡았지요.
 한신은 생포한 이좌거를 풀어주고 그를 스승의 예로써 대한 후에 계책을 물었지요.

 한신은 이좌거의 계책에 따라 지친 군사를 쉬게 하고 잔치를 배푼 후에 연나라에게 항복을 권유하자 연나라는 항복하였습니다.
 한신이 조를 정복하는 동안에 초군이 갑자기 유방을 공격하자 유방은 패하여 도망쳐 조에 도착하였지만 한신이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자신을 한의 사자라고 속인 후에 대장의 인부를 빼았은 후에 한신에게 제를 공격할 것을 명령하였지요.
 한신이 병사를 이끌고 제를 공격하기 전에 한왕이 역이기를 보내 제를 설득하여 항복시켰지요.

 한신은 공격을 중지하려고 했지만, 괴통이라는 자가 조칙을 받았으니 계속 공격할 것을 주장하였고 한신이 괴통의 말대로 제를 공격하자 제왕은 역이기가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하여 역이기를 죽인 후에 초에 구원을 청하자 항우는 용저에게 20만 병력을 내주어 제를 구원하였습니다.

 제와 초가 연합하여 강을 사이에 두고 한군과 대치하였는데, 한신은 밤새 일만 개 이상의 모래 주머니를 만들어 강의 상류를 막은 후에 강을 건너 용저를 공격하다가 패한 척하고 후퇴했습니다.

 용저는 한신이 겁을 먹고 도망치는 줄 알고 추격하여 강을 건넜는데, 이 때에 한군이 모래주머니를 터 놓아 강물이 거세지니 혼란에 빠진 초군을 공격하여 대파하고 용저를 죽였습니다.

 항우는 용저가 20만 대군을 잃고 죽자 한신을 크게 두려워하여 사자를 보내 한신을 포섭하려고 했지만 한신은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초의 사자가 가자 괴통이 한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히지 말고 독립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한신은 고심하면서도 괴통의 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한신은 제를 정복한 후에 유방에게 사신을 보내 자신이 제의 가왕이 될 것을 청하였는데, 당시 유방은 항우가 이끄는초군에 패하여 한신의 구원을 기다리는 상황이였기 때문에 몹시 화가 났지만 한신의 변심을 우려하여 제왕이 될 것을 허락했지요.

 제왕이 된 한신은 군대를 이끌고 유방을 구원하여 초군의 공격을 막았습니다.

 한신이 유방을 구원하자 초군과 한군은 결국 휴전을 맺었는데, 전세가 유리하다고 판단한 장량의 진언에 따라 유방은 초군을 공격했지만 초군의 반격에 패하여 한신과 팽월에게 출병을 명령하였지요.

 하지만 이들이 출병에 응하지 않자 유방은 이들에게 천하통일 후 다스릴 지역을 약속하였고 드디어 한신과 팽월은 군대를 이끌고 출병하였는데, 한신과 팽월의 이러한 이해타산적인 출병이 훗날 이들의 숙청에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르지요.

 한신이 이끄는 한군은 압도적으로 우세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해하에서 초군을 대파하여 초한전을 종식시켰는데, 이때 한신은 '사면초가'의 심리전을 이용했지요.

 사방에서 초가를 부르게 하여 초군의 사기를 떨어뜨렸지만 용맹한 초군은 대부분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고 합니다.

 만약 '사면초가'의 전술로 초군의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았다면 용맹한 초군을 어떻게 이겼을지 의문이 드는군요.

 해하의 전투에서 한신에게 참패한 항우는 자결하였고 결국 유방은 진나라 이후 나누어졌던 중국을 재통일하였지요.

 천하를 평정한 한왕은 한신을 초나라 왕에 봉하였습니다.

 하지만 한신이 다스렸던 초나라는 과거의 초나라를 여러 지역으로 나눈 것이였지요.
 한신이 초나라 왕이 된 후에 친구였던 종리매가 망명왔는데, 그는 항우의 맹장으로 만약 한신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다면 한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와도 같은 것이였지요.

 이때, 누군가 한신이 모반했다고 밀고하였는데, 한신이 모반했다고 오해한 유방은 진평의 계략에 따라 제후들을 소집하자 한신은 소집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한신은 종리매의 목을 바치면 자신의 결백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여 종리매의 목을 들고 갔지만 유방은 그를 체포했지요.

 유방은 한신의 무죄가 밝혀졌음에도 초나라 왕의 지위를 빼았고 회음후로 봉했습니다.

 실망한 한신은 유방을 원망하여 입궐하지 않았고 유방은 한신을 철저히 감시하였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 때에 한신의 운명은 이미 정해졌던 것이 아닐지요.

 사기의 회음후 열전에는 한신이 진희와 함께 모반을 하려다 발각이 되어 처형당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다른 열전에는 진희가 처벌을 두려워 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둘 중 하나는 진실이 아니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한신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한신을 죽이기 위해서 날조한 것일 가능성이 높지요.

 한신이 철저히 감시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신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상태도 아니였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데, 한신의 반란을 밀고한 자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고 그가 어떤 상을 받았는지도 기록되지 않아서 오랫동안 한신의 모반에 대해서 수많은 의혹이 제기되었지요.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한신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후환이 두려워서 사실대로 기술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기 열전에 진희가 처벌이 두려워서 반란을 일으켰다고 기록했으면서도 회음후 열전에서는 한신이 진희와 모반을 공모했다고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진실을 밝힐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지요.

 이 밖에도 사마천은 한신이 괴통의 말을 들어 망했다고 했는데, 이 말은 한신이 괴통의 괴변을 듣고 항복한 제를 공격하여 유방의 신임을 잃었고 결국 숙청당했다는 뜻이 아닐지요.

 한신이 처형당하기 전에 아녀자에게 속아서 죽게 되었다고 탄식하면서 죽었다는 기록 역시 한신이 모반을 계획하지 않았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한신은 연금에 가까운 상태였지만 자신이 스스로 찾아가지 않았다면 어쩌면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한신은 한나라 장군들과 병사들에게 존경받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잘못없는 한신을 무턱대고 죄를 뒤집어 씌여 죽일 수는 없었겠지요.

 하지만 한신은 여태후에 속아 자기 발로 입궐했고 여태후는 한신을 즉시 처형했다고 합니다.

 정확한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여러 가지 정황이나 사마천이 남긴 기록을 보면 아마도 한신이 반란을 일으키려다 처형당한 것이 아니라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지요.

 한신 뿐 아니라 팽월을 비롯한 다른 많은 무장들이나 많은 왕들이 반란에 연루되어 숙청당했다는 역사적인 사실 역시 한신이 억울하게 숙청당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 주는 것이 아닐지요.


링크 글 : 기황후 16화 (네이버 웹소설 연재! 별점과 댓글로 성원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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