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봉사활동으로 어느 양로원을 방문했다.
 양로원에 있는 할머니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던 중에 할머니 한분께서 우리의 방문에 관심도 없다는 듯이 사진첩만 쳐다보고 있어 내가 가까이 다가가 인사했다.
 "할머님, 안녕하세요? 저는 사랑교회에서 온 이은주예요. 이거 좀 드세요."
 나는 교회에서 나누어 준 떡을 할머니께 드렸다.
 할머니는 나에게 고맙다고 말한 후에 떡을 드셨다.
 할머니는 아들이 하나있지만, 아들이 자식 교육 때문에 미국으로 가서 양로원에 있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자식 교육이 뭔데, 살아계신 부모님을 두고 미국까지 간 것일까?'
 할머니의 존함은 이순자였다. 이순자 할머니는 할아버지께서 10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셨는데, 할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머니를 모시는 조건으로 아파트를 물려 주셨다고 한다. 하지만 아들은 그 돈으로 자식을 유학시키려고 미국으로 떠났으니, 할아버지께서 아신다면 통곡을 할 일이다.
 "할머니께서도 따라 가시지요? 손자하고 살면 좋쟎아요."
 "며느리하고 손주가 날 싫어해. 지네들끼기 살게 내버려 둬야지."
 나는 한숨을 쉰 후에 말했다.
 "그래도 따라 가시지요. 아드님은 할머니를 보고 싶어할거 아니예요."
 할머니의 두 뺨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말하시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왠지 모르게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의 모습을 잊을 수 없어 다음 주에도 양로원을 찾아갔다.
 할머니는 나를 보자 마치 자식이라도 온 것처럼 반겨 주셨다.
 나는 이후부터 매주 양로원을 찾아가 할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는 어린 시절 교회에서 피아노를 치실 정도로 교회를 열심히 나가셨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교회를 나가지 못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할머니께 교회를 나올 것을 권유해서 매주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교회를 나갔다.
 할머니의 손자는 할머니를 싫어했지만, 할머니는 손자를 몹시 사랑하신 것 같다.
 할머니는 항상 입버릇처럼 나를 손자의 며느리 삼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손자도 나와 같은 20살이었는데, 나는 자신의 할머니를 싫어하는 손자와 결혼할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한겨울이 되어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 독감에 걸렸는데, 고열증상과 두통이 있어 당분간 할머니를 만나지 못했었다.
 어느 날 나는 혼자 교회에 와서 주보를 살펴보고 있었는데, 주보에 어디선가 본 이름이 있었다.
 '고 이순자 집사.'
 '그럴리가 없어. 할머니께서는 얼마전까지 멀쩡하셨는데.'
 나는 교회의 목사님을 통해서 이순자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음을 확인했다.
 장례식은 고인의 뜻에 따라 교회에서 치루어졌는데, 할머니의 장례식에 아들과 며느리와 손자가 미국에서 찾아왔다.
 아들은 땅을 치면서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 이 불효자를 용서하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 놈의 자식 교육이 뭔지, 어머니를 내버려 두고 가다니 제가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손자도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쏟았다.
 
 여름방학이 되자 나는 하계수련회에 갔는데, 우연하게도 할머니의 손자를 만났다.
 할머니의 손자의 이름은 이상현이었는데, 이번 학기에 우리나라의 대학으로 편입한 그는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나를 보았다고 하면서 할머니와 내가 무슨 관계냐고 물었고, 나는 내가 할머니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말해주었다.
 나는 교회에서 상현이와 친해지게 되었는데, 내가 사랑했던 나를 사랑했던 이순자 할머니의 손자라는 사실에 왠지 모르게 호감이 갔던 것 같다.

 나는 나도 모르게 상현이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는 어느 크리스마스에 나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은주야, 나, 사실은 너를 사랑해. 어쩌면 우리 할머니를 사랑했던 너의 따뜻한 마음씨에 이끌려 너를 사랑하게 된 건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나는 너를 사랑해. 내 마음을 받아 주겠니?"
 "상현아, 고백해 줘서 고마워. 사실은 나도 니가 좋았어.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너를 보면 할머니가 생각나고, 할머니가 생각나면 니가 생각났어."
 상현이가 나에게 고백한지 1000일이 되었을 때 상현이는 나에게 청혼하였다.
 나는 얼마후에 상현이와 결혼하여 할머니의 증손자를 낳았다.




Posted by labyr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