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4대 미녀 중 하나인 양귀비는 당현종의 며느리로 당현종은 아들의 여인을 빼았은 후에 그녀를 비구니로 만든 후에 입궐시켰읍니다.

 아직도 이 일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데, 당시 중국인들이 북방민족과 섞여 살다가 보니 이들의 이상한 풍습이 중국에 정착했었을 수도 있겠지요.

 사기에 의하면 흉노족은 아버지가 죽으면 아버지의 첩을 자식이 물려 받는데, 아주 이상한 풍습이였지요.

 게다가 당태종은 자신의 형수를 아내로 맞이한 적이 있고 당고종은 당태종의 여인이였던 측천무후를 총애했으니 정말 이상하지요.

 그런데, 양귀비가 황후가 되지 못한 것은 아마도 당태종의 며느리였었기 때문에 신하들의 반대에 부딛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양귀비는 당현종의 총애를 받았지만, 안녹산의 등장으로 삼각관계가 형성이 되지요.

 안녹산은 현종의 절대 신임을 받아 절도사가 되었는데, 당태종은 안녹산을 아들처럼 총애했다고 합니다.

 양귀비는 안녹산을 양자로 입양했는데, 이는 불륜을 감추기 위한 술책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불륜을 맺었다는 확실한 기록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당시 항간에는 안녹산와 양귀비가 불륜 관계에 있다는 소문이 파다 했지만 현종은 이를 듣지 못했는지 아무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침내 안녹산이 난을 일으키자 안녹산과 양귀비의 각별했던 관계에 대한 소문이 급속도로 확산이 되었고 승상 양국충(양귀비의 6촌 오빠)의 실정과 패전으로 현종을 호위하던 병사들의 불만이 폭발하여 양귀비의 자결을 요구했고 결국 양귀비는 자결로 생을 마감했읍니다.

 어떤 면에서 양귀비는 안록산의 난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것으로 보입니다.

 양귀비와 안록산의 불륜은 단순한 소문일 가능성이 많고 비록 양귀비가 안록산을 양자로 입양했다고 하지만 현종 역시 안록산을 절대적으로 신임했기 때문에 양귀비가 안록산을 양자로 맞이 하지 않았다고 해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현종은 무능한 양귀비의 6촌 오빠인 양국충을 중용했지만 양귀비가 양국충의 출세에 관여한 것이 아니라 현종이 양귀비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 였다고 합니다.

 결국 양귀비는 현종의 모든 잘못을 뒤집어 쓰게 되어 자결한 것이지요.

 아주 오랫동안 양귀비는 역사학자들에게 나라를 망친 여인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정작 양귀비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어 관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볼때 양귀비가 그토록 오랫동안 나라를 망친 여자라는 비난을 받을 이유는 별로 없지요.

 물론 현종이 정사를 돌보지 않고 그녀에 빠져 있는데도 그녀가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지 않은 점은 비난받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과연 그녀의 잘못일지요.

 양귀비가 자결했을때, 그녀의 나이는 30대 후반이였지만 여전히 아름다워 현종의 모든 사랑을 독차지 했다고 합니다.

그녀가 자살하자 현종 역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읍니다.

Posted by labyr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