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란 저마다 취향이 있고 타입이 있다. 조금 다르면 사랑으로 극복할 수도 있지만, 아주 다르면 헤어지기 십상이라 사귀기 전에 변화하는 작업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발렌타인데이라고 상대방의 취향과 타입을 파악하지 않고, 서로 많이 다른 상태에서 고백하면 만나도 오래가지 못하기 마련이라는 말이다.

   또한 여자가 혼자 적극적으면 남자는 쉽게 권태기에 빠져 관계가 쪽나기 쉬우니, 발렌타인데이라고 성급하게 고백하면 안될 것이다.

 

   다음은 발렌타인데이에 성급하게 고백해, 사귀긴 했지만 결국은 헤어진 어느 여학생의 이야기다.

 

 

   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2월의 둘째 월요일에 그녀는 예쁘게 포장한 초콜릿 하나와 카드 한장을 코트의 주머니에 넣은 후에 학교로 발걸음을 향했다. 오늘은 이 땅의 미혼 여성들의 심장을 콩닥콩닥 뛰게 만드는 발렌타인데이라서 그녀의 심장은 콩닥콩닥 뛰다 못해 팔딱팔딱 뛰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그녀는 준비한 초콜릿과 카드를 들고 마치 공주가 왕자님을 만나러 행차하는 것과 같은 당당한 걸음으로 미래에 그녀의 낭군이 점지한 범수를 찾아갔다. 초콜릿과 카드를 쥔 지혜의 손은 사시나무가 바람에 떨리듯이 떨렸다. 지혜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무거운 입을 열어 말했다.

   "나, 지혜라고 하는데... 혹시 기억하니?
   "당근 기억하지. 현주 친구쟎아."
   "기억해 줘서 정말 고마워."
   "고맙긴... 근데, 왜?"
   "이거..."


   지혜는 범수에게 준비한 초콜릿과 카드를 내밀었다. 범수가 지혜의 손에 든 초콜릿과 카드를 받자, 그녀의 두뺨은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지혜는 새색시처럼 수줍은 표정을 지으면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

   "수업 끝나고 잠시 만날 수 있니?"
   "좋아. 어디서 만나지?"
   "정문에서 기다릴께."

   수업이 끝나자 지혜는 학교 정문 앞에서 범수를 기다렸는데, 범수는 햇살처럼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지혜에게 다가왔다.

   "많이 기다렸니?"
   "아니, 방금 전에 왔어."
   "지혜야, 나...... 이때까지 너처럼 인기많은 여자한테 카드나 선물을 받은 적이 없었어. 정말 고마워. 덕분에 평생 잊을 수 없는 발렌타인데이가 되었어."

   이렇게 해서 지혜와 범수는 발렌타인데이 커플이 되었다.
   지혜는 범수와 함께 학교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먹었다. 지혜는 공주님이 된 것처럼 마음이 두리둥실 붕 떠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것 같아 자신의 음식을 범수에게 양보했지만 행복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지혜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서 라면을 두개나 삶아 먹었다.



   방과 후 날마다 범수와 데이트를 하며 하루하루가 행복했던 어느날, 수업이 끝나자 지혜는 범수를 기다렸다. 하지만 범수는 지혜에게 미안한 표정으로 할 일이 있다고 말한 후 혼자 집으로 가버렸다. 지혜는 1학기 중간 고사 성적표가 나온 며칠 전부터 범수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달려졌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성적이 나빠 그런 줄만 알고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범수는 우등생으로 시험에 예민한 학생이었던 것이다. 
   다음날, 지혜는 미술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았는데, 범수 반에도 미술이 있었다. 지혜는 범수에게 준비성이 없는 여자라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아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 현주에게 미술 준비물을 빌렸다. 바로 그때 지혜는 우연하게도 범수가 역시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혜숙과 신나게 떠드는 장면을 목격했다. 지혜는 질투심이 불처럼 일었지만, 혜숙이 범수에게 꼬리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참았다.

   토요일, 지혜는 수업이 끝나자 정문에서 범수를 기다렸지만, 범수는 지혜에게 오늘어디 가야할 곳이 있어 내일 만나자고 말했다. 지혜는 심심해서 혼자서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표를 사려고 매표소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범수가 혜숙이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혜는 화가 나서 달려가 범수의 뺨을 때렸다.
   "어디 가야한다는 곳이 여기였어?"
   지혜에게 뺨을 맞은 범수는 지혜를 한참 노려보다가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너한테 말하려고 했어. 지혜, 너 공부...... 반에서 뒤에서 10등 안에 든다더라."
   지혜는 혜숙을 노려보았다.
   "혜숙이 너지? 니가 말한거지?"
   "혜숙이가 말해주지 않다고 해도 언젠가는 알게 될 건데, 뭘 그러니? 난 니가 최소한 중간은 되는 줄 알았어. 미안하다."
   지혜는 너무 화가 나서 더 말하고 싶지 않아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일요일, 지혜는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참고서를 펴고 공부를 했다.
   지혜의 어머니는 지혜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자 환하게 웃으며 아버지에게 말씀하셨다.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여보, 지혜가 남자친구를 사귀더니 철이 들었나 봐요. 아침부터 일어나 공부를 하네요."
   "거봐. 내가 말했지. 남자친구가 생기면 오히려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될거라고. 범수는 부반장이고 반에서 3등이래요.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고, 얼마나 좋아."
   지혜는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사실, 지혜가 성급했다.

   준비없는 고백은 결국에는 실패하기 마련이다.

   성적도 좀 올리고, 범수가 좀 더 자신에게 관심을 끌게 만든 후 고백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까, 좀 더 사전에 준비를 한 후 고백하던지, 아니면 다른 날에 고백하는 것이 발렌타인데이라고 고백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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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abyr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