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초고왕 37화


 어제 근초고왕 37화를 포스팅한 후 보니, 어색한 부분과 부족한 부분이 있어 2000자를 추가하고, 많은 문장을 수정했습니다.

 

 

 부여구는 백성들이 헌납한 재물로 진(晉)의 상단으로부터 식량을 매입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연의 모사 양유는 모용황을 찾아가 아뢰었다.

 "소신이 들으니, 부여가 흉년이 들어 진으로부터 식량을 구한다 하나이다. 부여에 식량을 매매하는 진의 상단을 매수하여 밀정을 투입한다면, 부여 정벌에 큰 도움이 될 것이오니, 이 일을 소신에게 맡겨주소서."

 모용황은 용좌를 치며 감탄했다.

 "좋은 계책이로다. 그대에게 모든 것을 일임할 터이니, 뜻대로 하라."

 모용황의 윤허가 떨어지자, 양유는 부여에 식량을 매매하는 진(晉)의 상단을 매수하여 수백명의 한(漢)족 출신의 밀정을 보냈다.

 모용황은 부여 정벌에 유다른 집착을 가지고 있었다. 60년전인 285년 아버지 모용외가 한때 부여를 정복하였으나 진(晉)의 원조로 실패하였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절세의 미녀라 소문난 부여의 여혜 공주를 연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혜 공주가 부여구와 혼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모용황은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새 삼라만성이 얼어붙는 겨울이 찾아왔다. 연이 부여의 도성 부여성을 침략하려면 요하강을 건너야하는데, 요하강은 한겨울이 되면 꽁꽁 얼어붙어 군대가 도강할 수 있었기 때문에 모용황은 겨울에 요하강이 얼어붙었을 때 부여를 정벌할 생각이었다.

 요하강이 꽁꽁 얼어붙자, 모용황은 대전회의를 소집하여 부여 정벌을 논의했다. 양유가 모용황에게 아뢰었다.

 "소신이 듣건데, 지금 고구려 태왕 사유는 국력을 다해 병력을 키우고 있다 하나이다.

고구려의 창끝은 우리 연을 노리는 것이 틀림없사오니, 부여를 치기 전에 먼저 고구려를 굴복시켜야 될 것이옵니다." 

 모용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고구려를 굴복시킬 방책이 있는가?"

 "소신이 남소성에 보낸 밀정에 의하면 지금 남소성에는 정병이 5천 뿐이라 하니, 남소성을 탈취하소서. 남소성은 고구려의 요충지일 뿐만 아니라 고구려가 육로로 용성으로 진군할 때 필히 거쳐야하는 길이오니, 남소성을 탈취한다면, 고구려가 감히 연을 넘보지 못할 것이옵니다."

 "좋다. 허면, 누구를 보내면 좋겠는고?"

 양유가 대답하기도 전에 모용각과 모용패가 거의 동시에 앞으로 나오며 아뢰었다.

 "소자 패를 보내주소서."

 "소자 각을 보내주소서."

 양유가 말했다.

 "두 왕자 저하를 함께 보내는 것이 좋을 듯 하옵니다."

 모용황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각아, 내 너에게 기병 2만기를 줄 터이니, 패를 데리고 가거라."

 모용각은 모용패와 함께 기병 2만기를 이끌고 남소성으로 향했다.

 

 남소성의 성주 고화는 사유의 친척으로 척후병으로부터 연군이 온다는 소식을 듣자, 즉시 환도성으로 전서구를 띠우고 봉화를 올렸다. 남소성에는 5천의 병력밖에 없었다. 연군이 남소성에 이르자, 고화는 결연한 표정으로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남소성은 고구려군이 용성으로 진군할 때 필히 지나야하는 요충지다. 우리가 임무를 다하지 못하여 남소성을 오랑케들에게 빼았긴다면, 연에 볼모로 잡혀계시는 태후마마와 왕후마마를 모셔오기 요원하여 질 터이니, 무슨 면목으로 폐하를 뵐 수 있겠는가?목숨을 버려서라도 성을 지키는 것이 신하된 도리일 것이다. 이 몸은 나라에 목숨을 바칠 각오로 싸울 것이니, 그대들 또한 목숨을 바칠 각오로 싸우라."

 고구려군은 창을 치켜 들며 우뢰같은 함성을 질렀다.

 "고구려 만세! 천자 폐하 만세! 태후마마 만세! 왕후마마 만세!"

 

 고구려군의 우뢰같은 함성소리에 연군은 싸우기도 전에 기가 꺽였다. 모용각은 근심어린 표정을 지으며 모용패에게 물었다.

 "고구려군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듯 하니, 밤에 야습하는 것이 상책이 아니겠느냐?"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소제가 들으니, 남소성의 성주 고화는 명장이나, 그의 수하 장수들은 모두 범장이라 하더이다. 허니, 성동격서(동쪽을 칠 듯이 소리를 내어 속인 후 서쪽을 치는 전술)의 전략이 상책이옵니다. 허장성세로 고화를 유인한 후 나머지 병력으로 방비가 소흘한 곳을 친다면, 날이 밝기 전에 능히 남소성을 탈취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다만, 남소성을 탈취하기 전에 고구려의 구원군이 당도한다면, 낭패를 볼 수 있으니, 이에 대비하여 2천기를 남소성으로 오는 길목에 매복시켜 대비토록 하는 것이 좋을 듯 하옵니다."

 모용각은 이제 겨우 약관의 나이인 모용패의 세심한 계책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승의 계책이로구나! 좋다. 너의 계책을 쓰겠다."

 

 칠흑처럼 어두운 밤이 되자, 모용각은 기병 6천기를 이끌고 서문을 공격했다. 모용각은 모용패의 계책대로 후방에 수천개의 깃발을 든 허수아비를 만들어 배치한 후 병사들에게 수백개의 휏불을 들게 하였다. 남소성에서 보기에는 후방에 대군이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남소성에는 4대문이 있어 대문마다 5백기로 지키게 하고 나머지 3천기는 중앙에 두었는데, 연군의 허장성세에 속은 고화는 중앙에 있는 2천기를 서문에 투입했다.

 연군은 충차와 운거를 동원하여 서문에 맹공을 퍼부었지만, 고구려군은 용맹스럽게 연군의 맹공을 막았다.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고 있을 때 동문을 맡은 장수 재철로부터 전령이 당도했다.

 "지금 동문은 1만이 넘어보이는 대군의 공격을 받고 있나이다. 전황이 시급하오니, 속히 구원군을 보내주소서."

 고화는 이제서야 연군의 성동격서 전술에 속은 사실을 깨달았다.

 '아뿔사! 놈들의 성동격서에 속았구나!' 

 고화는 즉시 병력 2천을 모아 동문으로 갔지만, 이미 연군은 동문을 부수고 성안으로 파도처럼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고화는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지만, 파도처럼 밀려들어오는 연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치열한 공성전 끝에 고화가 사로잡혔고, 얼마 후 남소성은 연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한편 사유는 염모를 대장으로 고밀을 부장으로 임명하여 기병 1만기를 주어 남소성을 구원토록하였는데, 진군 중에 척후병으로부터 남소성 함락의 비보가 전해졌다.

 고밀이 분노로 치를 떨며 말했다.

 "무도한 선비 오랑케들의 퇴로를 차단한 후 다시는 고구려를 넘보지 못하게 섬멸해야 하옵니다.

 염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태후마마와 왕후마마께서 연에 볼모로 잡혀있으니, 경거망동해서는 아니되네."

 염모는 명을 내려 환도성에 전서구를 띠웠다.

 

 남소성 함락의 비보를 들은 사유는 주먹으로 용상을 치며 분개했다.

 "무엇이? 고화가 하루도 버티지 못하였단 말이냐? 내, 고화를 믿었건만, 어찌......"

 고무가 한숨을 길게 내쉰 후 사유에게 말했다.

 "남소성에는 본래 1만의 정병이 있었으나, 지난 번 부여 정벌 때 5천의 병력을 차출한 후 아직 복귀시키지 못한 까닭에 5천뿐인 병력으로 2만에 이르는 연의 대군을 막기는 역부족이었을 것이옵니다."

 사유는 충격과 분노로 말을 잇지 못했다. 여노가 비분강개하여 사유에게 아뢰었다.

 "폐하, 소신이 듣건데, 모용패에 대한 모용황의 총애가 남다르다 하오니, 대군을 파견하여 퇴로를 끊어 모용각과 모용패를 생포하소서. 하오면, 모용황이 감히 태후마마와 왕후마마께 위해를 가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구부가 사유에게 아뢰었다.

 "아니될 말이옵니다. 태후마마와 어마마마께서 연에 볼모로 잡혀 계시온데, 만약 생포하지 못한다면 어찌하겠나이까? 불가하나이다."

 고무가 사유에게 아뢰었다.

 "저 선비족은 무도하기 짝이 없어 침략을 묵과한다면, 또 다시 침략할 것이 명약관화한데,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겠나이까? 어차피 저들은 순순히 어마마마와 왕후마마를 보내지 아니할 터이니, 여노의 계책대로 연군의 퇴로를 차단하여 모용패와 모용각을 포한 후 어마마마와 왕후마마와 교환하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사유는 잠시 생각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할 수는 없네. 일이 뜻대로 되지 아니한다면, 그 화를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여노가 사유에게 아뢰었다.

 "폐하께서 근심하는 바를 소신이 어찌 모를 수 있겠나이까? 하오나, 연이 무도하게도 동맹을 깨고 아국의 영토를 탈취하였사오니, 어찌 수수방관할 수 있겠나이까? 만약 이번에 저들의 침략을 수수방관한다면, 마음놓고 고구려를 침략할 터이니, 사직이 위태로워질 것이옵니다. 저들에게 고구려의 힘을 보여주소서."

 사유는 여노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어마마마, 어찌하면 좋겠나이까? 왕후, 어찌하면 좋겠소?'

 잠시 대전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주태후의 오라버니 국상 주영이 무거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폐하, 저 무도한 선비 오랑케가 아국을 침범한 것을 묵과한다면, 또 다시 침범할 것이 자명하옵니다. 이번 기회에 무도한 선비 오랑케들에게 아국의 힘을 보여준다면, 감히아국을 업신여기지도 태후마마와 왕후마마께 위해를 가하지도 못할 것이오니, 속히, 명을 내려 퇴로를 차단하소서."

 사유는 숙고 끝에 용상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저 무도한 선비 오랑케가 고구려의 영토를 함부로 침략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 싸울 것이다. 염모에게 퇴로를 차단하라 명을 전하거라."

 사유의 명이 떨어지자, 대전의 시종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봉화를 올리고 전서구를 띠웠다. 사유가 고무에게 말했다.

 "무야, 내 너에게 기병 2만기를 줄 터이니, 오랑케 놈들에게 고구려의 힘을 보여주거라. 어마마마와 왕후의 안위가 달렸으니, 반드시, 이겨야 하느니라. 이길 자신이 있느냐?"

 "소제, 목숨을 바칠 각오로 싸워 기필코 3년전의 치욕을 씻겠나이다."

 

 환도성에서 보낸 전서구로부터 사유의 명을 받은 염모는 남소성을 우회하여 연군의 퇴로를 차단하였다. 연의 척후병이 모용각에게 보고하였다.

 "왕자 저하, 염모와 고밀이 이끄는 고구려군이 아군의 퇴로를 차단하였나이다."

 사유가 연에 사신을 보내 화의를 청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느긋이 고구려의 사신을 기다리고 있던 모용각에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무엇이? 고구려의 태후와 왕후가 아국에 볼모로 잡혀있거늘, 어찌 감히 아군의 퇴로를 막을 수 있단 말이냐?"

 모용각은 모용패를 불러 상의했다.

 "고구려가 무엄하게도 아군의 퇴로를 차단하였으니, 어찌하면 좋겠느냐?"

 모용패는 잠시 생각한 후 입을 열었다.

 "염모와 고밀은 천하의 용장이니, 가벼이 군을 움직여서는 아니될 것이옵니다. 우리가 원정온 것은 부여 정벌에 앞서 고구려의 기세를 꺽고자하였던 것이니, 전면전으로 확대되어서는 아니될 것이옵니다. 일단 전서구를 띠워 아바마마의 뜻을 여쭈소서."

 

 모용황은 염모와 고밀이 이끄는 고구려군이 남소성을 점령한 연군의 퇴로를 차단했다는 소식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용황은 두 아들의 생사가 걱정되어 즉시 양유를 불렀다. 모용황은 부여 정벌에 앞서 남소성을 탈취하라는 계책을 내었던 양유가 원망스러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고구려의 태후와 왕후가 짐의 손아귀에 있거늘, 고구려가 감히 남소성을 점령한 아군의 퇴로를 차단하였다 한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양유는 숙고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 원정은 애시당초부터 부여 정벌에 앞서 고구려를 견제하고자 했던 것이옵니다. 이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으니, 고구려와 화친하는 것이 좋을 듯 하옵니다. 소신을 고구려로 보내주소서. 소신이 좋은 말로 사유를 설득하겠나이다."

 "아니될 말이오. 화의가 성립되지 못한다면, 저들이 그대를 보내주겠소? 짐이 그대를 잃는다면, 누구와 천하의 패권을 논하며, 어찌 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소? 다른 사람을 보내겠소."

 "소신을 아끼는 폐하의 하해같은 성은에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하오나, 소신에게 방책이 있사오니, 심려치 마소서."

 "무엇인가?"

 "8년전 연을 배신하고 고구려로 망명간 동수와 남소성을 바꾸는 것이 어떻겠나이까?동수에 대한 사유의 신망이 두터우니, 동수의 죄를 묻지 아니하는 조건이라면, 이번 일을 무사히 마무리 지을 수 있을 듯 하옵니다. 부디,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동수는 연의 명장으로 8년전 모용황의 동생 모용인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패하여 사로잡혀 모용인을 따르다 모용인의 난이 진압되자 처벌을 두려워하여 고구려로 망명간 장수였다. 이때 모용황은 모용인을 따르던 장수들을 대부분 사사시켰는데, 이들 중에 뛰어난 명장이 많았기 때문에 연으로서는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었다. 모용황은 한숨을 길게 내쉰 후 양유에게 말했다.

 "그대의 뜻대로 하라."

 

 양유는 떠나기 전에 대장군 한수를 찾아가 책 한권을 주며 말했다.

 "여기에 부여를 정벌할 방책을 적어두었으니, 이 몸이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대가 폐하께 전해주시오."

 한수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하겠소. 헌데, 어찌 폐하께 직접 전해드리지 아니하는 것이오?"

 양유는 잠시 뜸을 들인 후 입을 열었다.

 "돌아오지 못할 수 있도 있으니 그런 것이외다."

 "헌데, 어찌 고구려로 가는 것이오?"

 양유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아시다시피, 고구려와 부여는 우리 연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고 있고, 진(晉)제 사마담은 명장 환온을 중용하여 호시탐탐 연을 노리고 있는데, 만약 진이 고구려, 부여와 삼국동맹을 맺고 우리 연을 친다면, 나라의 존망이 위태롭게 될 것이오. 하여 이를 방비하기 위해서는 삼국 중 가장 약한 부여를 정복하는 것이 상책이오. 헌데, 부여는 부여구를 대장군으로 등용한 이래 하루가 달리 국력이 강해지고 있으니, 더 강해지기 전에 정복해야만 하오. 그러기 위해서는 고구려와의 동맹이 절실하니, 내가 고구려에 가고자 하는 것이오."

 "부디, 무사히 귀환하시기 바라겠소."

 

 양유는 환도성에 당도하여 사유를 알현하였다.

 "대연(大燕)의 사신, 양유가 태왕을 뵙나이다."

 양유는 백발에 반백의 수염의 노신으로 범상치 않은 기상이 풍겨졌다. 사유는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짐은 충심으로 대연의 폐하를 섬겼거늘, 어찌 폐하께서는 짐의 충정심을 모르시고, 아국의 성을 빼았으셨는고? 대연의 사신은 해명토록하라."

 "태왕께서 충심으로 폐하를 섬기신다면, 군대를 물리는 것이 마땅할 것이옵니다. 어찌 폐하께 맞서려 하시나이까?"

 사유는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군신간에도 지켜야할 도리가 있거늘, 대국의 군대가 연유도 없이 아국을 침략하였으니, 어찌 군대를 물릴 수 있겠는가? 남소성에서 퇴각한다면, 군대를 물릴 것이나, 퇴각하지 아니한다면, 군대를 물릴 수 없다. 그대는 폐하께 짐의 뜻을 전해드리거라."

 양유는 사유가 순순히 말을 듣지 않자 억지를 부렸다.

 "폐하께서 남소성을 치신 연유는 대연의 역신 동수가 남소성에 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명하신 것이나, 성안을 샅샅이 뒤져도 동수는 없었나이다. 이는 실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나, 모든 것이 대연의 역신 동수가 고구려에 있어 벌어진 일이오니, 태왕께서 폐하께 충정심을 보이시려면, 속히, 동수를 고구려로 송환하소서."

 동수는 선태왕 미천왕의 총신 여노와 의형제를 맺어 사유는 정리상 그를 연으로 돌려보낼 수 없었다. 하지만, 주태후와 주왕후의 귀환에 차질이 생길까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수는 이미 고구려인이 되어 폐하를 섬기고 있으니, 폐하께 잘 말씀드려주게나."

 "그리하겠나이다. 허나, 이번 전쟁은 동수로 일어난 일이니, 태왕께서는 마땅히 군대를 물려야 할 것이옵니다. 허면, 폐하께서는 양국의 평화를 위해서 동수를 용서하시겠다고 말씀하셨나이다."

 사유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어 침묵하였다. 양유의 말이 이어졌다.

 "이번 일을 계기로 연과 고구려의 동맹 관계가 더욱 견고해진다면, 양국에 큰 이득이 될 것이옵니다. 연과 고구려가 부여를 양분한다면, 고구려는 남소성의 수십배나 되는 영토를 획득할 수 있을 터이니, 큰 이득이 아니겠사옵니까? 부디, 폐하의 깊으신 뜻을 따르소서."

 사유는 숙고 끝에 입을 열었다.

 "폐하의 뜻에 따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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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초고왕 35화

 
 근초고왕 35화 수정판에서는 용성으로 돌아간 모용황의 이야기를 추가하고, 고구려 태자 구부가 태왕 사유에게 태후와 왕후를 대신하여 볼모가 될 것을 청하는 내용을 제외하여 36화로 넘겨 하나로 연결시켰습니다.

 

 

 패잔병을 수습하여 용성에 도착한 모용황은 분한 마음에 전쟁으로 인해 쌓인 노독도 풀지 않은 채 대전회의를 소집하였다. 양유가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무릇 전쟁에서 이기려면, 아군의 강점으로 적군의 허점을 찔려야 하온데, 이번 전쟁에서 아군은 강점은 살리지 못하였고, 적군에게 허점을 찔렸으니, 패하였던 것이옵니다."

 모용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아군의 강점은 무엇이고, 부여군의 허점은 무엇인고?"

 "아군의 강점은 병력과 병장기가 부여군과 비교조차 아니될 정도로 우세하다는 것이옵니다. 연은 기병과 궁수가 십만에 이를 뿐만 아니라 전차가 수천에 이르니, 이를 적절하게 이용한다면, 능히 이길 수 있을 것이옵니다."

 모용황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양유의 말이 이어졌다.
 "아군의 허점은 부여의 지리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것이옵니다. 부여군보다 병력이 두배나 많은 아군이 패한 것은 부여의 지리에 익숙하지 못하여 지형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온데, 우리 연에는 수만의 부여인들이 있으니, 이들 중에 부여의 지리를 잘 아는 자를 선별하여 척후병으로 기용한다면, 능히 부여를 이길 수 있을 것이옵니다. 또한 부여는 해군이 빈약하오니, 해군을 이용하여 부여군의 허점을 찌른다면, 부여를 정복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모용황은 양유의 식견에 감탄하였다.
 
"과연 그렇다. 내, 그대에게 부여 정벌을 맡길 터이니, 지금부터 준비하라."

 
 대전회의를 마친 모용황은 왕궁에 있는 한 여인의 처소에 발걸음을 하였다. 
 "그간 별일 없었소?"
 여인은 서른살 쯤 되어 보였지만, 누구라도 첫눈에 반할 정도로 대단히 아름다웠다. 백옥처럼 하얗고 비단처럼 고운 피부, 초롱초롱 빛나는 눈동자, 조각한 듯한 콧날, 앵두처럼 붉은 입술...... 그녀는 한숨을 내쉰 후 담담하게 말했다.
 "고국이 보고 싶은 것 이외에 신첩에게 무슨 일이 있을 수 있겠나이까?"
 그녀는 3년전, 연군의 고구려 침입 때 잡혀간 주왕후였다. 

 3년전, 연의 모용황이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했다. 연이 고구려의 도성 환도성으로 오는 진로는 북쪽 길과 남쪽 길 두 길이 있는데, 북쪽 길은 넓고 평탄하지만, 남쪽 길은 좁고 험난하다. 사유는 연군이 반드시 북쪽 길로 올 것이라 판단하여 북쪽 길은 고무에게 정병 5만을 주어 지키게 하고, 남쪽 길은 자신이 정병 5천과 약졸 5천으로 지킬 생각이었다. 사유는 대전회의를 소집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왕제 고무는 찬성했다.

 "남쪽 길은 지세가 좁고 험난하여 정병 5천이면 10만 대군이 온다 하여도 능히 막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만약 연군이 남쪽 길로 온다면, 소제가 신속히 기병 2만을 보내 구원하겠나이다."

 대가 아불화도는 반대했다.

 "폐하, 모용황에게는 양유, 모용한, 한수처럼 지략이 뛰어난 장수들이 많사오니, 남쪽 길의 방비를 소흘히 해서는 아니될 것이옵니다. 북쪽 길에 있는 기병이 남쪽 길로 오려면 한나절이 걸릴 터인데, 구원군을 보낸다 한들 연이 대군을 보낸다면 정병 5천으로 구원군이 올때까지 버틸 수 있겠나이까?"

 고무는 아불화도의 의견을 듣자 숙고한 후에 말했다.

 "일단 척후병을 파견하여 연군의 행로를 살펴본 연후에 결정하는 것이 좋을 듯 하옵니다."

 

 한편 5만 5천의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한 연의 모용황은 고구려가 남쪽의 길이 험한 것을 방패삼아 방비를 소흘히 할 것이니, 그 허점을 노리자는 모용한의 계책을 따랐다. 모용황의 이복형인 모용한은 용맹과 지략을 갖춘 명장으로 중원을 도모하려면 고구려를 먼저 꺽어야된다고 말하여 모용황이 고구려를 침략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모사 양유가 모용황에게 아뢰었다.

 "고구려에는 아불화도라는 용맹과 지략을 갖춘 명장이 있사오니, 사유는 필시 아불화도의 말을 듣고 척후병을 보내 아군의 행로를 살피게 할 것이옵니다. 척후병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는 북쪽 길로는 수많은 깃발을 휘날려 대군이 가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고, 남쪽 길로는 보병을 선봉에 앞세우고, 멀리서 기병이 보병을 뒤따르게 하고 어두운 밤에만 진군토록 하여야 할 것이옵니다."

 모용황은 양유의 계책에 크게 감탄하며 말했다.

 "참으로 좋은 계책이다. 기병이 멀리서 보병을 뒤따르게 한다면, 능히 척후병의 눈을 속일 수 있을 것이다. 허면, 누가 북쪽 길로 가겠느냐?"

 장사 왕우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소장이 허장성세로 고구려의 눈을 속이겠나이다."

 "좋다. 허면, 남쪽 길은 누가 선봉에 서겠느냐?"

 모용한과 모용평이 거의 동시에 앞으로 나섰다.

 "소제가 선봉에 서겠나이다."

 "소자를 선봉에 세워 주시옵소서."

 모용황은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각각 5천씩 주겠다. 합력하여 선봉을 지휘하라."

 왕우는 1만 5천의 병력을 이끌고 북쪽 길로 진군했다. 왕우는 양유의 계책대로 수많은 깃발들을 휘날리게 하여 대군이 진군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모용한과 모용패는 각각 보병 5천을 이끌고 선봉에 서서 남쪽 길로 진군했다. 모용황은 고구려 척후병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기병 3만기를 어두운 밤에만 진군토록했다. 고구려의 척후병들은 본 대로 사유에게 보고했다.

 "수만 쯤 되어 보이는 연의 보병이 북쪽 길로 진군하고 있사옵니다."

 "1만 쯤 되어 보이는 연의 보병이 남쪽 길로 진군하고 있사옵니다."

 

 척후병들의 보고를 들은 사유는 고무에게 명했다.

 "내 너에게 정병 5만을 줄터이니, 북쪽 길로 오는 연군을 섬멸토록 하라!"

 아불화도가 앞으로 나서며 사유에게 아뢰었다.

 "성동격서의 전술일 수도 있으니, 남쪽 길도 방비를 소흘하면 아니 될 것이옵니다."

 사유는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짐은 이미 결정하였으니, 경은 짐의 작전에 따르라."

 아불화도는 사유의 명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유는 고무에게 정병 5만을 주어 북쪽 길을 지키도록 하고, 자신은 아불화도와 함께 정병 5천과 약졸 5천으로 남쪽 길을 지켰다. 아불화도가 사유에게 말했다.

 "약졸 5천은 오합지졸이라 전투에 별 도움이 못되오니, 소신에게 정병 5천을 주소서. 폐하께서는 약졸로 하여금 후방에 수만의 깃발을 꽂아 허장성세를 펼치소서. 하오면 적군이 아군을 업신 여기지 못할 것이옵니다."

 사유는 아불화도의 계책대로 아불화도에게 정병 5천을 주고, 자신은 약졸 5천을 이끌고 후방에서 허장성세를 펼쳤다. 아불화도는 숲이 빼곡한 좁은 지형에 병사들을 매복시킨 후에 연군을 기다렸다. 모용한과 모용패가 이끄는 연의 선봉군이 매복한 장소로 다가오자, 아불화도는 깃발을 올리며 명을 내렸다.

 "공격하라!"

 모용한과 모용패가 이끄는 연의 선봉군은 고구려군의 갑작스러운 기습에 당황했지만, 곧 모용황이 이끄는 3만 기병이 올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용맹하게 싸웠다. 아불화도는 순식간에 수십명의 연군을 베어 연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한창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을 때 멀리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병이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나타났다. 모용황이 3만 기병을 이끌고 당도한 것이다. 아불화도는 패배를 직감하였지만, 죽음을 각오하고 용맹하게 싸웠다. 사유는 허장성세가 무용지물이라고 판단하여 약졸 5천을 이끌고 아불화도를 구원했다. 모용황은 후방에 있는 수만의 깃발이 마음에 걸려 렸는데, 사유가 겨우 약졸 5천을 이끌고 오자 허장성세임을 간파하고 크게 웃었다.

 "하하하...... 고구려군의 허장성세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났으니, 이제 무엇을 꺼리겠느냐?"

 아불화도는 사유가 자신의 계책을 따르지 않아 허장성세가 탄로나자 크게 탄식했다.

 "폐하, 약졸은 어차피 도움이 못되온데, 어찌 구원하러 오셨나이까? 아군의 허장성세가 드러났으니, 패배를 면하기 힘들 것이옵니다. 여기는 소신에게 맡기시고, 속히 기병을 이끌고 환도성으로 퇴각하소서."

 사유는 자신이 경솔했음을 깨달았지만, 이제와서는 어쩔 수 없었다. 사유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하네. 허나, 이제와서 어찌 하겠느냐? 힘을 다하여 싸우면 막을 수 있을 것이네. 내, 고무에게 속히 응원군을 보내라는 전령을 보냈으니, 어떻게든 하루만 버티어보세."

 "소신, 오늘 목숨을 버릴 각오로 싸우겠나이다."

 아불화도는 우뢰같은 고함을 지르며 싸웠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니,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라!"

 고구려군은 이미 많은 사상자를 내어 1만이 채 안되었으나 아불화도의 용맹한 모습에 사기가 크게 올라 4만의 연군이 고전하였다. 모용황은 아불화도의 용맹에 감탄하며 장수들에게 물었다.

 "아불화도의 용맹에 4배나 많은 아군이 밀리고 있으니, 어찌하면 좋겠느냐?"

 장사 선우량이 앞으로 나와 비장한 각오로 말했다.

 "소신 선우량,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 폐하의 하해같은 은혜를 갑고자 하나이다."

 선우량은 수백기를 이끌고 고구려군을 향해 돌진했다. 죽음을 각오한 선우량의 돌진에 고구려군의 전열이 흐트러졌다. 모용황은 이 틈을 타서 총공격을 명하였다. 전열이 흐트러진 고구려군은 연의 총공격에 힘없이 무너졌다. 아불화도가 사유에게 말했다.

 "폐하, 속히 기병을 이끌고 환도성으로 퇴각하소서. 여기는 소장이 막겠나이다."

 사유는 크게 탄식했다.

 "오호라, 아불화도여! 모든 것이 그대의 말을 듣지 아니한 짐의 탓이로도다! 천지신명의 가호를 비네. 부디, 살아야 하네."

 아불화도는 다급하게 말했다.

 "소신, 폐하의 하해같은 은혜를 입어 죽어도 여한이 없사오니, 지체하지 말고 떠나소서."

 사유는 눈물을 머금으며 수백기의 호위병을 이끌고 떠났다. 아불화도는 죽기를 각오하고 용맹하게 싸웠으나, 파도처럼 밀려오는 연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불화도는 이미 온 몸이 피로 물들었다. 연장 한수와 모여니가 양쪽에서 아불화도를 협공했다. 아불화도는 오른속에 창을 왼손에 검을 들고 싸우다 한수의 창에 오른쪽 어깨를 찔렸다. 정신이 어지러워지고 오른손의 힘이 빠져 창을 놓쳤다. 아불화도는 죽음을 직감하여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이 아불화도가 오늘 여기서 오랑케에게 죽는구나! 이 몸 하나 죽는 것은 문제가 아니나, 나라의 사직이 걱정되는구나! 하늘이시여! 부디, 이 나라의 사직을 지켜주소서!"

 이 틈을 타서 한수가 아불화도의 목을 베었다. 아불화도가 죽자 고구려군은 사기가 땅에 떨어져 힘없이 무너졌다.

 

 한편 사유는 기병 수백기를 이끌고 퇴각했지만, 연군의 집요한 추격에 대부분을 잃어 필기단마로 달려 환도성에 도착했다. 환도성에는 수천의 보병과 수백의 기병 밖에 없었다. 사유는 환도성이 포위되면 퇴로가 없어진다는 생각에 지형이 험준한 단웅곡으로 퇴각할 것을 결심했다. 태후 주씨와 왕후 주씨는 위급한 상황을 듣고 사유를 찾아왔다. 사유가 태후 주씨에게 말했다.

 "어마마마, 곧 연의 대군이 환도성으로 올 것이니, 단웅곡으로 퇴각하고자 하나이다. 속히 채비하소서."

 사유는 수백기의 기병을 이끌고 태후와 왕후를 데리고 환도성을 떠났다. 태후와 왕후는 말을 타지 못해 마차에 탔는데, 이로 인하여 지체되었다.

 연의 수만 대군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오자 환도성은 힘없이 무너졌다. 사유가 이미 환도성을 떠났음을 알게 된 모용황은 모여니에게 기병 오천기를 주어 추격토록하였다. 추격해오는 연군과의 간격이 좁혀지자 태후는 마차를 세운 후 사유에게 말했다.

 "폐하, 우리로 인하여 폐하께 누를 끼칠 수 없소. 폐하는 무엇보다 종묘사직을 지켜야 할 것이오. 우리는 산에 숨을 터이니, 폐하는 병사들을 데리고 속히 떠나시오."

 사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자가 어찌 어마마마를 두고 떠날 수 있겠나이까?"

 태후는 품속에서 비수를 꺼내들고 호통쳤다.

 "떠나시오. 떠나지 아니하면, 이 어미는 자결할 것이오."

 사유가 머뭇거리자 왕후가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어마마마는 신첩에게 맡기시고, 속히 떠나소서."

 사유는 눈물을 글썽이며 태후와 왕후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어마마마, 부디, 옥체 강녕하소서. 왕후, 이승에서 다시 만나지 못한다면, 저승에서라도 다시 만나기 바라오. 부디, 강녕하시오."

 사유는 눈물을 머금으며 기병 수백기를 이끌고 떠났다. 태후와 왕후는 사유가 떠난 방향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왕후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어마마마, 연군이 곧 당도할 것이니, 속히 떠나야 되겠사옵니다."

 태후와 왕후는 마차를 버려둔 채 수십명의 여자 호위병들과 함께 산속으로 도망쳤다.

 모여니는 버려진 마차를 보고 병사들을 풀어 산속에 숨어 있던 태후와 왕후를 찾았다. 여자 호위병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려고 했으나 태후는 그녀들을 살리기 위해 항복할 것을 지시했다.

 "항복하겠다. 허니, 나의 호위병들을 죽이지 말거라."

 모여니는 병사들에게 명했다.

 "두분 마마를 잘 모시거라."

 

 모여니는 척후병을 불러 사유의 행방을 물었다.

 "고구려왕은 어디로 갔느냐?"

 "단웅곡으로 가는 것을 확인하였사옵니다."

 모여니는 수천의 기병을 이끌고 단웅곡으로 향했다. 사유의 호위대장은 고밀이었는데, 고구려에서 용맹함에 있어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 고밀은 단웅곡으로 들어오는 산길에 수백의 병사들을 매복시켰다. 모여니가 이끄는 연의 기병이 매복한 장소로 다가오자 우뢰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돌격하라!"

 고밀은 창을 꼬나잡고서 말을 몰아 연군을 향해 돌진했다. 고밀이 창을 휘두를 때마다 연군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고밀의 용맹함을 보자 고구려군은 사기가 크게 올라 분전했다. 고밀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 수백명의 연군을 베었다. 고밀의 용맹에 연군은 전열이 흐트러졌다.

 모여니는 전열을 정비하기 위해 퇴각 명을 내렸다. 연군이 물러가자, 고밀은 단웅곡에 숨어 있는 백성들을 병사들로 위장하여 허장성세로 모여니의 눈을 속였다. 모여니는 구원군이 당도한 줄 알고 주저하였다. 모여니가 주저하는 동안에 대형 염모가 수천의 결사대를 이끌고 단웅곡으로 들어왔다.

 얼마 후 모용황이 수만의 대군을 이끌고 당도하였다. 모용황은 수만의 병력으로 단웅곡을 공격했으나, 고밀의 용맹과 좁은 단웅곡의 지형을 이용한 염모의 지략에 번번히 패하였다.

 

 한편 북쪽 길로 진군했던 왕우가 이끄는 연군은 고무에게 참패하여 전멸당했다. 이에 모용황은 사신을 보내 사유에게 항복할 것을 권유했지만, 사유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한수가 모용황에게 말했다.

 "고무가 5만 대군을 이끌고 온다면, 승패를 예측하기 힘들 터이니 퇴각하는 것이 좋을 듯 하나이다."

 모용황은 근심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고무가 저 용맹무쌍한 고밀과 함께 아군을 추격한다면 어찌 하겠느냐?"

 "이미 사유의 어머니인 태후와 왕비를 볼모로 잡고 있으니, 사유의 아비 미천왕의 시신을 파내어 간다면, 사유는 감히 아군을 추격할 수 없을 것이옵니다."

 모용황은 한수의 의견을 받아들여 병사들에게 미천왕의 무덤을 팔 것을 명했다. 무덤을 파보니, 무덤 안에는 엄청난 보물이 묻혀 있었다. 모용황은 미천왕의 시신과 보물을 함께 꺼낼 것을 명했다. 모용황은 떠나기 전에 환도성의 성벽을 허문 후 성안에 불을 질렀다. 불길이 치솟자 모용황은 5만에 이르는 환도성의 백성들을 포로로 사로잡아 퇴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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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초고왕 36화


 근초고왕 35화에서 342년 연과 고구려의 전투신이 너무 길어 전투신을 35화로 하고 35,6화에서 구부가 태후와 왕후의 귀환 문제로 연에 사신으로 가는 내용을
36화로 수정하였습니다.



 고구려군의 패전은 3년전 연의 침입 때 잡혀간 태후와 왕후를 모셔오려던 사유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사유는 고무가 패잔병을 수습하여 돌아오자 처소로 불러 호되게 꾸짖었다.

 "그토록 매복을 조심하라 일렀거늘, 어찌 매복에 당하였단 말이냐? 내 너를 믿었건만, 참으로 답답하구나! 이래가지고 어느 세월에 어마마마와 왕후를 모셔오겠느냐?"

 고무는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소제, 패전의 책임을 지고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나이다. 소제를 처벌하여 주소서."

 사유는 길게 한숨을 내쉰 후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는 하나밖에 없는 내 아우일 뿐만 아니라 지난 번 나라의 환란 때 큰 공을 세웠거늘 어찌 벌할 수 있겠느냐? 그만 물러가거라."

 고무는 사유에게 인사를 올린 후 물러갔다. 사유는 태후와 왕후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이때 처소의 문 밖에서 시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폐하, 태자 저하께서 납시셨나이다."

 사유는 옷소매로 눈물을 훔친 후 말했다.

 "들라 이르거라."

 사유의 처소에 들어온 구부는 인사를 올린 후 말했다.

 "소자, 아바마마께 아뢸 말씀이 있나이다."

 "말해보거라."

 구부는 잠시 머믓거리다 입을 열었다.

 "아바마마, 소자를 연에 보내 주시옵소서. 소자, 모용황에게 태후마마와 어마마마를 방면하여 줄 것을 간곡히 청하겠나이다."

 "모용황은 도리를 모르는 무도한 자거늘, 네가 간청한다고 태후마마와 왕후를 순순히 보내주겠느냐?"

 "만약 모용황이 소자의 청을 거절한다면, 소자, 태후마마와 어마마마를 대신하여 볼모가 되겠나이다. 소자가 태후마마와 어마마마를 대신하여 볼모가 된다면, 모용황도 거절할 명분이 없지 아니하겠나이까?"

 사유는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모용황이 사람의 마음을 가졌다면, 구부의 간곡한 청을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허나, 어마마마께서 이를 아시게 된다면 경을 치실 터이니, 어찌 하면 좋단 말인가?'

 구부는 눈물을 글썽이며 간곡히 청했다.

 "아바마마, 부디,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사유는 눈을 감은 채 침묵을 지켰다. 자신의 잘못으로 연에 사로잡혀간 어머니를 생각하면 허락하고 싶었지만, 구부가 연에 볼모로 간다면 생전에 다시는 못 볼 것 같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유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

 "네가 연에 볼모로 간다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느냐?"

 "태후마마와 어마마마를 모셔올 수 있다면, 소자, 다시는 조국의 땅을 밟지 못한다 하여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사유는 구부의 지극한 효성에 가슴이 뭉클해져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들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고 싶었지만, 목이 매여 입이 열리지 않았다. 사유는 구부의 손을 잡았다. 구부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부디,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사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죽는다면 모용황이 구부를 볼모로 잡을 명분이 없을 것이다. 다만 이승에서는 구부를 다시 보기 힘들터이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구나!'

 '아니다. 국력을 키워 모용황을 굴복시킨다면, 구부를 돌려보내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사유는 한참 망설이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구부야, 정녕 그것이 너의 뜻이라면, 윤허하겠노라."

 구부는 몹시 기뻐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소자의 청을 들어주시니,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소자, 기필코 태후마마와 어마마마를 모셔오겠나이다."

 사유의 윤허를 받아낸 구부는 연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연으로 떠날 채비가 끝나자, 숙부인 고무를 찾아가 하직인사를 올렸다.

 "숙부님, 아바마마를 잘 보필하소서."

 "태자 저하의 기대를 져버리지 아니하겠나이다. 부디, 돌아오실 때까지 강녕하소서."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구부는 동생 이련을 불렀다.

 "이련아, 만약 내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네가 왕이 되어 나라를 잘 다스리기 바란다. 강한 왕이 되어 다시는 나라가 오랑케에게 치욕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느니라. 약조할 수 있겠느냐?"

 이련은 눈물을 글썽인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찌 제가 형님을 두고 왕위에 오를 수 있겠나이까? 만약 모용황이 형님을 보내지 아니한다면, 이 아우가 볼모가 되어 형님을 모셔오겠나이다."

 구부는 이련의 말에 가슴에 뭉클해졌다.

 "나를 생각하는 너의 마음, 참으로 갸륵하구나!"

 숙부 고무와 동생 이련에게 작별인사를 한 구부는 사유의 처소로 갔다.

 "아바마마, 소자가 돌아올 때까지 부디, 옥체 강녕하소서."

 사유는 아들을 생전에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사유는 쏟아지는 눈물을 참으며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구부야, 부디, 몸 건강히 잘 지내거라. 내,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필코 너를 데려올 것이다."

 "아바마마, 비록 모용황이 무도한 자라 하나, 도리를 전혀 모르는 자가 아니니, 때가 된다면 소자를 돌려 보내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옵니다. 심려치 마소서."

 "구부야......."

 사유는 목이 매여 말을 잇지 못했다. 구부는 하직인사를 올린 후 처소를 떠났다. 구부가 떠나자, 사유는 눈물을 흘리며 크게 탄식했다.

 "구부야, 모든 것이 이 못난 아비의 탓이로구나! 아불화도의 계책을 따르지 아니한 것이 천추의 한이로다! 아불화도여, 그대가 그립구나!"

 

 한편 연나라의 도성 용성의 황궁에 당도한 구부는 연왕 모용황을 알현하였다.

 "고구려의 태자 구부, 대연(大燕)의 폐하를 알현하나이다."

 모용황은 구부를 보자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구부 세자, 참으로 오랜만이구나. 그간 무탈하게 지내었는고?"

 구부는 5년전 용성에 사신으로 와서 모용황을 알현했었다. 그 당시 겨우 13살이었던 구부는 어느덧 늠름한 청년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구부는 긴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소신의 조모와 모친께서 이곳에 잡혀 계신데, 어찌 무탈히 지낼 수 있겠나이까? 소신이 온 것은 소신의 조모이신 태후마마와 모친이신 왕후마마의 귀환을 청하고자 함이나이다. 고구려는 세세토록 대연을 섬길 터이니, 부디,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모용황은 태후와 왕후를 돌려보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무어라 핑계를 댈지 생각하느라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짐이 고구려의 태후와 왕후를 볼모로 잡고 있는 연유는 연과 고구려 양국의 평화를 위해서일세. 오래전부터 고구려는 천신의 후손인 우리 선비족을 오랑케라 핍박하여 짐은 하늘을 대신하여 고구려를 응징했거늘, 고구려인들은 아직도 죄를 뉘우치지 못하고 짐을 불구대천 원수로 여기고 있으니, 어찌 태후와 왕후를 송환시켜 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오해이옵니다. 고구려의 태왕께서 이미 폐하를 주군으로 섬기고 계시온데, 어찌 고구려의 백성들이 폐하께 불온한 마음을 품을 수 있겠나이까?"

 모용황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구려의 태후와 왕후를 볼모로 잡고 있는 것은 양국의 평화를 위해 불가피한 일임을 그대는 정녕 모르는가? 짐의 뜻은 확고하니, 그리 알라."

 "폐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소신을 볼모로 하고, 태후마마와 왕후마마를 귀환시켜 주시기를 청하나이다. 소신의 청을 들어주시면, 태산같은 폐하의 은혜, 이 몸이 살아있는 한 결코 잊지 아니하겠사오니, 부디,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구부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애절하여 모용황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지만, 모용황은 현숙하고 아름다운 주왕후를 보내줄 마음이 없었다.

 '주왕후는 효성이 지극하여 태후를 남겨 두고 혼자 떠나지는 아니할 것이다. 태후는 나이가 많아 언제 죽을 지 모르니, 구부를 볼모로 잡고, 태후만 보내주는게 좋을 듯 싶구나.'

 모용황은 선심쓰듯이 말했다.

 "그대의 뜻이 정 그러하다면, 그대를 볼모로 두고, 태후와 왕후 중 한 사람을 송환시켜 줄 수는 있네. 그리 하겠는가?"

 구부는 곰곰히 생각했다.

 '어마마마께서 어찌 태후마마를 두고 떠나실 수 있겠는가? 모용황, 참으로 교활하기 짝이 없구나! 허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자는 모용황이니 어쩌겠는가? 그리하는 수 밖에. 할마마마께서 돌아가신다면, 아바마마께서 말할 수 없이 기뻐하실 것이다.'

 구부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리하여 주신다면, 폐하의 은혜, 결코 잊지 아니하겠나이다."

 

 모용황은 고구려 주왕후의 처소를 찾아갔다. 주왕후는 모용황을 보자,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폐하께서 어인 일이시나이까?"

 주왕후는 지극히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고결한 성품을 지닌 여인으로 모용황은 그녀에게 연정을 품고 있어 고구려로 송환시켜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녀가 절개있는 여인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자신의 감정을 차마 말할 수 없었지만, 가끔이라도 이런 저런 핑계로 그녀를 만나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대에게 좋은 소식을 알려주러 왔노라."

 주왕후는 혹시나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한가닥의 희망을 품고 물었다.

 "좋은 소식이라하심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이나이까?"

 "그대의 아들, 구부가 짐을 찾아왔소. 자신을 볼모로 잡고, 주태후와 그대를 보내달라 하더이다. 하여 주태후와 그대 중 한명을 보내줄 생각이오. 그대의 생각은 어떻소?"

 주왕후는 구부의 효성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옷고름으로 눈물을 훔친 후 말했다.

 "폐하께서 태후마마와 신첩 모두 보내주신다 하여도 태후마마께서는 윤허하지 아니할 것이옵니다. 신첩 또한 태후마마의 뜻을 따를 것이나이다."

 "그대의 뜻이 정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구려."

 주왕후는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폐하, 신첩에게 청이 하나 있나이다."

 "무엇이오?"

 "부디, 태자를 만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태후마마께서도 태자를 보고 싶어하실 터이니, 태후마마와 신첩이 태자를 만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용황은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내, 태후와 구부 태자를 곧 이리로 부리리다."

 주왕후는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폐하의 하해같은 성은, 망극하나이다."

 모용황은 이내 처소를 떠났다. 잠시 후 주태후가 시녀와 함께 처소로 들어왔다.

 "구부가 왔다는 말이 사실이냐?"

 "그러하옵니다. 태자가 우리를 대신하여 볼모로 남겠다 대왕께 청하였다 하나이다."

 주태후는 몹시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될 말이다. 어찌 왕위를 이을 태자가 타국에 볼모로 잡힐 수 있단 말이냐? 절대 윤허할 수 없다. 대왕께서는 무어라 말씀하시더냐? 너는 무어라 하였느냐?"

 "태후께서 윤허하지 아니할 것이라 말씀드렸나이다."

 "잘했다. 그래, 그래야지. 어찌 왕위를 이을 태자를 볼모로 있게 할 수 있겠느냐?"

 얼마 후 모용황의 시종이 구부를 데려왔다. 구부는 주왕후와 주태후를 보자 눈물을 쏟으며 큰 절을 했다.

 "태후마마, 어마마마, 소자가 왔나이다."

 태후는 나무라듯이 말했다.

 "태자가 어찌 여기에 온 것이냐? 듣자하니, 네가 우리를 대신하여 볼모로 남겠다 하였다더구나. 그게 될 법한 소리냐? 나라의 사직이 너에게 달린 것을 정녕 모르느냐?"

 "태후마마께 근심을 끼쳐 송구하옵니다. 하오나, 소자는 때가 되면, 고구려로 돌아갈 수 있을 터이니, 할마마마와 어마마마를 고구려로 모셔가기를 원하나이다. 바라옵건데,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절대 아니될 말이다. 나와 왕후는 결코 너를 볼모로 남겨두고, 돌아가지는 아니할 것이다."

 구부는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하오나...... 아바마마께서 할마마마와 어마마마를 생각하시며 슬퍼하시고 계시온데, 어찌 자식된 도리로 보고만 있을 수 있겠나이까?"

 태후는 구부의 지극한 효성에 말할 수 없이 기뻤지만, 노한 척하며 꾸짖었다.

 "어허, 아직도 이 할미의 말을 못 알아 듣는고?"

 옆에서 주태후와 구부의 말을 듣고 있던 주왕후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주왕후는 장성한 아들의 지극한 효성을 보니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주왕후는 눈물을 옷고름으로 닦은 후 애틋한 눈빛으로 구부를 바라보며 말했다.

 "구부야, 태후마마의 뜻에 따르거라. 너는 언젠가는 나라의 지존이 될 몸이거늘, 어찌 타국의 볼모로 있을 수 있겠느냐? 네가 정말 이 어미와 태후마마를 생각한다면, 위로는 폐하를 잘 보필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잘 보살펴 만인의 존경받는 태자가 되거라. 또한 때가 되어 제위에 오른다면, 역사에 남는 성군이 되어 나라를 빛내거라. 그리만 된다면, 이 어미는 여한이 없을 것이다. 알겠느냐?"

 구부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

 "어마마마의 말씀, 소자, 삼가 명심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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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초고왕 34화

 

 

 쏟아지는 쇠뇌를 뚫고 나간 고구려군이 앞길을 가로막은 부여군과 맞부디치려는 순간, 부여군의 진영에서 천지를 개벽할 듯한 함성소리가 났다. 부여구가 나타난 것이다.

고구려군은 부여구를 보자 소스라칠 정도로 놀라 멈칫거리며 서로 눈치만 보았다. 고무는 부여구의 계략에 속았음을 깨달았지만, 뒤에는 목라근자가 버티고 있어 물러날 수도 없었다. 고무는 우뢰같은 소리로 외쳤다.

 "적진을 뚫고 나가라!"

 부여구는 검을 치켜 들며 외쳤다.

 "돌격하라!"

 부여구의 명이 떨어지자, 사방에서 부여군이 쏟아져 나와 맹렬한 기세로 고구려군을 덮쳤다. 부여군의 맹렬한 공격에 고구려군의 전열이 힘없이 무너졌다. 부여구는 수백기를 이끌고 고구려군을 향해 돌진했다. 순식간에 수십명의 고구려군이 부여구의 검을 맞고 쓰러졌다. 부여구가 이끄는 부여군의 기습에 고구려군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목라근자가 이끄는 부여군이 고구려군의 후위를 들이쳤다. 앞으로는 부여구, 뒤로는 목라근자, 앞뒤로 협공을 당한 고구려군은 싸울 투지를 잃어 투항하거나 달아나는 자가 속출했다. 여노는 전세가 기울었음을 깨닫고 고무에게 말했다.

 "대장군, 상황이 위급하니 속히 물러나소서! 여기는 소장이 목숨을 걸고 막겠나이다."

 고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거늘, 어찌 내가 전장을 떠날 수 있겠느냐? 전서구(전령을 전하도록 훈련받은 비둘기)는 띠웠느냐?"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급히 추격하느라 전서구를 데려오지 못하였나이다."

 고무는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허면, 속히 주현 장군에게 아군을 구원하라는 전령을 보내거라."

 "대장군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여노는 아불연에게 명했다.

 "그대에게 척후병 10기를 줄터이니, 퇴로를 뚫고 나가 주현 장군께 대장군의 전령을 전하게. 할 수 있겠는가?"

 "소장,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하겠나이다."

 아불연은 척후병 10기를 이끌고 숲속으로 들어가 본진으로 가는 길을 찾았지만, 부여군이 진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아불연은 척후병 10기와 함께 말을 몰아 돌진했다. 치열한 싸움 끝에 척후병들은 모두 죽거나 사로잡히고 아불연 혼자서 수십명의 부여군을 베고 뚫고 나갔다. 본진에 도착한 아불연은 주현에게 고무의 전령을 전했다. 주현은 즉시 전군을 이끌고 진지를 떠났다.

 

 한편 미주류는 2천기를 산길에 매복시킨 후 주현이 이끄는 고구려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쇠뇌수 대장 사기가 미주류에게 말했다.

 "그대가 쇠뇌수를 지켜야 이번 전투를 이길 수 있소. 아시겠소?"

 "내, 병사들과 함께 육력을 다해 쇠뇌수를 지킬 터이니, 걱정 마시구려."

 미주류와 병사들이 숨을 죽인 채 고구려군을 기다리고 있을 때 척후병이 도착했다.

 "1만 쯤 되는 고구려군이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사옵니다."

 미주류는 붉은 깃발을 올려 병사들에게 전투 태세를 갖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부여군은 전투 태세를 갖춘 후 숨을 죽인 채 명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주현이 이끄는 고구려군이 매복 장소에 이르자 미주류는 붉은 깃발을 높이 치켜 들었다. 부여군은 일제히 시위를 당겼다. 사방에서 화살과 쇠뇌가 쏟아졌다. 순식간에 수백의 고구려군이 쇠뇌나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주현은 검을 높이 치켜 들며 외쳤다.

 "매복이다! 방패를 세워 돌격하여 매복을 뚫거 나가라."

 고구려군은 방패를 세워 돌격했지만, 매복해있던 부여군이 쏟아져 나오며 길을 가로 막았다. 쇠노를 앞세운 부여군의 기세가 자못 대단하여 부여군보다 다섯배나 많은 고구려군이 오히려 밀렸다. 주현은 쇠뇌의 사정 거리 밖인 3백보를 후퇴할 것을 명했다.

 "3백보 후퇴하라!"

 주현의 명이 떨어지자 고구려군은 3백보 후퇴했다. 고구려군이 길을 가로 막은 부여군과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을 때, 요서성의 동태를 살피는 임무를 맡은 척후병이 도착하여 주현에게 보고했다.

 "장군, 지금 요서성의 성주 사백이 수천기를 이끌고 이쪽으로 오고 있사옵니다."

 주현은 몹시 놀라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뭣이? 사백이 수천기를 이끌고 오고 있다고?"

 주현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아불연에게 말했다.

 "양쪽에서 부여군에 협공당하면 위험에 빠질 터이니, 즉시 퇴각해야겠네. 내 그대에게 2천기를 줄터이니, 대장군을 구하게. 나는 산 밑에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그리로 대장군을 모셔오게."

 아불연은 2천기를 이끌고 본진으로 올 때 왔던 길로 진군했다. 아불연이 이끄는 고구려군은 길목을 지키고 있던 부여군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뚫고 나갔다. 도착하여 보니, 고구려군이 일방적으로 몰리고 있었다. 아불연은 병사들과 함께 부여구가 이끄는 부여군을 향해 돌격했다. 갑자기 나타난 고구려군의 돌격에 부여군이 멈칫하는 사이, 고무는 병력을 수습하여 퇴로를 뚫고 나갔다.

 고무는 주현이 이끄는 고구려군과 합류한 후 병력을 확인했다. 13000명도 안되었다. 고무는 참담한 표정을 지으며 탄식했다.
 "정병 2만으로 1만도 못되는 부여군에 이토록 무참하게 참패하였으니, 무슨 낯으로 폐하를 뵐 수 있겠는가?"
 고무는 패잔병을 수습하여 고구려로 퇴각했다.


 고구려군이 퇴각하자, 부여구는 장수들을 소집하여 전황을 보고받았다. 미주류는 몹시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고구려군의 사망자는 5천이 넘을 듯 하옵고, 투항한 자는 1천이 넘사옵니다. 노획한 말은 2천 마리는 족히 넘을 것으로 보이옵니다. 반면에 아군의 손실은 수백명에 불과하다 하옵니다. 아군의 완벽한 승리이옵니다." 

 부여구는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연군의 동태는 어떠하다더냐?"
 "연군은 이미 국경을 넘어갔다 하옵니다."
 부여구는 전쟁터에 죽어 있는 부여군과 고구려군을 보니,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부여와 고구려 모두 동명왕의 후손이거늘, 어찌 서로가 피를 흘리며 이토록 처절하게 싸워야 한단 말인가?'

 부여구가 부상자들을 살펴보고 있을 때 요서성의 성주 사백이 수하 장수들을 거느리고 찾아왔다.
 "요서성 성주 사백, 대장군께 인사 올리나이다."
 "수고가 많았소. 그대가 그동안 버틴 덕분에 아군이 대승을 거둘 수 있었으니, 그대의 공이 실로 크오."
 "대장군께서 소장의 작은 공을 크게 치하해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이때 사사노궤가 말을 몰아 다가와 말에서 내린 후 부여구에게 인사를 올렸다. 
 "호위대장 사사노궤, 대장군께 보고 드릴께 있나이다."

 "보고 하거라."

 "공주마마께서 응원군을 이끌고 당도하셔 이곳으로 오시고 계시나이다."

 부여구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공주께서 친히 응원군을 이끌고 오셨단 말이냐?"

 "그러하옵니다. 공주마마께서는 용병술에 능하셔 나라가 위급할 때면 친히 장군이 되어 전장에 나서시곤 하옵니다."

 부여구는 사사노궤의 설명을 듣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헌데, 사사노궤, 오늘 참으로 용맹하게 잘 싸웠다. 내 폐하께 너의 공을 크게 치하할 것이다."

 "대장군께서 소장의 작은 공을 폐하께 크게 치하해 주시겠다니,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사백은 사사노궤를 가리키며 말했다. 
 "소장의 아들이옵니다."
 "참으로 용맹스러운 아들을 두었구려."
 "소장의 아들은 아직 나이가 어려 부족한 점이 많사오니, 아무쪼록 대장군께서 지도해주시기 부탁드리옵니다."

 사사노궤는 넙죽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소장, 부족한 점이 많사오니, 앞으로 많은 지도 부탁드리겠사옵니다."


 잠시 후, 갑옷을 입은 여혜가 홀로 말을 몰고 나타났다. 
 "어찌 공주께서 친히 여기까지 오신 것이오?"
 "귀족들의 자제들이 평민 출신의 장수들의 명에 불복종한다 하여 첩이 대장이 되어 왔나이다. 너무 늦게 당도하여 송구하나이다."

 여현왕은 평민이라도 재능이 있으면 장군으로 중용하였는데, 귀족들의 자제들이 평민 출신 장수들의 명에 불복종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여혜가 대장이 되어 온 것이다. 부여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치 아니한 말이오. 그대는 천하의 둘도 없는 여장부이니, 고구려군이 그대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겁을 먹어 퇴각한 것인지 누가 알겠소?" 
 여혜는 부여구의 농에 입을 가리고 살며시 웃었다. 여혜가 웃는 모습은 더할 나위없이 아름다웠다. 부여구는 여혜의 웃는 모습을 보자, 백제의 태자 시절에 해연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곤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순간 그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태자비가 어찌 지내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구나!'
 여혜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무슨 근심 거리라도 있나이까?"
 부여구는 뭐라고 말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아니오. 이번 전투에서 전사한 병사들을 생각하니......"
  여혜는 긴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비록 아군이 대승하였다 하나, 전사한 병사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애석하기 그지 없나이다."
 여혜는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부여구는 공연한 말로 여혜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부여구는 잠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한 후 입을 열었다. 
 "아군이 대승하였으니, 전투에 참가한 모든 병사들을 도성에 초대하여 연회를 베풀어 위로하는 것이 어떻겠소?"
 "참으로 좋은 생각이옵니다."
 
 부여구는 여혜와 함께 병사들을 이끌고 부여성으로 돌아왔다. 부여성의 백성들은 부여구와 여혜를 보자 만세를 외치며 열렬히 환호했다.
"천자 폐하 만세! 공주마마 만세! 부여 만세!"

 여현왕은 부여구의 뜻대로 전투에서 이긴 장수들과 병사들을 위해 연회를 베풀었다.
 2만에 이르는 병사들이 술을 마시니 도성에 있는 술이 모두 동이 날 지경이었지만, 백성들은 조금도 불평하지 않았다. 용맹스럽게 싸워 연군과 고구려군을 격파한 장수들과 병사들이 자랑스러울 뿐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장수들과 병사들이 한 마음으로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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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배달민족 치우천황 22화 (신재하 작가의 역사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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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고 보니, 전투신에 부족하거나 어색한 부분이 있어 조금 수정했습니다.
 처음에 포스팅한 내용과 다른 부분이 있어 수정해서 다음뷰에 재전송합니다. 

 근초고왕 33화

 

 

 부여군은 넓은 산길로 퇴각했다. 고무는 기병 일만기를 이끌고 부여군을 추격했다.

 요서성에서 십리 정도 떨어진 산길에서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추격전이 펼쳐졌다.

 숲이 울창한 산길에 이르자, 고무의 부장 여노는 미천왕 시절에 하성에서 연의 장수 장통의 매복에 당해 포로가 되었던 치욕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대장군, 숲속에 매복이 있을지 모르니, 추격을 멈추는 것이 좋을 듯 하옵니다."

 "지금 부여 정예병 대부분이 서쪽에 있으니 하늘이 주신 기회가 분명하이거늘, 어찌 매복을 두려워하여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느냐?"

 "대장군의 뜻이 정 그러하시다면, 전위대를 앞세워 매복에 대비토록 하소서."

 "좋다. 그대에게 철기병 삼천기를 줄 터이니, 전위를 맡아 매복에 대비토록 하라."

 여노는 자신의 부장 아불연과 아란태를 선봉에 내새워 부여군을 추격하였다.

 

 부여군과 고구려군의 간격이 화살의 비거리 안으로 좁혀지려는 순간, 사방에서 우뢰같은 함성소리가 울리며 숲속에 매복해있던 부여군이 쏟아져나왔다. 부여군은 맹렬한 기세로 고구려군을 덮쳤다. 라근자는 말을 멈추어 세운 후 외쳤다.

 "돌격하라! 적군이 매복에 걸렸다. 섬멸하라!"

 목라근자는 창을 꼬나잡은 채 고구려 전위대를 향해 돌진했다. 목라근자의 창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고구려군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목라근자의 용맹에 고구려군의 전열이 무너졌다.

 여노는 목라근자의 용맹에 기가 질렸지만, 고구려군 진영이 무너지는 것을 수수방관할 수 없어 목라근자를 향해 말을 몰며 외쳤다.

 "애송아, 나의 창을 받아라!"

 목라근자는 코웃음을 친 후 말없이 여노를 향해 말을 몰았다. 여노는 방패를 버린 후 두손으로 창을 잡고서 목라근자를 향해 말을 달렸다. 여노는 혼신을 다해 창을 휘둘렀다. 목라근자는 방패로 막은 후 창으로 여노를 힘껏 내리쳤다. 여노는 가까스로 창을 들어 막았지만, 목라근자의 힘을 당하지 못해 창을 놓쳤다. 목라근자가 여노를 창으로 찌르려는 순간 여노의 부장 아란태가 목라근자를 향해 창을 던졌다.

 목라근자는 방패를 들어 막았다. 창을 잃은 여노와 아란태는 검을 뽑아 양쪽에서 목라근자를 협공했지만, 목라근자의 용맹을 당하지 못해 오히려 수세에 몰렸다. 여노와 아란태가 수세에 몰리자, 이를 지켜보던 아불연은 창을 치켜든 채 목라근자를 향해 말을 몰며 외쳤다.

 "대단한 창술이구나! 이름이 무엇이냐?"

 "나는 목라근자다! 너는 이름이 무엇이냐?"

 "나는 아불연이다!"

 아불연은 3년전 연나라 모용황의 고구려 칩입 때 태왕 사유의 잘못된 전술로 연의 장수 한수에게 죽임을 당한 비운의 명장 아불화도가의 아들이다. 아불연은 용맹무쌍하게 돌진하여 창으로 목라근자를 찔렀다. 목라근자는 방패로 막은 후 창으로 아불연을 힘껏 내리쳤다. 아불연은 방패를 들어 막았지만, 손아귀가 찢어질 듯이 아팠다. 목라근자는 연이어 창으로 아불연을 힘껏 내리쳤다. 아불연은 목라근자의 엄청난 힘을 당하지 못해 방패를 놓쳤다. 목라근자는 아불연이 방패를 놓치자 재빠르게 창으로 찔렀다. 아불연은 두손으로 창을 휘둘러 목라근자의 창을 막았다. 여노와 아란태가 동시에 양쪽에서 검으로 찔렀다. 목라근자는 방패로 아란태의 검을 막고, 창으로 여노의 검을 막았다. 목라근자가 협공당하는 틈을 타서 아불연은 창으로 목라근자를 찔렀다. 목라근자는 반사적으로 창을 들어 아불연의 창을 막았다. 아불연, 여노, 아란태는 세 방향에서 목라근자를 공격했다. 세 장수가 합동하여 공격하자, 목라근자는 수세에 몰렸다. 목라근자는 수세에 몰리자, 방패를 버리고 검을 뽑아 들었다. 한손에는 창, 한손에는 검을 든 목라근자는 아불연, 여노, 아란태의 합동 공격을 막으며 빈틈을 노렸다.

 아불연과 아란태는 눈짓을 교환한 후 양쪽에서 목라근자를 협공했다. 목라근자는 아불연의 창을 창으로 막은 후 혼신을 다해 검으로 아란태의 검을 후려쳤다. '쨍'하는 소리와 함께 아란태의 검이 두동강이 났다. 목라근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창으로 아란태의 말을 찔렀다. 아란태는 부러진 검으로 목라근자의 창을 막으려 했지만, 검이 짧아 닿지 않았다. 아란태의 말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아란태도 말과 함께 쓰러졌다. 여노와 아불연은 아란태가 무사한지 확인하느라 순간 멈칫 하였다. 목라근자는 세 장수의 합동 공격을 상대할 자신이 없어 이 틈을 타서 말을 돌려 부여군 진영으로 퇴각했다. 여노가 외쳤다.

 "전열을 정비하라!"

 목라근자가 퇴각하자, 사사노궤가 수백기를 이끌고 고구려 전위대를 향해 돌진했다. 사사뇌궤는 창끝에 검이 달린 창을 휘두르며 고구려군을 유린했다. 순식간에 수십명의 고구려군이 사사노궤의 창에 찔려 쓰러졌다. 목라근자는 사사노궤의 창술에 감탄했다.

 '작은 형님의 창술이 이토록 대단하실 줄이야!'

 목라근자는 말을 몰아 사사노궤가 이끄는 부여군에 합류했다. 목라근자는 고구려 전위를 휘졌고 다니며 인정사정없이 고구려군을 베었다.

 

 목라근자와 사사노궤가 함께 용맹을 떨치자 고구려 전위대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천하무적이라는 철기병으로 이루어진 고구려 전위대가 힘한번 써보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다. 전위대가 무너졌다는 보고를 받은 고무는 친히 기병 3천기를 이끌고 구원왔다.고무가 이끄는 3천기가 전위대에 합류하자, 부여군에 퇴각을 명하는 북소리가 울렸다. 고구려군은 전열이 흐트러진 상태였기 때문에 목라근자는 어리둥절했다.

 '아군이 승기를 잡았거늘 태자께서는 어찌 퇴각 명을 내리신 것일까?'

 퇴각을 명하는 북소리가 울리자, 목라근자는 병사들을 이끌고 퇴각했다.

 목라근자는 고구려군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의아한 표정으로 사사노궤에게 물었다.

 "아군이 승기를 잡았는데, 대장군께서는 무슨 연유로 퇴각 명을 내리셨을까요?"

 사사노궤는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대장군의 부장인 네가 모르는데, 난들 대장군의 깊으신 뜻을 어찌 알겠느냐?"

 목라근자는 미주류는 부여구의 속내를 알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형님은 어디 계십니까?"

 "나도 잘은 모르나, 여기 없는 걸 보니 아마도 대장군과 함께 계시는 모양이네."

 

 한편 부여군이 퇴각하자, 고무는 퇴각 명을 내렸다. 

 "퇴각 명을 내리라."

 아불연이 분한 듯이 상기된 표정으로 고무에게 말했다.

 "대장군, 지금 부여군의 진영에는 부여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아군의 병력이 적군보다 두배 이상 많사온데, 어찌 추격하지 아니하고, 퇴각 명을 내리시나이까?"

 "매복이 또 있을지 모르니, 추격하는 것은 무리일세. 게다가 부여군은 연전연승으로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지 아니한가?"

 여노가 아불연에게 말했다.

 "나 또한 추격은 무리라 생각하네. 계속 가면 좁은 산길이 나오는데, 좁은 산길에서 한창 기세가 오른 부여군을 이길 수 있겠느냐?"

 

 고구려군은 맥이 풀린 상태에서 왔던 길로 퇴각했다.

 산길 중턱에 이르렀을 때, 사방에서 우뢰같은 함성소리가 들리며 쇠뇌가 쏟아졌다. 고무는 경악하며 외쳤다.

 "쇠뇌다! 방패를 들어 쇠뇌를 막으라!"

 숲속에 매복해있던 부여군이 용맹스럽게 고구려군을 향해 돌진했다. 예상치 못한 부여군의 매복과 기습에 고구려군은 순식간에 전열이 무너졌다.

 고무는 병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적진을 뚫고 나가라."

 앞에 있는 고구려군이 매복을 뚫고 나가니, 쇠뇌가 무수히 날아와 고구려군을 쓰러뜨렸다. 순간 수백의 부여군이 숲속에서 쏟아지며 고구려군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고무는 척후병들에게 명했다.

 "아군이 적군의 매복에 진퇴양난에 쳐했으니, 본진에 있는 주현 장군에게 속히 아군을 구원하라는 명을 전하라."

 척후병들은 숲길로 돌아 본진으로 가려고 했지만, 부여군은 숲길을 철통처럼 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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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개구리 남편

창작집 2011. 4. 13. 07:20


  케이트는 주인 마님인 피터슨 부인의 부름을 받았다.
 "마님, 부르셨습니까?"
 "케이트, 너도 이제 시집갈 나이가 되었구나. 넌 착한 여자이니 내가 특별히 좋은 혼처를 구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마님, 저를 생각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하지만 저는 아직 18살이고 배울 것이 많아 주인 마님을 더 모시면서 주인 마님께 더 많은 것을 배운 후에 시집가고 싶어요."
 "아니다, 케이트, 여자 나이 18살이 가장 시집가지 좋은 나이다. 자질구래한 일은 시집가서 배우면 될 것이니 내 말을 듣거라."
 "주인 마님께서 그동안 저에게 잘해주셨는데, 저는 주인 마님을 위해서 한 일도 없는걸요. 좀 더 주인 마님을 위해서 일한 후에 시집가고 싶어요."
 "케이트, 너도 알다시피 나는 너를 딸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네가 정말 나를 생각한다면 내 말대로 좋은 곳에 시집가서 잘 사는 것이다."
 케이트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주인 마님의 은혜, 절대 잊지 않겠어요."

 피터슨 부인은 주인 어른인 피터슨 씨의 방으로 갔다.
 "여보, 아시다시피 케이트가 시집갈 나이가 되었어요. 그러니 당신이 케이트의 혼처를 알아봐 주세요."
 피터슨 씨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말했다.
 "여보, 케이트는 아직 18살밖에 안 되었으니 혼인을 서두를 필요가 없소. 무엇보다 케이트는 아직 글자도 못 읽는데, 어떻게 좋은 곳에 시집 보낼 수 있겠소? 그러니 케이트가 글자를 배운 후에나 혼처를 알아 보는 것이 좋겠소."
 "당신 생각도 일리가 있군요. 제가 케이트에게 글자를 가르쳐 줄테니 케이트가 글자를 배우면 당신이 좋은 혼처를 알아 봐주세요."

 그 날부터 피터슨 부인은 케이트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었다.
 케이트가 열심히 글자 쓰기를 하고 있을 때 피터슨 씨가 케이트를 방으로 불렀다. 
 "케이트, 글자 공부는 잘 되니?"
 "네, 주인님. 주인 마님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케이트, 네가 떠나면 우리는 네가 그리울 거다. 특히 네 마님은 너를 딸처럼 생각해서 네가 떠나면 가슴이 아플거다."
 "저도 알아요. 그래서 제가 마님께 좀 더 있다가 떠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마님께서는 지금 혼인하는 것이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셔서요."
 "케이트, 사람이 가끔은 융통성이 있어야지. 네가 글자를 좀 천천히 익히면 되지 않겠니?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네... 주인님의 뜻에 따르겠어요."

 피터슨 부인은 케이트에게 열심히 글을 가르쳤지만, 케이트는 2년이 되서야 편지를 쓰고 읽을 수 있게 되었고, 피터슨씨는 케이트의 혼처를 구하였다.
 케이트의 혼담이 오고 가던 어느 날 피터슨 부인이 쓰러졌다. 
 의사는 피터슨 부인을 진찰한 후에 피터슨씨에게 말했다.
 "부인은 병이 깊어 오래 사셔도 3년 이상을 사실 수 없습니다. 하지만 피터슨 씨, 당신이 부인의 병을 지극 정성으로 돌봐준다면... 기적이 일어나 나을 수 있으니 희망을 잃지 마시길 바랍니다."
 의사가 떠나자 케이트는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피터슨 씨에게 물었다.
 "주인님, 주인 마님의 병은 어떤가요? 별거 아니지요?"
 피터슨 씨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케이트, 미안하지만... 네가 나를 도와주어야 되겠다. 의사말로는 네 마님은 3년 이상 살기가 힘들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내가 지극 정성으로 돌봐준다면 나을 수도 있다고 하셨다. 케이트, 나를 도와줄꺼지?"
 "네, 주인님, 주인 마님께서 일어나시기 전에는 절대 떠나지 않겠어요."

 어느새 2년이 더 지났다.
 피터슨
부인의 병은 날로 악화되어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여 피터슨 씨를 불렀다.

 "여보, 이제 저는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아요. 저는 당신에게 시집와서 행복하지 못했지만 어찌 그것이 당신만의 탓이겠어요? 당신에게 자식을 안겨주고 싶었지만...  이제는 영원히 그럴 수 없게 되었네요."
 "그런 말 하지 마시오, 부인. 힘을 내야지요. 당신은 죽지 않을 것이오. 용기를 내서 병마와 싸워요."
 "저는... 더이상... 가망이 없어요.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부탁을 할께요. 그동안 저를 돌봐준 케이트를 잘 부탁드려요. 당신은...  그녀와 결혼하세요. 이미 제가 그녀에게도 당신과 결혼할 것을 부탁했어요. 그녀와 결혼해서 가문의 대를 이으세요. 그녀는 정말 착한 아이니 당신은 그녀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말고 잘해주세요. 부탁드려요..."

 피터슨 부인은 케이트를 불렀다.
 "케이트, 좋은 혼처를 구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하지만 이것도 운명이 아닐까 싶다. 내가 죽거든 내 남편과 결혼하거라. 그는 너에게 잘해줄 것이다."
 "주인 마님, 아니예요. 모두 다 제 잘못이예요. 제가 글공부를 게을리해서..."
 "이미 이렇게 된 일... 돌이킬 수 없으니 어쩌 겠느냐? 너는 이미 혼기가 지나 좋은 혼처를 알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 내 남편하고 결혼하거라. 내 남편을 부탁한다."

 그 말을 남기고 부인은 세상을 떠났다.
 피터슨 씨는 크게 탄식하며 눈물을 쏟았다.
 "여보, 내가 잘못했소. 당신이 살아있을 때 내가 너무 소흘했소. 케이트가 시집가지 못한 것도 다 나 때문이었소. 나는 케이트를 사랑하여 그녀가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아 그녀에게 글자공부를 열심히 하지 말라고 했었지. 난 정말 나쁜 사람이오."
 피터슨 씨는 케이트에게 말했다.
 "케이트, 이제부터 너는 내 딸이다. 예전에 네 마님이 나에게 너를 양녀로 삼자고 했지만, 나는 너를 좋아했기 때문에 반대했다. 나를 용서하거라. 하지만 이제부터 너를 내 친딸처럼 잘 대해줄 것이다."
 "주인님, 다 지난 이야기 꺼내서 무엇하겠어요. 전 마님의 뜻에 따라 주인님께 시집와서 주인님을 보살펴 드리고 싶어요."
 "네 마음은 고맙지만, 나는 이미 결심했다. 이제부터는 오직 그녀만을 바라보고 살겠다고... 여보, 그동안 내가 당신을 속썩여서 정말 미안하오."
 
 20년 후...
 피터슨씨는 죽을 병에 걸렸다.
 피터슨씨의 양녀가 된 케이트는 피터슨씨의 곁에서 간호했지만, 얼마 후에 세상을 떠났다.
 케이트는 피터슨씨의 시신을 피터슨 씨의 부인 곁에 묻었다.
 케이트는 피터슨씨의 무덤에 가서 보니, 청개구리 한마리가 피터슨씨의 무덤위를 뛰어 다녔다.
 "청개구리야, 나의 아버님 무덤에서 뛰어 다니지마."
 하지만 청개구리는 계속 피터슨씨의 무덤을 뛰어 다녔다.
 케이트는 청개구리를 잡으려고 했지만, 잡히지 않아 채념하고 말했다.
 "그래, 마음대로 해라. 네가 무덤에서 뛰어 논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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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초고왕 줄거리

창작집 2011. 4. 10. 10:30
 

왜적의 침략으로 백제의 절세의 미녀 아랑이 납치되었습니다. 이를 분개한 근구수 태자는 근초고왕에게 자신을 규슈를 제외한 일본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는 야마토에 사신으로 보낼 것을 청합니다. 근초고왕은 이를 윤허하였고, 근구수 태자는 첫눈에 반하여 백년가약을 약조한 야마토국의 아이꼬 공주의 도움으로 왜적에게 납치당한 아랑을 무사히 구했습니다.

근구수 태자는 근초고왕에게 아이꼬 공주와의 혼인을 윤허해줄 것을 청했고, 근초고왕은 야마토와의 동맹을 통해 남방의 맹주가 되고자하는 야심이 있었기에 흔쾌히 윤허했습니다.

이때 젊은 나이에 요절한 해씨 왕후가 떠올라 천신만고 끝에 백제의 왕이 되었던 과거의 기억으로 되돌아갑니다.

부여구(근초고왕의 이름)는 태자였지만, 비류왕이 죽자 부여계(계왕)에게 왕위를 빼앗겼는데, 부여계는 부여구를 제거하기 위해 고구려에 볼모로 보내려고 했습니다. 이에 부여구는 탈출하여 부여에 망명했습니다. 부여는 당시 연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태로웠는데, 부여구를 군사로 등용하여 연의 침략을 격퇴하였습니다. 이에 연왕 모용황은 고구려에 부여를 공격하여 분할하자는 제의를 합니다. 부여구를 두려워하는 고구려태왕 사유는 모용황의 제안을 받아들여 부여를 침략하여 결국 부여는 연의 기습공격에 멸망하게 됩니다. 연의 모용황은 부여의 왕족들을 모두 잡아가 부여의 유민들은 부마도위 부여구를 왕으로 내세워 부여를 재건하려고 했으나 부여구는 백제의 태자의 신분으로 부여의 왕이 될 수 없다고 사양하여 부여인들은 백제에 투항하기로 결정합니다. 결과적으로 요서지방을 점령하게 된 부여구는 계왕이 죽자 대신들의 추대를 받아 13대 어라하에 오릅니다.

근초고왕은 왕이 된 후 해군을 키우며 대륙을 정복하기 위해, 잃어버린 부여의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국력을 기울여 군사력을 키웁니다.

367, 구마국의 왕이 백제의 해안을 침략한 해적들을 옹호하자, 근초고왕은 규슈를 공격하여 정복합니다.

전연의 침략에 대비하느라 백제를 한동안 공격하지 못했던 고구려태왕의 사유는 369년 연이 동진의 공격을 받는 틈을 타서 가야와 마한과 연합하여 백제를 공격합니다.

근초고왕은 군대를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가고, 근구수 태자를 보내 고구려군을 막게 합니다. 근초고왕은 마한을 정복하였고, 근구수 태자는 고구려군을 격파하여 백제는 백제를 정복하고자 하는 사유의 야욕을 물거품으로 만들었습니다.

370년 전진이 고구려와 동맹을 맺고 전연을 공격하자, 근초고왕은 이틈을 타서 연의 수도 업을 공격하여 연을 멸망시킵니다.

전진의 수십만 대군을 당하지 못해 퇴각하였지만, 부여의 잃어버린 영토를 모두 회복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부여의 옛 영토를 백제에 빼앗긴 고구려의 사유는 371년 대군을 이끌고 백제를 침략하였지만, 근초고왕의 매복 공격에 참패합니다.

근초고왕은 고구려의 침략을 응징하기 위해 3만 대군을 이끌고 평양성을 공격하여 사유를 전사케 만듭니다.

이로서 근초고왕의 백제는 요서, 한반도, 규슈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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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무신왕 15년(서기 32년) 4월.
 호동왕자는 자신의 신분을 감춘 채로 부하들과 함께 옥저를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호동왕자가 주막에서 부하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상인들이 술을 마시면서 낙랑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호동왕자의 귀까지 들리게 되었지요.

 "낙랑공주가 지금 옥저에 있어."
 "낙랑공주는 대단한 미녀라면서?"
 "두 말하면 잔소리지. '흉노에는 왕소군이 있고, 조선에는 낙랑이 있다.'는 말 못들었나?
 "왕소군은 죽었쟎아. 그럼 낙랑이 천하 제일의 미녀라는 소리네."
 "낙랑태수 최리는 예쁜 딸 둔 덕분에 태수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모르지. 하하..."
 
 
 낙랑의 태수 최리의 딸인 낙랑공주는 절세의 미녀로 낙랑공주의 아름다움은 이웃나라 옥저까지 알려졌습니다.
 공주는 절세의 미녀였을 뿐만 아니라 마음씨도 아름다웠고 효성도 남달리 지극했지요.
 지금 최리는 낙랑공주와 함께 옥저에 있는데, 그 이유는 낙랑공주를 옥저에 온 고구려의 호동왕자와 맺어줄 생각을 했기 때문이지요.
 최리는 낙랑공주를 고구려의 호동왕자와 혼인시켜 낙랑을 강대국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던 것이지요.

 어느 날 최리는 부하들을 이끌고 가마를 타고 가다가 고구려의 왕자 호동의 일행과 마주쳤습니다.
 최리는 호동왕자를 보자마자 첫눈에 그가 호동왕자일 것이라고 생각하여 부하들을 시켜 호동왕자 일행들을 자신의 숙소로 초대했지요.
 
 "주인님께서 공자님을 숙소로 모시고 싶어 하십니다."
 "나는 고구려의 왕자 호동이요. 그대들의 주인은 누구시오?"
 "저희들의 주인님은 낙랑태수이십니다."

 호동왕자는 최리의 정중한 초대를 받아들여 최리를 따라 그의 숙소에 갔습니다.
 진작부터 호동왕자를 자신의 사위로 삼고 싶어했던 최리는 호동왕자에게 자신의 아름다운 딸 낙랑공주를 소개시켜 주었지요.

 호동왕자는 낙랑공주를 보자 첫눈에 반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같구나.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는 본 적이 없다. '흉노에는 왕소군, 조선에는 낙랑'이라는 말은 사실이구나.'

 낙랑공주도 호동왕자를 보자 첫눈에 반했습니다.
 '이 느낌은 무엇일까? 눈빛만 봐도 두근거리는 내 마음은 나에게 짝을 찾았다고 말하는 것일까?'

 최리는 호동왕자가 자신의 딸에게 반했다는 것을 눈치내자, 낙랑으로 가서 당장 결혼식을 올릴 것을 제안했지요.
 호동왕자는 아름다운 낙랑공주에게 완전히 반하여 최리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호동은 아버지인 대무신왕에게 허락을 받은 후에 최리의 제안대로 낙랑에 가서 낙랑공주와 결혼식을 올렸지요.
 
 최리가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결혼을 서두른 것은 한나라의 광무제 유수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대무신왕의 총애를 받고 있어 호동을 사위 삼아 고구려에 영향력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호동이 왕이 되면 자신의 딸이 왕후가 될 것이고 자신의 딸이 낳은 아들이 왕이 되면, 고구려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최리의 계산이였습니다.

 반면에 호동왕자의 아버지 대무신왕은 낙랑공주를 이용하여 낙랑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지요.
 낙랑에는 자명고가 있는데, 군대가 이동하면 저절로 울려 낙랑을 공격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낙랑공주에게 자명고를 찢게 만든 후에 공격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오나 아바마마, 낙랑공주는..."
 "설마 아버지가 딸을 죽일리 있겠느냐? 걱정마라. 내 낙랑을 정복하면 최리를 낙랑태수로 재임명할 것이니 모녀간의 정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최리는 저의 장인이 되었지만, 믿을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악한 인간이라도 자신의 딸은 소중한 법이다. 그러니 걱정마라."
 효성이 지극했던 호동왕자는 아버지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낙랑공주에게 말했습니다.

 "나를 사랑하시오?"
 "그래요."
 "만약 나를 사랑한다면 나의 부탁을 들어주시오."
 "부부는 하나인데,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쉬운 일이 아니오."
 "쉬운 일이라면 부탁하시지 않으시겠지요."
 "자명고를 찢어 주시오."
 "그건... 안됩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소?"
 "사랑해요. 하지만 저는 아버지를 배신할 수 없어요."
 "제발 나를 도와주시오. 아바마마께서는 최리가 항복하면 낙랑태수로 임명하여 그 지위를 유지시켜 주신다고 나와 약조하셨소. 그러니 나를 돕는 것은 아버지를 돕는 것이오."
 "정말인가요?"
 "정말이오."
 "그럼 약조해주세요. 저의 아버지를 지켜주시겠다고 약조해주세요."
 "저 하늘에 떠있는 달에게 맹세하겠소. 내 당신 아버지를 지킬 것이오."
 "그렇다면 당신을 돕겠어요. 하지만 저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지를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해주세요. 만약... 아버지께서 그 일로 저를 죽이신다고 해도... 아버지를 지켜주세요."
 호동왕자는 낙랑공주의 효심에 감격하여 무슨 일이 있어도 낙랑공주의 아버지를 지켜주겠다고 달에게 맹세했습니다.
 
 낙랑공주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고국으로 돌아와 아버지 최리를 설득하려고 했지요.
 "아바마마, 고구려는 제 남편의 나라입니다. 이제 고구려와 평화롭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호동왕자가 내 뜻을 따르느냐에 따라 달렸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호동왕자는 대무신왕의 총애를 받고 있다. 대무신왕이 죽으면 호동왕자가 왕이 될 것이다. 만약 호동이 왕이 된다면 너는 왕후가 될 것이고, 네가 자식을 낳으면 너의 자식을 태자로 책봉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고구려는 내 손에 넘어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바마마, 만약 호동왕자가 태자가 되지 못하면 어쩝니까?"
 "그렇게 되면 너는 우리나라로 돌아와야 한다. 아무 쓸모 없는 녀석에게 나의 금지옥엽같은 딸을 줄 수 없다."
 "하지만 아바마마..."
 "내 뜻에 따르거라. 자식이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은 천명이니 거역할 수 없다."
 "저는 호동왕자가 태자가 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아버지 뜻을 거두어 주세요."
 "내 말을 들어라. 그렇지 않으면 너를 내 딸로 생각하지 않겠다."
 

 낙랑공주는 호동왕자에게 자명고를 찢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를 배신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아버지가 호동왕자를 이용하기 위해서 자신을 호동왕자와 맺어준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낙랑공주는 고민 끝에 호동왕자를 돕기로 했습니다.
 
 얼마 후에 호동왕자는 사람을 보내 낙랑공주에게 낙랑을 공격할 시일을 알려주었지요.
 낙랑공주는 호동이 낙랑을 공격하는 날에 맞추어 자명고를 찢었습니다.
 자명고를 믿고 방심하고 있던 최리는 고구려가 쳐들어오자 무기고의 자명고를 확인했는데,
자명고가 찟어진 것을 발견하고 낙랑공주를 찾았습니다.

 "내 짓이냐?"
 "아버지, 호동왕자가 저에게 약속했습니다. 아버지께서 항복하시면, 아버지를 낙랑태수로 임명하셔 낙랑을 다스리게 하신다고요. 아버지, 이 땅의 백성들은 고구려와 같은 민족이라 한나라의 통치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을 계속 될 것입니다. 이제 한나라를 버리고 고구려에 귀순하세요."
 "이 불효막심한..."
 
 최리는 너무 화가 나서 낙랑공주를 칼로 찔렀습니다.
 "아버지... 항복하세요. 호동왕자가 아버지를 지켜준다고 저에게 맹세했어요. 남아일언 중천금이니 호동왕자를 믿고 항복하세요."
 최리는 홧김에 딸을 찔렀지만, 딸의 유언을 듣자 딸의 시신을 안고 눈물을 흘렸지요.
 "이 못난 아비를 용서해라. 이 못난 아비를..."

 최리가 딸의 시신을 부둥켜 안고 슬프하는 사이에 고구려는 낙랑성까지 진군했습니다.
 호동왕자는 1000여명의 기병을 이끌고 낙랑공주를 구출하기 위해 낙랑성을 공격했지요.
 최리는 고구려의 공세를 막을 수 없다는 생각에 호동왕자에게 항복했습니다.

 호동왕자가 최리에게 물었지여.
 "낙랑공주는 어디있소?"
 최리는 탄식하면서 대답했습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호동왕자는 낙랑공주가 죽었음을 알고 통곡하면서 말했습니다.
 "공주... 다 내 잘못이오. 나를 용서하시오."

 그리고 최리를 노려보면서 말했지요.
 "당신이 사람이오? 딸을 죽이다니?"
 "내가 무슨 말을 하겠나? 차라리 나를 죽여라."
 너무나도 화가 난 호동왕자는 최리를 죽이려고 칼을 뽑으려고 했지만, 칼을 뽑기도 전에 낙랑공주와의 약속이 생각났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지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해주세요.'

 호동은 최리에게 말했지요.
 "당신은 아시오? 낙랑공주는 당신을 배신하지 않았소. 공주는 나에게 아버지에게 죽음을 당해도 아버지를 지켜달라고 부탁했소. 그러한 딸의 마음을 아시오? 그러고도 아버지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오?"
 "그래... 나는 아버지의 자격이 없다. 딸도 내 손으로 죽은 마당에 내 어찌 더 살기를 바라겠냐? 나를 죽여라."
 "내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지만... 공주와의 맹세 때문에 그럴 수 없오. 그녀는 지금 어디있소?"
 "자명고가 있는 무기고에 있다."
 최리는 흐느끼면서 말했습니다.
 
 호동왕자는 자명고가 보관된 무기고로 갔는데, 낙랑공주는 찢어진 자명고에서 얼마되지 않는 곳에 쓰러져 있었지요.
 호동왕자는 낙랑공주의 시신을 부둥켜 앉고 통곡했습니다.
 "공주... 나를 용서해 주시오. 이렇게 될 줄은 몰랐소. 공주... 나를 용서해 주시오... 공주..."
 
 고구려는 낙랑을 얻었지만, 호동은 낙랑공주를 잃었지요.
 호동은 낙랑공주를 잊지 못해 슬픔이 가득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낙랑공주의 죽음을 애도한 호동왕자는 너무나도 슬픈 나머지 이성을 잃어 대무신왕에게 불만이라도 있는 것처럼 오랫동안 문안인사를 하지 않게 되었지요.
 
 자신의 자식을 태자로 책봉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원비는 호동왕자가 대무신왕의 눈밖에 나는 행동을 하자 호동왕자가 낙랑공주의 일로 불만을 품어 역모를 꾸미고 있다고 모함하였습니다.
 대무신왕은 호동왕자를 의심하여 출두명령을 내렸지만, 호동왕자는 응하지 않았지요.

 호동왕자가 자신의 명령에 따르지 않자 대무신왕은 호동왕자가 낙랑공주의 죽음 때문에 역심을 품었다고 오해하여 호동왕자에게 자결을 명령했습니다.
 호동왕자가 아버지의 명에 따라 자결을 결심하자 호동왕자의 심복이 울면서 말했지요.
 "왕자님, 원비께서 모함하셨지만, 아무 증거가 없으니 해명하면 왕자님의 결백이 드러날 것입니다. 어째서 해명하지 않으십니까?"
 "원비는 비록 친어머니가 아니지만, 어머니이지 않은가? 자식된 도리로 어찌 어머니의 죄를 드러내겠는가?
 이것이 나의 불운한 운명이라면 나는 따를 것이다. 너는 내가 떠나면 아바마마를 잘 모셔라."

 "왕자님, 안됩니다. 절대 안됩니다."

 "내 마지막으로 부탁하겠으니 들어주겠나? 내가 죽거든 나의 시신을 낙랑공주의 옆에 묻어주게.

이 세상에서 함께 할 수 없다면... 저 세상에서라도 함께 하고 싶네..."
 호동왕자는 대무신왕의 명령에 따라 자결했습니다.
 
 호동왕자가 죽은 후에 대무신왕은 호동왕자가 낙랑공주를 그리워하여 자신에 문안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아 통곡하며 울었지요.
 대무신왕은 호동왕자를 낙랑공주 곁에 묻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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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희는 올해로 33살,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그리 적은 나이도 아니었다. 친구들은 그녀에게 시집가려면 눈을 낮추어야 한다고 충고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천생연분의 짝을 기다렸다. 그녀는 생각했다.

 '언젠가는 내 천생연분을 만날 수 있을거야. 내가 얼마나 참한 여잔데......'

 그녀는 정말로 참한 여자였다. 은은한 미소는 고혹적이었고, 해맑은 미소는 명품이었다. 그녀는 카리스마적인 리더쉽이 있어 주변에서 그녀를 누나처럼 따르는 연하 남자들이 많았다. 그중에 민재라는 29살의 남자가 있었다. 우연히 길에서 그와 마주 쳤는데, 천생연분이라는 느낌이 확오는 남자가 그의 옆에 서있었다. 경희는 심장이 쿵쿵쿵하고 뛰었다. 민재가 경희에게 인사하여 말했다.

 "얘는 제 친구 상현이예요."

 상현! 경희의 심장을 뛰게 만든 그 남자의 이름이었다. 상현은 경희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김상현이라고 합니다."

 경희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간신히 인사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전 김경희라 해요."

 상현은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말 놓으세요. 민재와 전 동갑이니, 민재에게 누나라면, 저한테도 누나인걸요."

 "그럼, 말 놓을께요."

 경희는 민재에게 제안했다.

 "민재야, 우리 커피 한잔 할래? 이 누나가 쏠께."

 "좋아요."

 셋은 커피숍에 가서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1시간, 2시간, 유쾌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상현은 경희에게 친밀감을 느꼈다. 경희는 상현이 여자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우리 나중에 또 뭉치자. 내가 또 쏠께."

 상현이 손을 휘드르며 말했다.

 "아니예요, 다음엔 제가 쏠께요."

 셋은 종종 모여 유쾌한 대화를 나누곤 하였다. 경희는 상현과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 민재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민재야, 실은 나, 상현한테 호감있는데...... 나 좀 밀어줄래?"

 민재는 경희가 상현보다 나이가 4살이나 많아 힘들꺼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차마 말할 수 없어 흔쾌히 승락했다.

 "좋아요. 좋아. 제가 밀어 드릴께요."

 어느 날, 셋이 다시 뭉쳤을 때 민재는 볼 일이 있다며 슬그머니 가버렸다.

 경희가 상현에게 제안했다.

 "우린 좀 더 얘기하다 갈래? 난 집에 가도 할 일이 없거든. 어때?"

 상현도 경희와 더 이야기하고 싶었다.

 "좋아요. 저도 집에 가면, 게임 밖에 할일이 없어요."

 "게임? 어떤 게임 좋아해?"

 "다 좋아해요. 스타, 리니지, 서든 어택......"

 "나도 스타 잘하는데, 우리 나중에 한판 붙을래?"

 "좋아요."

 경희는 상현과 즐거운 대화를 나눈 후 적당한 시간에 헤어졌다. 처음부터 좋아하는 티를 내면 상현이 부담스러워할지 모르니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타를 잘한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경희는 스타가 스타크래프트를 말하는 줄도 몰랐다. 제일 배우기 쉬울 것 같아서 스타하자고 말한건데, 장난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현과 스타를 하면 너무 재미있을거 같아 밤을 새우며 스타를 연습했다.

 몇달간 스타에 매달려 마침내 스타의 고수가 되었다고 생각한 경희는 상현에게 전화해서 도전장을 던졌다.

 "우리 한판 붙자. 지는 쪽이 밥사기. 어때?"

 "좋아요."

 상현은 스타의 고수라 불과 몇달간 스타를 연습한 경희는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얼마 후 경희는 즐거운 마음으로 밥을 샀다. 경희와 상현은 이 날을 계기로 마음을 털어 놓고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친해졌다.

 경희와 상현은 종종 스타를 했고, 종종 식사를 하며 친해졌다. 경희는 상현을 만날 때마다 세련된 화장과 패션으로 상현의 시선을 끌었다. 무엇보다 상현을 끈건 경희의 은은하고 밝은 미소와 재치있는 말솜씨와 우아하고 단아한 매력이었다. 경희의 얼굴에는 은은하고 밝은 미소가 떠나지 않았고, 경희와 대화하면 스트레스가 풀려 가슴이 후련해졌다. 경희는 말할 때나 걸을 때나 미소를 지을 때나 웃을 때도 품위가 있어 우아한 매력이 느껴졌다. 상현은 이러한 경희에게 끌리기 시작했다. 상현은 경희와 함께 있으면 마냥 기분이 좋았다. 편안했고, 행복했다. 하지만, 아직 경희에게 이성적인 감정을 느낀 건 아니었다.

 "누나, 제가 괜찮은 형을 아는데, 소개시켜 줄까요?" 

 "괜찮아. 요즘, 솔로의 행복을 만끽하고 살고 있거든. 너두 만나고......"

 상현에게 살며시 호감을 표시한 경희는 살짝 상현의 눈치를 봤지만, 상현은 눈치채지 못했다. 경희와 상현은 전형적인 누나 동생 사이가 되었다. 누가 보면 사귀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그들은 자주 만났다.

 경희는 상현의 생일날에 고백하기로 작장하고서 계속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는 작업을 하였다.

 상현의 생일은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9월 15일이었다. 경희는 상현의 생일에 저녁을 함께 보낼 것을 제안했다.

 "9월 15일, 니 생일이지. 우리 뭉치자. 누나가 맛있는거 사줄께."

 "좋아요."

 9월 15일, 경희가 학수고대해왔던 그 날이 왔다. 경희는 예쁜 옷과 세련된 화장술로 치창한 후 약속장소로 갔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들은 식사를 하면서 유쾌한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커피 마시자."

 식사 후 분위기있는 카페로 장소를 이동했다. 경희는 케이크를 사서 테이블에 올려 놓았다.

 "상현아, 생일 축하해."

 상현은 경희가 너무 고마웠다.

 "누나, 너무 고마워요."

 "고맙긴, 우리 사이에......"

 경희는 예쁜 목소리로 생일 축가를 불러주었다.

 경희는 상현의 손에 초를 쥐어주며 말했다.

 "소원을 빌어야지."

 "첫째는 승진하고픈 제 꿈이 이루어지길, 둘째는 부모님께서 건강하시길......"

 상현은 뜸을 들은 후에 말했다.

 "셋째는...... 누나가 좋은 사람 만나길......."

 경희는 활짝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 이 누나를 생각해줘서."

 "고맙긴요. 제가 고맙죠. 누난 저에게 항상 고마운 존재예요. 누나가 시집가면, 저 혼자서 어떻게 살죠?"

 경희는 은은하고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마. 이 누나는 언제나 너의 누나니까."

 경희는 핸드백에서 예쁘게 포장된 작은 상자를 꺼내 상현에게 주었다.

 "내 생일 선물이야."

 "고마워요. 봐도 되죠?"

 "당근이지."

 상현이 선물을 꺼내보니, 반지였다. 경희는 손을 내밀었다. 순간 상현은 경희의 손가락에 똑같은 반지가 끼어있는 것을 보았다. 상현은 순간 멍하였다. 경희는 수줍은 듯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상현아, 나, 너...... 사랑해.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많이 사랑해."

 경희의 고백은 상현의 가슴속 깊이 스며들었다. 순간 경희가 너무 사랑스러워 보였다.

 아름다워보였다. 이런 여자와 함께 살면 행복할거 같았다. 상현은 밝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저도 누나가 좋아요. 우리 사귈래요?"

 경희는 너무 행복해 울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울음을 참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정말 천생연분인거 같아.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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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abyrint


 어느 날, 항상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대했던 그녀가 근심어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현철아, 할말이 있어......"
 "뭔데?"
 나는 그녀의 근심어린 표정을 보자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우린 너무 다른 점이 많은 것 같아. 성격도 너무 다르고, 식성도 다르고...... 그동안 내가 항상 너한테 양보하며 만났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만나기는 서로가 힘들 것 같아......"
 나는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헤어지자는 말이 아닌가!
 나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는 잘 맞는 커플이야. 너도 항상 그렇게 말했쟎아. 노력하자. 내가 앞으로 많이 노력할께."
 그녀는 긴 한숨을 쉰 후에 말했다.
 "사실은...... 예전부터 느낀 건데, 우리 사이, 예전같지 않아. 예전에는 만나면 즐겁고 신났는데, 요즘은 불편해. 진작부터 말하려고 했는데...... 우리 이제 그만 만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몇 달 전부터 그녀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이상한 점이 있었지만, 나는 앞으로 우리가 자주 만나면 예전처럼 사이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툭하면 바쁘다며 약속을 취소했던 그녀는 이미 그전부터 이별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별을 직감한 나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쟎아. 나한테 기회를 주지 않겠니. 내가 부족한 점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노력할께."
 "현철아, 정말 미안해. 넌, 날 진심으로 대했지만, 난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나같은 여자한테 미련을 가지지 말고, 나보다 더 좋은 여자를 만나길 바래...... 나 지금, 몸이 안 좋아서 이만 가볼께. 잘 있어."
 민희가 떠나려고 하자, 나는 민희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민희를 설득했다. 나는 몇시간이나 민희를 붙잡고 설득했지만, 끝내 민희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민희는 떠났다.

 나는 이대로 민희를 포기할 수 없었다.
 무엇인가 민희의 마음을 돌릴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민희가 나에게 이별을 통보한 지 열흘이 지나서 나는 몇 장의 장문의 편지를 쓴 후에 민희의 집을 찾아갔다.
 때마침 민희는 집에 없어 나는 집 근처에서 민희를 기다렸다.
 내가 민희에게 무슨 말을 할까 골똘히 생각하느라 정신을 팔고 있을 때 어디선가 민희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순간 나와 민희는 소스라칠 정도로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민희는 한 남자와 다정한 모습으로 함깨 오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야?"
 민희의 옆에 있던 남자가 인상을 찡그리며 민희에게 물었다. 
 민희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옆에 있던 남자에게 말했다.
 "오빠, 미안하지만, 잠시 비켜 줄래?"
 그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 후에 어디론가 가버렸다.
 민희는 상기된 표정을 지으며 쌀쌀하게 말했다.
 "뭣하러 왔어?"
 "......"
 뭣하러 왔냐구? 그걸 몰라서 물어?
 하지만, 나는 입이 열어지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이전부터 그 녀석을 나 몰래 만났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지금 현재의 그녀의 쌀쌀맞은 태도......
 안봐도 비디오라는 말이 있지. 그래, 안봐도 그녀가 그동안 왜 나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같지 않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제 그녀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녀는 이전부터 변심했었던 것이다.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 너한테 할 말이 있었는데...... 이만 가볼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로 그녀가 서있는 곳으로부터 멀어졌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민희, 그녀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나는 그녀가 언제부터 그 남자를 만난 것인지 몹시 궁금했지만, 더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난, 단지 민희가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도 나는 그녀가 한때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했었다고 믿고 싶다.


Posted by labyr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