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제가 다음뷰에서 소설 '낙랑공주와 호동왕자'를 연재중입니다.
 이 글을 쓴 계기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면서도 역사적인 해석이 충분하지 않아 당시 고구려와 낙랑에 대한 역사적인 재해석과 피지도 못한 채 져버린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아름다운 사랑을 소설로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100회이상 연재할 예정이니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창작소설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역사적인 배경


 대무신왕 15년 (서기 32년) 호동왕자는 낙랑공주와 운명적인 만남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일종의 정략 결혼으로 생각합니다.

 당시 중국은 신나라가 망한 후에 광무제가 후한을 세웠지만, 아직은 힘을 발휘라고 있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낙랑은 한4군이었지만, 한나라가 신나라에 망한 후에 신나라까지 망하면서 중국 본토에서 독립적인 나라가 된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추측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광무제가 한나라를 다시 재건하자 낭락은 다시 한나라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원래 낙랑태수의 지위는 세습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결국 낙랑 태수 최리는 고구려의 왕자와 혼인을 통해서 정치적인 안정을 꾀하려고 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저의 소설은 위와 같은 가정을 하여 쓰여진 소설입니다.
 
 낙랑공주와 호동왕자가 결혼을 하게 된 것은 크게 두가지 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최리가 호동에게 제안했다는 설과 다른 하나는 태무신왕이 결혼을 제안했다는 설이지요.
 만약 낙랑이 결혼을 통해서 자신의 지위를 강화시키려고 했다면 전자의 설이 맞겠지만, 태무신왕이 낙랑을 공격할 목적으로 맺은 결혼이라면 후자가 맞은 것이겠지요.

 저의 생각은 둘 다 맞는 것 같습니다.

 태무신왕은 낙랑을 공격할 뜻이 처음부터 있었고, 최리는 고구려와의 화친을 통해서 자신의 지위를 높이려고 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겠지요.
 제가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고구려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서적을 수십권이나 읽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추측을 하게 된 것이지요.



                                              소설을 쓰게 된 계기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슬픈 사랑 이야기는 제가 아는 가장 슬픈 사랑 이야기입니다.

 

 평강공주가 아버지 평원왕과 남편인 온달의 사랑을 받은 것에 비해서 낙랑공주는 호동왕자의 사랑도 아버지의 사랑도 받지 못한 채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역사는 호동왕자가 어째서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위기에 빠뜨렸는지나 낙랑공주가 어째서 자신의 아버지를 배신하게 되었는지 말하고 있지 않지만,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는 죽음을 초월할 정도로 서로 사랑했던 사이였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랑공주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명고를 찢었고, 호동왕자는 낙랑공주가 죽은 얼마 후에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 아닐지요.

 비록 자명고를 찢은 낙랑공주도 효녀였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사랑이 죽음을 초월할 정도로 진실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바탕으로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이야기를 재구성하였습니다.
 글제목이 '호동왕자와 낙랑공주'가 아니라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인 이유는 호동왕자와 아버지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낙랑공주의 번뇌를 더 비중있게 묘사하기 위해서 입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것은 호동왕자는 왜 자결로 인생을 마쳤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가장 유력한 설은 호동왕자가 낙랑공주의 죽음으로 슬픈 나머지 자결로 인생을 마쳤을 것이라는 설인데, 제가 생각해도 가장 유력한 설명인 것 같습니다.
 호동왕자가 왜 인생을 자결로 마쳤는지는 본인 자신과 왕후만이 알겠지만, 다른 이유를 찾기는 힘들 것입니다.
 호동왕자가 왕후와 부적절한 관계였다는 설이나 호동왕자가 대무신왕을 원망하여 문안인사를 올리지 않아 대무신왕의 노여움을 샀다는 설도 있지만, 별로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같지 않네요.



Posted by labyr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