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하 작가님의 '배달민족 치우천황'이 다음뷰의 카테고리 책에서 매주 1회씩 연재되고 있어 독서를 좋아하는 블로거님들께 소개시켜 들리고자 합니다.
 '배달민족 치우천황'은 단군 조선 이전에 우리 민족의 조상이었던 치우천황의 영웅담을 역사 자료를 바탕으로 창조한 역사소설인데, 아직도 치우천황이 우리민족의 조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 많아 역사적인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라도 꼭 읽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치우천황은 '붉은 악마'의 캐릭터로 더 유명한데, 70전 70승의 빛나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전쟁영웅입니다. 
 중국의 한고조 창시자인 유방이 전쟁전에 치우천황에게 승리를 기원하는 제사를 드린 역사적인 기록이 사마천의 사기에 있는데, 사기의 기록만 봐도 치우천황을 중국인들이 얼마나 존경했는지 알 수 있지요.

 70전 70승! 거짓말 같은 신화의 주인공, 중국인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주인공, 한고조 유방이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제사를 지냈던 주인공이 바로 우리의 조상이 되시는 치우천황입니다. 
 중국은 이민족인 치우천황을 자신의 역사라고 주장하는데, 이에 비해서 우리의 반응을 알바 없다는 식의 무대응이라 안타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중에 치우천황이 역사적인 존재가 확인이 된다고 해도 중국의 선수를 빼았기면 다시 찾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지요. 

 치우천황의 한민족의 조상이라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기록에도 간간히 등장합니다. 
비록 고려나 조선의 사서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치우천황이 동쪽에 있었다는 사실과 우리 겨례가 동쪽에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간간히 기록에 등장하는 치우천황의 기록을 고려하면, 치우천황은 한민족의 조상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신재하 작가님의 '배달민족 치우천황'을 읽으시면, 치우천황이 한민족의 조상이라는 사실을 공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세계를 정복한 영웅이

 바로 우리의 선조라는 사실을 아는가!” 
 
-신재하의 역사소설 '배달민족 치우천황' 중에서-


 신재하 작가님의 '배달민족 치우천황' 연재는 신재하 작가님 블로그에서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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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제 블로그에서는 치우천황에 대한 저의 생각과 신재하 작가님의 소설 '배달민족 치우천황'의 일부분을 작가님의 허락을 받고 포스팅하였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밑의 링크를 통해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치우천황,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 (조정우)


 붉은 악마의 캐린터인 '치우천황'이 우리 선조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최근들어 붉은 악마의 캐릭터인 '치우천황'이 네티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지만, 아직도 치우천황이 우리 민족의 선조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분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해도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듯이 그 누가 아무리 치우천황을 자신의 선조라고 억지를 부린다고 할지라도 치우천황은 우리 선조가 맞습니다.
 치우천황은 우리의 선조인 단군의 선조시니까요.
 요즘 말로 하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라 할까요? 


 치우천황은 중국 최초의 황제(천자)로 인정받은 황제 헌원과 동시대로 사마천의 사기에는 헌원이 치우천황을 죽였다고 나오지만, 우리나라 문헌에는 치우천황이 이겼다고 되어있어 사기의 내용이 정확한지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치우천황이 중국에서 전쟁의 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다는 사실과 한나라 유방은 전투에 임하기 전에 치우천황에게 제사를 올렸다는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헌원이 정말 치우천황을 이겼다면, 유방이 헌원에게 제사를 올리지 않았을까요?
 사기의 기록대로 치우천황이 헌원에게 죽었다면 유방이 치우천황이 아닌 헌원에게 제사를 드렸을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이 부분은 5000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러 증명하기 쉽지 않겠지만, 아무튼 치우천황은 중국인들을 떨게 만들었던 전설적인 전쟁의 영웅인 것이 사실입니다.
 
치우천황은 70전 무패를 했다는 전설이 있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 치우천황이 얼마나 대단한 영웅인지 알 수 있지요.
 안타까운 일은 위대한 민족의 선조 치우천황의 존재를 믿지 않는 한국인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특히 역사학자들 중에는 치우천황을 믿지 않는 분들이 많아 아직도 국사책에 치우천황이 등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청나라가 은나라나 하나라, 황제에서 요순임금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실존역사로 인정받고 있는 것처럼 치우천황도 언젠가는 우리의 선조라는 사실이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소설 '배달민족 치우천황'에 대해서> 

 신재하 작가님의 "배달민족 치우천황"이 다음뷰에서 연재를 시작했는데, 신재하 작가님은 치우천황 집필을 위해서 수년간 치우천황에 대한 역사자료를 조사한 후에 집필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최근들어 사극이 역사에 근거하지 않아 사극인지 환타지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비해 신재하 작가님의 '치우천황'은 역사자료에 근거한 역사소설입니다.



<작가의 말>


중국 정사와 우리 사서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 단군왕검 이전의 실존 기록이
치우천황의 역사이다. B.C 2700년 경, 북방 바이칼 호수에서 남방 파미르 고원과 중국 양쯔강을 지나 중국 해안까지, 동으로는 만주와 백두산 지역은 물론 태평양에 이르기까지, 서로는 몽고 전체를 아우르는, 전 세계의 가장 큰 영토를 지배했던 우리 배달민족의 실존 역사인 것이다

                                         - 배달민족 치우천황 제 1화 중에서 -

 

근거 사료 : 중국의 <사기> <산해경> <한서지리지>, 

              우리 역사서 <한단고기> <규원사화> <단기고사> 외 다수. 

              기타 치웅천황의 묘소를 비롯하여 배달한국이 일궈낸 세계적 문화

              유산 '홍산문화'에서 수많은 유물과 유적이 출토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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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민족 치우천황을 집필하며> - 신재하

중국 정사와 우리 사서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단군왕검 이전의 실존 기록이 치우천황의 역사이다. B.C 2,000년 경, 북방 바이칼 호수에서 남방 파미르 고원과 중국 양쯔강을 지나 중국 해안까지, 동으로는 만주와 백두산 지역은 물론 태평양에 이르기 까지, 서로는 몽고 전체를 아우르는, 전 세계의 가장 큰 영토를 지배했던 우리 배달민족의 실존 역사인 것이다.

 일제 시대로부터 명맥이 이어진 우리 나라의 보수 사학계는 서기 전 2333년의 단군왕검을 한낱 신화로 해석하고 있다. 반면에 단군왕검을 현존했던 역사적 사실로 보는 진보 사학계 및 재야 사학계와의 논쟁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단군왕검 보다 약 400여 년 앞서있는 치우천황의 분명한 발자취가 명백밝혀짐으로써 우리 민족의 역사가 최소한 반 만년이 훨씬 넘는 역사라는 것이 확연히 증명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우리 한민족의 시원은 놀랍게도 B.C 7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아시아 최초의 국가인 한국이 다 수의 한님들에 의해 3301년 간 지속되었다. 이어 한국 말기에 한님의 아들 중 한 사람인 한웅이 3천의 무리를 이끌고 동진하여 아사달에 신시 배달 한국 (B.C 3898 ~ B.C 2333)을 세우면서 우리 배달민족의 역사는 시작된다. 그 뒤를 단군조선이 계승하고 있음을 중국과 우리 나라의 많은 역사서들의 기록에서 입증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그들 최초의 황제로 추앙되고 있는 헌원황제의 기록들이 실재 역사의 사건임을 공식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 헌원황제가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우리 배달민족의 황제가 치우천황인 것이다.

 

 

 <치우천황의 역사적 기록>

한 때 천하가 셋으로 나뉘어 대치하고 있었으니 탁의 북쪽에 대효가 있었고 동쪽에 창힐이 있었으며, 서쪽엔 황제 헌원이 있었다. 이들은 서로 군대를 가지로 승리를 차지해 보려고 했으나 아무도 이루지 못하였다. 처음 황제 헌원은 치우보다 일어남이 조금 늦더니 싸움마다 이로움이 없자, 대효에 의존코자 했으나 이룰 수 없었고 또 창힐에 의존코자 했으나 그것도 뜻대로 안 되었으니 이는 두 나라가 모두 치우의 무리였기 때문이다. 대효는 일찍이 치우천황으로부터 간지의 술을 배웠고, 창힐은 부도의 글을 배웠다. 당시의 제후들이 신하로서 섬기지 않는 자가 없음이 이 때문이다.

                                                                                                                         - 삼성기

 

 

치우는 14대 자오지 한웅으로 배달나라를 일으켜 중국의 희대 지방을 점령하고 탁록의 들에서 헌원을 사로 잡아 신하로 삼았다. 치우는 옛 천자의 이름이다.

                                                                   -     한단고기

 

 

당초 세계는 동서로 갈리어 야만적인 수인, 즉 한족이 살고 동에는 한웅이 다스리는 문명인, 즉 우리 동이족이 살았다. 처음에는 서로 떨어져 살다 뒤에 인구가 늘어나 국경을 접하게 되자 싸움이 붙었다. 이것이 치우천황과 황제의 싸움인데, 이 싸움에서 치우가 이겨 먼저 제위에 올랐다. 이때 한족들은 투구와 갑옷을 만들 줄 몰랐다. 그래서 갑옷을 입은 치우를 머리가 구리요, 이마가 쇠, 즉 동두철액이라고 했다. 10년 동안 73회나 싸웠는데 장수들은 모두 피로한 줄 모르고 사병 또한 후퇴할 줄 몰랐다.

     

                                                                   -     규원사화

 

 

치우는 노산의 쇠로써 오병을 만들었다. 그런데 치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중략)  황제가 섭정을 할 때 치우와 그 형제 81명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짐승의 몸에 사람의 말을 하였다. 구리 머리에 소의 이마를 가졌고 모래와 돌을 먹었다. 병장기로 칼, , 큰 활 등을 만들어 천하에 위세를 떨쳤다.    

 

                                                                 -  중국의 <사기> - 

 

사기의 내용은 의도적으로 치우천황을 깍아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짐승의 몸에 모래와 돌을 먹었다니. 사마천은 왜 이렇게 표현한 것일까. 그 까닭은 치우가 자신들의 최초의 황제로 떠 받들고 있는 헌원황제를 굴복시킨, 다름 아닌 동이겨레 즉 우리 배달민족의 수장이었기 때문이다.

  치우천황의 역사는 우리 겨레의 역사이며 영광된 역사이다. 우리 민족은 역사상 가장 큰 땅덩이를 호령하였던 치우천황의 후손들이다. 그동안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에 짓눌려 있던 고려와 조선시대, 그리고 일본의 36년 간 압제 속에서 우리 민족은 처절한 패배의식과 왜곡된 반도사관의 주입식 역사교육을 강요당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그 잔재가 뿌리깊게 박혀 있다는 것이며, 이는 통탄할 노릇이다.

  나는 십 수 년 전, 한참 방영되던 TV CF의 한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CF 내용 중에 사회에 갓 진출한 한 젊은이가 내뱉는 독백이 있었는데 그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난 우리나라가 단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공해 본 적이 없다는 역사를 가졌다는 게 싫었다.

CF를 볼 때마다 우린 왜 이렇게 작고 힘없는 민족으로 태어났나하는 자괴감에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한 내용이어서 왠지 우울했던 기억이 있다. 나 역시 그런 줄 알았으니까. 다른 나라를 침공했다는 게 자랑스럽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우리 나라는 다른 나라의 침략에 시달려오기만 했던 나약한 약소국이라는 사실이 슬펐기 때문이다. 이는 일제 시대 때 우리의 역사서를 모조리 불태워 버리고, 다른 나라의 지배에만 익숙해져 있는 짧은 역사의 민족으로 개조시키고자 한 일본의 우리 역사 말살정책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러나 전혀 엉뚱하게도 2002년 월드컵을 통해 묻혀질 것만 같았던 우리 민족의 위대한 웅혼은 다시 살아났다. 우리 나라 국가대표 축구선수라는 붉은 전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들의 영혼과 함께 하는 12번 째 붉은 전사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붉은 악마'다. 붉은 악마의 공식캐릭터로만 알려진, 일명 도깨비상이 바로 '치우천황'상이다. 옛부터 중국과 몽고 지역에 <전쟁의 신>,<승리의 신>으로 널리 알려져 지금까지도 곳곳에 사당이 지어져 숭배되고 있으며, '난중일기'에도 이순신 장군이 전투에 나가기 전에 치우천황께 제를 올렸다는 기록                                                  

 

B.C 2706년 온 세상 하늘 높이 떠오른 위대한 별 하나가 오늘 A.D 2010, 또 다시 그 웅혼한 기상을 내 뿜으며 찬란히 빛을 발한다 그 이름은 치우다.

  치우는 세계를 호령했던 고대사의 주인공답게 우리 배달민족의 영혼 속에 살아 숨쉬며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다시 한 번 우리의 배달민족이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세계를 향해 포효하는 붉은 악마로, 인류문화를 선도하는 문화 선진국으로, 혼란한 세계질서를 바로 잡고 주도하는 초일류 강대국으로 거듭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배달의 젊은이들이여 눈을 떠라!

배달민족 치우천황의 직계 후손들이여, 이제 긴 잠에서 깨어나라!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배달민족의 웅대한 꿈을 온 누리에 마음껏 펼쳐 보이자.



 

 <1화>

 

 

중국 토착민의 황제인 헌원은 자신의 군세가 세 배 이상 많다는 것을 믿고 자신감이 충만했다.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열망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자신이 대군이 전속력으로 진격하자 천황군은 황급히 말머리를 돌려 후퇴하기 시작했다. 제 아무리 천황군이라 하더라도 전면전에서 대군을 당해낼 수는 없으리라. 그렇게 반나절을 쫓고 쫓기는 양상으로 전투는 흘러가고 있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도망가던 천황군이 안개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 안개가 너무 짙어 이상한 생각이 든 헌원은 추격을 멈추고 형세를 관망하기에 이르렀다. 안개 만이 아니였다. 붉은 염초와 유황을 피워 올린 연기가 안개와 하나가 되어 을씨년스러운 기운을 내뿜었다. 헌원군은 왠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한 동안 적막이 흘렀다.

둥둥둥둥둥둥둥 두둥 두둥

갑자기 요란한 북소리, 함성소리와 함께 천황군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양 옆 쪽에서도 천황군이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천황기를 높이 쳐들고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비록 수 천 기에 불과한 소수 병력이었으나 헌원군의 혼란과 공포를 조성하기에는 충분했다. 헌원은 잠시 당황했으나 천황군을 다 합쳐봐야 자신의 군대의 반에도 훨씬 못미치는 숫자임을 간파하자 맞서기로 하고 총공세를 명령했다. 그러나 군사들이 사기는 이미 꺾여 있었다. 기분 나쁠 정도의 짙은 안개와 붉은 염초의 연기 장막 속에서 들려오는 천황군의 북소리. 곧 이어 붉은 빛 갑옷을 입은 천황군이 우뢰와 같은 함성을 내지르며 진격해오자 순식간에 공포에 휩싸이고 말았다. 대군이 전면전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지만 안개와 염초 연기가 헌원군의 혼백을 흔들어 놓고 있었다. 제대로 된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헌원군은 혼란의 빛이 역력했다. 그동안 치우천황이 모래를 먹고 안개를 일으키고 천둥벼락을 내려칠 수 있다는 소문을 익히 알고 있던 터였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파죽지세로 몰아 친 천황군과 뒤엉키자 마자 헌원군은 일시에 아비규환에 빠지고 말았다.

둥둥둥둥둥둥둥 두둥 둥둥둥둥 두둥 두둥

 

 

아침 6, 요란한 알람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다. 꿈 속에서 치우천황을 보다니.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지어진다. 새벽 3까지 뒤척이다 간신히 잠이 든 후 깨었지만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맑다. 오늘, 잠실벌에서 벌어질 국가대표 응원단 붉은 악마의 첫 공식 경기 데뷔를 앞두고 벌써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우리의 국대와 세계 최강의 브라질 국가대표와의 최초의 국가대항전! 히바우드, 카푸, 아모로주 등 세계적인 축구스타와의 만남 자체만으로도 아드레날린이 스멀스멀 쏟구치는 게 느껴진다. 작년 초 붉은 악마 동호회에 가입했지만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로서는 응원연습에 제대로 참여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 어엿한 대학생 청년이 된 나는 다르다. 응원도 대부분 다 익혔고, 본격적인 붉은 악마의 공식 출범식이 오늘 대한민국 잠실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것도 세계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일어나자 마자 세수부터 한 나는 정성스레 얼굴에 페인팅을 하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사생대회에 곧잘 입상했을 정도의 그림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는지 꽤 근사한 태극문양이 왼쪽 뺨에 그려진다. 벌써 몇 번 해본 터라 혼자서 그리는 솜씨에 스스로 감탄사가 배어 나온다. 거울에 비친 벌거벗은 나의 몸을 유심히 바라본다. 상체의 앞부분 전체에 그려진 붉은 악마의 공식 캐릭터인 도깨비상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도깨비가 아니라 치우천황 상이다. 지난 밤 두 시간에 걸쳐서 정성 들여 페인팅을 하고서야 난 잠자리에 들었다. 치우천황을 내 몸에 품고서 잠이 든 셈이다. 왠지 그래야만 될 것 같았다.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생생한 간 밤의 전투가 의미있게 다가온다. 우리에게 새로운 기와 영혼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그 때까지 우리 나라 국대의 실력이란 객관적으로 브라질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브라질은  월드컵 4회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의 팀이고, 우리는 지금껏 월드컵에 나가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나라였으니 우리의 승리를 예견하는 사람은 없었다.

히바우두가 이끄는 초호화군단 브라질의 초청경기라 시합 전부터 전세계 매스컴이 집중되었고, 또 세계적으로 생중계 되기에 더욱 긴장되었다. 하지만 왠지 자신감이 들었다. 우리의 국대 선수들은 이미 예전의 그들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웅혼한 기상이 넘쳐나고, 주체할 수 없는 붉은 악마의 투지와 자신감이 쏟구치고 있음을 느꼈다면 단지 응원단으로서의 간절한 바람 때문이었을까.

1999 3 31 오늘은 우리 나라 축구 역사상 새로운 전기를 맞는 날이 될 것이다.

나는 우리의 축구 국가대표팀의 새로운 응원단 붉은 악마로서 비장한 결의를 마음 속에 다지며 집을 나섰다.

 

 

(계 속) 


Posted by labyr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