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좋아하는 가수님 미지니 신곡 뮤비가 나와 유튜브 동영상 링크 올립니다~

넌 좀 예외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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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니 RED BOOK MV

문화평 2022. 9. 26. 12:12

제가 좋아하는 가수님 미지니의 RED BOOK MV가 나왔는데 노래도 좋고 뮤비도 좋아 링크를 올립니다~

RED BOOK MV 유튜브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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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미지니 님의 신곡 집에 가기 싫어 유튜브 링크를 올렸는데 이번에 뮤비가 나와 올립니다.

화질도 4k로 짱짱하고 미지니 님의 연기가 돋보이는 뮤비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n90js97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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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가수님 미지니의 신곡이 발표되었네요.

서정적인 분위기가 너무 좋네요.

집에 가기 싫어 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EmNQRgZb3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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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제가 포스팅했던 뮤지컬 Happy Day에서 미진 역으로 나오신 미지니 가수님(뮤지컬에서도 가수 역을 하셨다는)신곡 Knock me 유튜브 링크입니다.

youtu.be/7K3OUBu6wuA

저도 뮤지컬 Happy day를 통해 알게 된 분인데, 가창령이 아주 뛰어나신~

개인적으로 미니지님의 '별'을 좋아하는데(멜론으로 다운받아 자주 듣고 있다는~)

싱어송라이터이시자 가창력이 짱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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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다시피 4월 18일에서 4월 21일까지 소극장 혜화당에서 공연하는데 뮤지컬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강추입니다. 

출연하시는 배우님들 모두 가창력이 하나같이 대단하셔서 포토타임에 리뷰를 핑계로 배우님들의 사진까지 찍었습니다. (포토타임에 배우님들과 찍는 시간이 있었는데, 한분과도 찍지 못해 아쉽습니다)

앞줄 왼쪽부터 민희 역의 이나람 배우님,

가운데가 도명 역의 강현구 배우님,

오른쪽이 미진 역의 김미진 배우님, 

뒷줄 왼쪽부터 최인기 역의 이현수 배우님, 

다희 역의 강다희 배우님,

한울 역의 봉한울 작가님,

뒷줄 오른쪽 사채업자, 작곡가 등의 멀티역을 소화하신 김기현 작가님, 

 

먼저 여주 민희 역의 이나람 배우님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노래도 잘 하시고 연기도 압권이셨습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라 그냥 지옥으로 꺼지려고." 이 대사만 보더라도 어떤 역인지 감이 올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절망적인 상황의 민희 역을 너무 잘 소화하시고 가창력도 대단하시네요.

진짜 실제 상황인 것처럼 열연하셨는데, 노래부를 때도 표정 연기가 압권이라 천상 뮤지컬 배우님이 아닐까 싶네요.

 

남주이신 도명 역의 강현구 배우님도 노래도 잘 하시고 연기도 압권이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나람 배우님과 듀엣으로 부른 곡이 너무 좋았는데, 듬직하고 멋진 기획사 대표 역을 너무 잘 하셨습니다.

"조건 없이 사랑받았으니까 조건없이 사랑해야지." 홍보 포스터에 나온 대사 구절이 실제로도 인상깊었는데, 저렇게 멋진 기획사 대표가 있다면 가수들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연기력이 몸에 밴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미진 역의 김미진 배우님은 역도 해피데이의 1호 가수 역인데, 노래를 너무 잘 부르셔서 진짜 가수를 하셔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혹시 가수 출신이 아니신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연기도 잘 하셔서 "사랑받던 기억이 행복하니까." 이 극중 대사가 인상 깊게 남았는데, 전자 키보드인지 건반을 치시면서 노래부르시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최인기 역의 이현수 배우님은 여주를 협박하는 전 기획사 사장 역을 너무 잘 하셔서 인상 깊게 봤는데, 굵직한 목소리로 노래부르는 모습이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이 노래부르는 장면이 생각나는군요. (제가 오페라의 유령 전곡을 폰에 다운받을 정도로 좋아해서) 포토라인 때 사진을 보면 홍보 포스터 사진과 헤어스타일이 다른 걸 볼 수 있는데, 인기 역을 위해 헤어스타일을 바꾸셨다 하네요. 

 

다희 역의 강다희 배우님, "가족끼리 그러는거 아닙니다." 이 대사는 사실상 남주 도명를 향한 말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쉽게 말해, 내숭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연애 블로거 출신 로맨스 작가(여기서 제 정체를 살짝 드러내봅니다)인 제가 보기엔 도명에게 호감이 있으면서도 민희와 도명이 가까워지는 걸 지켜보면서도 고백 한번 못하고 끙끙 앓는 상황이 아니었나 싶었는데, 애처로운 듯한 표정 연기가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한울 역의 봉한울 배우님, "왜 자꾸 아저씨래? 오빠... 쯧" 이 대사가 앞부분에 나오는데 개그맨을 하셔도 될 것 같을 정도로 개그 센스를 보여주신 것 같습니다. 역시 노래도 잘 부르시고, 연기도 잘 하시고, 미진과 썸을 타는 듯한 분위기 연기도 잘 하셔서 로코 뮤지컬이나 코믹 뮤지컬 주연으로 잘 어울리실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해피데이의 원작 작가이시자 사채업자, 작곡가, 마지막 장면 쯤에서 아마도 어부 역할을 하신 것 같은데, 글도 잘 쓰시고, 연기도 감칠맛나게 잘하셔서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나리오도 압권이셨지만, 시나라오, 연기에 총괄 감독까지 정말 다재다능하시네요.

 

그리고 뮤지컬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하신 신민철 작곡가님,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뮤지컬을 보면서 내내 마음속으로 엄지손가락이 올라갈 정도로 정말 대단한 노래만 작곡하신 것 같습니다.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최고의 노래들이였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 뮤지컬계의 떠오르는 별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기대되는군요.

 

 

정말 뮤지컬 팬이라면 누구나 좋아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노래들이 너무 좋았고, 연기도 압권이었던 HAPPY DAY의 리뷰였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 더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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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문화평 2010. 8. 5. 07:00

 L. 프랭크 바움의 아동문학 오즈의 마법사를 뮤지컬로 만든 이 영화는 1939년작으로 빅터 플레밍이 감독 주디 갈란드가 주연한 영화지요.

 원래는 도로시 역에 '소공녀'로 잘 알려진 아역 스타 셜리 템플를 캐스팅하려고 했으나 그녀가 출연하지 못해 당시 무명이였던 주디 갈란드가 캐스팅되었고 이 영화의 성공으로 주디 갈란드는 단숨에 스타가 되었지요.

 이 영화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칼러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도로시의 현실세계에서의 부분은 흑백으로 제작되었고 꿈속에서 오즈로 날아간 부분부터 컬러로 제작되었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부분부터는 흑백으로 제작되었습니다.

 30년대 최고의 뮤지컬 영화로 뮤지컬 영화의 상업적 가능성을 보여준 첫 작품이라는 평가도 있지요.

 주디 갈란드가 부른 Over the Rainbow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다른 여러 가수들이 리바이벌한 명곡이지요.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도로시의 대사인 There is no place like home은 주디 갈란드의 명대사로 유명하지요.

 

 스토리 - 도로시는 숙모, 숙부, 애견 토토와 캔사스의 어느 농장에서 살았는데, 그녀의 이웃집 부인이 토토가 자신을 공격했다며 토토를 보안관에 고발하여 토토를 죽이려고 했지요. 도로시는 토토와 함께 도망쳤다가 한 마술사를 만났는데, 마술사의 깨우침으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회오리 바람이 몰아쳤고 숙모와 숙부는 보이지 않았지요.

 도로시의 집은 회오리 바람에 날려 그녀는 애견 토토와 함께 마법의 나라에 떨어졌습니다. 바람에 날린 그녀의 집이 우연하게도 악한 마녀를 깔아 죽였지요. 도로시의 집에 깔려 죽은 마녀는 악한 마녀였기 때문에 도로시는 마법의 나라 사람들의 환영을 받습니다. 도로시는 착한 마녀에게 캔사스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물었지만 그녀는 도로시에게 죽은 마녀의 신발을 신을 것을 권유했고 위대한 마법사 오즈를 찾아가서 물어보라고 하지요.

 마녀의 신발을 신은 도로시는 오즈를 찾아가는 중에 뇌없는 허수아비, 심장이 없는 양철인간, 겁장이 사자를 만나게 되었고 이들도 각각 위대한 마법사 오즈를 만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힘들게 마법사 오즈를 만났지만 오즈는 마녀의 지팡이를 빼았아 오면 소원을 들어 주겠다고 했지요.

 도로시의 일행은 우연히 마녀를 죽여 마녀의 지팡이를 빼았아 왔지만 오즈는 가짜 마법사였습니다.

 기구를 타고 마법의 나라에 왔는데 사람들이 마법사로 오해하여 마법사가 된 것이지요.

 마법사 오즈는 도로시의 친구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고 도로시는 기구를 타고 고향에 데려다 줄 것을 약속했지만 토토가 갑자기 기구에서 내리는 바람에 도로시는 기구를 타지 못했고 오즈만 기구를 타고 떠났지요.

 하지만 착한 마녀는 도로시에게 그녀의 구두가 그녀가 원하는 고향으로 데려다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도로시는 캔사스에 돌아갈 수 있었지만...

 

 그것은 꿈이었지요.

 악한 마녀는 그녀의 개 토토를 죽이려고 한 이웃여자였고 사자, 양철인간, 허수아비 모두 그녀의 이웃이였지요.

 사실 도로시는 회오리 바람에 정신을 잃고 쓰러지면서 꿈을 꾼 것이었지요.

 

 영화 초반에 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부르면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했던 도로시는 There is no place like home 이라는 말로 영화의 마지막을 마무리하지요.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만드는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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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재하 작가님의 '배달민족 치우천황'이 다음뷰의 카테고리 책에서 매주 1회씩 연재되고 있어 독서를 좋아하는 블로거님들께 소개시켜 들리고자 합니다.
 '배달민족 치우천황'은 단군 조선 이전에 우리 민족의 조상이었던 치우천황의 영웅담을 역사 자료를 바탕으로 창조한 역사소설인데, 아직도 치우천황이 우리민족의 조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 많아 역사적인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라도 꼭 읽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치우천황은 '붉은 악마'의 캐릭터로 더 유명한데, 70전 70승의 빛나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전쟁영웅입니다. 
 중국의 한고조 창시자인 유방이 전쟁전에 치우천황에게 승리를 기원하는 제사를 드린 역사적인 기록이 사마천의 사기에 있는데, 사기의 기록만 봐도 치우천황을 중국인들이 얼마나 존경했는지 알 수 있지요.

 70전 70승! 거짓말 같은 신화의 주인공, 중국인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주인공, 한고조 유방이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제사를 지냈던 주인공이 바로 우리의 조상이 되시는 치우천황입니다. 
 중국은 이민족인 치우천황을 자신의 역사라고 주장하는데, 이에 비해서 우리의 반응을 알바 없다는 식의 무대응이라 안타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중에 치우천황이 역사적인 존재가 확인이 된다고 해도 중국의 선수를 빼았기면 다시 찾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지요. 

 치우천황의 한민족의 조상이라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기록에도 간간히 등장합니다. 
비록 고려나 조선의 사서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치우천황이 동쪽에 있었다는 사실과 우리 겨례가 동쪽에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간간히 기록에 등장하는 치우천황의 기록을 고려하면, 치우천황은 한민족의 조상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신재하 작가님의 '배달민족 치우천황'을 읽으시면, 치우천황이 한민족의 조상이라는 사실을 공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세계를 정복한 영웅이

 바로 우리의 선조라는 사실을 아는가!” 
 
-신재하의 역사소설 '배달민족 치우천황' 중에서-


 신재하 작가님의 '배달민족 치우천황' 연재는 신재하 작가님 블로그에서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신재하 작가님의 블로그로 이동 → 신재하 작가님 블로그
 


 오늘 제 블로그에서는 치우천황에 대한 저의 생각과 신재하 작가님의 소설 '배달민족 치우천황'의 일부분을 작가님의 허락을 받고 포스팅하였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밑의 링크를 통해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치우천황,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 (조정우)


 붉은 악마의 캐린터인 '치우천황'이 우리 선조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최근들어 붉은 악마의 캐릭터인 '치우천황'이 네티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지만, 아직도 치우천황이 우리 민족의 선조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분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해도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듯이 그 누가 아무리 치우천황을 자신의 선조라고 억지를 부린다고 할지라도 치우천황은 우리 선조가 맞습니다.
 치우천황은 우리의 선조인 단군의 선조시니까요.
 요즘 말로 하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라 할까요? 


 치우천황은 중국 최초의 황제(천자)로 인정받은 황제 헌원과 동시대로 사마천의 사기에는 헌원이 치우천황을 죽였다고 나오지만, 우리나라 문헌에는 치우천황이 이겼다고 되어있어 사기의 내용이 정확한지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치우천황이 중국에서 전쟁의 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다는 사실과 한나라 유방은 전투에 임하기 전에 치우천황에게 제사를 올렸다는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헌원이 정말 치우천황을 이겼다면, 유방이 헌원에게 제사를 올리지 않았을까요?
 사기의 기록대로 치우천황이 헌원에게 죽었다면 유방이 치우천황이 아닌 헌원에게 제사를 드렸을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이 부분은 5000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러 증명하기 쉽지 않겠지만, 아무튼 치우천황은 중국인들을 떨게 만들었던 전설적인 전쟁의 영웅인 것이 사실입니다.
 
치우천황은 70전 무패를 했다는 전설이 있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 치우천황이 얼마나 대단한 영웅인지 알 수 있지요.
 안타까운 일은 위대한 민족의 선조 치우천황의 존재를 믿지 않는 한국인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특히 역사학자들 중에는 치우천황을 믿지 않는 분들이 많아 아직도 국사책에 치우천황이 등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청나라가 은나라나 하나라, 황제에서 요순임금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실존역사로 인정받고 있는 것처럼 치우천황도 언젠가는 우리의 선조라는 사실이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소설 '배달민족 치우천황'에 대해서> 

 신재하 작가님의 "배달민족 치우천황"이 다음뷰에서 연재를 시작했는데, 신재하 작가님은 치우천황 집필을 위해서 수년간 치우천황에 대한 역사자료를 조사한 후에 집필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최근들어 사극이 역사에 근거하지 않아 사극인지 환타지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비해 신재하 작가님의 '치우천황'은 역사자료에 근거한 역사소설입니다.



<작가의 말>


중국 정사와 우리 사서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 단군왕검 이전의 실존 기록이
치우천황의 역사이다. B.C 2700년 경, 북방 바이칼 호수에서 남방 파미르 고원과 중국 양쯔강을 지나 중국 해안까지, 동으로는 만주와 백두산 지역은 물론 태평양에 이르기까지, 서로는 몽고 전체를 아우르는, 전 세계의 가장 큰 영토를 지배했던 우리 배달민족의 실존 역사인 것이다

                                         - 배달민족 치우천황 제 1화 중에서 -

 

근거 사료 : 중국의 <사기> <산해경> <한서지리지>, 

              우리 역사서 <한단고기> <규원사화> <단기고사> 외 다수. 

              기타 치웅천황의 묘소를 비롯하여 배달한국이 일궈낸 세계적 문화

              유산 '홍산문화'에서 수많은 유물과 유적이 출토되었음. 

 

---------------------------------------------------------------

 

  

 

<배달민족 치우천황을 집필하며> - 신재하

중국 정사와 우리 사서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단군왕검 이전의 실존 기록이 치우천황의 역사이다. B.C 2,000년 경, 북방 바이칼 호수에서 남방 파미르 고원과 중국 양쯔강을 지나 중국 해안까지, 동으로는 만주와 백두산 지역은 물론 태평양에 이르기 까지, 서로는 몽고 전체를 아우르는, 전 세계의 가장 큰 영토를 지배했던 우리 배달민족의 실존 역사인 것이다.

 일제 시대로부터 명맥이 이어진 우리 나라의 보수 사학계는 서기 전 2333년의 단군왕검을 한낱 신화로 해석하고 있다. 반면에 단군왕검을 현존했던 역사적 사실로 보는 진보 사학계 및 재야 사학계와의 논쟁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단군왕검 보다 약 400여 년 앞서있는 치우천황의 분명한 발자취가 명백밝혀짐으로써 우리 민족의 역사가 최소한 반 만년이 훨씬 넘는 역사라는 것이 확연히 증명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우리 한민족의 시원은 놀랍게도 B.C 7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아시아 최초의 국가인 한국이 다 수의 한님들에 의해 3301년 간 지속되었다. 이어 한국 말기에 한님의 아들 중 한 사람인 한웅이 3천의 무리를 이끌고 동진하여 아사달에 신시 배달 한국 (B.C 3898 ~ B.C 2333)을 세우면서 우리 배달민족의 역사는 시작된다. 그 뒤를 단군조선이 계승하고 있음을 중국과 우리 나라의 많은 역사서들의 기록에서 입증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그들 최초의 황제로 추앙되고 있는 헌원황제의 기록들이 실재 역사의 사건임을 공식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 헌원황제가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우리 배달민족의 황제가 치우천황인 것이다.

 

 

 <치우천황의 역사적 기록>

한 때 천하가 셋으로 나뉘어 대치하고 있었으니 탁의 북쪽에 대효가 있었고 동쪽에 창힐이 있었으며, 서쪽엔 황제 헌원이 있었다. 이들은 서로 군대를 가지로 승리를 차지해 보려고 했으나 아무도 이루지 못하였다. 처음 황제 헌원은 치우보다 일어남이 조금 늦더니 싸움마다 이로움이 없자, 대효에 의존코자 했으나 이룰 수 없었고 또 창힐에 의존코자 했으나 그것도 뜻대로 안 되었으니 이는 두 나라가 모두 치우의 무리였기 때문이다. 대효는 일찍이 치우천황으로부터 간지의 술을 배웠고, 창힐은 부도의 글을 배웠다. 당시의 제후들이 신하로서 섬기지 않는 자가 없음이 이 때문이다.

                                                                                                                         - 삼성기

 

 

치우는 14대 자오지 한웅으로 배달나라를 일으켜 중국의 희대 지방을 점령하고 탁록의 들에서 헌원을 사로 잡아 신하로 삼았다. 치우는 옛 천자의 이름이다.

                                                                   -     한단고기

 

 

당초 세계는 동서로 갈리어 야만적인 수인, 즉 한족이 살고 동에는 한웅이 다스리는 문명인, 즉 우리 동이족이 살았다. 처음에는 서로 떨어져 살다 뒤에 인구가 늘어나 국경을 접하게 되자 싸움이 붙었다. 이것이 치우천황과 황제의 싸움인데, 이 싸움에서 치우가 이겨 먼저 제위에 올랐다. 이때 한족들은 투구와 갑옷을 만들 줄 몰랐다. 그래서 갑옷을 입은 치우를 머리가 구리요, 이마가 쇠, 즉 동두철액이라고 했다. 10년 동안 73회나 싸웠는데 장수들은 모두 피로한 줄 모르고 사병 또한 후퇴할 줄 몰랐다.

     

                                                                   -     규원사화

 

 

치우는 노산의 쇠로써 오병을 만들었다. 그런데 치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중략)  황제가 섭정을 할 때 치우와 그 형제 81명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짐승의 몸에 사람의 말을 하였다. 구리 머리에 소의 이마를 가졌고 모래와 돌을 먹었다. 병장기로 칼, , 큰 활 등을 만들어 천하에 위세를 떨쳤다.    

 

                                                                 -  중국의 <사기> - 

 

사기의 내용은 의도적으로 치우천황을 깍아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짐승의 몸에 모래와 돌을 먹었다니. 사마천은 왜 이렇게 표현한 것일까. 그 까닭은 치우가 자신들의 최초의 황제로 떠 받들고 있는 헌원황제를 굴복시킨, 다름 아닌 동이겨레 즉 우리 배달민족의 수장이었기 때문이다.

  치우천황의 역사는 우리 겨레의 역사이며 영광된 역사이다. 우리 민족은 역사상 가장 큰 땅덩이를 호령하였던 치우천황의 후손들이다. 그동안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에 짓눌려 있던 고려와 조선시대, 그리고 일본의 36년 간 압제 속에서 우리 민족은 처절한 패배의식과 왜곡된 반도사관의 주입식 역사교육을 강요당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그 잔재가 뿌리깊게 박혀 있다는 것이며, 이는 통탄할 노릇이다.

  나는 십 수 년 전, 한참 방영되던 TV CF의 한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CF 내용 중에 사회에 갓 진출한 한 젊은이가 내뱉는 독백이 있었는데 그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난 우리나라가 단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공해 본 적이 없다는 역사를 가졌다는 게 싫었다.

CF를 볼 때마다 우린 왜 이렇게 작고 힘없는 민족으로 태어났나하는 자괴감에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한 내용이어서 왠지 우울했던 기억이 있다. 나 역시 그런 줄 알았으니까. 다른 나라를 침공했다는 게 자랑스럽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우리 나라는 다른 나라의 침략에 시달려오기만 했던 나약한 약소국이라는 사실이 슬펐기 때문이다. 이는 일제 시대 때 우리의 역사서를 모조리 불태워 버리고, 다른 나라의 지배에만 익숙해져 있는 짧은 역사의 민족으로 개조시키고자 한 일본의 우리 역사 말살정책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러나 전혀 엉뚱하게도 2002년 월드컵을 통해 묻혀질 것만 같았던 우리 민족의 위대한 웅혼은 다시 살아났다. 우리 나라 국가대표 축구선수라는 붉은 전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들의 영혼과 함께 하는 12번 째 붉은 전사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붉은 악마'다. 붉은 악마의 공식캐릭터로만 알려진, 일명 도깨비상이 바로 '치우천황'상이다. 옛부터 중국과 몽고 지역에 <전쟁의 신>,<승리의 신>으로 널리 알려져 지금까지도 곳곳에 사당이 지어져 숭배되고 있으며, '난중일기'에도 이순신 장군이 전투에 나가기 전에 치우천황께 제를 올렸다는 기록                                                  

 

B.C 2706년 온 세상 하늘 높이 떠오른 위대한 별 하나가 오늘 A.D 2010, 또 다시 그 웅혼한 기상을 내 뿜으며 찬란히 빛을 발한다 그 이름은 치우다.

  치우는 세계를 호령했던 고대사의 주인공답게 우리 배달민족의 영혼 속에 살아 숨쉬며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다시 한 번 우리의 배달민족이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세계를 향해 포효하는 붉은 악마로, 인류문화를 선도하는 문화 선진국으로, 혼란한 세계질서를 바로 잡고 주도하는 초일류 강대국으로 거듭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배달의 젊은이들이여 눈을 떠라!

배달민족 치우천황의 직계 후손들이여, 이제 긴 잠에서 깨어나라!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배달민족의 웅대한 꿈을 온 누리에 마음껏 펼쳐 보이자.



 

 <1화>

 

 

중국 토착민의 황제인 헌원은 자신의 군세가 세 배 이상 많다는 것을 믿고 자신감이 충만했다.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열망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자신이 대군이 전속력으로 진격하자 천황군은 황급히 말머리를 돌려 후퇴하기 시작했다. 제 아무리 천황군이라 하더라도 전면전에서 대군을 당해낼 수는 없으리라. 그렇게 반나절을 쫓고 쫓기는 양상으로 전투는 흘러가고 있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도망가던 천황군이 안개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 안개가 너무 짙어 이상한 생각이 든 헌원은 추격을 멈추고 형세를 관망하기에 이르렀다. 안개 만이 아니였다. 붉은 염초와 유황을 피워 올린 연기가 안개와 하나가 되어 을씨년스러운 기운을 내뿜었다. 헌원군은 왠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한 동안 적막이 흘렀다.

둥둥둥둥둥둥둥 두둥 두둥

갑자기 요란한 북소리, 함성소리와 함께 천황군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양 옆 쪽에서도 천황군이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천황기를 높이 쳐들고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비록 수 천 기에 불과한 소수 병력이었으나 헌원군의 혼란과 공포를 조성하기에는 충분했다. 헌원은 잠시 당황했으나 천황군을 다 합쳐봐야 자신의 군대의 반에도 훨씬 못미치는 숫자임을 간파하자 맞서기로 하고 총공세를 명령했다. 그러나 군사들이 사기는 이미 꺾여 있었다. 기분 나쁠 정도의 짙은 안개와 붉은 염초의 연기 장막 속에서 들려오는 천황군의 북소리. 곧 이어 붉은 빛 갑옷을 입은 천황군이 우뢰와 같은 함성을 내지르며 진격해오자 순식간에 공포에 휩싸이고 말았다. 대군이 전면전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지만 안개와 염초 연기가 헌원군의 혼백을 흔들어 놓고 있었다. 제대로 된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헌원군은 혼란의 빛이 역력했다. 그동안 치우천황이 모래를 먹고 안개를 일으키고 천둥벼락을 내려칠 수 있다는 소문을 익히 알고 있던 터였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파죽지세로 몰아 친 천황군과 뒤엉키자 마자 헌원군은 일시에 아비규환에 빠지고 말았다.

둥둥둥둥둥둥둥 두둥 둥둥둥둥 두둥 두둥

 

 

아침 6, 요란한 알람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다. 꿈 속에서 치우천황을 보다니.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지어진다. 새벽 3까지 뒤척이다 간신히 잠이 든 후 깨었지만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맑다. 오늘, 잠실벌에서 벌어질 국가대표 응원단 붉은 악마의 첫 공식 경기 데뷔를 앞두고 벌써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우리의 국대와 세계 최강의 브라질 국가대표와의 최초의 국가대항전! 히바우드, 카푸, 아모로주 등 세계적인 축구스타와의 만남 자체만으로도 아드레날린이 스멀스멀 쏟구치는 게 느껴진다. 작년 초 붉은 악마 동호회에 가입했지만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로서는 응원연습에 제대로 참여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 어엿한 대학생 청년이 된 나는 다르다. 응원도 대부분 다 익혔고, 본격적인 붉은 악마의 공식 출범식이 오늘 대한민국 잠실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것도 세계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일어나자 마자 세수부터 한 나는 정성스레 얼굴에 페인팅을 하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사생대회에 곧잘 입상했을 정도의 그림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는지 꽤 근사한 태극문양이 왼쪽 뺨에 그려진다. 벌써 몇 번 해본 터라 혼자서 그리는 솜씨에 스스로 감탄사가 배어 나온다. 거울에 비친 벌거벗은 나의 몸을 유심히 바라본다. 상체의 앞부분 전체에 그려진 붉은 악마의 공식 캐릭터인 도깨비상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도깨비가 아니라 치우천황 상이다. 지난 밤 두 시간에 걸쳐서 정성 들여 페인팅을 하고서야 난 잠자리에 들었다. 치우천황을 내 몸에 품고서 잠이 든 셈이다. 왠지 그래야만 될 것 같았다.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생생한 간 밤의 전투가 의미있게 다가온다. 우리에게 새로운 기와 영혼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그 때까지 우리 나라 국대의 실력이란 객관적으로 브라질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브라질은  월드컵 4회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의 팀이고, 우리는 지금껏 월드컵에 나가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나라였으니 우리의 승리를 예견하는 사람은 없었다.

히바우두가 이끄는 초호화군단 브라질의 초청경기라 시합 전부터 전세계 매스컴이 집중되었고, 또 세계적으로 생중계 되기에 더욱 긴장되었다. 하지만 왠지 자신감이 들었다. 우리의 국대 선수들은 이미 예전의 그들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웅혼한 기상이 넘쳐나고, 주체할 수 없는 붉은 악마의 투지와 자신감이 쏟구치고 있음을 느꼈다면 단지 응원단으로서의 간절한 바람 때문이었을까.

1999 3 31 오늘은 우리 나라 축구 역사상 새로운 전기를 맞는 날이 될 것이다.

나는 우리의 축구 국가대표팀의 새로운 응원단 붉은 악마로서 비장한 결의를 마음 속에 다지며 집을 나섰다.

 

 

(계 속) 


Posted by labyrint


 저의 연재소설 선덕여왕의 줄거리입니다.
 현재까지 110회까지 썼고, 앞으로 최소 300회까지 쓸 예정입니다.
 저의 선덕여왕은 모두 3부로 나누어 쓴 후에 추가로 2부를 더 써 모두 5부로 완성할 예정이니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선덕여왕 1부

 아들이 없는 진평왕은 덕만공주(선덕여왕)를 자신의 후계자로 정했지만, 여자가 왕이 된 적이 없어 신료들에게 공표하지는 않았다.

6 26년 당태종이 즉위하자, 진평왕은 덕만공주를 사신단의 대표로 하고 김춘추를 덕만공주를 보좌하게 하여 대규모 사신단을 파견했다. 백제의 무왕도 의자왕자를 사신단의 대표로 대규모의 사신단을 파견했다.
 무왕은 의자왕자가 어린 관계로 의자왕자의 어머니인 신라의 선화공주를 보내 의자왕자를 돕게 했다. 고국인 신라를 사무칠 정도로 그리워한 선화공주는 이복동생인 덕만공주를 만나 친언니인 천명공주의 소식을 들었다.
 20대의 덕만공주와 40대의 선화공주는 이복이었지만, 마음이 통하여 친자매보다 더 깊은 정이 들었다.

 신라공주 시절 수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선화공주는 그때 수양제의 딸인 양비를 만난 적이 있어 지금 당태종의 귀비가 된 양비를 다시 만났는데, 둘 다 동생과 떨어져 사는 동병상련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친자매처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이때쯤에 양비의 고모인 수나라 의성공주가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돌궐이 당나라를 공격했다.

 백제의 의자왕자는 당태종에게 잘 보이려고 사신단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은 병사 2000명을 돌궐과의 전쟁에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덕만공주는 백제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신라의 시신단을 호위하는 병사 1000명을 돌궐과의 전쟁에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덕만공주와 한때 서로 연모하던 관계였던 김유신은 사신단의 호위를 책임지고 있어 전쟁터로 나가게 되었다.
 덕만공주는 김유신을 대신해 다른 사람을 보내려고 했지만, 책임감이 강한 김유신은 덕만공주에게 하직인사를 올리고 사신단의 병사들을 이끌고 돌궐로 떠났다.
 양비는 고모를 설득하기 위해 당태종에게 돌궐로 사신으로 보내줄 것을 자청했는데, 혼자가기 적적하여 덕만공주에게 함께 가달라고 부탁했다. 덕만공주가 가면 선화공주도 따라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유신이 걱정된 덕만공주는 양비의 부탁을 들어주었고, 선화공주는 덕만공주가 걱정되어 둘 다 모두 돌궐로 가게 되었다. 


 선덕여왕 2부 

 먼저 서라벌로 돌아간 김춘추는 천명공주에게 선화공주를 만난 사실을 말했고, 천
공주는 친동생인 선화공주를 만나기 위해 당나라로 떠났다.(현재까지 쓴 부분 110화)(앞으로 쓸 부분) 
 한편 김유신의 활약으로 당군은 돌궐과 싸워 크게 이겼고, 장안으로 돌아온 덕만공주와 선화공주는 천명공주를 만났다. 덕만공주와 천명공주는 선화공주와 눈물의 작별인사를 한 후에 김유신, 김춘추와 함께 신라로 돌아갔고, 선화공주는 백제로 돌아갔다.
 선화공주는 백제의 무왕의 허락을 받은 후에 서라벌을 방문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병이 생겨 신라에 가지 못했다. 
 이후 고구려가 신라와 백제를 동시에 공격하여 선화공주는 신라를 방문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진평왕은 이미 병으로 덕만공주에게 국정을 맡기고 있었는데, 덕만공주는 김유신과 알천을 등용하여 고구려와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 왕의 후계자의 자리를 굳건하게 하였다.

 
 선덕여왕 3부 

 하지만 덕만공주의 어머니 마야왕후가 죽자, 새 왕후가 된 승만 왕후는 아들을 낳았는데, 덕만공주를 몰아내고 아들을 왕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진평왕이 병이 들어 사경을 헤메자 승만 왕후는 왕의 조서를 위조하고 칠숙을 끌어들여 반란을 일으켰지만, 비담과 김춘추와 김유신의 등의 활약으로 무산되었다. 승만 왕후는 궁전을 빠져 도망쳤지만, 그 와중에 아들이 병으로 죽었다.
 진평왕이 죽자 덕만공주는 정식으로 왕위에 올랐다. 



 선덕여왕 4부와 선덕여왕 5부 는 아직 스토리가 미정이라서 올리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쓸 부분인 2부 부터는 확실하게 결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바뀔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좀 더 재미있고 흥미있는 이야기를 삼입할 예정이니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labyrint

 "한국팀이 너무 맥없이 패한 것 같아요."
 한국 대표팀이 남미의 강호  아르헨티나에게 4 : 1로 참패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우세는 예측했지만, 1,2 점 차이가 아닌 3점 차이로 패한 것은 대단한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도 큰 충격을 받았는데, 2002년 한국팀이 4강 신화를 연출한 이래 이처럼 참담한 패배는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게 5 : 0 으로 참패당했던 악몽이 기억날 정도였습니다. 2006년 스위스 전에서 오프사이드 논란과 함께 2 : 0으로 패하기 전까지 한국팀은 2002년부터 1 점 차이 이상으로 패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르헨티나 전에서 패한다고 해도 1점 차이로 질 것이라고 예상했었지요.
 하지만 결과는 냉정했습니다.
 4 : 1의 스코어가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경기는 초라했습니다.
 정성룡 골키퍼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5 : 1 심지어 6 : 1 로 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끝난 경기, 어쩌겠습니까?
 남은 경기라도 최선을 다해 16강 진출을 이룬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지 않을지요. 다행하게도 그리스가 나이지리아를 꺽어 한국팀의 16강 진출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나이지리아에게 비기기만 해도 16강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승세를 타는 그리스가 아르헨티나 마저 꺽는다면, 한국팀의 16강 진출은 좌절되기 때문에 반드시 나이지리아를 이겨야 될 것입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한국 대표팀이 네덜란드에 5 : 0으로 참패한 후에 유럽의 강호 벨기에와 1 : 1로 비기며 선전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정신만 차린다면 나아지리아전에서 선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16강 진출이 거의 힘들어진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겠지만, 문제는 16강 진출이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르헨티나와의 참패로 무너진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회복해야 됩니다.
 이대로 무너진다면,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질시하는 외국 네티즌들의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을지요.
 이대로 물러설수는 없습니다.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임전무퇴의 정신과 4강 신화의 원동력이 되었단 헝그리 정신으로 나이지리아를 반드시 꺽어 원정대회 16강 진출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창출해 내기를 기대해 봅니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처럼 한국팀의 참패는 1차전 승리로 들뜬 한국 대표팀에게 보약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패장인 허정무 감독도 아르헨티나전의 패전을 통해서 전술의 문제점을 되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선수는 과감히 빼고 컨디션이 좋은 선수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좋지 않을지요.
 선수의 컨디션을 알아보는 것도 감독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르헨티나 전에서 드러났던 문제점을 반성하며 나이지리아전에 배수진을 쳐서 승리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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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abyr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