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항상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대했던 그녀가 뭔가 근심어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현철아, 너한테 할말이 있어......"
 "뭔데?"
 나는 그녀의 근심어린 표정을 보자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우린 너무 다른 점이 많은 것 같아. 성격도 너무 다르고, 식성도 다르고...... 그동안 내가 항상 너한테 양보하며 만났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만나기는 서로가 힘들 것 같아......"
 나는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헤어지자는 말이 아닌가!
 나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는 잘 맞는 커플이야. 너도 항상 그렇게 말했쟎아. 노력하자. 내가 앞으로 많이 노력할께."
 그녀는 긴 한숨을 쉰 후에 말했다.
 "사실은...... 예전부터 느낀 건데, 우리 사이, 예전같지 않아. 예전에는 만나면 즐겁고 신났는데, 요즘은 불편해. 진작부터 말하려고 했는데...... 우리 이제 그만 만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몇 달 전부터 그녀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이상한 점이 있었지만, 나는 앞으로 우리가 자주 만나면 예전처럼 사이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툭하면 바쁘다며 약속을 취소했던 그녀는 이미 그전부터 이별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별을 직감한 나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쟎아. 나한테 기회를 주지 않겠니. 내가 부족한 점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노력할께."
 "현철아, 정말 미안해. 넌, 날 진심으로 대했지만, 난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나같은 여자한테 미련을 가지지 말고, 나보다 더 좋은 여자를 만나길 바래...... 나 지금, 몸이 안 좋아서 이만 가볼께. 잘 있어."
 민희가 떠나려고 하자, 나는 민희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민희를 설득했다. 나는 몇시간이나 민희를 붙잡고 설득했지만, 끝내 민희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민희는 떠났다.

 나는 이대로 민희를 포기할 수 없었다.
 무엇인가 민희의 마음을 돌릴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민희가 나에게 이별을 통보한 지 열흘이 지나서 나는 몇 장의 장문의 편지를 쓴 후에 민희의 집을 찾아갔다.
 때마침 민희는 집에 없어 나는 집 근처에서 민희를 기다렸다.
 내가 민희에게 무슨 말을 할까 골똘히 생각하느라 정신을 팔고 있을 때 어디선가 민희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순간 나와 민희는 소스라칠 정도로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민희는 한 남자와 다정한 모습으로 함깨 오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야?"
 민희의 옆에 있던 남자가 인상을 찡그리며 민희에게 물었다. 
 민희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옆에 있던 남자에게 말했다.
 "오빠, 미안하지만, 잠시 비켜 줄래?"
 그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 후에 어디론가 가버렸다.
 민희는 상기된 표정을 지으며 쌀쌀하게 말했다.
 "뭣하러 왔어?"
 "......"
 뭣하러 왔냐구? 그걸 몰라서 물어?
 하지만, 나는 입이 열어지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이전부터 그 녀석을 나 몰래 만났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지금 현재의 그녀의 쌀쌀맞은 태도......
 안봐도 비디오라는 말이 있지. 그래, 안봐도 그녀가 그동안 왜 나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같지 않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제 그녀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녀는 이전부터 변심했었던 것이다.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 너한테 할 말이 있었는데...... 이만 가볼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로 그녀가 서있는 곳으로부터 멀어졌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민희, 그녀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나는 그녀가 언제부터 그 남자를 만난 것인지 몹시 궁금했지만, 더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난, 단지 민희가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도 나는 그녀가 한때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했었다고 믿고 싶다.


Posted by labyr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