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것이지요.
 아무리 가치 있는 보물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겠지요.

 어떤 가난한 사람이 오래전에 출판된 세계적인 시인의 시집 초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가치를 알지 못하여 평생 그대로 두었다가 그가 죽은 후에서야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만약 그가 그 가치를 진작에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지요.
 이처럼 아무리 값진 보물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가치를 알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없겠지요.

 

 인간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보물처럼 소중한 것이 있지만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하면 후회하겠지요.

 모든 인간은 최소한 두가지 이상의 소중한 것을 소유한 적이 있거나 소유하고 있는데 그것은 삶과 젊음입니다.
 한 인간의 삶이나 젊음은 무한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한정되어있지요.

 누군가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나는 날마다 하나님께 내가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누군가 젊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내가 다시 가난했던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내 모든 재산을 흙처럼 강물에 던져 버려도 아까울 것이 없다. 젊음이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가?"
 이처럼 삶이나 젊음 모두가 정말 아름다운 것이 분명하지만 삶의 아름다움이나 젊음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가치가 떨어지겠지요.
 사람이 행복하지 못한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것들은 망각한 채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집착하기 때문이지요.
 없는 것을 갖고 싶어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없는 것에 집착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가치가 크게 떨어지겠지요.
 옛날에 어느 부족들은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잘 몰라서 다이아몬드를 헐값에 팔아서 금을 샀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처럼 보석의 가치를 알지 못하면 함부로 낭비하게 되지요.

 

 삶이나 젊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히 살고 싶어도 영원히 살 수 없고, 영원히 젊고 싶어도 젊음은 한정되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나 젊음의 가치를 알지 못한고 산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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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라면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세상에는 행복한 사람보다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항상 노력하지만,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많은 것은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공부를 잘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공부를 잘하기 힘들듯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알아야 되겠지요.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현재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행복한 사람보다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은 이유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여 현재 자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스럽게 사는 경우가 많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젊은 시절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실연의 상처를 받았던 사람도 나이를 먹으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도 아름답고 그 시절이 아름다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요.

 젊은 시절이란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것입니다.

 

 만약 인간에게 젊은 시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달을 수 있는 감성이 있다면, 사랑도 이루어지기 쉬울 것입니다.

 현재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감성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긍정적이고 열정적으로 살기 때문에 누구나 좋아하기 마련이니까요.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면서도 행복하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은 자신이 현재에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지요.

 

 

 긍정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세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어 열정을 가지게 되지만, 긍정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없다면 세상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해 열정을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시각은 마음의 문을 열어 이성의 매력을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에 맞는 이성을 만나기 쉬울 것입니다.

 사람들이 마음에 맞는 이성을 찾지 못하는 것은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해 자신에게 맞는 이성을 찾지 못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지요.

 

 사람이 연애할 때의 마음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짝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닫힌 마음으로 자신의 짝을 찾는 것입니다.

 열린 마음이란 감성을 가지고 마음의 문을 열어 이성이 나의 매력이나 장점을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성의 매력이나 장점을 보는 것이지요.

 

 인간은 이성은 자신의 매력이나 장점을 열린 마음으로 봐주기를 바라면서도 자신은 이성을 닫힌 마음으로 보는 경우가 많지요.

 닫힌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에 꼭 드는 이성을 찾으려고 한다면, 자신의 주변에 매력적인 이성이 있어도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놓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바로 닫힌 마음으로 자신의 짝을 찾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괜챦은 이성이 자신에게 호감을 보였던 경험이 한번 쯤은 있지요.

 

 제 주변의 이성에게 인기없는 친구들도 최소한 한번 이상은 괜챦은 이성이 자신에게 호감을 보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아 외면하여 후회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닫힌 마음으로 자신의 짝을 찾았는데도 좋은 기회가 있었다면,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짝을 찾았다면 수많은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평생을 살아도 마음에 드는 이성과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해 스스로 기회를 차버렸기 때문인 경우가 많지요.

 윌드컵을 보면 공격하는 선수가 골키퍼와 일대일의 절호의 찬스에서 골을 넣지 못한 후에 괴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머리를 감싸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월드컵은 평생에 한번 나오기도 힘든데, 그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면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인간의 삶 속에서는 자신에게 좋은 기회가 온지도 모르고 마치 축구 선수가 일대일의 결정적인 찬스에서 공을 허공으로 차버리듯이 자신에게 다가온 기회를 차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회가 와도 기회를 잡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가 많은데,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을 때가 많은 이유는 닫힌 마음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지요.

 

 열린 마음으로 살고 있었다면 자신에게 다가온 기회를 놓치기 전에 좋은 기회가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겠지요.

 인간이 자신에게 다가온 좋은 기회를 놓칠 때가 많은 것은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해 기회를 감성적으로 느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영어에 "Open your heart."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너의 마음을 열어다오."라는 말인데, 인간은 이성은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주기를 바라면서도 자신은 이성에게 마음을 열지 못할 때가 많지요.

 눈이 있어도 눈을 감으면 사물을 볼 수 없듯이 감성이 있어도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면 좋은 사람을 만나도 감성적으로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이 행복하게 살고 사랑을 이루려면, 먼저 현재의 소중함을 깨달아 긍정적인 시각을 가져고 열정적으로 행복하게 살면서 마음의 문을 열어야 될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어야 감성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감성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면 자신에게 좋은 기회가 와도 감성적으로 느끼지 못해 놓치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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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 유럽에 '아내는 가정을 지키는 천사다.'라는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9세기가 되자 '아내는 가정을 지키는 천사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확산되기 시작했고 이러한 생각은 오늘 날까지 이어지고 있지요.

 

 그런데 어떤 면에서 '아내는 가정을 지키는 천사다.' 와 '아내는 가정을 지키는 천사가 아니다.'라는 말은 둘 다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자는 결혼한 후에 천사처럼 자신을 희생하면서 가정의 행복을 이끌어 나가는 경우가 많지요.

 어느 시인은 여성의 희생정신에 대해서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습니다.

 "신은 가정을 지켜주기 위해서 아내를 천사 대신에 보냈다. 아내는 천사처럼 가정을 지키니 남편은 천사들에게 아내를 지켜달라고 기도하라."

 세상에는 여성을 천사에 비유한 시들이 많이 있지요.

 아직도 많은 남자들은 자신의 애인이나 아내를 천사에 비유하지요.

 

 그렇다면 '아내가 가정을 지키는 천사가 아니다.'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내가 항상 천사처럼 가정을 지킬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아내도 자신을 지켜주는 천사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어느 시인의 시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만약 아내의 마음을 지켜줄 천사가 없다면 아내도 천사로 남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아내의 마음을 지켜줄 천사라는 것은 남편의 사랑인 것이지요.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내의 마음은 무너질 것이니 더이상 천사가 되어 가정을 지킬 수 없겠지요.

 남편이 아내를 지키는 천사의 역활을 하지 못한다면 아내가 가정을 지키는 천사의 역활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겠지요.
 남자가 알아야 할 것은 아내가 가정의 천사가 되려면, 남자가 먼저 아내를 지키는 천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도 없는
 황량한 가정에서 천사의 역할을 할 여자는 그리 많지 않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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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헨티나전 참패 이후에 허정무 감독의 전술이나 선수 기용 방식에 대해 불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백성들이 장군을 불신하면, 병사들까지 장군을 불신하여 결속력이 약해져 패하는 경우가 많듯이 국민들이 허정무 감독을 불신한다면, 감독과 선수들간의 신뢰가 약해질까 우려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허정무 감독의 전술이 실패한 것은 꼭 허정무 감독만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선수들이 허정무 감독의 전술에 따라주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제3자가 감독의 전술을 비판하는 것은 대단히 좋지 않은 모습입니다.

 허정무 감독의 선수 기용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많지만, 선수가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결과로 감독의 선수 기용을 지나치게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게 결과론적이 아닐지요.
 승패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스포츠 경기에서는 만약이라는 가정이 별 의미가 없지만, 만약 염기훈 선수가 결정적인 찬스에서 골을 넣어 2 : 2로 비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약 오범식 선수가 허정무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여 이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론 선수의 부진은 선수의 컨디션을 점검하지 못한 감독에게도 책임이 없지는 않겠지만, 감독보다는 선수에게도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감독도 사람이기에 실수나 잘못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허정무 감독의 인터뷰를 비판하지만, 경기 종료 후에 아쉬운 패배를 당한 허정무 감독의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축구팬들도 경기 결과에 대해 실망스럽겠지만, 감독 본인보다 경기 결과에 실망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패전의 아픔을 당하는 감독을 격려해 주지는 못할 망정, 지나친 비판은 감독에게도 선수에게도 국민들 자신에게도 모두 좋지 않은 것이지요.

 4강의 신화를 만든 히딩크 감독조차 언론의 비판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결과론적인 비판 형태에도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이기면 명장이고, 패하면 우장이 되는 것일까요?
 감독의 전술이 항상 맞아 떨어질 수는 없습니다.
 맞아 떨어질 때도 있고, 맞아 떨어지지 않아 전술이 엉터리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것이지요.
 명장도 전술이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패할 때가 있습니다.
 감독의 전술이 나쁘지 않아도 전술이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패할 수 있는 것이지요.

 삼국시대에 제갈공명이 1차 북벌 때 마속을 기용하여 가정에서 패하여 결과적으로 모든 책임을 뒤집어 썼지만, 마속이 제갈공명의 지시에 따랐다면 이겼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제갈공명이 마속을 등용했다는 이유로 패전의 책임을 졌지만, 근본적으로 잘못한 사람은 마속이지 제갈공명이 아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르헨티나전에서 패한 것은 허정무 감독의 전술이 잘못된 것이라기 보다는 단지 전술이 맞아 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과인의 컨디션이 너무 좋았다던가, 오범석 선수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거나, 염기훈 선수가 지나치게 긴장하여 찬스를 놓쳤을 수도 있지요.
 선수들의 컨디션까지 감독이 통찰해야 명감독이라는 말을 듣겠지만, 선수들 개인의 컨디션까지 감독이 모두 알아서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아직 16강에 탈락한 것도 아닌데, 허정무 감독이 언론의 질타를 받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대표팀과 감독에게 필요한 것은 질타가 아닌 격려와 신뢰입니다.
 질타는 16강에 탈락한 후에서나 하는 것이 좋지 않을지요.

 16강을 염원하고 4강 신화를 재현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마음, 모르지 않지만, 감독의 능력이나 선수의 능력에 의구심을 가질 정도의 지나친 비판은 경기력에 방해가 되어 적을 이롭게 할지도 모릅니다.
 정말 대표팀이 16강을 진출하기 바란다면, 격려와 신뢰를 통해서 대표팀 승리의 도움되는 행동을 해야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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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건강처럼 소중한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인간은 건강할 때는 건강의 소중함을 잘 모르지만, 건강을 잃고 나면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에 건강만큼 소중한 것이 있을지요.
 "재산을 잃어버리는 것은 조금 잃어버리는 것이지만,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은 많이 잃어버리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건강을 잃은 후에 건강을 되찾는다면 다행이지만, 건강을 되찾지 못한다면 후회하게 되지 않을지요.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과로하다가 건강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에 건강만큼 소중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건강할 때에는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해 건강에 소흘하게 되지만 건강을 잃게 되면 건강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닫게 되지요.

 건강을 잃은 어느 유명한 가수는 '내가 다시 건강해 질 수 있다면 나의 모든 재산을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람은 건강할 때는 건강의 고마움을 잘 모르다가 건강을 잃은 후에서야 후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들어 인터넷이나 블로그 중독으로 운동을 별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건강이 소중한 줄 안다면, 머리로만 아는데 그치지 말고 운동을 하고 몸을 단련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건강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
 건강이 소중한 것을 알아도 건강을 유지하려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건강을 잃을 수도 있겠지요.
 건강도 투자인 것 같습니다.
 투자하지 않으면 건강하기 쉽지 않겠지요.
 블로그에 글을 쓰느라 쉬지도 않고 늦은 밤까지 글을 쓰시는 블로거님들은 제 글을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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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마다 존경하는 사람이 있지만, 제가 존경하는 사람은 평범한 분들입니다.

 바로 저의 부모님입니다.
 제 친구들 중에도 부모님을 가장 존경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면, 자식이 부모님을 존경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입니다.
 부모님처럼 신뢰할 수 있고,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지요.


 아주 어린 시절 저의 키가 부모님의 키의 절반 정도밖에 안되었을 때 부모님께서 저를 엎어 주셨던 기억이 아직도 선한데, 그때는 제가 어느 세월에 부모님처럼 키가 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느새 훌쩍 커버리더군요.

 

 이제는 제가 부모님보다 더 크지만, 제가 아무리 크고 나이를 먹어도 부모님께서 저를 사랑한만큼 제가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월이 지나 자식을 낳으면 달라질지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네요.

 

 하지만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제가 저의 자식이 생겨도 저의 부모님이 주었던 만큼의 사랑을 자식에게 줄 수 있을지...

 할 수 있고 없는 것을 떠나 노력해야 되겠지요.

 자식이 생기면 마음이 달라질지 모르지만, 과연 부모님처럼 자식을 사랑해줄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부모님의 사랑은 깊고 크기 때문이지요.

 부모님의 사랑이 그토록 크고 깊지 않았다면 오늘 날의 제가 있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네요.

 

 인간이 자라는 것은 음식을 먹고 자라지만, 인간의 정신이 자라는 것은 부모님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시나 글을 읽고,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어도 부모님으로부터 크고 깊은 사랑을 받지 않았다면 어찌 사랑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세상의 대부분의 남자들은 부모님의 사랑을 통해서 사랑의 소중함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부모님없이 자랐다고 해도 다른 가족이나 연인, 선생님, 친구, 이웃 등의 사랑을 통해서 깨닫지 않았을지요.

 부모님의 사랑을 통해서 사랑의 소중함을 깨달은 분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이 없이 자란 분들도 훌륭한 사랑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이지요.

 

 공자님께서 위대한 사상가가 되신 것도 어머니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고 맹자님께서 위대한 사상가가 되신 것도 어머니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없었다면 공자님과 맹자님의 이름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많겠지요.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도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서 위대한 철학자가 된 것이고, 이 땅의 수호자셨던 성웅 이순신 장군도 어머니의 깊은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킅까지 나라를 지키실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의 사랑이야말로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아닐지요.

 그 어떤 철학보다, 그 어떤 시보다, 그 어떤 소설보다, 그 어떤 음악보다, 그 어떤 예술보다 부모님의 사랑보다 인간을 감성적으로 정화시키는 것이 있을까요?

 신사임당만 위대한 어머님이 아니라 이땅에는 지금도 신사임당처럼 위대한 어머님이 수없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해주신 부모님은 제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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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치 있는 보물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지만, 결국에는 가장 소중한 것은 젊음과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 어떤 것도 젊음과 삶을 바꿀 수 없을테니까요.

 만약 누군가가 100억불이 넘는 재산을 준다고 해도 젊음과 바꾸자하면 바꾸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요.
 만약 누군가가 1000억불이 넘는 재산을 준다고 해도 삶과 바꾸자하면 바꾸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요.
 만약 있다면 젊음의 가치나 삶의 가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삶이 있어야 재산이 필요한 것이니 삶은 재산보다 훨씬 값어치가 있는 것이지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재산이 아니라 가족의 삶인 것이지요.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면, 가장 소중한 것 중에 하나를 잃은 것입니다.
 
 
 단지 사람이란 자신의 행복이 우선 순위이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슬퍼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잊어 버리고 사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산 때문에 가족이 화목하지 못하다면, 언젠가는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후회하지 않는다면, 이미 따듯한 인간미를 잃고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나의 부모님은 1조원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을 나에게 주셨고, 형제도 자매도 마찬가지로 소중하지요.
 단지 재물이나 다른 것에 눈이 어두워져서 보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지요.
 나의 젊음, 나의 삶, 가족, 친구, 애인...
 모든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지요.

 최소한 살아있는 사람은 세상을 떠난 사람보다 행복하지요.
 알렉산더 대왕이나 나폴레옹이 살아있을 때 아무리 화려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그들은 살아있는 우리보다 행복하지 못하지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삶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삶이 피곤하여 죽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죽을 각오로 산다면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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