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편 혜숙의 마음

 

 한편 혜숙은 한 달 동안이나 철수로부터 편지가 오지않자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얘가 왜 요즘은 편지를 보내지 않는걸까?'

 혜숙이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철수의 멋진 편지를 읽고나서 철수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 것이지요.


 철수의 편지는 갈수록 더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시인이 된다는 말처럼 처음에는 짜집기에 불과했던 철수의 편지는 이제 창의적인 글이 봇물터지듯이 터져 혜숙의 마음을 사로잡았지요.

 그런데 한 달이나 철수가 편지를 보내지 않자 혜숙은 갖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방학이라서 아르바이트한다고 바쁜 걸까? 아니면 여자를 만난 걸까? 아니면 나보다 더 예쁜 여자를 보고 나한테 관심이 없어진걸까? 뭐야, 도데체... 그림자도 안보이쟎아...'


 혜숙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책상 서럽에 차곡차곡 넣어둔 철수의 편지를 꺼내어 읽었습니다.

 철수의 편지는 한 폭의 멋진 그림처럼 아무리 봐도 싫증나지 않았지요.
 글 자체도 멋있었지만, 자신을 위해서 쓰였다는 것이 로맨틱하게 느껴졌던 것이지요.

 혜숙은 침대에서 철수의 편지를 읽다가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습니다.

 혜숙의 어머니는 우연히 그녀의 방에 들어왔다가 딸이 편지를 들고 있는 채로 잠이 든 것을 보자 그녀의 손에서 편지를 살짝 빼내었지요.


 호기심이 생긴 혜숙의 어머니는 딸이 들고 있던 편지를 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유명 시인이나 유명 작가가 보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뛰어난 감동이 담긴 연애편지였지요.

 '누가 보낸 것일까?'

 편지에는 이름이 없었습니다.


 딸의 책상 서랍이 살짝 열려있는 것을 본 혜숙의 어머니는 사랍을 열어 보았습니다.

 딸의 책상 서랍에는 많은 편지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지요.

 '사귀는 남자가 있나? 근데 나한테 말도 않고?'


 혜숙의 어머니는 딸의 책상 서랍에 있는 편지 하나에 자기도 모르게 손이 갔습니다.

 역시 이름이 없었고 정말 아름다운 글이 편지에 적혀 있었지요.

 혜숙의 어머니는 서랍에 있는 편지들을 모두 꺼내 딸의 방에서 나와 안방으로 들어가 모두 읽어 보았습니다.


 작가가 쓴 것이라고 말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정말 멋진 편지들이었습니다.

 혜숙의 어머니는 편지들을 모두 읽고 나서 다시 딸의 방에 들어가서 예전처럼 차곡차곡 편지들을 정리해 놓고 나왔습니다.


 '정말 누가 저런 멋진 편지를 보냈을까? 물어볼까? 아니야, 내가 책상을 열어 자기 편지를 봤다는 사실을 알면 난리를 칠텐데...  그냥 내가 자기 손에 들고 있는 걸 봤다고 해야 되겠다. 그러게 누가 자면서 편지를 들고 자래? 호호...'

 

 잠에서 깨어난 혜숙은 손에 있었던 편지가 보이지 않자 깜짝 놀랐습니다.

 '어디갔지?'

 책상을 보니 책상위에 편지가 있었지요.


 '어머니께서 다녀가셨나? 내 편지 보셨을까? 내가 편지를 들고 자는 모습을 보시고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침대에서 일어난 혜숙은 마루로 나와 어머니를 살짝 쳐다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딸을 보자, "일어났니? 왠 낮잠이니?"

 "어머니, 혹시..."

 "혹시, 뭐?"

 "아니예요."

 '편지를 읽어 보시지 않으셨나 보내. 다행이다.'


 혜숙이 안도의 한숨을 쉴때, 어머니가 혜숙에게 물었습니다.

 "편지 누가 보낸 거니?"


 혜숙은 어머니께서 편지에 대해서 물어 보자 깜짝 놀랐습니다.

 "편지요?"

 "얘는... 자면서까지 열심히 읽던 그 편지..."

 "아, 그거요? 신경쓰지 마세요. 어머니가 잘 모르는 애예요. 그냥 그 애 혼자 좋아하는거예요."

 "관심도 없는 애가 준 편지를 자면서 봤어?"

 
 "자면서 보기는요...  보다가 깜박 잠이 든거지요. 근데, 어머니... 남의 편지 보면 어떻게요."

 "손에 편지가 있어 뭔가 보니 글자가 보이는 걸 어쩌라고? 얘야, 그 애 누구야? 글솜씨가 보통이 아니던데... 이 어머니도 시를 좋아하는데... 꼭 시인처럼 멋지게 썼더라. 도데체 누구니?"


 "그냥... 동네 앤데... 몇 년 전부터 절 좋아했나 봐요."

 "집에 한번 데려와 봐라. 한번 보자. 몇 년 동안 변하지 않는 마음이 멋있는데..."

 "어머니도 아는 애일거예요. 철수... 아세요?"

 "철수? 알지... 그런데 그 애가 그렇게 글을 잘 쓰는 줄 몰랐구나. 철수의 어머니는 잘 계시니?"


 혜숙은 어머니께서 철수와 철수의 어머니를 아신다고 말씀하시자 놀라면서 말했지요.
 "어머니, 철수 부모님을 어떻게 아세요?"

 "철수 어머니는 우리 동네에서... 인기 많은 여학생이었지..."


 혜숙의 어머니는 철수의 어머니와 아는 사이였지요.

 둘은 일종의 라이벌 관계였습니다.

 혜숙의 어머니와 철수의 어머니는 학창시절 동네에서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여학생이었지요.


 혜숙의 어머니는 철수의 어머니와 죽은 시인과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죽은 시인의 이야기를 딸에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더이상 말을 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습니다.


 "철수, 그 애... 성실하고 괜챦은 것 같은데... 너를 그렇게 오랫동안 좋아한 줄은 몰랐네... 집에 한 번 데려오면 좋을텐데..."

 "그 애가 제 집에 왜요? 전 관심없어요."

 "나도 너의 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좋아한 것은 아니란다. 사람의 일이란 모르는 것이지. 관심없어도 너무 쌀쌀하게 대하지 말고..."

 "알겠어요..."


 혜숙은 그렇게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얘 진짜 변심한 거 아니야? 한 달 동안 그림자도 안 보이고... 그래, 한번 철수 집에 가보자... 볼 일이 있는 척하고 지나가면 되... 가보면 요즘 어디서 뭐하는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겠지...'


혜숙은 머리를 빗고 화장을 한 후에 얼마전에 어머니가 사주신 코트를 입고 어머니께,

 "어머니, 저 좀 나갔다 올께요."

 "저녁도 안 먹고?"

 "볼일이 있어요... 저녁은 사먹을 께요."


 혜숙은 철수의 집쪽으로 갔습니다.

 '내가 왜 이러지? 설마 내가 그 애를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야, 난... 궁금할 뿐이야... 아직도 나를 좋아하는지... 궁금해서... 하지만 관심없다면 궁금할 필요도 없쟎아... 그냥... 조금은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그래, 관심있다고 다 좋아하는 건 아니쟎아?'


 '난 그냥 길을 가고 있을 뿐이야. 그러다가 우연하게 철수의 집에...'

 저녁 때라서 배가 고파진 그녀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밖을 자꾸 쳐다 보았습니다.

 혹시라도 철수가 지나가는지 보기 위해서지요.


 식사를 다한 후에 혜숙은 철수의 집을 지나쳐 지나갔습니다.

 철수 집 근처에 있는 문방구에 가서 예쁜 편지봉투와 편지지를 샀지요.

 '나도 철수에게 편지를 보낼까?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할 수도 있쟎아... 철수와 마주치면 어떻하지? 어때, 난 길을 우연히 지나다가 만났을 뿐이데...'


 혜숙이 철수의 집 근처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철수의 집에서 철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혜숙은 철수의 목소리가 들리자 재빨리 골목으로 숨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숨을 죽이면서 철수가 하는 말을 들었지요.

 "잘가라, 내일 또 보자."

 "오빠, 저녁 늦으면 바래다 준다고 했쟎아."

 "아직 안 늦었쟎아. 버스 하나 타면 바로 집까지 가는데, 바래다 주긴... 나중에 보자..."


 철수는 그렇게 말하고 대문을 닫고 들어가버렸습니다.

 "오빠, 얄미워. 약속도 안 지키고..."

 영희는 철수가 들어가버렸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철수가 들어간 것을 확인하지 혜숙은 우연히 지나가는 척하면서 영희를 살짝 쳐다 보았습니다.

 옷차림새를 보니 부자집 딸 같았습니다.

 영희의 얼굴은 화장기가 있었고 입고 있는 코트가 고급스러워 보였고 치마도 시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옷은 아니라는 사실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저 애는 누구지? 못보던 애인데... 뭐, 오빠? 언제 벌써 만나 사귄거야? 언제는 나만 좋아한다고 난리치더니... 남자가 변덕은... 설마, 그동안 양다리 걸친건 아니겠지? 나하고 저 애하고 양쪽에다 작업한 건 아니겠지?' 


 영희는 철수가 전날 저녁까지 작업하면 바래다 주겠다고 약속했었고 철수의 어머니께서 영희를 집까지 바래다 주라고 철수에게 말했는데도 철수가 대문까지만 배웅한 후에 집에 들어가버리자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하는 수 없이 혼자 집으로 돌아갔지요.

 

 혜숙은 철수의 집에서 같은 또래의 여자가 나오자 누군지 무척 궁금 해졌습니다.

 '누굴까? 새로 사귄 여자친구일까? 그래서 한 달 동안 그림자도 안보였구나...'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사랑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철수가 이제는 다른 여자와 교제 중이라고 생각한 혜숙은 화가 났습니다.


 '무슨 남자가 그렇게 변덕이 심해? 한 달 전만 해도 나에게... 바보, 어디 두고 보자... 앞으로 네가 주는 편지 따위는 받지도 않을거야...'

 혜숙은 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Posted by labyr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