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에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1700만 관중을 돌파했던 영화 '명량'에 나오는 그 유명한 말,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이 명언은 바로 오늘의 주인공 오기가 오자병법에 쓴 말이다. 


  손자병법과 함께 중국의 2대 병서인 오자병법의 저자로 알려진 오기는 76번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백전백승의 명장이다. 

  '필생즉사, 필사즉생' 즉,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라는 이순신 장군의 유명한 명언도 오자병법에서 인용한 말이다.

  오기는 오자라고 불리우며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명장으로 평가받고 있는 불세출의 명장이다.



   오기는 위나라 사람으로 젊어서 동네의 젊은이 30여명을 죽인 죄로 고향을 떠나 증자의 문하에 입문하였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오기가 장례식에 가지 않자 증자는 오기를 파문시켰다. 


  오기는 이후 실력을 인정받아 노나라의 장군이 되었는데,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자 오기는 장군이 될 기회를 얻게 되었지만 오기의 아내가 제나라 사람이라는 점이 걸림돌이 되어 오기의 장군 임명이 불투명하게 되자 오기는 아내를 죽여 자신의 결백을 밝혔다.


  제나라와 아무 관련이 없음이 밝혀지자 오기는 장군이 되었고 장군이 된 오기는 제나라를 대파하여 명성을 얻었지만 아내를 죽인 탓에 그에 대한 여론이 좋지 못해 결국 해임되었고 오기는 위나라로 갔다. 


  오기를 장군으로 등용한 위나라는 오기의 모국 '위나라'가 아닌 진나라에서 분리된 삼진 중에 하나인 위나라였다. 


  당시 위나라의 군주인 문후는 오기를 중용하였고 오기는 서하의 태수가 되어 진나라와 싸워 연전연승하여 땅을 크게 넓혔다.


  장군이 된 오기는 병사들의 종기를 직접 빨아준 일화로 유명하고 진군할 때는 말을 타지 않고 병사들이 지는 짐을 지고 함께 걸었다고 한다. 



   오기는 병사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항상 병사들의 신뢰를 얻으려고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전원 395년 경 문후가 죽고 이어 왕위에 오른 무후는 오기를 신임하였지만 무후는 전문을 재상에 임명하여 오기는 원했던 재상이 되지 못했다. 


   전문이 죽은 후에 재상이 된 공숙좌는 오기의 존재를 꺼려하여 오기가 무후의 신뢰를 잃게 만들기 위해서 계략을 세웠다. 


   공숙좌는 무후에게 오기는 대단한 사람이기 때문에 위나라를 떠날지도 모르니 공주를 그에게 시집보낼 것을 제안했다.


   무후는 공숙좌의 제안에 따라 공주를 오기에게 시집보내려고 했지만 이것은 오기와 무후를 이간시키려는 공숙좌의 음모였다. 


  공숙좌는 무후의 부마였는데, 계획적으로 아내인 공주를 오기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화나게 만들어 오기가 보는 앞에서 자신을 꾸짖도록 만들었다. 


  공주가 공숙좌를 꾸짖는 모습을 보자 오기는 공주와 결혼하면 남편이 아내한테 꼼짝 못하고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공주와 혼인하지 않을 것을 결심하고 공주와의 결혼을 사양했다. 


  오기의 청혼 거절은 이 사실을 모르는 공주를 화나게 만들었고 무후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으니, 공숙좌의 음모가 성공한 것이었다. 


  공주는 오기를 미워하였고 무후 역시 오기를 신뢰하지 않아 오기는 결국 위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갔다.


  오기는 위나라를 떠날 때 눈물을 흘리며 위무후를 원망하는 말을 하며 위나라의 국력이 쇠약해질 것을 예견하는 말을 했다. 


  실제로 위나라는 오기가 위나라를 떠난 후 혜왕 때에 진나라에게 땅을 빼앗기고 약소국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당했었다. 



  오기가 초나라로 망명하자 초나라의 도왕은 오기의 명성을 들어 오기를 재상에 임명하였다. 


  재상이 된 오기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며 초나라를 단숨에 최강의 나라로 만들었다.

  하지만 오기는 귀족들에게 세금을 더 내게 만들어 귀족들의 원한을 샀기 때문에 도왕이 죽자 귀족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오기를 죽이려 했다. 


  이때 오기는 도왕의 관에 엎드렸고, 귀족들은 오기를 죽이는데만 혈안이 되어 도왕의 관에 화살을 쏘는 죄를 짓게 되었다.


  오기는 자신을 죽이려는 무리들의 화살이 도왕의 관을 맞추게 만들어 대역죄로 자신을 죽인 무리들이 멸문당하게 만들려고 그런 것으로 추측된다. 


  결국 오기를 죽이는데 참여한 귀족들은 왕의 관에 화살을 쏜 죄로 멸문당했다. 

  오기는 죽으면서도 복수를 염두할 정도의 임기응변이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오기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출세를 위해서 아내를 죽인 일 때문에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

  하지만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명장 중에 한 명인 오기의 저서 오자병볍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애독되고 있다.

  오기는 76전 64승 12무로 단 한번도 패하지 않는 불세출의 명장인데, 위험을 우릎쓰지 않은 장수로 유명하다. 

   오기는 확실한 승산이 없을 때는 공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76번의 전투에서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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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abyr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