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패왕별희, 항우와 우희의 이별

labyrint 2010. 6. 26. 07:00

 패왕별희는 패왕이었던 항우과 그의 후궁이었던 우희의 이별이란 의미라고 합니다.

 20세기 초에 초연된 이 연극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지요.

 
항우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용장으로 최근들어 화제가 된 사자성어 파부침주의 고사를 만들며 진나라의 대군을 대파한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배를 가라앉히고 나서 솥을 깨뜨린 후에 죽음이 아닌 승리라는 전술로 7대 1에 가까운 병력의 차이를 극복하고 전투를 승리를 이끌었지요.
 하지만 항우의 적수인 한고조 유방은 불세출의 명장 한신을 얻어 항우를 해하에서 대파하고 천하를 통일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항우는 명장 한신이 이끄는 한나라 대군에 대패한 후에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소리가 들려오자 우희에게 자신을 떠나 유방에게 투항할 것을 권유했다고 합니다.
 당시처럼 아내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던 시대에 항우와 같은 남자는 정말 가뭄에 콩나듯이 드물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항우를 사랑했던 우희는 이별대신 죽음을 선택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마도 우희가 자결한 것은 항우의 탈출을 돕기위한 희생적인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한나라군에 포위되었던 항우로써는 우희가 탈출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기 때문에 그녀와 함께 한나라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였지요.
 결국 우희는 항우를 살리기 위해서 자결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사랑하던 여인이 눈 앞에서 죽는 것을 본 항우는 이미 삶의 목표를 상실한 듯 했습니다.
 당시 오강에는 배가 하나뿐이였기 때문에 항우는 오강만 건너면 고향에 안전하게 갈 수 있었고, 세상에는 아직 항우를 따르는 무리가 많아서 권토중래 할 수도 있었지만, 항우는 고향의 젊은이 8000여명을 전쟁 중에 죽게 만들어 그들의 부모를 볼 낯이 없다며 고향으로 도망칠 것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내가 고향에서 봉기하여 데리고 나온 8000여 명의 젊은이 중 대부분이 이미 죽었다. 무슨 낯으로 그들의 부모를 대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나를 용서하더라도 내가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네." 
 항우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라고 평가받는 한신조차도 정면승부를 꺼릴 정도의 천하의 용장이였습니다.

 팽성의 전투에서 불과 3만의 병력으로 한나라의 56만 대군을 격파한 일은 중국 전쟁사상 최고의 승리라는 평가지요.

 아무리 한신이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라고 해도 항우의 병사들을 이끄는 카리스마에 적군을 압도하는 용맹과 무용은 한신조차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항우가 배를 타고 탈출했다면 천하를 유방이 차치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지요. 
 
 항우와 우희 슬픈 이별 이야기는 2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습니다.
 항우가 자결했을 때의 나이는 겨우 30살, 이러한 영웅이 겨우 30살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과 절세의 미녀였던 우희의 비극적인 최후로 끝나는 이들의 사랑 이야기가 어찌 듣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지 않을 수 있을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