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찹쌀떡을 좋아하신 교회 선생님

labyrint 2010. 10. 16. 06:40
 
 자주 만나는 사람은 항상 만날 것 같지만, 인연이 끝나고 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거기까지가 인연이 아니었을지요.
 친구든, 선생님이든, 이웃이든... 항상 만날 수 있을 것 같던 사람들이 어느 한 순간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면, 더이상 만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더군요.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는데, 교회의 선생님들은 봉사활동이기 때문에 항상 나오다가도 그만 두고 나면 다시는 볼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무한한 인내심과 따뜻한 사랑으로 학생들을 인도하시던 교회선생님의 모습이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띵동, 띵동.'
 나는 초인종이 울리자 현관문쪽으로 달려가서 초인종을 누른 사람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누구세요?"
 "정우니? 나야, 선생님."
 
 내가 다니는 교회의 선생님께서 중등부 전도사님과 함께 신방을 온 것이다.
 나는 교회의 선생님의 목소리를 확인하자 문을 열어드렸다.
 교회 선생님은 이제 20살의 꽃다운 나이셨는데, 나를 보자 활짝 미소지으면서 인사를 하셨다.
 "정우야, 그동안 잘 지냈니?"
 "네, 잘 지냈어요."
 "정우야, 근데, 왜 요즘 교회 안나오니?"
 "저기..."

 나는 당시 교회의 친구들과 갈등이 있어 중등부 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어른 예배에 참석했었는데, 내가 교회에 나오지 않은 이유를 어떻게 변명할지 생각하고 있을 때 어머니께서 현관문으로 오시면서 말씀하셨다.
 "전도사님, 선생님, 어서 오세요. 여기에 앉으세요."

 전도사님과 선생님은 어머니께 인사를 한 후에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왔다.
 어머님께서는 거실에 방석을 4개의 깔아놓으셨다.
 거실에는 소파가 있었지만, 가정 예배를 볼 때는 무릎을 끓고 예배를 보기 때문에 방석에 앉아 예배를 보기 때문이다.
 전도사님과 선생임께서 자리에 앉자 어머니와 나도 자리에 앉았다.
 어머니와 내가 자리에 앉자 전도사님께서는 가정 예배를 위해서 기도를 해주셨다.
 전도사님께서는 기도를 마친 후에 가정예배를 시작하셨다.
 찬송가, 성경말씀, 기도로 이어지는 가정예배는 한 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끝났다.
 가정예배가 끝나자 어머님께서는 찹쌀떡과 과일을 가져오셨다.
 전도사님께서는 쥬스를 마신 후에 나에게 물으셨다.

 "정우야, 요즘 왜 중등부 예배에 나오지 않니? 중학생은 중등부 예배에 나와야 믿음이 자라는 거야."
 "다음 주에는 나갈께요."
 "그래, 선생님이 기다릴테니 다음 주에는 꼭 나오는거다. 알지?"
 "네, 나갈께요."

 내가 다음 주에는 중등부 예배에 나가겠다고 약속드리자, 선생님께서는 찹쌀떡을 드셨다.
 전도사님께서는 찹쌀떡을 좋아하지 않으시는지 찹쌀떡은 드시지 않으시고 과일만 드셨는데, 선생님께서는 찹쌀떡을 두개나 드셨다.
 
 "찹쌀떡이 아주 맛있네요."
 "선생님, 더 드세요."
 "아니요, 됬어요. 정말 잘 먹었네요. 어머님, 감사합니다."

 찹쌀떡을 드신 선생님은 나에게 교회에서 인간관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는다.
 "내가 원래 몸에 약해서 자주 아팠는데...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오히려 건강이 많이 좋아졌어. 믿음을 가지면 뭐든 가능하단다. 근데, 정우야, 너, 언제 한번 선생님과 과천 대공원에 가지 않을래? 작년에도 선생님이 학생들하고 갔는데, 같다오니 서로 정말 많이 친해졌어."
 "네, 나중에 저도 갈께요."

 시간이 많이 지나자 선생님과 전도사님은 떠나셨다. 다음 주에는 꼭 나오라는 당부와 함께...

 다음 주가 되자 나는 선생님과의 약속대로 중등부 예배에 나갔다.

 선생님은 나를 반겨주셨지만, 교회의 학생들은 그다지 나를 반기지 않는 것 같았다.

 여학생들은 선생님과 다정한 모습으로 대화하였는데, 왠지 모르게 질투심이 났다.

 성경공부가 끝나자 여학생들이 선생님을 졸랐다.

 

 "선생님! 맛있는거 사주세요. 약속하셨쟎아요."

 "그래, 끝나고... 정우야, 너도 갈래?"

 "저는... 볼일이 있어서요."

 "그래, 그럼 나중에 같이 가자. 다음 주에 보자."

 "네, 안녕히 계세요."

 

 지나칠 정도로 다정한 선생님과 여학생들...

 선생님과 여학생들은 나이가 5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는데, 너무나도 다정한 모습에 누가 옆에서 보면 친언니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영화의 아웃사이더처럼 그들의 틈사이에 있는 것 같아 중등부 예배가 그리 즐겁지 않았다.

 

 '야!'

 여학생들은 나를 '야'라고 불르거나 "선생님, 얘는 안가요?" '얘.'라고 할 때도 가끔 있었다.

 내가 중등부 예배에 자주 빠져 여학생들이 내 이름을 모르는 것이 당연했지만, 나는 여학생들이 나를 '야'나 '얘'라고 부르는 것이 몹시 못마땅했다.

 다음 주에도 중등부 예배에 나가긴 했지만, 여학생들과 지나치게 친한 선생님의 모습과 여학생들이 나를 '야'라고 부르던 좋지 못한 기억이 나의 발걸음을 집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나는 중등부 예배가 끝나자 선생님을 뵙고 성경공부를 하지 않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다음 주에도 성경공부를 하지 않고 돌아왔다.

 그 다음 주도..

 나는 계속 성경공부를 하지 않고 예배가 끝나자 돌아왔다.

 몇 달이 지난 후에서야 성경공부를 하기 위해서 교회의 나의 반을 찾아갔다.

 아니, 성경공부를 하기 위해서 간 것이 아니라 선생님을 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새로오신 선생님께서 나에게 선생님은 그만 둔지 얼마 되셨다고 말씀하셨다갑자기 선생님께서 신방오셨을 때 하셨던 말씀이생각났다.

 

 "내가 원래 몸에 약해서 자주 아팠는데...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오히려 건강이 많이 좋아졌어."

 

 그렇다. 선생님께서 다시 건강이 나빠진 것이다.

 연락처...

 여학생들은 선생님의 연락처를 알았지만, 나는 왠지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는 뵙겠지...

 하지만 몇년이 지나도 선생님을 뵐 수 없었다.

 교회에서 선생님께서 맛있는 것을 함께 먹으러가자고 말씀하셨던 날이 선생님을 뵌 마지막 날이었던 것이다.

 나는 노란 떡고물이 묻어있는 찹쌀떡을 보면 선생님이 생각난다.

 선생님 찰떡처럼 찰기있는 삶을 살고 계신지요.

 이제는 건강하게 잘 살고 계시겠지요?

 선생님, 뵙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