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중국 4대 미녀 왕소군

labyrint 2010. 7. 27. 09:00

 중국 4대 미녀 중에 한명인 왕소군은 한나라 원제 시대의 미녀로 원제의 후궁으로 입궁하였지만, 그녀는 아주 이상할 정도로 빼어난 미모에도 불구하고 황제의 부름을 받지 못했는데 여기에 대해선 여러 가지 추측들이 있읍니다.

 그 중 하나가 처음부터 그녀가 원제의 총애를 받지 못하게 황후 세력이 손을 썼을 것이라는 추측이지요.



 역사적으로 알려진 사실은 당시 궁녀들의 얼굴을 그려 황제에게 바쳤던 화공 모연수가 왕소군이 자신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아서 그녀의 얼굴을 추하게 그렸기 때문이라는 것이지만 일개 화공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황후나 특정 권력층의 사주를 받았던 것이 아닐지요.

 만약 그녀가 원제의 총애를 받아 황후가 되서 아들을 낳는다면 권력의 구도가 바뀌기 때문에 그것을 두려워한 특정 세력이 원제가 그녀를 보지 못하게 방해했을 가능성이 높지요.



 아무튼 왕소군은 원제가 그녀를 본 적도 없는 상태에서 궁궐 생활을 하다가 흉노의 호한야 선우에게 간택되어 선우의 왕비가 됩니다.

 당시 한나라는 흉노와 화친하기 위해서 한나라의 공주를 흉노의 선우(왕)에게 시집보내려고 했는데, 황제가 베푸는 연회에서 호한야 선우는 공주가 아닌 황제의 궁녀 중에서 아내를 맞이 하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한나라는 궁녀들 중 빼어난 미녀들을 골라내어 호한야 선우가 선택할 수 없도록 만들었지만 이 중에 왕소군은 빠져 버렸읍니다.

 원제는 호한야 선우에게 연회를 베풀며 연회에 나온 궁녀들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 했고 흉노의 선우는 왕소군을 보자 그녀를 달라고 청하였지요.

 원제는 왕소군의 빼어난 미모를 보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읍니다.

 결국 왕소군은 흉노의 선우에게 시집갈 수 밖에 없었지요.

 앞서 언급했 듯이 화공 모연수는 이 일(왕소군을 추하게 그린 일)에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았지만 일개 화공이 그런 일을 했다기 보다는 어떤 특정 세력이 왕소군이 황제의 총애를 받지 못하게 방해한 일이라고 추측됩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요.

 당시 권력을 잡고 있었던 신하가 원제가 미색에 빠져 나라를 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랬다는 설, 흉노의 선우를 미색으로 현혹하여 흉노의 국력을 약화시킨 후에 흉노를 공격하려고 했다는 설, 일종의 스파이로 흉노의 선우에게 시집보냈다는 설, 평화사절로써 그녀를 시집보냈다는 설, 원제의 황후나 황후의 세력이 왕소군이 황제의 총애를 받지 못하게 방해했다는 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원제의 황후나 황후의 세력이 왕소군이 원제의 총애를 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 흉노의 선우에게 시집보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한 것 같습니다.

 왕소군이 흉노로 떠난 후에 원제는 병으로 죽고 수십년 후에 황후의 조카 왕망이 신나라를 건국했으니 왕소군이 흉노로 시집간 의혹은 없을수가 없지요.

 흉노의 호한야 선우에게 시집간 왕소군은 선우의 총애를 받았지만, 얼마되지 않아 호한야 선우가 죽은 후에는 호한야의 아들인 복주루 선우와 재가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흉노는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이 아버지의 여자들을 물려 받는 이상한 풍습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한인이였던 왕소군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흉노에 시집간 후에 행복하게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흉노의 선우에게 사랑을 받았으니 그렇게 불행하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