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중국 3대 악녀 여태후와 측천무후

labyrint 2010. 7. 31. 07:00

 중국 3대 악녀 중에 한명인 여태후는 한나라의 초대황제 고조 유방이 죽자 그가 사랑했던 후궁들을 잔혹하게 고문하거나 죽였다고 하는데, 황제의 여자들을 이토록 혹독하게 대한 것은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일이지요.

 여태후는 척부인을 몹시 미워했는데 이는 척부인이 고조의 사랑을 독차지 했을뿐 아니라 자신의 아들 여의를 황제로 옹립하려고 했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장자방을 비롯한 신하들의 반대로 실패한 후에 고조는 여태후가 척부인과 그녀의 아들 여의를 해칠 수 없도록 믿을 수 있는 신하에게 그를 부탁했지만,  여태후는 척부인을 감금한 후에 마침내 여의를 독살합니다.

 이후에 척부인의 혀와 사지를 절단 한 후에 측간에 두어 그녀에게 인간돼지라는 뜻의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아들인 혜제에 척부인을 보여주자 혜제는 충격을 받은 나머지 인생을 술에 빠져서 살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혜제가 술에 빠져 지내자 여태후는 자신의 반대 세력을 쫓아 내거나 죽인 후에 자신의 지지세력과 친척들을 대거 기용해서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친척인 번쾌 장군 등을 중용하는 반면에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신하들은 해임했지요.

 혜제가 죽자 이후 여러 황제를 옹립했는데, 이런 일화가 있다고 합니다.

 여태후는 황제를 자기 마음대로 하기 위해서 황제의 어머니를 죽였는데, 이 사실을 황제가 알자 그 황제마저 죽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여러 황제를 마음대로 내세웠던 여태후는 자신의 친척들을 왕으로 옹립했고 이에 고조를 섬겼던 신하들은 여씨 세력을 숙청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여태후가 죽자 고조의 신하들은 여씨들에 선전포고 했고 여씨들은 권력을 포기하겠다고 했지만 고조의 신하들은 이들을 끝내 숙청해서 여태후의 친척들은 대다수가 숙청되었지요.

 그 당시 여씨들은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태후가 죽자 여씨들은 분열하여 결국 멸망당하고 말았지요. 이어서 황제에 오른 문제는 남은 여씨의 세력을 모두 숙청함으로 여씨들은 멸문을 당하고 맙니다.

 

 측천무후는 자신과 대립했던 친자식을 죽였는데, 여태후가 자신을 반대했던 혜제를 죽이지 않은 것에 비하면 훨씬 더 악독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측천무후 역시 고종 시대 자신의 경쟁 상대였던 후궁들을 무참히 죽였는데, 자신을 궁궐에 입궁시킨 황후마저 잔인하게 죽였다고 합니다.

 마음에 드는 신하들하고 바람 핀 것으로도 악명 높지만, 시대가 변하다 보니 지금와서 그것을 악한 행동이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네요.

 측천무후는 자신과 권력을 다툰 아들을 죽인 것으로 유명한데, 황후가 되기 전에는 황후를 모함하기 위하여 갓태어난 자신의 딸을 죽여 권력을 위해서라면 자식조차 희생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 악인은 많지만 반항할 힘조차 없는 갓태어난 자식을 희생시키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지요.

 
 반면에 여태후는 아들인 혜제의 권력을 빼았지 않았는데,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여태후는 벽양후 심이기를 총애했는데(아마도 불륜관계인듯) 혜제가 노하여 벽양후를 죽이려 하자 부끄러워 하여 벽양후를 변호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비록 당시에도 권력을 휘둘렀지만 혜제가 여태후가 총애하는 신하를 옥에 가둔 것으로 보아서 혜제가 허수아비 황제는 아니였던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측천무후는 자식을 죽인 어머니이니 여태후보다 훨씬 더 악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여태후는 비록 자신의 정적들은 무참히 죽였지만 반대로 자신이나 고조에게 충성을 바쳤던 신하들은 우대하였는데, 고조의 충신들을 숙청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 되어 훗날 여씨들이 멸문당했으니 여태후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잘 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겠군요.

 여태후의 특이한 점은 고조의 후궁들 중 고조의 사랑을 받지 못한 후궁들을 우대했다는 점인데, 그들을 불쌍히 여겼을 뿐 아니라 우대했으며 그들을 만나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고 합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기록은 고조의 자식을 낳은 궁안의 여성들은 대부분 홀대를 받았지만 문제의 어머니인 박태후는 자식을 낳은 후에 버림받았다는 말을 듣고 그녀를 우대했다고 합니다.

 여태후가 고조에게 버림받은 여성들을 우대한 사실은 여태후의 다른 일면을 볼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