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우리가 허정무 감독을 신뢰해야 하는 이유

labyrint 2010. 6. 19. 09:00


 아르헨티나전 참패 이후에 허정무 감독의 전술이나 선수 기용 방식에 대해 불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백성들이 장군을 불신하면, 병사들까지 장군을 불신하여 결속력이 약해져 패하는 경우가 많듯이 국민들이 허정무 감독을 불신한다면, 감독과 선수들간의 신뢰가 약해질까 우려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허정무 감독의 전술이 실패한 것은 꼭 허정무 감독만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선수들이 허정무 감독의 전술에 따라주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제3자가 감독의 전술을 비판하는 것은 대단히 좋지 않은 모습입니다.

 허정무 감독의 선수 기용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많지만, 선수가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결과로 감독의 선수 기용을 지나치게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게 결과론적이 아닐지요.
 승패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스포츠 경기에서는 만약이라는 가정이 별 의미가 없지만, 만약 염기훈 선수가 결정적인 찬스에서 골을 넣어 2 : 2로 비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약 오범식 선수가 허정무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여 이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론 선수의 부진은 선수의 컨디션을 점검하지 못한 감독에게도 책임이 없지는 않겠지만, 감독보다는 선수에게도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감독도 사람이기에 실수나 잘못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허정무 감독의 인터뷰를 비판하지만, 경기 종료 후에 아쉬운 패배를 당한 허정무 감독의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축구팬들도 경기 결과에 대해 실망스럽겠지만, 감독 본인보다 경기 결과에 실망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패전의 아픔을 당하는 감독을 격려해 주지는 못할 망정, 지나친 비판은 감독에게도 선수에게도 국민들 자신에게도 모두 좋지 않은 것이지요.

 4강의 신화를 만든 히딩크 감독조차 언론의 비판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결과론적인 비판 형태에도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이기면 명장이고, 패하면 우장이 되는 것일까요?
 감독의 전술이 항상 맞아 떨어질 수는 없습니다.
 맞아 떨어질 때도 있고, 맞아 떨어지지 않아 전술이 엉터리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것이지요.
 명장도 전술이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패할 때가 있습니다.
 감독의 전술이 나쁘지 않아도 전술이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패할 수 있는 것이지요.

 삼국시대에 제갈공명이 1차 북벌 때 마속을 기용하여 가정에서 패하여 결과적으로 모든 책임을 뒤집어 썼지만, 마속이 제갈공명의 지시에 따랐다면 이겼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제갈공명이 마속을 등용했다는 이유로 패전의 책임을 졌지만, 근본적으로 잘못한 사람은 마속이지 제갈공명이 아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르헨티나전에서 패한 것은 허정무 감독의 전술이 잘못된 것이라기 보다는 단지 전술이 맞아 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과인의 컨디션이 너무 좋았다던가, 오범석 선수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거나, 염기훈 선수가 지나치게 긴장하여 찬스를 놓쳤을 수도 있지요.
 선수들의 컨디션까지 감독이 통찰해야 명감독이라는 말을 듣겠지만, 선수들 개인의 컨디션까지 감독이 모두 알아서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아직 16강에 탈락한 것도 아닌데, 허정무 감독이 언론의 질타를 받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대표팀과 감독에게 필요한 것은 질타가 아닌 격려와 신뢰입니다.
 질타는 16강에 탈락한 후에서나 하는 것이 좋지 않을지요.

 16강을 염원하고 4강 신화를 재현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마음, 모르지 않지만, 감독의 능력이나 선수의 능력에 의구심을 가질 정도의 지나친 비판은 경기력에 방해가 되어 적을 이롭게 할지도 모릅니다.
 정말 대표팀이 16강을 진출하기 바란다면, 격려와 신뢰를 통해서 대표팀 승리의 도움되는 행동을 해야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