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나관중의 삼국지, 역사적인 사실과 다른 부분

labyrint 2010. 7. 23. 10:00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삼국지연의의 50%이상은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없는 내용으로 나관중의 상상력에 의해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유비, 관우, 장비가 의형제를 맺었다는 도원결의 이야기, 관우가 화용도에서 조조를 살려준 이야기, 제갈공명이 무방비 상태에서 칠현금을 연주하여 사마의가 물러가게 만들었다는 이야기, 초선의 미인계, 방통의 연환계, 유비가 방통에게 자신의 말을 타게해서 방통이 화살에 맞고 죽은 이야기, 관우가 화웅의 목을 벤 이야기, 제갈공명이 조조를 속여 10만개의 화살을 얻은 이야기, 진궁이 동탁에게 쫒기던 조조를 살려준 이야기, 조조가 오해로 여백사를 죽이고 도망친 이야기,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수많은 유명한 이야기들이 사서에는 기록되지 않아 허구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사서에 나오지 않는 삼국지의 일화는 대부분 허구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진수의 삼국지를 바탕으로 쓴 것인데, 진수의 삼국지에 기록되지 않은 것을 1000년이상 늦게 태어난 나관중이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지요.
 단지 나관중의 소설이 너무나도 리얼하기 때문에 진수의 정사인 '삼국지'에 누락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분명한 것은 소설에 나오는 수많은 흥미있는 이야기들이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던 일들이라는 것이지요.

 진궁이 조조를 구해준 후에 조조에게 실망하여 떠났다는 이야기도 완전한 허구입니다. 
 실제로 진궁은 조조가 처음 기반을 잡을 때 결정적인 공을 세웠지만, 조조의 서주 학살에 반발하여 조조를 배신하고 여포를 섬겼습니다. 사서에 의하면, 조조가 진궁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후에 진궁의 자식들을 성심을 다해 돌봐주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와같은 인연이 있기 때문이지요.
 앞서 조조가 사도의 왕윤의 보검으로 동탁을 암살하려다가 도망쳤다는 이야기 또한 완전한 허구입니다.
 사서에 의하면 조조는 효기교위에 임명되자 도망치다가, 정장에게 잡혔지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현의 공조가 현령에게 풀어줄 것을 건의하여 도망친 것이라고 합니다.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것을 보면, 현의 공조와 현령이 진궁이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진궁이 조조를 도망치게 했다는 이야기는 완전한 허구지요.

 관우가 옛정 때문에 화용도에서 조조를 놓아준 이야기도 완전한 허구입니다.
 당시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참패하기는 했지만, 전군이 몰살당한 것이 아니고 해군만 참패한 것이기 때문에 조조군은 여전히 막강한 병력을 보유하고 있어 병력이 많지 않았던 관우가 조조를 살려보내 주었다는 이야기는 성립할 수 없는 이야기지요.
 최소한 수만의 대군을 보유하고 있었던 조조가 1만도 되지 않는 관우의 병력에 무릎을 끓고 목숨을 구걸할 일은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역사학자들조차 조조를 정통으로 본 진수가 생략한 것이 아닐까 추측할 정도로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어 오늘 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헷갈리고 있는 것이지요.
 
 나관중이 창조한 허구들이 문학적인 가치가 높은 이유는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역사학자들마저 사실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개연성있게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시중에 나온 역사서적에도 '관우가 조조를 살려준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관우가 조조를 죽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관중의 소설이 너무나도 리얼하기 때문에 만들어 낸 착각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