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1'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11.01 여성들이 꽃보다 남자에 열광한 이유
  2. 2015.11.01 조정우 역사소설 기황후 줄거리

   벌써 7년 전이나 된 드라마 '꽃보다 남자' 이야기입니다.

   이민호, 김현중, 김범 등의 새로운 스타를 탄생시킨 드라마 '꽃보다 남자'는 10대에서 30대의 여성들에게 정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30%의 시청률보다 더 놀라운 것은 10대에서 30대 걸친 나이를 뛰어넘는 여성들의 폭발적인 호응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평소에 드라마는 거의 보지 않는다는 30대 여성들도 '꽃보다 남자'는 하나도 빠지지 않고 보았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구준표라는 캐릭터는 여성의 이상형처럼 되었지요.

   저는 처음에는 꽃남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들이 그토록 좋아하던 구준표가 연예인 이름인 줄 알았습니다.

   제 주변의 여성들은 구준표와 사랑에 빠져 자주 '구준표와 같은 남자가 내 이상형'이라고 말했고, 구준표 이야기만 나오면 여성들이 열광적으로 호응하였습니다.

   구준표의 인기는 한국 드라마의 모든 캐릭터 중 최고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아무 것도 모르고 옆에서 듣는 사람은 구준표가 연예인의 이름인 줄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한가지 흥미있는 사실은 이번 드라마의 스타는 구준표 역의 이민호만이 아니었습니다.

   소이정 역의 김범과 윤지후 역의 김현중의 인기도 이민호에 버금갔었는데, 이처럼 한꺼번에 3명의 스타가 한 드라마에서 폭발적으로 나타난 적이 있었는지 궁금하군요.

   이들 중 누구를 더 여성들이 좋아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이들의 인기는 폭발적이었습니다.

   당시 아는 여성에게 좋아하는 연예인을 물어보면 이들 세 명 중 하나인 경우가 정말 많았습니다.

   국민 드라마 정도는 아니었지만 최소한 미혼 여성들에게는 국민 드라마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꽃보다 남자'에 여성들이 이처럼 열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꽃보다 남자'가 여성들에게 엄청나게 인기를 얻은 이유를 다음의 3가지로 분석해 보았습니다.

 

   첫째, F4 꽃남 4인방의 매력을 생각할 수 있겠지요.

   F4로 캐스팅 된 남자 배우들의 인기가 이 드라마의 최고의 매력 포인트였던 것 같습니다.

   만약 이들보다 나이가 많은 배우들에게 이 역활을 맞겠다면 드라마의 재미가 조금 떨어졌을지 모르지요.

   아무리 뛰어난 스타라도 역에 어울리는 배우가 있기 마련입니다.

   20대 후반의 스타를 어리게 분장시킨 후에 출연시켰다면 그의 명성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어울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이지요.

 

   둘째, '꽃보다 남자'가 여성들이 현실에서 꿈꾸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였다는 것입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유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여주인공이 모델처럼 화려한 외모를 가진 여성이라기 보다는 평범한 여성의 매력을 지닌 여성이었지요.

   구혜선도 미녀 배우이지만 이 드라마에서 그녀는 그렇게 미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보통 드라마를 보면 여배우들의 화려한 옷은 마치 모델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느낌이 들지만, 금잔디의 교복이나 평범한 화장은 여성들의 여주인공에 대한 경계감이 사라지게 되지요.

   드라마를 보는 여성들은 평범한 여학생 금잔디의 자리를 자신이 대신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여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될 것입니다.

   재벌 2세 구준표와 일반 가정집의 금잔디의 사랑은 드라마를 시청하는 여성들에게 '내가 금잔디의 자리를 대신해도 되겠다'라는 희망을 가지게 만들지요.

 

   셋째, '꽃보다 남자'의 F4  중 구준표, 소이정, 윤지후 등의 세 명의 등장인물이 여성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캐릭터였기 때문입니다.

   '꽃보다 남자'는 나쁜 남자가 여자에게 있기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구준표와 김범의 캐릭터는 그렇게 좋은 남자가 못되었지만 이들의 캐릭터는 여성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경향이 있어 여성들의 인기를 더 얻을 수 있었지요.

   첫사랑의 상처와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삐뚫어진 듯한 성격을 보여준 소이정은 아마도 여성들의 모성애를 가장 자극했던 캐릭터였을 것입니다.

   착한 여자도 나쁜 여자를 좋아할 수 있다는 추가을의 대사는 그가 비록 나쁜 남자라도 자신에게는 착한 남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는 사랑의 상처로 삐뚫어진 남자를 만나면 자신이 그 상처를 치료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거나 사랑을 통해서 그의 인간성이 되살아 날 것이라고 믿는 경우가 있든데,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자신이 치료해주고 싶은 일종의 모성애를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추가을은 소이정에게 모성애를 느끼게 되었고 소이정의 인간성을 회복하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했습니다.

   첫사랑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여자에게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없었던 소이정은 추가을의 모성애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의 첫사랑이었던 차은재가 자신을 떠난 것이 오해였음이 밝혀지자 소이정의 마음의 상처는 치료되어 다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추가을은 나쁜 남자 소이정을 사랑했지만 사실 소이정도 그렇게 나쁜 남자는 아니었고 단지 상처로 인해 마음이 삐뚫어졌던 것이지요.

   이러한 소이정의 모습에 추가을은 사랑을 통해서 소이정의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첫사랑의 상처에 신음하는 남성을 보면 모성애가 생기는 여성의 심리를 볼 수 있는 장면이지요.

 

   그런데 사실은 추가을이 소이정에게 느낀 모성애보다는 금잔디가 윤지후에게 느낀 모성애가 어쩌면 여성들의 마음을 더 크게 자극했을지도 모르지요.

   '공포의 외인구단'을 보면 여주인공의 여동생이 여주인공과의 사랑을 이루지 못해 사랑의 상처를 받은 주인공을 좋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처럼 여자는 사랑에 상처를 받은 남자에게 모성애를 느끼는 경우가 많지요.

   어쩌면 사람이란 누구나 짝사랑을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해 상처를 받은 남자를 보면 여자는 동병상련의 감정을 가지게 되는지도 모르지요.

   금잔디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윤지후의 상처받은 모습을 보는 여성들은 아주 깊은 모성애를 느꼈을 것입니다.

   금잔디 역시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윤지후에게 모성애를 느꼈겠지만, 드마라를 시청하는 여자라면 누구가 윤지후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꼈을 것입니다.

   금잔디를 정말 사랑하지만 실연을 당한 윤지후의 모습을 보는 여성들은 자신과의 사랑을 통해서 윤지후의 실연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싶은 생길 수 있겠지요.

 

    나쁜 어머니의 전횡에서 갈등하는 구준표도 여성들이 모성애를 느낄 수 있는 캐릭터지요.

   드라마의 마지막 부분에서 금잔디가 구준표의 어머니에게 구준표를 떠날 것을 약속하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당신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없어 안타깝다는 뜻의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금잔디의 사랑은 일종의 모성애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지키고 싶은 여자의 모성애라고 할까요.

   만약 금잔디가 구준표와 결혼한다면 시어머니가 될 분이었지만, 구준표 어머니의  어머니답지 못한 행동은 금잔디를 화나게 만들었기 때문에 금잔디는 구준표의 어머니에게 막말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요.

   어쩌면 금잔디가 구준표를 떠나면서 가장 마음아팠던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지켜줄 수 없었던 현실이 아니었을지요.

 

   만약 제가 '꽃보다 남자'의 성공의 가장 큰 원동력 중의 하나가 여성들의 모성애를 자극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공감할 지 궁금하군요.

   하지만 여자의 심리는 여자도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사랑이란 자기 자신도 그 원인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저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랑은 대상을 찾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남성중심의 사회의 현실에서 사랑의 대상을 찾기 힘든 여성들은 쉽게 드라마의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지요.

   그리고 여성들은 윤지후처럼 주인공에게 사랑을 빼았기는 남자에게 연민의 정을 더 느낄 수 있겠지요.

   어떤 여성들은 김현중씨의 연기가 별로라고 말하면서도 김현중을 좋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연기자의 연기가 그다지 호평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김현중이 '꽃보다 남자'를 통해서 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여성들이 사랑의 상처를 받은 윤지후에게 모성애를 느꼈기 때문이 아닐지요.

 

   '꽃보다 남자'는 신데렐라 컴플렉스와 모성애라는 반대되는 것 같은 여자의 심리가 아주 잘 조화가 되어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지요.

   여자라면 누구나 신데렐라 컴플렉스와 모성애가 있는데, 이 둘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바늘과 실처럼 절대 떨어지지 않는 것이지요.

   여성들이 좋아하는 드라마의 대부분은 이 두 요소가 들어있는데, 둘 중 하나라도 없다면 드라마의 감동이 떨어질 수 있겠지요.

   성공한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 여주인공이 헌신적인 힘을 다해서 주인공의 행복을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금잔디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구준표를 떠난 것도 모성애로 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꽃보다 남자'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신데렐라 컴플렉스와 모성애가 조화롭게 전개되어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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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황후 조정우 역사소설 


   줄거리


   드넓은 평지에서 청색 격구복을 입은 행주 고을의 기수들과 백색 격구복을 입은 철원 고을의 기수들이 한 치의 양보 없이 치열하게 격구 시합을 벌이고 있었다열대여섯 쯤 되어 보이는 철원 고을의 소년이 전광석화처럼 행주의 기수들을 제친 후 장시로 공을 후려쳐 구문 안으로 집어넣다

   행주철원 두 고을 처녀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정도로 준수한 소년은 최영이었다최영이 손을 들어 환호성에 답례하고 있는데기완자가 장시를 치켜든 채 최영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수년 전 충숙왕은 여인이 격구하는 것을 금하여부득이하게 남장을 하고 시합에 참가한 기완자는 최영을 보는 순간 마음을 빼앗겨 버리고 만 것이다경기는 최영이 혼자 네 골을 넣은 철원 고을의 격구단이 행주 고을의 격구단을 60푼 대 45푼으로 이겼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만 해도 고려 최고의 격구 기수 박불화가 있는 행주 고을의 승리가 예상된 터라 철원 고을에 승리를 안긴 최영은 한순간에 영웅이 되었고때마침 격구장에 있던 기자오는 딸의 마음을 눈치채고 최영을 집으로 정중히 초청하였다

   아직 어린 나이에도 영웅의 기상을 지닌 최영을 사위로 낙점한 기자오는 최영도 자신의 딸에게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몹시 기뻐했다

   며칠 후기자오가 최영의 아버지 최원직에게 사람을 보내 혼담을 청했지만최원직은 기자오의 집안이 부유한 데 비해자신의 집안이 한미하다는 이유로 정중히 거절했다


   한동안 마음에 병이 생겨 앓아 누웠던 기완자는 마음을 굳게 먹고 최원직을 찾아갔다최원직은 지극히 아름다운 절세미인이면서 품행에 기품 있는 기완자를 보자 갈등하였으나기완자가 가난한 자신의 집안에 시집와 고생하다 세상을 떠난 아내 지씨의 전철을 밟을까 걱정되어 혼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수개월 후최원직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최영이 3년상을 마칠 무렵느닷없이 기완자가 찾아왔다언니 기연자로부터 조만간 공녀 선발을 위해 금혼령이 공표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기완자는 당장 박불화와 혼례식을 올리라는 어머니 이씨의 명을 거역하고 최영을 찾아온 것이었다


   기완자의 혼담을 받아들인 최영은 임시 방편으로 매파를 데려와 기완자와 혼약을 맺었다혼약을 맺은 여인은 공녀로 선발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기에 최영은 기완자보다 누이동생 최희가 더 걱정되어혼례식을 미루고 백부 최원중의 집에 가있는 최희를 데리고 와서 기완자의 집에서 혼례식을 올릴 계획이었지만마차를 몰고 오는 도중 공녀로 끌려가던 유화를 구출하는 사이에 결혼도감 관원들이 기완자를 공녀로 차출해 가버렸다

   최영과 기자오는 기완자를 공녀 명단에서 제외시키기 위해 결혼도감을 찾아가고충숙왕에게 알현을 청하였지만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에 최영은 기철과 박불화를 비롯한 행주 고을의 사내들유화의 오라비 유총유씨 가문의 하인들과 함께 원나라 사신단을 습격하여 기완자를 구하려 했지만원나라 최고의 용장 탈탈이 이끄는 몽고군의 철통같은 방어망과 무시무시한 대포의 위력에 막혀 실패하고 말았다.  이어 최영은 압록강에서 다시 거사를 일으켜 기완자를 구할 계획이었지만최영과 가문에 화가 미칠까봐 눈물을 흘리며 만류하는 기완자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결국 기완자는 한달여 만에 대도성의 대내에 입궁했다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기완자는 대내 총관 독만질아의 주선으로 겨우 열네 살인 황제 토곤의 총애를 한 몸에 받게 되었다이때 토곤은 허울 뿐인 허수아비 황제로 이 당시 원나라의 권력은 황후 타나실리의 아비인 권신 엘테무르의 손에 있었다

   아버지 명종이 엘테무르에게 독살당한 토곤이 자신의 신변에 대해 불안해하자 기완자는 자신에게 사모의 정을 품은 탈탈을 황궁 시위대장에 임명할 것을 권했다토곤이 기완자의 말을 받아들여 탈탈을 시위대장에 임명하자엘테무르는 거사를 일으켜 토곤을 폐위시키려 했지만눈물을 흘리며 말미를 달라고 애원한 타나실리의 청을 거절하지 못해 거사를 미루었다


   그 후 기완자는 타나실리의 질투로 인해 심한 채찍질을 당하고정신을 잃은 채 불임약을 강제로 마셔야 할 위기에 처했지만고용보로부터 소식을 듣고 달려온 토곤이 기완자를 구했다이때 차마 대도를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던 최영은 이 소식을 듣자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 곧장 고려의 전왕 충혜의 호위군이 되었다


   최영이 그 당시 평판이 나빴던 충혜의 호위군이 된 것은 대도에 있는 고려인들과 함께 기완자를 지키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던 것이다한편 오래전부터 기완자를 사모해왔던 박불화는 귀비에 책봉된 기완자를 곁에서 지키기 위해 거세하고 환관이 되었다기완자가 서서히 황궁 생활에 적응해 가고 있을 무렵엘테무르가 갑자기 피를 토하며 급사했고대도는 실로 오랜만에 평화가 찾아왔다


   엘테무르의 두 동생 사둔과 답리는 야심이 큰 인물이 못되었다사둔이 죽자문종의 양자로 황제에 오르려는 야심을 품은 탑자해가 당기세를 부추겨 숙부인 답리와 함께 반란을 일으켰지만어사대부 탈탈이 당기세를 죽인데 이어최영이 수천의 고려 의병을 이끌고 와 함락 직전인 황궁을 구원하고 답리를 죽이자 반란은 진압되었다


   이후 타나실리 황후는 폐위되었고토곤은 기완자를 황후로 맞으려 했지만황후족인 옹기라트 가문인 우승상 백안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쳤다토곤의 숙모 황태후 보다시리 역시 반대하자결국 토곤은 옹기라트 가문인 백안의 양녀 백안홀도를 황후에 책봉했다

  기완자가 아들 아이유시리다라를 낳자우승상 백안은 기완자만을 총애하는 토곤의 편애에 불만을 품고황태제 연첩고사의 어미인 황태후 보다시리와 손을 잡고 토곤을 능가하는 권력을 거머쥔 후 자기 멋대로 이민족 차별법을 만들어 시행하는 전횡을 자행하였다


   그러던 어느날백안은 산후 후유증을 앓고 있던 기완자의 탕제에 짐독을 넣어 독살하려 했지만박불화가 탕제를 검사하기 위해 마시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이에 격분한 토곤은 탈탈을 믿으라는 기완자의 권고를 받아들여 백안의 조카인 탈탈에게 백안을 추포하라는 명을 내렸다


   자신의 양부이자 백부인 백안을 추포하라는 토곤의 명을 받은 탈탈은 눈물을 머금고 백안에게 가문의 근거지인 통주로 사냥을 떠날 것을 제안해 대도성 밖으로 유인한 후거사를 일으켜 백안을 실각시켰다

   제2황후에 책봉된 기황후는 황태후의 직속 기관 휘정원을 황후의 직속 기관 자정원으로 개편하여 원나라의 재정과 권력을 한손에 거머쥐었다.


   이 무렵충혜왕의 아우로 열두살인 왕기가 어머니 명덕태후와 함께 대도에 오게 되었고기황후는 어린 나이에 먼 타국땅으로 온 왕기에게 동병상련을 느꼈다기황후가 호위 무사로 추천한 최영을 무예 스승으로 모신 왕기는 2년 후황실의 사냥터에서 토곤이 자신의 배필로 점지한 노국공주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몽고 공주들에 의해 출궁되었던 어머니 명덕태후의 반대에 부딪친 왕기는 노국공주와의 혼담을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그리고, 6년이 지나서야 왕기는 기황후의 주선으로 노국공주와 혼인할 수 있었다그로부터 2년 후열세 살인 충정왕의 실정으로 고려가 어지러워지자왕기가 기황후에 의해 왕위에 올랐으니이가 바로 공민왕이다


   스물둘의 나이로 보위에 오른 공민왕은 이듬해 2월 초하루 토지 개혁법과 노비 면천제 등의 법령을 만들어 대대적인 개혁을 시행했다당시원나라 전국 각지에서 홍건적을 비롯한 한족이 반란을 일으켰는데이 중 장사성이 대운하의 요충지를 장악하자원나라에서 고려로 사신을 보내 응원군을 요청하였다


   이에 공민왕은 대도의 고려인을 주축으로 응원군을 결성하자는 최영의 의견을 받아들여 정병 2천에 모집병 3총 5천의 병력을 파병했고최영은 기황후의 주선으로 대도에서 18천의 고려인을 모집하여 원정에 나섰다최영이 이끄는 2만 3천의 고려군은 연전연승하여 장사성이 점령했던 30여성을 원나라 조정에 돌려준 후 장사성의 근거지인 고우에서 원나라 사령관 탈탈이 이끄는 20만 원군과 합동 작전을 펼쳤다


   최영의 고려군이 용전분투하여 고우성의 성문을 열었지만탈탈은 고려군과 장사성군이 혈전을 벌이면내일 아군이 손쉽게 고우성을 점령할 수 있을 것이오.”라는 이사제의 말에 공격을 주저했다그때 천지를 개벽시킬 듯한 최영의 용맹을 본 탈탈은 20여 년 전 복면한 무리들을 이끌고 자신이 호위대장으로 있던 사신단을 기습했던 자가 최영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최영을 하옥시켰다


   이로 인해 고려군이 진영을 떠났고원나라 단독으로 고우성을 공격했지만토곤이 탈탈을 공이 없다 책망하여 해임시키자원군이 동요하는 틈을 타 공격에 나선 장사성군에게 원의 20만 대군이 궤멸당했다


   이후 원나라의 국력이 쇠약해지자공민왕은 고려에서 권세를 휘두르고 있던 기황후의 일가를 멸문시켰다기황후는 공민왕의 배신에 격노하였지만홍건적의 난으로 고려를 칠 여력이 없었다


   홍건적의 난이 진압된 1363죽은 줄 알았던 기철의 넷째 아들 기새의 부추김에 기황후는 공민왕을 폐하고 덕흥군을 왕위에 세운다는 조서를 발표했고이듬해 1364년 1아이유시리다라가 2만 병력을 이끌고 고려 원정에 나섰지만수주에서 최영이 이끄는 고려군에 참패하여 퇴각하였다


   당시 원나라 조정은 기황후를 따르는 친황태자파와 기황후를 반대하는 친황제파로 나누어져 있었다기황후가 친황제파의 수장인 태평과 노적신을 해임시키자노적신은 패라첩목아에게 가서 거병을 부추겼다패라첩목아는 대도성을 점령하여 조정의 권력을 거머쥐었다이에 아이유시리다라가 자신을 지지하는 태원의 군벌 왕보보에게 가서 원군을 청하였다


   왕보보는 이듬해 거병을 일으켜 30만 대군을 이끌고 대도로 진격했고패라첩목아는 부하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1368명을 건국한 주원장이 원나라가 내전으로 국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원나라 정벌에 나섰다다급해진 원나라 황제 토곤은 고려에 사신을 보내 응원군을 보내달라 청하였으나고려군은 끝내 오지 않았다기황후가 눈물을 흘리며 대도를 사수할 것을 간청했으나토곤은 대도를 버리고 만리장성 북쪽의 상도로 퇴각할 것을 결정했다도읍을 잃은 원나라는 그 여파로 중원의 땅을 모두 잃고결국 그들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몽고 초원으로 쫓겨가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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