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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14 명량 대첩의 미스테리, 포탄은 충분했을까? 2

   13척으로 333척을 이긴 기적같은 명량 대첩의 승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두말 할 것 없이 조선 수군의 주력 무기 대포가 한몫 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점은 대포와 포탄을 어떻게 만들었느냐 하는 것이다. 

추측하자면, 다음의 그림 명량해전도에서 보이는 우수영에 무고리라는 군기창이 있었는데, 이 당시 우수영이 왜군의 손에 넘어가지 않았으니 어느 정도의 포탄과 무기가 있지 않았을까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당시의 전황을 살펴보자. 


   명량해전도鳴梁海戰圖一 보면, 당시의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자면, 이순신 장군의 대장선이 폭이 300여 미터인 명량에서 가장 좁은 해협을 지키고 있고, 나머지 11척의 조선 수군의 배가 명량 해협의 끝 쪽에서 일자진을 펼치고 있다. 

   11척의 배가 이토록 멀리 떨어진 것은 이순신 장군의 작전이 아니라 11척의 배가 이순신 장군의 작전을 어기고 뒤로 물러나 있었던 것이 분명한데, 이는 난중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명량 대첩 당일 난중일기의 기록을 살펴보자. 

   이순신 장군은 초요기를 올려 안위와 김응함을 불렀는데, 안위에게, "안위야, 네가 죽고 싶으냐? 도망치면 어디 가서 살 것이냐?"라고 말했고, 김응함에게는 "너는 중군으로서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원하지 아니하니 죄를 어찌 면할 것이냐? 마땅히 참해야 하나 전세가 급하므모 우선 공을 세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난중일기의 기록이 이순신 장군이 대장선 한 척으로 133척의 일본 함대를 상대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한다. 

   다만, 결과적으로 후방에 있던 11척의 조선 수군의 배가 포탄을 아낀 셈이 되어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졌을 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앞서 언급했듯이, 필자가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칠천량에서 궤멸당하여 본진이 있던 한산도가 일본 수군의 수중에 떨어져 어떻게 포탄과 화약을 조달했느냐인데, 이는 몇 가지 남은 기록을 바탕으로 추정할 수 밖에 없다. 

   먼저 앞서 언급했듯이 우수영의 무고리에 포탄과 화약이 어느 정도 있지 않았을까. 

   우수영에서 포탄과 화약을 제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순신 휘하의 이봉수가 화약을 제조하는데 쓰이는 염초를 제조할 수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염초는 화약의 주성분으로 이 염초에 유황만 있다면 화약을 만들 수 있다. 

  아마도 이봉수가 화약을 만들고, 유황은 유성룡에게 받지 않았을까. 

  징비록을 보면, 유성룡이 화약 제조 기술자 대풍손에게 화약을 만들도록 지시한 사실이 있는데, 유성룡이 유황만 제공해도 이봉수가 화약을 충분히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이순신은 삼도 수군 통제사에 오른 후 순천과 보성의 군기창에서 일본군과 불과 하루 앞서 무기와 군량을 확보한 바가 있는데, 이때 포탄과 화약을 확보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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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abyrint